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경동]변화 산상 비전

2010년 2월 14일 설교자 박종화 목사

출애굽기 3:1-6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인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 그가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서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을 때에, 거기에서 주님의 천사가 떨기 가운데서 이는 불꽃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에 불이 붙는데도, 그 떨기가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모세는, 이 놀라운 광경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어째서 그 떨기가 불에 타지 않는지를 알아 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모세가 그것을 보려고 오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떨기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모세가 대답하였다.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 하나님이 또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뵙기가 두려워서, 얼굴을 가렸다. 아멘. 

고린도후서 4:6-10 
“어둠 속에 빛이 비쳐라"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죄어들어도 움츠러들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으며, 박해를 당해도 버림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아멘. 

마태복음서 17:1-9 
그리고 엿새 뒤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따로 데리고서 높은 산에 올라가셨다. 그런데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모습이 변하였다. 그의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게 되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예수와 더불어 말을 나누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여기에다가 초막을 셋 지어서, 하나에는 선생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가 아직도 말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뒤덮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제자들은 이 말을 듣고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으며, 몹시 두려워하였다. 예수께서 가까이 오셔서, 그들에게 손을 대시고 말씀하셨다. "일어나거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들이 눈을 들어서 보니, 예수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명하셨다. "인자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그 광경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라." 아멘. 

은혜로운 찬송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주현절 마지막 주일이고, 수요일부터 수난절이 시작됩니다. 교회력을 만들 때 예수님의 생애를 통틀어 보고 예수님의 생애를 중심으로 해서 성탄절, 주현절, 수난절, 부활절, 구획을 합니다. 저희들이 택하는 성경말씀도 큰 틀에서 보아 비슷하게 골라서 말씀을 전하고 성경말씀을 읽게 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같이 기도하러 가셨는데 제자들 앞에서 예수께서 하얀 얼굴로 하얀 옷을 입은 하늘 사람으로 변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도 흠모하던 사람 모세와 가장 존경하던 사람 엘리야 선지자 셋이서 산에서 변화한 모습으로 대화하는 모습이 오늘 성경말씀에 쓰여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한 가지 미리 전제할 게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산에서 자기 모습도 변화하고 모세와 엘리야가 같이 변화한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는데 이걸 통해서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하필 예수께서 왜 이런 장면을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보여 주시나, 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합니다.

오늘은 예수께서 곧 십자가로 끝나는 고난을 시작하기 직전의 날입니다. 이 말씀과 함께 이렇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살 날이 40일 밖에 안 남았습니다. 40일이 지나면 이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사랑하는 친지들에게 무슨 유언의 말을 남겨놓을 수 있습니까? 무슨 일을 통해서 평소에 살아갔던, 또 앞으로 꿈꾸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까? 

예수의 이 장면은 죽기 40일 전에 일어났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일을 하고 싶습니까? 여러분한테 기적을 내리셔서 말 대신에 뭔가 퍼포먼스를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능력주시면 어떤 모습을 통해서 남아있는 형제자매들과 식구들에게 미래의 아름다운 꿈을 전해주고 싶습니까? 무슨 말씀을 드라마로 찬송으로 기도로 드리고 싶습니까? 

예수는 죽고 부활할 것까지 다 알았습니다. 그리고 의식 속에 말씀도 전했고 병도 고쳐주셨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오늘은 산 위에서 수난의 준비로 이 변화된 모습을 보이면서 분명한 메시지를 예수님은 전하려고 하십니다. “인간은 변해야 한다. 사람도 변해야 하고, 세상도 변해야 하고, 나도 변해야 한다.” 변화되기 위한 하나의 장면을 묘사하십니다. 

