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택주 교수 ⓒ베리타스 DB |
우택주 교수(침신대, 구약학)가 법전과 헤게모니의 올바른 관계에 대해 구약에 비추어 논했다. 당연한 결론이지만, 헤게모니를 쥔 자들은 그것을 남용하여 법전과 법관마저도 제 입맛대로 놀리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구약에 나타난 경고성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성경이라는 신언(神言)을 빌어 말한 것이 세상 헤게모니를 쥔 자들에게 얼마나 흡수될지는 의문이지만, 우 교수는 그 신언을 빌어 자신의 주장을 전개해나갔다.
그가 갑자기 법전과 헤게모니의 관계를 말하는 이유는, 글의 서두에 나타나 있다. “최근에 이상한 여론이 우리 사회에 대두되고 있어 세인의 정서를 혼란에 빠지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사법부가 내린 일련의 판결을 놓고 정치인들이 이를 좌파 빨갱이적 이념을 가진 판사들이 사회의 여론과 상식에 상반되는 판결을 내린 것이라고 호도하고 사법부 개혁의 구실로 삼고 있다는 것”으로, 우 교수는 이러한 상황에 비판의 일침을 가하고자 했다.
그는 먼저 구약성서의 법전을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했다. 구약의 법전에 당시 지도자들이 ‘모세 및 출애굽의 하나님이 하사한 법’이라는 맥락, 즉 권위를 부여한 까닭이 ▲다양한 송사와 이에 대한 최종판결들을 신성시하고 ▲그 신성시된 판단들을 사회의 궁극적 질서로 내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구성원들의 행동과 사상을 교육·통제하며 ▲국가권력이 추구하는 이데올로기와 그 헤게모니를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법전이 정치사회적 상황에 따라 ‘이용’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우 교수는 그 대표적인 예로 ‘솔로몬’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솔로몬 왕은 전형적인 법전 위반자”다. 솔로몬은 왕권 장악을 위해 왕권 경쟁자 그룹에 속했던 요압 장군을 처치할 때, 전통적으로 지켜오던 도피성 법을 무시했다. 또 요압 장군이 자신이 정권 다툼에서 패한 사실을 알고 지방 성소의 제단에 들어가 제단 뿔을 들고 있었는데, 이럴 경우 사형이 마땅한 사람일지라도 목숨을 빼앗아서는 안되는 것이 전통적인 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목숨을 제하였다는 것이다. 우 교수는 “강력한 왕권 앞에서 신성한 법이란 한낱 쓸모 없는 규정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경은 그저 법전이 짓밟힌 현실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법전을 무시하고 왜곡이용한 권력자들의 비참한 최후를 기록하고, 예언자들의 분노 어린 경고를 싣는 것이다.
북 왕국 오므리 왕조의 아합 왕이 포도원 농부 나봇을 죽인 유명한 일화(왕상 21장)의 결말은, “나봇을 죽여 포도원을 갈취했던 아합 왕과 그의 왕조가 결국 예후 장군의 칼날 앞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 우 교수는 “역사의 심판은 준엄하다. 성서는 왕조를 유지하려는 왕권이 항상 이 역사의 추상(秋霜)같은 판결을 유념해야 했음을 증거한다”고 말했다.
또 예언자들은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것들은 화 있을진저’(이사야),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미가),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미가)라고 말하며 공의를 주문하고 있다. 우 교수는 미가 6장 8절에서 ‘공의를 행하라’는 말은 풀어 말하면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법전에 명시된 내용을 헤게모니의 향방을 따지지 말고 변함 없이 수행하되,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죽은 듯 땅에 엎드려 하늘의 판결을 기다리며 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여론이 상식적으로 되어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치우친 판결을 내리는 법관들 때문”이라며 “(그러나) 어느 사회의 법이든 그 법은 사회의 정의와 질서, 생명과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 또한 그 법을 수호하기 위해 옳은 판결을 내리는 일이야 말로 참된 법관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우 교수의 이번 글 <구약성서의 법전과 법관, 그리고 헤게모니>는 월간 <기독교사상> 3월호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