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아카이브

[윤응진] 사람을 찾습니다!

세계와 선교 2009년 가을호(200호) 칼럼

출처 : 윤응진 교수의 기독교 교육 아카이브<바로가기 클릭>

윤응진 한신대 전 총장(철학박사, 기독교교육학)


1. 디오게네스의 삶이 주는 교훈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 -BC 320경)는 종종 대낮에 등불을 켜고 많은 사람들로 번잡한 시장에 나타나 “사람을 찾습니다”라고 외치고 다녔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서가 아니라, 비인간적 존재들에게 깨우침을 주기 위한 시위행위였다. 그의 눈에는 ‘사람다운 사람’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에 그리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출현으로 인해 세계제국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부귀영화와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 ‘능력 있는 자’들로 행세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는 행복한 삶의 조건을 권력과 물질을 소유하는 데에서 찾지 않고 자신의 내부에서 찾으려 했던 것이다. 에리히 프롬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유지향적 존재들이 행세하던 사회에서 존재지향적 삶을 실천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당시의 시대 풍조와 가치관과 제도에 온 몸으로 저항하였다. 이러한 그의 철학과 생활 태도는 다음의 일화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의 명성을 듣고 그를 찾았을 때, 디오게네스는 길가의 나무통 속에 앉아 햇빛을 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알렉산더 대왕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말하라. 내가 모두 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햇빛을 쬘 수 있게 비켜주시오”라고 대답했다.

그가 사람답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대왕이 제공할 수 있는 어떤 세속적 특혜가 아니라 그런 것조차 거들떠보지도 않는 빈 마음과 자족감이었던 것이다.

그리스 철학계는 소크라테스가 살해된 직후에 일종의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였으며 플라톤보다 20살이 많은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는 소크라테스를 살해한 세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귀족 제자들보다는 노동자들과 어울리기를 즐겨 하면서 그들과 같은 옷을 입었고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장터에 가서 평이한 말로 민중들을 계몽했다.

안티스테네스는 무정부, 무소유, 독신생활, 무종교를 주장했다. 그의 제자가 되어 그 가르침을 철저히 실천한 사람이 바로 디오게네스이다. 디오게네스는 헬레니즘 문명이 이룩한 모든 전통, 관습, 옷차림, 집, 음식, 체면을 거부했다.

노숙자로 살면서 그는 스스로가 ‘개와 같은 생활’(kynicos bios)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견유(犬儒)학파의 시조로 간주된다. 개처럼 문명을 거부하고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살려던 그야말로 참으로 사람다운 삶을 보여준 모범이 되었다.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의 권력과 영광은 바람처럼 사라졌으나, 디오게네스의 가르침과 삶은 오늘도 우리에게 삶의 지혜와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2. ‘사람다운’ 목회자 양성을 꿈꾸며

필자가 한신대학교(한국신학대학)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많은 스승들로부터 소중한 가르침을 받았지만, 그 가운데에서 잊을 수 없는 교훈은 ‘사람다운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1학년 신입생에게 제공된 「세계와 나」 강의 시간에 문동환 교수님은 “목사가 되려 하지 말고 먼저 사람이 되라”고 했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면 자연히 존경받는 목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충격적인 가르침이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필자에게 평생의 교훈이 되었다.

문 교수님은 그의 책 󰡔자아확립󰡕의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그 동안 얻은 결론 중 제일 중요한 것의 하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교실에서 그럴 듯한 소리를 하고, 강단에서 감명 깊은 설교를 한대도 그의 생이 사람답지 못하면, 자신과 남을 위해서 비참한 일이다. 한국에 있어서 비극 중의 비극이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큰 소리를 하는 사람일수록 흔히 그 생이 더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대중 앞에 나설 때, 앞에 마이크가 많은 사람일수록 뒤에서는 연막을 더 쳐야 한다는 사실이다.”(문동환, 󰡔자아확립󰡕, 대한기독교서회, 1972, iii.)

최근에 시사 전문 주간지 <시사저널>이 미디어리서치와 직업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목사의 신뢰도는 33개 직업 중에서 25위(53.7%)에 그쳤다. 종교인 중에서 신부(74.6%)와 승려(64.0%)보다 신뢰도가 낮았다.

신뢰받는 직업을 1위부터 10위까지 정리하면, 1위 소방관(92.9%), 2위 간호사(89.9%), 3위 환경미화원(89.2%), 4위 직업운동선수(82.1%), 5위 의사(80.9%), 6위 한의사(79.7%), 7위 초중고 교사(79.5%), 8위 은행원(79.1%), 9위 이·미용사(77.4%), 10위 프로그래머(74.8%) 순이다.

<시사저널>은 목사의 직업 신뢰도가 낮은 이유를 교회 세습, 호화로운 생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발언 등이 목사 이미지를 실추시켰다고 분석했다. 또 이명박 대통령 취임 초기에 불거진 소망교회 교인들의 인사 논란과 ‘예수천당·불신지옥’으로 대변되는 강압적이고 배타적인 선교 논리와 행태도 문제로 보았다.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가 되어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려야 하는 목사가 이처럼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은 참으로 충격적이고 민망하고 가슴 아픈 일이다.

이제 한신인들과 기장인들이 오랫동안 갈망하던 서울캠퍼스 본관․도서관 및 예배당 건축이 완료되었다.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그동안 지원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서울캠퍼스 건축은 장공 김재준 목사님을 기념하여 추진되었다. 그래서 본관 지하 1층에는 장공기념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다. 전시실까지 들어가는 길에는 명상을 돕기 위해 물이 흐르는 수(水)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들마다 장공의 가르침과 삶을 되새기면서 신학도의 길을 걷도록 설계된 공간들이다.
그런데 우리가 장공을 기념하거나 존경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자신이 장공처럼 살아야 한다. 아니, 장공을 넘어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닮은 삶을 살아야 한다! 장공을 기념하여 지어진 서울캠퍼스에 발을 딛는 신학도들마다 그 마음 자세로 학문에 정진하며 인격을 닦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 교회와 사회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지도자들로 성숙하기를 갈망한다.

글을 마치면서 어느 대중가요 가사가 떠오른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어둠은 늘 그렇게 벌써 깔려 있어
창문을 두드리는 달빛에 대답하듯
검어진 골목길에 그냥한번 불러봤어

날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 모두 오늘밤도
편안히들 주무시고 계시는지
밤이 너무 긴 것 같은 생각에
아침을 보려 아침을 보려 하네

나와 같이 누구 아침을
볼 사람 거기 없소?
누군가 깨었다면 내게 대답해 주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

스스로의 삶에서 어둠을 몰아내고 역사의 아침을 여는 사람, 스스로가 빛으로 살아서 샛별이 되는 사람, 그런 ‘사람다운 사람’들로 임마누엘 교정이 가득 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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