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향린]이 땅을 살다간 작은 예수들(15) 남강 이승훈

2010년 2월 7일 설교자 조헌정 목사

고난과 신앙의 양심

신명기 4장 32-37절; 마르코 10장 17-27절

[이웃사랑이 민족사랑이 되려면...]

지난 주 도산 안창호의 삶을 얘기하면서 개인회개와 민족사랑이라는 제목을 달았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하나임을 강조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이웃사랑이란 곧 민족사랑임을 강조했습니다. 예배 후 교우 한분이 저에게 이런 문제 제기를 해오셨습니다. “이웃사랑이 곧 민족사랑이라는 결론이 제게 와 닿지 않습니다. 요즘 학계에서는 민족이란 개념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습니다.”

제가 답변하기를 “시간이 없어 이 부분에 대해 보다 자세히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루가복음서에 보면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가 나오는데, 거기에 이웃이 누구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강도만나 피 흘려 쓰러진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말한 민족사랑이란 개념도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에 의해 아픔을 당하고 있다는 시대 상황 안에서 정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다른 민족을 침범했던 독일이나 영국 그리고 현재 약소민족을 유린하고 핍박하는 미국이나 중국같은 나라가 민족사랑을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 민족사랑은 다른 약소민족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패권주의와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사랑이 곧 이웃사랑이요, 이웃사랑이 한 동네에 사는 지역사랑을 넘어 겨레사랑이 되는 것은 그 민족이 아픔을 당하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또 요즘같이 외국인들과의 접촉이 많고, 농촌에서 결혼하는 열쌍 중의 한쌍이 다른 민족과 결합하는 탈민족의 시대 속에서 민족을 혈통에 한정시키는 것은 잘못된 민족이해라고 말하겠습니다.

사실 제가 <이 땅을 살다간 작은 예수들>이라는 연속 하늘뜻펴기를 진행하면서 100년 전 외세와 일제의 침략 앞에서 기독교정신으로 저항했던 여러 민족주의자들의 신앙과 삶을 말하는 것이 오늘의 시대 곧 시장과 자본에 바탕을 둔 개인의 행복이 모든 이들의 삶의 목표가 되어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얼마만큼의 공명을 불러일으킬지에 의구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부자 되세요!’가 새해 덕담으로 ‘부자 되기’가 현 정부의 최상의 정책으로 자리 잡고 있는 오늘의 시대에 무슨 효력이 있겠느냐는 질문이지요. 또 대형교회 목사님들의 개인 축복설교에 물들어 자신과 가족의 행복 외에는 다른 무엇을 보지 못하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는 달걀로 바위치기 식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또한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 속에 굳게 자리 잡고 있는 신념은 지난 2천년의 역사 속에서 시대가 변하고 민족이 달라도 복음이 계속 살아있는 것은 바로 그 예수가 설파한 진리 곧 ‘십자가 자기희생에 근거한 약자사랑 실천’이 부활의 꽃으로 계속 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우리나라 초대교회의 인물들을 논하면서 그들이 품었던 민족사랑을 주제로 얘기할 수밖에 없지만, 지구가 한 촌락으로 변해가는 이 세계화의 시대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깨닫고 이를 실천하는 것은 여러분의 몫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등록하는 향린교회로서는 자신의 앞날을 계획하는 일에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 여겨집니다. 또 올해가 국치 100주년을 맞이하니 우리의 수치와 굴욕을 다시는 당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니겠습니까? 요즘 삼성과 LG 현대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고 그런 뉴스가 계속 우리 언론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면서 우리가 많은 자부심을 갖는 것은 좋지만, 그러나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런 긍정의 시각으로 우리를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전히 우리는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형제와 자매가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침을 뱉어대는 매우 몰지각한 사람들이요 자신의 분신을 기아와 전쟁의 죽음으로 몰아넣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포악스러운 민족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라크나 아프카니스탄에서 서로 다른 이념 때문에 자살폭탄이라는 방식으로 서로를 죽이는 분쟁을 보면서 참으로 어리석은 민족이라고 손가락질을 합니다만, 바로 그 모습이 우리들인 것을 깨달아야하지요. 그래도 그들은 그런 일을 시작한지가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65년째 이 짓을 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요? 시장이 국경을 넘어서는 것만이 세계화나 국제화가 아니고, 이러한 민족적인 반성과 자기성찰을 갖는 것 또한 진정 세계화요 국제화인 것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사람, 돈에만 눈이 뒤집힌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먹이감에만 눈독을 드리는 짐승에 불과한 것임을 깨닫고 인류가 민족을 넘어 공존과 연대에로 나아가는 평화운동이야 말로 진정한 세계화요 지구촌운동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통일은 여전히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입니다.

