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민중신학자 안병무로부터 ‘종교간대화’의 논거를 찾다

김경재 교수 심원콜로키움서 발제

  ▲김경재 교수(한신대 명예) ⓒ베리타스 DB

김경재 교수(한신대 명예, 조직신학)가 제 3세대 민중신학자들은 물론, ‘생명살림’을 화두로 제시하고 있는 진보 신학계 전체가 주목할 만한 연구를 내놓았다. 김 교수는 25일 명동 향린교회에서 열린 제 3회 심원콜로키움에서 논문 <생명살림과 종교간의 대화>를 발표하며 21세기 한국교회가 전사회적인 생명살림을 위해 종교간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역설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논거를 민중신학의 창시자 심원 안병무로부터 찾았다.

안병무와 종교간대화. 얼핏 낯선 조합으로 보이는 이 둘을, 김경재 교수는 단단히 엮었다. 안병무가 기독교의 반경을 넘어 인간 보편의 해방과 구원을 주창한 것은, 달리 보면 인간 보편의 해방과 구원을 위한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종교를 뛰어넘어 협력해야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지 않겠냐는 논리였다. 콜로키움은 심원안병무선생기념사업위원회(위원장 황성규)가 주최했다.


종교간대화를 가능케 하는 안병무의 ‘열린 생각’

종교간대화에 관한 안병무의 열린 생각은 그의 ‘신관’에서 그 뿌리를 드러낸다. 그는 서구신학이 하나님을 지나치게 타자화하고 설명하려 든 데에 반기를 들며, 서구의 신관이 아닌 ‘성서의 신관’, 그리고 ‘동양종교의 신관’에 주목했다. 그는 이 두 가지 신관이 궁극적 실재, 즉 신(神)을 말하지 않거나 혹 말한다 해도 절대타자화 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충분히 대화와 공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믿음’에 대해서도 기독교의 도그마를 받아들이는 차원을 넘어선 믿음을 말함으로 타 종교와의 대화 가능성을 활짝 열었다. 믿음에 대해 그는 말하길, “성서의 ‘피스티스’(pistis, 믿음)는 결코 그리스도론적인 협의(狹義)의 것만이 아니라, 자기를 어떤 절대의 품에 맡기는 신뢰 같은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가령 불교에서 무의식 세계로까지 탈아(脫我)하려는 것은 자신을 아주 내맡기는 행위이며, 노장(老莊)의 무(無)나 무위(無爲)의 강조도…(중략)…온갖 자기방어 장치를 해체해버리자는 것으로 보다 큰 믿음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라고 한 바 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그리스도론적 속죄론의 교리적 수용과 상관 없듯, 안병무는 진정한 믿음이란 교리를 뛰어 넘어 “하나님의 신실성에 자신을 내맡기는 전인적 태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또한 안병무는 동양적인 사상에도 열린 태도를 견지했다. 동양의 ‘기(氣)’ 철학과 기독교의 ‘성령론’을 상응시킨 안병무의 글에 대해 김 교수는, “(이 글은) 기독교가 전래되어 부흥성회가 개최되기 ‘전’에도 성령이 우리 조상들의 생명살림 운동의 존재론적 힘으로서 현존하였고, 생명을 주시는 자, 새롭게 하시는 정결의 영, 그리고 위로자로서 일해오셨다는 고백”이라고 말했다.


‘생명살림’의 실천 앞에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종교간 대화


안병무로부터 종교간 대화의 논거를 이론적으로 추출한 김 교수는, 그러나 안병무에 있어서 종교간 대화나 협력은 무엇보다도 ‘현장’에서 필연적으로 또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여기서 ‘현장’이란 생명이 죽어가는 문화에 대항하는 생명 ‘살림’의 현장을 말한다.

그러면서 인용한 안병무의 강연은, 민주화 투쟁을 하다 죽은 ‘세진이’와 ‘종철이’의 모친이 각각 그리스도교/불교도였으나, 서로 부둥켜 안고 위로하며 향후의 투쟁을 위해 다짐했다는 내용으로서, “(이 강연에서) 우리는 종교간 대화가 생명살림이라는 ‘현장’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활성화되는 것인가를 또렷하게 알게 된다”고 말했다.

또 오늘날 종교간 대화가 일어나야 하는 현장으로 ▲민주주의의 역행 상황 ▲생태계의 위기 ▲물신숭배적 가치관의 범람 ▲인간성을 황폐화시키는 무한경쟁의 교육현실을 꼽았다.

“한국교회, 종교간 대화협력에 적극 나서야”

김 교수는 한국교회가 종교간 협력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한국교회는 1919년 3.1운동,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 근래 미디어법 개정 반대운동, 4대강 사업 반대운동 등에서 종교간 협력에 활발히 참여해왔으나 “아직도 상당수의 개신교 지도자들은 시대착오적인 종교우월주의 및 타종교 비판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며 개선의 필요를 말했다.

특히 사회에 만연한 소통 부재와 갈등, 무한경쟁의 폐해 앞에 ‘생명살림’의 과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는 지적이다.

발표를 마무리하며 김 교수는 한국의 민중신학과 토착화신학에 ‘생명살림’이라는 화두가 던지는 함의를 밝히기도 했다. ‘정치사회적 해방신학’의 관점을 중시하는 민중신학과 ‘문화종교적’ 차원에서 다뤄지고 있는 토착화신학이 생명살림의 과제 앞에서 유기적으로 회통되지 않고 분리되어 각자 발전되어갈 경우, “토착화를 기본과제로 하는 한국의 문화-종교신학은 삶의 현실과 멀어지는 상아탑적 학문 활동이 될 것이고, 민중의 해방과 인간화를 기본과제로 하는 사회-정치신학은 인간 생명의 영성과 멀어지는 당위론적 정치사회학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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