교계/교회

[경동]가라지 역사의 운명

2010년 2월 7일 설교자 박종화 목사

에스겔서 33:10-16

"그러므로 너 사람아,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하여라.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온갖 허물과 우리의 모든 죄악이 우리를 짓눌러서, 우리가 그 속에서 기진하여 죽어 가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가 살 수 있겠는가?` 하였다. 너는 그들에게 전하여라.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내가 내 삶을 두고 맹세한다.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한다. 너희는 돌이켜라. 너희는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나거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는 왜 죽으려고 하느냐?` 하여라. 너 사람아, 네 민족의 자손 모두에게 전하여라. 의인이라고 해도 죄를 짓는 날에는 과거의 의가 그를 구원하지 못하고, 악인이라고 해도 자신의 죄악에서 떠나 돌이키는 날에는 과거의 악이 그를 넘어뜨리지 못한다고 하여라. 그러므로 의인도 범죄하는 날에는 과거에 의로웠다는 것 때문에 살 수는 없다.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그는 반드시 살 것이다` 하였어도, 그가 자신의 의를 믿고 악한 일을 하면, 그가 행한 모든 의로운 행위를 내가 전혀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가 범한 바로 그 죄 때문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였어도, 그가 자기의 죄에서 떠나 돌이켜서, 법과 의를 행하여, 전당물을 돌려 주고, 탈취한 물건을 보상하여 주며, 생명으로 인도하는 규정들을 따라 살아, 악한 일을 하지 않으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그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내가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법과 의를 따라서 사는 사람이니, 반드시 살 것이다. 아멘.

고린도전서1:5-9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면에 풍족하게 되었습니다. 곧 온갖 언변과 온갖 지식이 늘었습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여러분 가운데서 이렇게도 튼튼하게 자리잡았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어떠한 은사에도 부족한 것이 없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날에 여러분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으로 설 수 있도록, 주님께서 여러분을 끝까지 튼튼히 세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가지게 하여 주셨습니다. 아멘.

마태복음서 13:24-30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다가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과 같다.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에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 밀이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도 보였다.

그래서 주인의 종들이 와서, 그에게 말하였다. `주인 어른, 어른께서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에서 생겼습니까?` 주인이 종들에게 말하기를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였다. 종들이 주인에게 말하기를 `그러면 우리가 가서, 그것들을 뽑아 버릴까요?` 하였다. 그러나 주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가라지와 함께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추수할 때에, 내가 추수꾼에게, 먼저 가라지를 뽑아 단으로 묶어서 불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에 거두어들이라고 하겠다.`" 아멘.