[예수는 민족주의자였는가?]

그럼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과연 예수는 민족주의자였는가?하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예와 아니오 양쪽의 답이 다 가능합니다. 우선 예수는 당시 유대선민사상에 빠져있는 유대지도자들을 향해 심한 비난을 하셨고, 저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하느님께서는 길에 널려진 돌이라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삼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분명 예수는 유대민족을 넘어 인류 전체를 구원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래 예수를 찾아온 사람들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에돔과 요단강 건너편의 띠로와 시돈지방 사람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동족 유대사람들을 칭찬하는 일은 별로 없었고 유대인들이 극도로 혐오하는 사마리아인들을 때로는 저들을 짓누르는 로마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는 반면 예수는 유대민족의 구원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 나는 유대사람 외에 다른 이방인들을 위해 부름을 받지 않았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하셨던 것이고 로마제국이라는 탈민족 국제화의 시대에 하느님 나라 운동을 하시면서도 유대땅을 벗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의 동족에 대한 겨레사랑이 열렬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제자, 바울로 또한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말하고 동족들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끝까지 받으면서도 “나는 혈육을 같이 하는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조금도 한이 없겠습니다.”라고 동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고백했던 것입니다.

오늘 전하고자 하는 남강 이승훈선생은 이렇게 예수와 바울로를 따라 민족애를 죽음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실천한 사람입니다. 남강은 우리 모두가 아시는대로 우리 민족이 고통받던 일본 제국주의 시대 속에서 나라와 민족과 교육을 위한 사랑의 화신이었으며 구원의 확신이 있는 기독교 신도로서 진리와 정의를 추구한 민족의 지도자였습니다.

[남강 이승훈의 생애]

선생은 1864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가난한 서민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갓 핏덩이의 모습을 벗어난 8개월 되던 때에 어머님을 잃어 할머니 밑에서 자라났으나 열 살 때에 할머니와 아버님을 모두 여의고 어린 나이에 상점에 잔심부름을 하는 사환으로 세상을 시작합니다. 가정 배경과 교육의 정도로 본다면 그는 평범 혹은 그 이하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특유의 성실과 정직으로 주인의 눈에 들어 열다섯에 혼인을 하고 스물네 살에는 주인의 가게와 유기공장을 넘겨받아 30대에는 관서지방의 유망사업가로 성장합니다. 그 자리에 도달하기까지 그가 보따리를 직접 짊어지고 몸으로 보여준 노력은 피눈물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초기부터 사업가로서의 남다른 일면을 보였는데, 당시는 사업주는 노동환경이나 노동자의 복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종처럼 부리는게 일반적인 생각이었고 이는 노동자의 투쟁의 요구가 없는 한 지금도 거의 변함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노동환경을 바꾸기에 힘썼고 종업원들을 가족같이 대했고 그러자 생산능률은 향상되고 품질도 좋아져 사업이 날로 번창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혼자서만 그 부를 누리지 않고 형제와 친지들을 한 동리로 불러 모아 집을 지어주고 함께 살아가는 모범을 보이기도 하였는데, 이는 이상촌에 대한 생각 꿈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조선 최고의 국제무역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두 번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큰 실패를 경험합니다. 개인이 아무리 출중하고 성심껏 노력한다 하더라도 외세 앞에서는 태풍 앞의 등잔불과 같은 것에 불과함을 그는 깨닫게 되었고 개인의 불행에 앞서 을사늑약으로 민족이 태풍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운 절대 절명의 순간에 그는 자신의 하늘부름을 고민하게 됩니다. 이때 그는 평양에서 미국에서 갓 귀국한 도산 안창호의 연설을 듣습니다.