그리고 유대교 명절로 보면 유월절이라고 하는 출애굽 시절의 절기는 수난절과 같습니다. 오늘처럼 주현절이 끝나고 사순절이 시작되기 직전에 유대사람들이 갖는 축제가 있었습니다. 그 축제를 장막절 축제라고 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해 나와서 사막에 있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이 집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사막에서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 사람들이 텐트를 쳤습니다. 텐트를 성경말씀에서는 장막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텐트를 치고 그 안에 식구들이 다 들어가서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집트에서 고생하던 걸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고, 출애굽 시켜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 속에 가지고 살겠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구원해 주신 구세주 하나님, 우리의 신앙이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세 가지 기도입니다. 그리고 텐트 속에서 가족들끼리 기도하고 텐트를 나와서 온 백성들이 함께 기도를 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창조의 축제, 구원의 축제, 희망의 축제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축제가 시작해서 마태복음에 의하면 6일 정도 지난 날, 누가복음엔 8일 정도 지난 날입니다. 축제가 시작되어 일주일이 되는 날, 안식일 비슷한 날입니다. 이날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십니다. 이미 시내에서는 장막절 축제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춤추고 노래하고 찬양하고 놀고 있는데, 산에 오르시는 예수를 따라간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형제는 예수님과 지금 변화산상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놀랐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율법을 전해주시고, 자기 백성을 출애굽 시키신 분, 건국의 아버지, 민족의 아버지, 신앙의 아버지, 모든 것의 아버지, 그렇게도 훌륭하던 모세가 하얀 얼굴과 흰옷 입고 예수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존경한 인물이 한 분 더 있습니다. 모세 율법에 따라서 왕도 성전도 다 율법에 따라 살았지만 율법을 백성들이 지키지 못할 때 비판하고 혼도 내고 그래서 왕부터 시작해서 모든 백성에게 율법을 잘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기회만 있으면 입을 열어서 소리를 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언자들입니다. 엘리야는 유대백성들이 믿기에 죽지 않고 승천하는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야라는 예언자가 죽지 않고 승천한 것은 직접 하늘나라에서 와서 앞으로 올 메시야를 직접 입으로 선포하고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죽지 않고 승천시켰습니다. 엘리야가 올 것을 확고부동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모세 율법의 대표적인 모세와 모든 예언자들을 대변하는 엘리야, 이 두 사람이 예수 앞에 등장합니다. 상징적인 등장입니다. 오늘 엘리야가 예수 앞에 모습을 갖고 나왔습니다. 엘리야가 나온 걸 보니 분명히 메시야가 오겠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나중에 성경말씀 읽어보면, 메시야가 오셨다는데 오셨으면 엘리야가 이미 왔어야지, 엘리야가 누구냐는 논쟁이 벌어지자 예수님이 일부러 말씀하십니다. ‘엘리야가 왔다, 세례요한이 엘리야다.’이스라엘 백성이 믿던 엘리야의 재림, 분명히 와서 메시야인 예수님가 오심을 준비했다고 했습니다. 

모세, 엘리야, 예수께서 엄청난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따라갔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당연히 할 말이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도 장막 축제 말미에 와 있는데 이제야말로 좋은 집 좀 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여기에 예수님, 모세, 엘리야, 세 분의 집을 짓고 저희들은 사랑채 하나 만들어서 저희들이 봉사하겠습니다. 여기서 지내십시오.” 집짓는 이야기는 장막절 축제 때문에 나온 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안 된다. 모세와 엘리야, 구약이 말하는 모든 율법과 선지자는 이미 온 메시야, 나 예수 안에서 다 소화되었다. 구약도 소화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도 소화하고, 창조주 하나님, 구세주 하나님도 다 예수 안에 들어있으니 나 예수와 함께 살면 여러분은 약속된 구원을 받는다.” 불안한 마음에 기도하러 산에 갑니다. 하나님 나라를 달라고 간구하러 산에 갑니다. 희망 찾으러 산에 갑니다. 예수님이 계신 산에도 불안이 있고 유혹이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모세는 왜 나타났는지 모세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오늘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가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난 곳이 호렙산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산에 가서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한 장면을 목도했습니다. 가시떨기나무가 불에 확 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은 타오르는데 가시떨기나무는 불만 있을 뿐 타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깜짝 놀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서있는 자리는 거룩한 곳이니 신을 벗어라.”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하라고 이곳에 부르셨습니까? 

