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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기독교통일학회 발제문

글 / 이재정(국민참여당 대표, 성공회대 석좌교수)
(2010년 3월 13일 기독교통일학회 학술포럼 Mensa Talk에서 발제)


1

우리에게 2010년은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100년 전 나라를 잃어버렸고 그 결과로 식민통치의 치유할 수 없는 쓰라린 역사와 이어진 분단과 전쟁과 냉전시대를 경험하였다. 그러나 10년 전인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관계의 기본 방향과 원칙을 합의한 “6.15남북공동선언”을 채택하여 새로운 화해와 평화의 역사를 시작하였다. 이와 함께 금년은 북한의 조명록과 미국의 올브라이트가 공동으로 “조미공동코뮤니케”를 발표하여 북미 간에 새로운 협정을 맺은지 10주년을 맞이한다. 이렇게 볼 때 10년전 한반도를 둘러싼 정책에 있어서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은 모두 선순환의 순항을 하면서 평화시대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상황은 지난 10년간의 평화시대와는 전혀 다른 “과거 대결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작년 8월 김대중대통령 서거특별조문단이 정부를 방문하였고 이후 남북정상회담을 열기 위한 실무접촉도 있었으며 대통령이 여러 차례 남북정상회담에 관하여 희망적인 발언을 하는 등 남북관계가 풀려가는 듯 보였지만 아직 손에 잡히는 것은 없다. 북한은 금강산과 개성에 관광사업을 재개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접촉을 시도하였지만 결국 남측으로부터 “신변안전문제가 해결된 이후에 재개한다”는 완강한 기본 입장에 막혀 “관광사업과 관련한 모든 합의와 계약의 파기, 관광지역내 남측부동산의 동결”을 하겠다는 강경대응을 내놓고 있다. 군사적으로도 한미 합동군사훈련인 “키 리졸브” 훈련이 지난 3월 8일 시작되어 북은 강경한 비난과 함께 “비핵화과정”을 중단하겠다는 위협을 하고 있는 등 남북은 현재 강경한 군사적 대결구도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은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개최 가능성이 지극히 낮은 것으로 판단한다. 작년 후반기만 하더라도 북은 정상회담에 대한 적극적인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그 반대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의 경우 정상회담에 대하여 지나친 정치적인 고려를 하다가 결국 기회를 잡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남북긴장관계가 계속되는 한 정상회담의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2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고려하여야 할 사항은 주변국들의 국내정치의 변수들이다. 우선 한국은 6월에 역대 가장 규모가 큰 지방선거를 치루게 되어 있고, 이것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로서 여야간 치열한 대결이 예상된다. 4대강을 둘러싼 문제와 세종시의 수정안 처리 등 어려운 과제를 안고 선거를 치루는 상황에서 정부가 대북정책을 새롭게 변화시킨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한편 일본은 7월에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으며 기반이 취약한 하토야마 정권은 대북정책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오바마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가 될 중간 선거를 11월에 치르게 되어 있다. 사실상 그동안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취한 대북정책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입장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았고 클린턴 국무장광은 상황마다 다른 발언을 함으로써 혼선을 야기하였으며 대북 조정관 역할인 보즈워스 특사는 과거 크리스토퍼 힐 6자회담 대표보다 훨씬 유약한 입장인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미국 내의 보수세력의 주장을 제압하고 진취적인 정책을 채택하기에는 미국 정부가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인상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문제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에 중국은 북한과의 경제적 지원의 폭을 확대하면서 북중간의 “역사적 동반자 관계”를 더욱 강화해가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의 흐름을 이미 바꾸어가고 있다.