여러분 흥분만 할 것이 아닙니다. 옛사람의 말에 ‘제가 자기를 업수이 여긴 후에야 다른 사람이 업수이 여긴다고 했습니다. 우리 국민이 모두 깨어서 자기의 덕을 닦고 행세를 바로 한다면 다른 사람이 업수이 여길래야 업수이 여길 수가 없습니다. 일본은 장차 우리 2천만의 피를 빨아먹고 우리의 사랑하는 아들과 딸은 일본의 남종, 여종으로 붙잡혀 갈 것입니다. 우리는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처럼 작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지 말고 좀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세계의 대세가 어떻게 되며 남들은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을 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깨어야 합니다.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물고기를 낚으려면 먼저 그물을 만들어야 하는 것과 같이 우리나라를 바로 잡으려면 먼저 우리가 깨어야 하고, 동포를 깨울 인재를 길러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나라를 구하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제 삼 일]

젊은 도산의 연설에 깨어지는 체험을 한 남강은 정주로 돌아와 먼저 단발, 금주, 금연을 결행하고 고향 향교에 강명의숙을 세웁니다. 그리고 4개월 뒤에 그는 이를 신학문기관이 ‘오산학교’로 탈바꿈시킵니다. 훗날 말하기를, “내가 오산학교를 세우기로 결심한 것은 불과 사흘이었는데, 이 사흘 밤을 한 잠도 자지 못하고 그 일만을 골똘히 생각했다.” 이는 마치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통과 부활의 아침 사이에 암흑에서 머문 그 사흘과 같았고, 바울로가 ‘왜 나를 핍박하는가?’ 하는 부활 예수의 음성을 듣고 눈이 멀어 다시금 눈이 뜨기까지의 다마스커스 어둠의 사흘과 같았습니다. 눈을 뜨자 그는 사업가로 재기하기 위해 모아 놓은 전 재산을 오산학교에 투자합니다. 민족을 구할 인재를 길러내고자 함이었습니다.

남강은 일개 상인이었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사환으로 시작한 그의 꿈은 돈을 벌어 조선 최고의 갑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실패를 하긴 하였지만, 어떻게 하면 돈을 버는지를 아는 상인이었고 신용 또한 튼튼하여 재기는 언제든지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로 하여금 돈을 모으는 사람이 아닌 돈을 베푸는 그것도 사람을 키우는 학교를 세우는 일에 전 재산을 투자하도록 만들었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예수께 나아와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하며 질문했던 한 부자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모든 계명을 다 지키는 흠이 없는 신앙인이었지만, ‘너의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라 오너라’ 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심하며 떠나갔습니다. 남강은 같은 길을 걸어왔지만, 예수의 같은 말씀에 그와는 반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면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다는 예수의 말씀처럼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안창호가 조직한 비밀결사 모임인 신민회에도 가담하며 이때부터 그는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됩니다.

이후 안중근의 동생 안명근의 명함을 갖고 있다 불심검문에 걸려 ‘무관학교’ 사건에 연류되어 제주도에 유배를 당한 가운데, 또 다시 일제가 민족 지도자들을 붙잡기 위해 날조한 105인 사건으로 갖은 고문과 악형을 당하면서 4년 2개월 동안 옥고를 치룹니다. 그러나 그는 ‘신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게 하기 위하여 자기를 감옥에 두었다.’는 고백을 하며 성서 읽기와 기도 금식 등의 수양을 통해 더 확고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남강은 감옥에 가기 전에도 교회를 다니긴 하였지만 그리 열심을 내지 아니하였다가 옥에서 나온 후에는 세례를 받고 교회 장로로 피택을 받으면서 교회에 자신의 삶을 헌신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여생을 교회에 바치려 하나 교리를 모르고는 어두운 밤에 등불 없이 가는 것과 같다 하여 52세의 나이에 평양신학교에 입학합니다.