하나님 말씀입니다. “너희 백성이 통탄해 하고 고난을 당하고 하늘을 향해서 소리치는 해방의 음성, 간구를 내가 듣고 있다. 너희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원해 내겠다. 나한테 지침을 받아라.” 이것이 호렙산에서 모세가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불은 있는데 떨기나무는 타지 않습니다. “나는 거룩한 하나님, 모든 백성을 구원하는 하나님이다. 신 벗고 정중하게 들어라. 사람의 모습을 벗고 마음을 가지고 들어봐라. 가시떨기나무가 있는데 불은 타오른다. 떨기는 타지 않는다.” 

제가 모세라면 이렇게 느꼈을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완전히 탄압, 착취, 억압에 불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 죽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입니다. “불타는 숲, 내 백성의 운명인데 거룩한 하나님은 아무리 불이 타도 내 백성을 죽이진 않는다. 죽음이 엄습해 오고, 소리를 치고, 장송곡을 불러도 나는 내 백성은 죽이지 않는다. 가라, 내 백성을 인도해 내마. 하나님의 불길로 생명의 불길로 바꾸어서 내 백성을 인도해 주겠다.” 모세는 가서 자기 백성을 인도할 길을 찾습니다. 이분이 모세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모세를 지금 등장시켰습니다. 결국 엘리야는 모든 백성의 무한한 기적도 행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꿈도 심어주었지만 엘리야는 승천하면서 내가 다시 와서 진실로 우리 백성이 기다리는 메시야를 모시고 오겠다고 약속하고 승천했습니다. 그 엘리야가 등장했습니다. 이제 산에 유혹이 생깁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를 따라가고 있는데 그 예수는 모세도 엘리야도 다 포함하시는 분, 세계의 출발부터 시작해서 모든 역사를 다 끌어안으시는 분, 그 예수를 믿는 것이 참 잘 되었고, 예수님 부탁입니다. 제발 우리보고 산 내려가서 저 비극적인 세상에서 살라고 하지 마시고 여기서 집짓고 살게 해 주십시오. 이곳이 천국 아닙니까? 

그 순간 구름이 낍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립니다. “잔소리 말고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 하는 말을 들어라.” 하고 모세도 가버리고 엘리야도 가버리고 예수님 혼자 남습니다. 이 때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려가자. 내려가자. 사순절이 기다린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무슨 말씀이냐며 여기서 부활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자고 합니다. “아니다. 나는 죽으러 가야한다.” 제자와 예수님 사이의 갈등입니다. 

마지막에 보면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일어났던 일을 담고 있는데 “인자인 내가, 네 선생님인 내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여 그대들에게 나타난 그 시간까지는 이 사실을 말하면 안 된다.” 제자들은 무슨 말인지 몰랐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나서야 깨달았을 것입니다. 내가 부활해서 너희들한테 나타날 때 이 사실을 말하여라. 그래서 성경에 이런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어렵게 사신 적 많고, 지금도 어려운 상황에서 힘들어 하시는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이 때 여러분 꿈을 꾸시는데 어떤 꿈을 원하십니까? 예수가 나타났고, 모세가 나타났고, 엘리야가 나타난 아름다운 미래가 보였으면 저 같아도 여기서 살고 싶습니다. 꿈이라도 좋습니다. 일분동안의 현실이라도 좋으니 여기서 집짓고 살게 해주십시오. 하늘나라의 비전을 본 사람은 아마 그럴 겁니다. 예수님 말씀은 이렇습니다. “아니야. 내려가자.” 

