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문화원' 명예원장으로 작년 말 취임한 이어령 교수가 11일 <2010 양화진 목요강좌>에서 '소월은 왜 강변에 살자고 했나?-김소월의 시로 본 한국 문화와 기독교'를 강의했다. 1,000명이 넘게 모여 성황을 이뤘다. ⓒ이지수 기자 |
한국 최고의 지성인 중 한 명인 이어령 교수(이화여대 석좌, 초대 문화부장관)가 한국 기독교 문화계에 새로운 파장을 불러 일으킬지 주목되고 있다.
이 교수는 작년 말 개신교 계통의 문화기관인 ‘양화진문화원’의 명예원장으로 취임해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이후 첫 행보로 <2010 양화진 목요강좌 Ⅰ>를 열었는데, 11일 이 교수의 첫 강좌에 1,000명이 넘게 참석했다. 강의 2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들어와 강의 30분 전에 좌석이 꽉 찼고, 늦게(?) 온 사람들은 TV가 달린 옆 건물로 가야 했다.
청중의 이러한 ‘기다림’은 한국 기독교의 척박한 문화 현실에 대한 갈증으로 분석됐다. 인터뷰한 10명은 모두 ‘크리스천’이고 ‘기독교 문화’에 갈급해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강의를 기다리며 마틴 로이드 존스의 <부흥>을 열독하고 있던 김진호(교사, 43)씨는 “이어령 선생님의 신간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읽기에 앞서, 강의를 통해 선생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하려고 왔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에 관심이 많은 듯 한국교회의 쇠퇴가 눈에 보이는 현실이 답답하다는 그는 “문화를 가지고 어떤 작업을 한다는 게 과연 교회를 살리는 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도는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정원순씨(무역업, 59)는 한국교회가 종교적 행위만 강요한다며 답답함을 표출했다. 정씨는 “예배, 하나님, 예수님만 강조하는 것 같다”며 “이어령 선생이 기독교와 문화, 그리고 사회를 어떻게 융합시켜낼 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젊은이들도 많았다. “인문학에 관심이 많다”는 성지현씨(간호사, 35)는 “기독교를 통해 세계를 보고, 세계를 통해 기독교를 보는 시각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대학생 이진하(25)씨는 “늘 기독교는 기독교만, 문화는 문화만이었는데 이번 강좌는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열렬한 박수 속에 연단에 오른 이어령 교수는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를 기독교적으로 풀어냈다. 시에서 ‘엄마’는 ‘하나님’으로, ‘강변’은 ‘창조주의 손길이 배인 생명의 원천’이나 ‘사랑이 넘치는 사회’ 등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시인이 성경을 잘 모르는데도 절대자, 생명, 사랑과 같은 초월적 가치에 대한 희구를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시인에게는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 할지라도 아름다운 시를 쓰는 순간에 동행자가 있기 때문”이라며 “동행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했다.
강의 후 질의응답까지 끝나자 예정 시간인 밤 10시를 한참 지나 있었지만, 그 전에 자리를 뜬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어령 교수는 명예원장 취임 때 기독교의 ‘사랑’과 ‘생명’의 가치를 언급하며 “앞으로의 문명은 사랑과 생명을 자본으로 감동, 환희, 기쁨을 생산해내는 것이 되어야 한다. 21세기는 그러한 기술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세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또 “한국인은 예수님의 행적을 가장 잘 이해하는 민족으로서, 이러한 사실 때문에 어쩌면 한국의 모델이 21세기 세계 기독교의 모델이 될지 모른다”고 문화적 이해에 기초하여 한국 기독교에 기대를 밝힌 바 있다.
그는 양화진연구원을 ‘문화원’으로 개편한 의의는 ‘함께 어우러지는 정신’을 구현해보려는 데 있다며, 극단성을 내포한 종교적, 세속적 집단주의를 배격하고 진정한 기독교에 기반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있는 커뮤니티’를 만들어보려 한다고 밝혔다.
<2010 양화진 목요강좌 Ⅰ>은 4월 22일까지 계속된다. 3월 18일에 열리는 두 번째 강좌에서는 소설가 박완서가 자신의 문학과 신앙,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25일에 소설가 김훈의 ‘자전거 타기의 즐거움’, 4월 1일 정치학자 염재호의 ‘미래사회와 한국 기독교’, 15일 법학자 박홍규의 ‘차별없는 평등 세상 꿈꾼 인디언 이야기’, 22일 안철수 KAIST 석좌교수의 ‘컨버전스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가 열린다.
4월 8일부터 총 8회에 걸쳐 진행되는 이어령-이재철(100주년기념교회 담임목사) 대담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