남강은 신학수업을 통해 기독교가 눌린 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의 종교임을 깨닫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도 포악한 통치자와 우매한 백성, 그로 인한 고난이 똑같이 있었지만, 거기에는 통치자들의 권력을 비판하고 백성들의 불의를 고발하는 예언자들이 있었음을 발견합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보이지 않는 예언자들의 전통, 이때로부터 그는 하느님의 정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신앙인이 됩니다. 이 신앙은 그로 하여금 31운동의 주역으로 뛰어들게 하였고 결국 옥살이로 인해 신학교는 5년 과정의 3년만을 마칩니다.

남강은 감옥과 신학교 생활을 거치면서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변화되었습니다. 첫째는 그는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많이 썼습니다. 그래 ‘감사선생’이란 별명을 들었습니다. 신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모든 사물과 사람에 대한 감사로 바뀌었고 그는 감사하는 인격체가 된 것입니다. 둘째 그는 겸손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러하거니와 당시는 장유유서라는 유교의 가르침이 매우 강성했을 때입니다. 그러나 그는 열네 살이나 적은 안창호의 말을 즉각 수용했고, 스물여섯이나 적은 유영모에게 기독교를 배울 정도로 겸손하였고 그 품이 넓고 컸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큰 사람인가 하는 것은 위기와 고난을 당했을 때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남강과 31운동 그리고 오늘의 기독교]

남강을 얘기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일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처음 만세거사 운동의 소식을 접하자 “안방에서 편히 죽을 줄 알았더니 이제야 죽을 자리를 얻었구나” 했고, 장로교의 지도자들을 만나 거사를 논의할 때에 길선주, 손정도 신흥식목사 등이 신중론을 펴자 벽력같은 목소리로 “나라 없는 놈이 어떻게 천당에 가? 이 백성이 모두 지옥에 있는데 당신들은 천당에서 내려다보면서 앉아 있겠는가!”라고 하여 저들로 하여금 결단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남강은 31만세사건의 주역이었고 기독교세력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도록 이끈 최대의 공헌자입니다. 이런 남강의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기독교가 과연 가능했겠는가? 교회사가들은 31운동에 교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었다면 1907년의 평양대각성운동의 기세도 사그라진 당시의 상황에서 사회 기득권에서 밀려난 소수의 사람들이 주를 이루었던 서양의 이방종교 기독교가 오늘날과 같이 우리 민족사회에 뿌리내리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중국 일본 인도 태국 대부분의 나라들이 우리보다 먼저 기독교가 전파된 나라들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유독 한국에서만이 기독교가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31만세운동을 비롯한 여러 민족독립운동에 기독교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결과인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출애굽의 해방 사건 속에서 자주와 독립이 하느님의 명령인 것을 읽었던 것이고, 예언자들의 통렬한 사회 비판과 권력 비판에서 자유의 외침을 들었던 것이고 세례요한의 뒤를 이은 예수님의 예언자적 비판과 성전을 허물고 몸의 성전을 세움으로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는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 나라의 민중운동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31운동이 이후 중국의 54운동이나 인도의 독립운동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던 것을 감안한다면 남강의 결단과 노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역사는 분명 민중들이 주도하는 역사이지만, 그러나 이 민중을 깨우치고 이끌어가는 지도자 없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역사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요? 지금 대다수의 남한의 교회 설교 단상에서 들려지는 소리는 어떤 것들인가요? 교회가 조금 커졌다고 해서 성서의 근본 가르침을 외면하고 처음 출발을 잊어버리고 민중의 편이 아닌 권력자들과 재벌들의 편에 서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남한 사회가 교회를 바라다보고 있는 객관적인 평가입니다. 이는 교회가 멸망으로 가는 첩경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어느 누가 예루살렘 성전이 망할 것이라고 예견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일은 불과 60년 후에 일어났습니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라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남한 교회는 본래의 성서의 가르침으로, 그리고 우리의 100년 전으로 돌아가 그 진리의 길, 그 십자가의 길에 다시 서야 합니다.