우리 주변에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 이름으로 잘 믿고 제대로 믿는다며 수많은 종파와 단체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하는 이야기가 자기가 재림주라고도 하고, 하나님의 종이라고도 하고, 하나님과 대화한다고 하고, 아름다운 꿈도 펼치고 장밋빛 미래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유혹도 당합니다. 빠져들기도 합니다. 왜 그렇게 예수 믿는 사람들 사이에 우리가 소위 말하는 이상한 집단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그런 사람들은 베드로처럼 우리가 받은 이 감동이 그냥 평생 지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믿는 이의 마음이 하늘나라처럼 지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여러 이상한 집단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미래의 꿈을 이야기하고, 재림도 이야기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하는데 단 한 가지 이야기 안 하는 게 있습니다. ‘죽자. 고난을 당하자. 십자가도 지자.’ 집을 짓겠다고 애원하는 베드로한테 예수님은, 나는 사순절 사십일 동안 고난 받으러 내려가야겠다고, 여기서 승천하고 싶은 게 아니라 이 땅에 내려가야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오늘날의 사이비 종교들을 보면 나는 수난을 당해야 하겠다. 아픔을 짊어져야하겠다. 울어야하겠다. 세상 사람들과 함께 눈물을 흘려야 하겠다고 세상에 내려가는 사람들은 없고 그냥 산에 머물러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이 말씀 중에서 중요한 대목은 진실과 거짓, 사이비와 종교성의 진정, 그 차이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요한 차이는 딱 하나입니다. 진실된 종교는 수난을 좋아합니다. 진실된 구세주는 죽기까지 수난을 당합니다. 인간을 구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구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왜 사이비 종파의 지도자가 아닙니까? 그분은 산에 있다가 무한대의 비전을 보여주고 나서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상으로 내려가야 하겠다고 지금 내려가십니다. 내려가기 싫은 사람은 사이비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만든 신학적 이론은 그럴 듯하지만 사이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진실된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에 내려가야겠다. 그래서 저희들한테는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오늘 지나고 나면 다음주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고난을 되씹어야 합니다.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부활해야 합니다. 이 예수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자기 운명을 알고 있습니다. 왜 고난 속에 뛰어들어야 하는지, 왜 세상의 불길 속에 뛰어들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살아가다가 반드시 고난이 있고 슬픔이 있고 아픔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예수님 말씀입니다. “내가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여 십자가 다음에 부활하여 당신들에게 이 꿈이 사실이라는 것을 내가 보여줄 때까지 그대들은 나와 함께 묵묵히 사순절을 지내자.” 저는 하나님이 고맙습니다. 예수님이 고맙습니다. 저희들한테 사순절을 함께 지내신다고 하셨습니다. 

고통 가운데 있을 때, 힘든 가운데 있을 때, 어떻게 우리가 고통을 맞이해야 합니까? 심리적인 아픔부터 시작해서 모든 고통과 아픔 죽음까지 다 우리한테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하시렵니까? 없다고 생각하고 초막 짓고 산에서 사시렵니까? 예수님의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온갖 종류의 죽음과 고난과 아픔이 다 여러분한테 있는데 그걸 항상 발로 차면서 깨지지 마시고 고난을 딛고 일어서십시오. 고난은 발로 찰 수도 있지만, 고난은 걸림돌일 수 있지만, 고난은 디딤돌이어야 합니다. 

저는 예수님을 존경하는 이유가 사순절을 지나서 성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죽음을 딛고 부활하셨습니다. 고난에 이기셨습니다. 이것이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 속에 이미 사십일 전에 산에서 보여주시면서 “나는 하나님의 집을 짓되 고난 속에 짓겠다. 슬픔 속에 기쁨의 집을 짓겠다. 사랑하는 제자들아, 나와 함께 이 길을 가자. 아직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통 속에서 새싹이 나오는 것처럼 우리의 아픔과 고난 속에서 나와야 한다. 그러나 믿어라. 죽은 자를 꺼내서 먼저 부활하신 나 예수가 나타나서 희망을 줄 것이다. 그 때까진 함께 이기고 가자.” 

우리는 이 땅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고난을 경험했습니다. 집단적으로는 식민지이기도 했고, 전쟁도 해봤습니다. 조금 나아져서 잘 사는가 했더니 금융위기도 겪었습니다. 온갖 위기의 연속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오뚝오뚝 서왔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너희 한국이라는 나라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성격이기에 우리와 똑같은 아픔과 좌절을 겪으면서 우뚝 서서 지금 바야흐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냐고 묻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보면 부족한 게 많지만 상대적으로 우리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내려왔습니다. 아픔의 현장으로 같이 가서 손에 손을 잡고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을 삼아서 갑시다, 하고 기도했고 찬송했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혹시 그런 결과가 아닙니까? 