예수께서 말씀하신 여러 가지 비유 중에 오늘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려 합니다. 세상 역사에는 밀이 있고 가라지가 있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선과 악이 있는데 이 둘을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하고 질문했더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선과 악은, 밀과 가라지는 함께 살아야 한다.” 악은 없애야 하는데, 최소한 악을 줄여야 하는데 악과 선이 같이 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계속됩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히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러니 추수할 때까지 그냥 놔두어라. 추수할 때 알곡을 어차피 거두어야 하는데 그 때 내가 가라지는 뽑아서 불쏘시개로 태우고 밀이 만들어 놓은 열매는 거두어들이겠다.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면서 밀과 가라지가 같이 살게 하여라.” 이유는 가라지가 나쁘다는 걸 몰라서가 아니라 가라지를 척결하면서 밀까지 다칠까봐 가라지를 그냥 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들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가라지입니까, 밀입니까? 알곡입니까, 쭉정입니까? 가라지로 태어났다고 운명이 지어졌으면 얼마나 서글픕니까? 착한 일을 해야 할 필요도 없고 연구하거나 공부해야 할 필요도 없고 이미 운명이 정해졌으면 가라지로 살아야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밀로 운명이 정해졌다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하든지 밀로 살 텐데 무슨 다른 인간의 외적인 노력이 필요합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 이 현실을 보고, 밀이 있고 가라지가 있어서 가라지를 뽑아야 하는데 뽑다가 밀까지 뽑으면 안 되니까 참으라고 하신 것이지 가라지가 나쁜 걸 모른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 알곡으로 판단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또 물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하나님이 본래 가라지도 이 땅에 심으셨나요? 선인도 만드시고 악인도 만드셨나요? 나는 만든 일이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예수의 대답이 참 재밌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밤에 마귀가, 사탄이 와서 가라지 씨앗을 뿌려놓고 갔다. 에덴동산에는 가라지 씨앗을 뿌린 일이 없다. 하나님의 천지창조 속에는 밀을 심었지 가라지를 심은 일이 없다. 그런데 가라지 씨앗은 마귀와 사탄이 와서 뿌리고 갔다. 어떻게 할까? 마귀가 뿌린 가라지 때문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뿌린 씨앗이 줄기가 되어 밀이 되고 밀 이삭을 내고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의 선한 창조가 손상당할 수 있으니까 끝까지 가자.” 이것을 ‘하나님의 인내’, 마지막 밀의 생명을 위하여 하늘의 참으심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운명론을 말씀하시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운명이 지어졌다고 하면 저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제 뜻과 상관없이 운명적으로 존재를 구분해서 만드셨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불편부당하지 않으시고, 얼마나 편협적인 분이십니까?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마지막 추수 때가 되면 가라지나 밀의 줄기도 불쏘시개가 되든지 아니면 볏짚이 되어 쓸모는 있을 겁니다. 선인이나 악인이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나 아닌 백성이나 어떤 종교 인종을 막론하고 일단 열매 맺어서 마지막 추수 때까지, 세상 역사의 종말까지, 인간의 실존적 삶의 종말까지, 일단 종말이 되면 우리 모두 불쏘시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육의 죽음에 관해서 선인이나 악인이나 차이가 없습니다. 살아있는 동안에 저희들이 맺은 열매가 육의 죽음 이후에도, 생명의 끝 이후에도 계속 살아서 다시 씨앗을 뿌리고, 뿌리가 내리고, 줄기가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작은 차이가 있습니다. “누구나 똑같다. 태양은 누구에게나 내리고, 비도 누구에게나 내리고, 물도 누구에게나 마시게 하고 똑같은데 이 물을 먹고 자라는 사람이 열매를 맺느냐 안 맺느냐만 차이가 있다.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어떤 인간도 죽으면 똑같습니다. 차이는 죽음 이후에 오고 일단 끝난 이후에 올 열매가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하십니다.

열매를 우리가 영원한 생명이라고 할 때,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밀의 특권이지 가라지의 특권은 아닙니다. 밀도 가라지도 똑같이 사는 것 같지만 마지막 열매로 판단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사실 하나를 기억하며 사십시오. 그냥 살다가 역사가 끝난다고 그걸로 끝이 아니라 끝난 이후에 무한히 열매 맺는 사람은 그 열매가 다시 역사 속에 뿌려져서 역사를 새롭게 바꾸어 갑니다.

우리보다 먼저 가신 선조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역사의 단면들, 그냥 없어진 것 같은데 죽은 자들의 언어와 정신이 항상 살아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것을 열매 맺는 생활이라고 했습니다. 죽은 이후의 세계를 관심하기보다 현재 살아서 맺은 열매 때문에 이 열매는 항상 우리 가운데 다시 살아 움직입니다. 이걸 우리가 역사라고 합니다.

위대한 역사가인 토인비는 인간의 세계, 자연 현상이 항상 도전을 해 오는데 자연이 변화로 도전을 해 올 때, 인간이 자연의 도전에 대해서 어떻게 응전하느냐, 도전과 응전으로 역사는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만들어진다고 했습니다.