성서의 역사는 출애굽 해방의 역사로부터 시작하고, 야훼 하느님 신앙은 바로 그 사건에서 경험한 깨우침에 있습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그렇다 하느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내신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나간 어느 세대에게나 물어보아라. 이 끝에서 저 끝에 이르는 하늘에도 물어보아라. 이렇듯이 큰 일이 일찍이 있었더냐?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애굽을 어떻게 치셨는지 눈으로 보지 않았느냐? 하느님께서는 하늘에서 당신의 소리를 들려주시어 너희를 깨우쳐 주셨고 땅 위에서 당신의 큰 불길을 너희에게 보여주셨다.”

31만세사건은 바로 우리민족에게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깨우침이자 큰 불길이었습니다. 31운동이 우리 민족사 아니 세계 민중운동사에 갖는 위치는 아무리 강조한다하더라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민족대표 33인의 절반인 16명이 목사와 장로로 채워지는 일에 남강의 역할은 너무나 컸습니다. 그런데 천도교 불교 기독교를 대표하는 33인 민족대표들은 서명을 앞두고 자기 종교인을 먼저 써야 한다면 좌충우돌하는 소용돌이가 잠시 일었습니다. 숫자로 생각한다면 기독교인이 먼저 이름이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순서가 무슨 순서야 이거 죽는 순서야 죽는 순서, 아무를 먼저 쓰면 어때, 의암 손병희선생의 이름을 먼저 써”하며 큰 소리로 모두를 부끄럽게 했던 분 또한 남강 이승훈장로였습니다.

31독립선언 뒤 33인 가운데 가장 최고형인 3년형을 언도받은 남강은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기 전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다. 하느님이 인류를 내실 때 각각 자유를 주셨는데, 우리는 이 존귀한 자유를 남에게 빼앗겼다. 자유를 빼앗긴 지 10년 동안 심한 고난과 굴욕이 우리를 죽음의 골짜기로 이끌었다. 일본이 오랜 옛날 조선으로부터 입은 은의를 생각하라. 은의를 원수로 갚아도 이렇게 심할 수 있느냐? 우리는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까지 적의 칼 아래 쓰러질지언정 부자유. 불평등 속에서 남에게 끌리는 짐승이 되기를 원치 않노라. 우리의 이번 일은 제 자유를 지키면서 남의 자유를 존중하라는 하늘의 뜻을 받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의 독립은 조선의 영광뿐이 아니고 튼튼한 이웃을 옆에 두는 일본 자신의 행복도 되는 것이다.

형무소 안에서 또한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공판정에서 돌아와 풀이 죽어 감방에 들어가는 동지들에게 목소리를 높여 “우리가 죽을 각오 없이 감옥에 들어온 것이냐?”라고 하여 사형설로 공포에 싸여있는 동지들의 게으른 잠을 깨어주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나와서도 말하기를. “다른 사람이 모두 출옥되고 나만 남아 있었는데, 나는 실로 조석으로 기도하기를 하루라도 더 있으면서 우리 형제의 마음을 위로코자 하였소, 지금 경성감옥에 있는 정치범이 수백 명인데 그중에 종신징역이 22명이요 그 외 10년 이상의 징역을 받은 사람이 수십 명이라, 그들을 불덩이같이 뜨거운 옥 속에 두고 나오는 생각을 하니 감옥 문에 나서자 눈물이 앞을 가리어 발길이 돌아서지 못하였소.”

[똥통 청소와 십자가 정신]

그가 옥에서 나왔을 때 오산학교는 불탔고, 아내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기금을 모아 학교를 더 크게 짓고 오산학교를 중심한 이상촌 건설이라는 더 큰 꿈을 꾸었습니다. 그 힘이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 그 힘은 성서에서 나왔습니다. “내가 감옥에 들어간 후에 한 일은 2천 7백여 페이지나 되는 구약을 열 번이나 읽었고 신약전서를 40독을 하였으며 그 외 기독교에 관한 서적 읽은 것이 7만 페이지는 될 터이니 내가 평생에 처음되는 공부를 하였소. 장래 나의 할 일은 나의 몸을 온전히 하느님에게 바치어 교회를 위하여 일할 터이니 나의 일할 교회는 일반 목사나 장로들의 교회가 아니라 온전히 하느님이 이제로부터 한 민족에게 복을 내리시려는 그 뜻을 받아 동포의 교육과 산업을 발달시키고자 하오.”