그런데 2010년 미국은 “핵 없는 세계”를 향한 적극적인 정책을 제시하면서 구체적으로 핵무기감축방안과 함께 부시정부 때 구상했던 벙커버스터 핵무기개발계획을 전면 취소하는 등 새로운 “평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금년 5월에 열릴 예정인 “핵무기확산방지조약(NPT) 재검토회의”를 앞두고 미국이 이미 2009년 9월 유엔 안보리 결의안 1887호의 실질적인 이행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까지 북한이 NPT에 복귀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으며 북한과의 직접협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6자회담의 개최도 사실상 불투명하고 또 열린다 하더라도 어떤 결실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지난 2007년 정상회담을 개최할 때 부시의 적극적인 대북대화 제의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상황이 호전”되었다는 것으로 북측이 판단하고 회담에 동의한 배경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재의 국제적 상황 특히 미국의 불확실한 대북입장에서 정상회담의 개최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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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는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졌다. 2000년의 제 1차 정상회담이 남북관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 평화와 통일로 향한 길을 제시하였다면 2007년의 제 2차 정상회담은 그 길을 만들고 그 길을 통하여 이룩할 구체적인 화해와 공동번영의 프로그램을 제시하였다. 사실 제 2차 정상회담의 결과인 남북정상선언은 현 단계에서 풀어가야 할 종전선언, 평화협정 그리고 평화체제를 위한 원칙과 과정을 명확하게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기초 위에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서해지역에 대한 새로운 대안(對案)을 합의한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결실이었다. 그리고 제2, 제3의 남북협력공업지구의 지정을 포함한 경제협력과 함께 남북 당국간의 각종 회의를 체계적으로 구성하고 정례회함으로써 “국가연합”의 길을 열게 되었다. 따라서 남북정상선언(2007)은 남북공동선언(2000)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일종의 실행계획이었다. 이 실행계획에 대하여 지나친 예산투입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비판을 하였지만 실제로 당시 매년 예산에 반영하는 남북교류협력기금인 1조 2천억~1조 4천억원의 효율적인 운영과 민간투자 그리고 국제관계의 호전에 따른 국제금융의 차관 등으로 별도의 예산을 필요로 하지 않고 추진할 수 있는 무리 없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3천”의 기본 정책 아래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전제를 내세워 남북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더구나 명시적으로 두 차례의 정상회담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북과의 신뢰관계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은 북미관계의 정상화를 통한 한반도문제의 근본적 해결과 북에 대한 국제적 제재조치의 해제를 당면과제로 하였다. 북미관계의 정상화를 위하여 북측이나 미국이나 남북관계의 개선은 필수적인 과제이었기 때문에 북측은 정상회담에 관하여 과거와는 달리 적어도 금년 초까지만 해도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실무 접촉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조건” (예를 들어 국군포로와 납북자문제 등)에 합의하거나 이행이 불투명하면서 정상회담은 답보상태를 이어왔다. 사실상 두 차례의 정상회담 합의사항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제 3의 정상회담은 그 의제 선정에 있어서 합의를 위한 여유가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나 “차별성”을 담보할 수 없었다는 점도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미국의 대북정책이 불투명하고 직접대화가 진척되지 못한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가 정상회담을 서두를 수 있는 명분도 사라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에 대한 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하거나, 정상회담을 통하여 모든 과제의 해법을 찾겠다는 적극적인 입장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정상회담이 금년 안에 개최될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다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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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우리는 2010년 정상회담이 개최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그러나 오늘 주제인 “그랜드 바겐닝”과 “통큰정치”의 만남을 위한 제언이라는 관점에서 정상회담의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여기에서 “그랜드 바겐닝”은 이명박 정부의 기본 방향을 그리고 “통큰정치”는 김정일 정부의 기본 입장을 의미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두 방향은 그 개념에 있어서 상당히 거리가 있다. 전자가 모든 남북문제를 포괄적으로 묶어서 “원 샷”으로 해결하자는 방향이라면 후자는 “종전선언-평화협정-평화체제”를 해결함으로써 북핵문제를 한반도비핵화로 풀어가는 한편 군사적 적대관계해소와 정치경제적 제재를 해소하여 북미, 북일관계를 정상화하자는 단계적 해결을 의미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말하고 있는 “그랜드 바겐닝”의 실질적이며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진 바가 없어서 서로 다른 남북의 입장을 조율하여 제안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이 발표에서는 부제보다는 주제인 “2010년 남북정상회담에 바란다”는 점에 집중하여 정상회담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상황의 변화를 결론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로 현재의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북한을 바라볼 때 식량 부족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이나 화폐개혁의 실패 (사실 화폐개혁에 대하여 실패라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도 희박하다.) 등 극도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붕괴”의 가능성을 내다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이미 1990년초 이후 현재보다 훨씬 더 혹독한 고난의 상황을 이미 경험하면서 “공화국”의 기반을 다져왔다. 그리고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견고한 동맹관계 그리고 유럽이나 중동지역의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의 확대 등은 북에게 상당한 가능성을 열어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엔의 제재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보다 강경한 제재”는 실효성을 거두기가 쉽지 않았다고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로 북한은 이미 두 차례의 핵실험을 하였고 현재의 상황이 핵동결의 상태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가 시간을 놓친다면 북한의 핵개발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무엇보다도 국제사회가 북한과의 직접협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야 한다.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과 선제공격의 가능성을 통하여 압박을 가하는 한 북한에게는 더욱 강경한 대응 이외에 다른 수단이 없었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직접대화를 머뭇거려서는 안된다. 이러한 대화의 길을 우리 정부가 열어가야 한다. 우리 정부가 북핵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지금 단계에서 정상회담이 가장 유효한 수단이 될 것이다.

셋째로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의 최대 관심사는 한국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협정을 맺는 것이며 그 결과로 평화체제를 이룩하려는 것이다. 북한은 북한의 경제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하여 이러한 조치들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열고자 한다면 이 의제에 관하여 좀 더 발전된 구체적인 제의가 있어야 한다. 이 카드는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과제이다.

넷째로 그동안 남북간의 기본정책으로 근간을 이루어 온 “포용정책”에 대한 한 차원 발전된 정책이 필요하다. 특히 “남북관계발전을 위한 법률”(2005)이 정한 바와 같이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국가간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를 실제로 국가연합을 준비하고 발전시키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질 때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현 정부가 “포용정책의 지지기반을 중도세력과 건전한 보수세력으로까지 확대하고 민간기업의 대북경협 참여를 크게 활성화하며 이른바 진보성향의 시민단체들을 정부와의 건강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시민참여형 통일’ 작업”(백낙청, “2020년 한반도 정세전망과 시민사회의 역학” 2010, P.25)을 받아들인다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국면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랜드 바겐닝”은 반드시 이러한 포용정책의 새로운 버전을 포함할 때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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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지금 크게 변화하고 있다. 2012년까지 김정일 정권의 일정한 성과를 만들어내야하는 국가적 목표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적지지 기반을 장악하고 있는 이명박 정권이 정상회담을 통한 새로운 남북의 “특수관계”를 설정할 때 국민적 합의도 훨씬 수월하게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 의제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발전을 현실화하는 절대적 가치이며 국정의 가장 우선적인 과제가 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여러가지 상황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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