역사학자 칼라일은, 역사란 과거에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지가 역사가 아니라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오늘의 역사가가 자기 뜻에 따라서 해석해서 중요한 것은 가져오고 불필요한 것은 버리는, 오늘의 역사가와 과거에 있었던 사실과의 대화, 버리고 맺고, 끌어안고 버리는 상호작용이 만들어 내는 것이 역사라고 합니다. 살아있는 것만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사가 신채호는 역사란 ‘아(我)’와 자기 아닌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했습니다. 아마 식민지 시절에 ‘민족의 아’와 민족의 아를 짓밟는 ‘피민족’ 간의 역사로 보며, 선을 행하고 의를 행하는 ‘아’와 불의한 ‘비아’ 사이의 투쟁이라고 신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역사는 무엇입니까? 밀알과 가라지의 공존, 투쟁, 공생, 그것을 역사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그 속에 밀알과 가라지는 본래 타고난 대로 살아야 합니까? 이 말씀을 해석하기 위해서 구약에 물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에스겔이라는 선지자를 통해서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석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에스겔서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선택받은 백성이고 선민으로 내가 택했다. 밀과 같은 백성이다. 그리고 영원히 살리라고 축복을 내려주었다. 그러나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죄악을 범해서 악한 백성이 되었다. 나는 과거에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고 악한 행실을 통해서 악인으로 변했으면 과거의 선행은 기억치 않겠고, 악한 행실로 심판하겠다. 혹시 악한 백성은 영원히 살지 않게 하리라고 하나님이 약속했다고 하더라도 악한 백성이 마음을 돌이켜서 악한 길에서 벗어나서 회개하고 선한 길로 오면 과거의 악을 생각하지 않겠다. 지금 선한 행실을 한 백성을 내가 선한 백성으로 맞아주겠다. 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이니라.”

예수님의 말씀의 진실은 에스겔의 입을 빌리면 “인간은 운명론적 결정론의 산물이 아니다. 인간은 바뀌어 질 수 있다. 인간은 식물이 아니다. 인간은 제품이 아니다. 인간은 의식이 있고 도덕이 있고 윤리가 있고 정신이 있고 생각이 있고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 가장 으뜸인 생각하는 백성이다. 따라서 밀과 가라지가 공존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밀 같은 선한 백성들이 손해볼 것을 막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인간 가라지가 변하여 인간의 밀로 변하는 변화를 보고 싶다. 인간에게는 무한대의 가능성이 있고 무한대의 잠재력이 있는데 그 잠재력을 운명적으로 죽이면서 내가 처음부터 천당과 지옥으로, 선과 악으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 인간세계는 항상 변할 수 있다. 우려하는 것은 밀처럼 축복받은 백성이 가라지로 변하는 불행은 막고 싶다. 가라지로 불리는 사람들이 밀로 변하는 위대한 변신을 나는 보고 싶다. 마지막까지 견디자. 마지막까지 기다리자.”

사랑하는 백성 여러분, 오늘 에스겔서의 말씀에서 들었듯이 여러분은 살아있는 생명체이고 여러분은 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변하면 됩니다. 그리고 열매 맺읍시다. 하나님의 약속을 파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지금 변화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운명론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결과를 말씀하시고 결과를 결정짓는 모든 과정은 항상 열려있습니다. 결정하십시오. 가능성이 다 있습니다. 가능한 존재임을 명심하십시오.

사도바울이 이 말씀을 받아서 이렇게 해석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변할 수 있습니까? 가라지 같은 인간이 밀알 같은 인간으로 변할 수 있습니까? 변할 수 있습니다. 오늘 고린도전서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람과 친교를 맺으십시오. 그분과 통하십시오. 그분의 존재와 서로의 존재를 나누어보십시오. 그분을 붙잡으십시오. 그리고 그분과 친교를 나누면 여러분의 진실이 변합니다. 속 인간이 변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라는 겁니다.

우린 인간을 가리켜서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똑같이 태어나도 환경에 따라서 사람이 달라집니다. 환경, 사회, 외적인 제도, 상황, 체재, 이 모든 것을 의식이라고 철학자들은 말합니다. 베를린의 훔볼트 대학 건물 앞에 독일말로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의식이 존재를 결정한다.’ 마르크스가 한 말인데 쉽게 풀어보면, 사회적 삶의 여건이 인간의 존재를 결정하므로 여건, 사회성, 환경, 인간을 짓누르는 환경을 다 바꾸어 버리면 인간은 좋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환경을 바꾸려고, 의식이라는 세계를 바꾸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자본가들의 착취도 바꾸자, 약육강식도 바꾸자, 지금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사회적 여건이 우리의 기본 존재를 결정한다. 일부는 맞는데 틀린 부분이 있습니다. 사회적 여건이 존재를 결정하면 그것은 바꿀 수 없는 것입니까? 예수는 존재까지도 바꾸어 주십니다. 환경은 물론입니다. 근데 마르크스는 예수 믿는 자들의 행태를 봤더니 이건 예수 믿는 건 고사하고 안 믿느니만 못하는 민중을 현혹시키는 아편이라며 종교를 아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측면이 있긴 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말씀을 통해 들을 수 있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 종교, 신앙의 단체들이 설령 아편이라고 하더라도 예수는 아편이 아니셨습니다. 그 예수는 종교가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온 세계가 다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예수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는 타락한 일류를 위해서, 가라지들을 위해서, 모든 인간들을 위해서, 대신 죽어준 사람입니다. 대신 죽으신 예수는 대신 죽음으로 인해서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서 인간의 죄도 사하시고 인간의 존재를, 인간됨을 완전히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인간은 식물이 아니고, 화석화된 존재가 아니고, 항상 변화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외향적 의식만 바뀌었다고 세상의 행복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외형적인 형식과 제도도 바꾸고 생각도 바꾸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변화 없이 세상의 외형을 바꾸었다고 행복한 건 아닙니다. 진실은 아닙니다.