지난 주간에 신문에 크게는 안 났습니다만 독일 대통령이 오셨다 가셨습니다. 공식일정 시작하기 전 날, 몇 분들이 초대받아서 서너 시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왜 오셨냐고 했더니 이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유럽 국가들이 EU의 동북아 정책을 세울 때 그 동안 한국은 빼고 일본과 중국이 동북아의 큰 기둥이니까 둘을 중심으로 하고 그 중간에 한국은 작은 나라기 때문에 일종의 종속변수로 알고 동북아 정책을 펴왔는데 이제는 바꿨다고 합니다. 한중일 삼자가 대등하다. 한국의 역할이 동북아 시대에 있다. 그래서 새로운 정책을 만들고 수입을 위해서 가는 김에 EU와 독일의 대표로 가서 정책협의를 할 목적으로 왔다는 이야기를 대사에게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13년 전 한국에 두 번 왔다는데 그 때 올 때는 IMF 총재 자격으로 왔답니다. 한국이 빚져서 외환위기로 난리칠 땐데 그 때 인상은 한국이 발전을 하는데 돈이 없어서 굉장히 힘들어하는 인상을 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3년이 지난 지금은 G20도 있고 한국이 굉장히 발전해서 그런지 사람들의 인상이 환하다고 합니다. 물론 이 분은 정치가이고 경제 전문가니까 그렇게 봤겠지만 한국은 어려운 고난의 돌들을 딛고 일어서면서 섰지 않느냐. 그래서 반갑다. 같이 손잡고 어려운 과거를 이기고 앞을 향해서 나가자는 이야기를 한참 나누면서 이제는 한국이 독일이나 EU에 나눔과 부와 도덕과 윤리와 이런 것의 파트너가 되어서 세상을 같이 살기 위한 여러 가지 결론을 이야기했습니다. 

저희도 이제는 비전을 꿈꾸었고 가지고 있고,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이 땅이 위대한 비전 속에 정말 금빛나는 그런 세상에 살아보자고 결심을 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도 이 땅에 이루어지지 않은 어려운 사람, 힘든 사람, 우리 앞에 닥칠 고난의 역경들 속에 우리는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갑시다. 들어가서 그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펼칩시다. 

한해가 고난이라는 역경도 있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항상 기쁨을 맛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의 충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보물을 타고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보물을 어디에 보관하는지 아십니까? 깨지는 질그릇에 보관하십니다. 그 진실을 아십시오. 질그릇이 깨지고 약하다고 통탄해 하지 말고 깨진 질그릇 속에 하나님은 보물을 담았습니다. 유한 속에 무한의 축복을 담았습니다. 하늘을 땅 속에 담았습니다. 비록 땅이 오염되고 꺼지지만 그 속에서 하늘의 보물이 여전히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이란 질그릇 속에 희망을 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관여하신 혼이 몸속에 담겨 있습니다. 

이 땅의 어려움 속에 하나님은 위대한 부활의 축복을 십자가에 담았습니다. 그걸 마다하시면, 사순절을 마다하시면, 고난 속에 디딤돌 삼는 사순절을 마다하시면, 여러분의 희망을 보물을 담을 그릇이 없어집니다. 그릇 속에 위대한 부활의 생명을 담으십시오. 사순절을 시작할 용기를 가지십시오. 그래서 사순절 그릇 속에 새로운 생명을 담읍시다. 우리도 담고, 이 나라도 담고, 세상을 담아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그 모습을 가지십시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속된 인간이라는 그릇 속에 담겨 계십니다. 그래서 거룩을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비전은 산 위에 있지 않고 우리와 함께 사시려고 이 땅에 내려오십니다. 아름다운 하나님의 여정에 기쁨으로 동행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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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무종교인들의 증가는 기성 종교에 또 다른 도전"

최근에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무종교인의 성격을 규명하는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정재영 박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종교와 사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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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섭리 숨어있는 『반지의 제왕』, 현대의 종교적 현실과 닮아"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의 섭리와 『반지의 제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숭실대 권연경 교수(성서학)는 「신학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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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소개] 탈존적 주체, 유목적 주체, 포스트휴먼 주체

이관표 박사의 논문 "미래 시대 새로운 주체 이해의 모색"은 세 명의 현대 및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주체 이해를 소개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