남강 이승훈은 교육을 통한 민족진흥을 추구했습니다. 구한말 국권회복운동은 무장투쟁노선과 실력양성운동 노선을 채택한 의병운동과 자강운동으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자강 운동이란 교육과 실업을 진흥함으로써 경제, 문화의 실력을 양성하고 나아가 부국강병을 달성하자는 운동이었습니다. 남강의 이러한 자강운동은 1907년 오산학교 개교식에서 언급한 그의 연설문 속에서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지금 나라가 기울어져 가는데 우리가 그저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총을 드는 사람 칼을 드는 사람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긴중한 일은 백성들이 깨어 일어나는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고 있으니 그들을 깨우치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는 과거 우리나라 지배자들이 외세에 의존했던 사실을 매우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그래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노선을 주장하는 한 청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민족의 역량을 기르는 일이지 남과 연결하여 남의 힘을 불러들이는 일이 아니다. 나는 땅속에 들어가 무거운 흙을 들추고 올라올 때 제 힘으로 들추지 남의 힘으로 올라오는 것을 본 일이 없다.”

남강은 어려서부터 남의 심부름꾼이 되었지만, 주인이 시키기를 기다릴 것 없이 자신의 일을 솔선수범하는 사람이었으며, 그의 입에서는 “이따가”란 말이 나온 일이 없었으며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때 바로 실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이 되고 나라를 사랑하는 길은 큰일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지극히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 자기 자리를 치우는 것 등을 강조했고 이런 일들을 몸소 실천하였는데 특히 남들이 싫어하는 변소 청소는 학교 변소뿐 만이 아니라 옥(獄)중에서도 도맡아 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청소를 하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바라건대 이 문에서 나가는 날 이 백성을 위하여 똥통 청소하기를 잊지 말게 하소서.”

요즘은 교육이 사람되기 위한 교육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교권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이 시대에, 남강의 교육 사상과 그의 실천적인 삶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며 지금도 우리를 향해 큰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1930년 남강은 67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타적인 삶을 살았고, 마지막 유언이 "낙심하지 말고 겨레의 광복을 위하여 힘쓰라, 내 유해는 땅에 묻지 말고 생리학 표본을 만들어 학생들을 위해 쓰게 하라"였다고 하니 그의 민족사랑과 교육열이 얼마나 투철하였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그야 말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하신 말씀을 그대로 보여준 이 땅의 작은 예수였습니다.

오산학교 시절 이승훈장로의 별명은 호랑이였습니다. 그가 나타나면 ‘범이 온다’고 학생들은 숨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서 교육받은 수많은 학생들은 그 이후 이 민족을 깨우는 살아있는 호랑이들이 되었습니다. 고당 조만식, 단채 신채호, 춘원 이광수 다석 유영모 씨알 함석헌 주기철목사 소설가 염상섭 벽초 홍명희 시인 김소월 화가 이중섭을 비롯한 수많은 민족사상가와 독립운동가들이 그로부터 나왔습니다. 올해가 호랑이의 해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가 예수의 혼을 이어받은 남강과 같이 이 땅의 살아있는 호랑이 혼이 소유자들이 되기를 바라며 향린교회 또한 이 땅에 존속하는 한 이 백성의 잠자는 영혼들을 깨우는 호랑이를 키워내는 호랑이 굴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보냄의 말]

나라 없는 놈이 어떻게 천당에 가? 이 백성이 모두 지옥에 있는데 당신들은 천당에서 내려다보면서 편히 앉아 있을 것인가?

순서가 무슨 순서야. 이건 죽는 순서야. 죽는 순서. 아무를 먼저 쓰면 어때. 의암의 이름을 먼저 써.

우리가 할 일은 민족의 역량을 기르는 일이지 남과 연결하여 남의 힘을 불러들이는 일이 아니다. 나는 씨앗이 땅 속에 들어가 무거운 흙을 들추고 올라올 때 제 힘으로 들추지 남의 힘으로 올라오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참고서적:
이만열. <역사에 살아있는 그리스도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박상돈. <크리스찬북뉴스> 인터넷
조현. <울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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