오늘 예수님 말씀은, 쭉정이는 불에 태우고 알곡만 거두겠다고 하십니다. 의식도 바꾸어야 하지만 사람의 인간됨됨이를 바꾸어야 합니다. 어딜 가면 바꿀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 오면 바뀔 수 있습니다. 사람이 진실하게 바뀌려면 예수한테 와야 합니다. 거죽만 바꾸지 말고 속도 바꿉시다. 그렇게 바꾸면 열매를 맺습니다. 역사가 지난 후에도 열매를 맺습니다. 살아있는 동안에도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실증하기 위해서 살아있는 동안 수많은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눈뜬 소경을 고쳐주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소경은 의학적으로 눈을 뜨고 앞을 보게 된 것만이 구원이 아니라 눈이 멀었을 때 이분은 완전히 인간 이하로 살았을 것입니다. 좌절 속에 살았고 가능성이 없다고 살았습니다. ‘소경’이라는 의식에 지배를 받았는데 눈이 떠진 이후에 눈만 바뀐 게 아니라 새로운 생명으로 인간 존재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앉은뱅이를 고쳐준 이야기, 중풍병 환자를 고쳐준 이야기는 단순히 사회적 생명만 살린 게 아니라 존재 자체를 변화시킨 사건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고 예수님께서 설명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여러분은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어집니다. 환경도 바꾸어집니다. 사람도 바꾸어집니다. 그래야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그 사실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고쳐주셔서 의식도 바꾸고 외형도 바꾸고 외면도 바꾸어 주셨습니다. 근데 막상 예수님의 주변 사람들은 이상한 운명을 맞았습니다. 열두 제자 중에 그것도 가장 믿었던 가룟 유다가 변심을 합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를 팔았습니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팔았습니다. 그런데 결국 가롯 유다는 후회가 되었습니다. 잘못했으면 예수한테 와서 팔은 상인에게는 내가 무효화 시킬 수 없어도 저는 회개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새 사람으로 거듭나겠습니다, 했어야 합니다. 예수가 가롯 유다를 위해서도 십자가에 죽으셨겠지만 가롯 유다는 그랬어야 했습니다.

가롯 유다의 해법 보십시오. ‘이 문제는 내가 해결한다. 내가 지은 죄악도 하나님께 맡기기보다 예수에게 맡기기보다 내 스스로 해결한다.’ 그래서 얻은 해법이 뭡니까? 자살입니다. 죄악에 대한 분노와 좌절과 후한과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 것은 열매 맺는 해법은 아닙니다. 해법은 예수께 와서 용서를 받는 것이 해법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 해법이지, 스스로 후회하여 자기 목숨을 던지는 것은 해법이 아닙니다. 목숨의 자살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주신 가능성을 파기하는 자살,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무한대의 은총을 덮어버리는 자살,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외형의 변화만이 아니라 내적인 새사람으로 삽시다. 죽을 사람도 살리는 주님의 뜻, 여러분 삽시다. 회개하고 삽시다.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고 삽시다. 내가 나를 구원할 수 없듯이 우리 구원을 하나님께 맡깁시다. 오늘 저희들이 주님의 떡을 먹습니다. 주님의 보혈을 마십니다. 당신과 함께 십자가 지고 새로 살겠습니다. 동행하여 주옵소서. 성령이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생명을 삽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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