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서경석 목사(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
(2010년 3월 13일 기독교통일학회 학술포럼 Mensa Talk에서 이재정 국민참여당 대표의 발제에 대한 논찬)
1.
이 신부님의 발제에 대한 논찬을 하는 문제를 가지고 고민했다. 우리는 과거 민주화운동 시절 에큐메니칼 운동의 동지들이다. 너무 가까운 사이였다. 더욱이 이 신부님은 내게는 형님과 같은 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입장이 정반대다. 그러나 한번은 어떻게 다른가를 토론하는 자리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북한을 보는 기독교의 입장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이재정 신부님께 갖는 질문이 있다. 이재정신부님이 과연 북한핵을 철저하게 반대하는 입장인지를 알고 싶다. 2005년도에 핵문제가 잇슈가 되었을 때 이 신부님이 심야토론에 나와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하면서 우리국민의 반수이상이 북핵이 있어도 대북지원과 교류협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이 점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말을 했었다. 나는 그때 북한이 핵보유를 해도 대북지원이나 교류협력을 변함없이 해야 한다면 바로 그것이 북핵을 용인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이재정신부님은 북핵을 용인하는 분이라고 생각해 왔다.
2.
이재정 신부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너무 달라 신부님 발제의 세부적인 쟁점을 토론하는 것보다는 생각의 근본틀을 토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젊은 시절에 돌아가신 안병무 박사님이 젊은이들에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성경구절을 가지고 설교하면서 어떤 체제나 이념이 인간을 억압할 때는 이에 가차없이 저항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들은 그 설교를 들으면서 꼼짝없이 유신체제와 싸워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북돕기를 하느라 98년도에 처음 북한을 가서 나는 평양시내를 한없이 울고 다녔다. 과거 박정희 유신체제보다 백배는 더 독재인 김일성, 김정일 수령독재 체제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이 처량했기 때문이다. 유신체제에 맞서 싸운 사람은 반드시 북한 수령독재 체제를 비판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올바른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나는 7-8년 전에만 해도 한반도의 평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선 평화정착부터 하고 평화가 정착된 후에 북한인권문제를 다루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후 탈북자들을 만나면서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이러한 평화우선주의는 가쯔라테프트 밀약과 같은 것이다. 가쯔라테프트 밀약에서 미국이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용인했던 것처럼 평화우선주의는 한국인이 김정일 정권의 혹독한 인권유린을 외면하는 대가로 한국인의 생명과 재산과 안전을 김정일로부터 보장 받으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기주의적 태도는 기독교인의 태도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힘들더라도 북한인권과 한반도의 평화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인권과 평화는 분리된 것이 아니다. 인권이 없는 평화는 거짓평화요 사이비 평화다. 인권을 제기하는 순간 그대로 깨지는 평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과거에도 박정희 독재정부를 향해 이러한 논리를 수없이 폈다.
3.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에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을 그대로 계승하지 않은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노무현 정부하의 대북관계는 한마디로 김정일의 비위를 맞추는 관계였다. (오늘 이 신부님의 발제에서도 북한인권문제는 한마디도 언급이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는 북한인권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그대로 깨져 버렸다. 그리고 그것으로 노무현정부의 “평화”가 얼마나 사이비인가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 갖는 근본적인 문제는 이 뿐이 아니다. 세계적인 흐름인 개혁 개방으로 북한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대북지원과 협력으로 개혁개방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다 준 협상이었다. 그리고 전 세계의 관심사가 핵확산의 방지와 국제적인 테러 방지인데 10.4선언은 이러한 국제사회의 요구를 반영시키지 못하였다. 전적으로 김정일 정권의 비위를 맞추는 것에 불과했다.
지금 북한은 개혁개방의 세계사적 흐름을 거부하고 선군정치, 3대 세습정치, 고립 폐쇄적인 정치를 고집하고 있다. 그리고 핵실험, 핵물질과 기술의 해외 유출, 국제테러 단체와의 거래, 밀수, 마약거래, 위폐발행 등 국제사회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를 일삼고 있다. 북한이 이러한 길을 가면 한국은 이에 맞설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대북공조는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4.
이재정신부님은 남북정상회담이 ‘필수’라고 하셨다. 과연 그러한가? 그동안 남북한은 정상회담을 위해 거액의 뒷거래를 해 왔다. 그래서 지금도 북한은 정상회담을 하는 것 만으로 대가를 요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진전이 없는 정상회담은 의미가 없다. 정상회담을 개최하려면 이명박정부가 말하는 ‘그랜드바게닝’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북이 핵을 포기하는 결단을 하고 한국이 북한의 개혁개방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북한이 획기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게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이러한 생각이 없다. 북한은 어떻게 해서든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으려고 한다. 이 상황에서 오바마 정부가 반핵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반핵을 위한 국제공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북의 태도가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는 정상회담을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명박정부가 진정성이 없는 정상회담은 서두르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재정신부님은 북한이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므로 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신다. 그리고 지금 시간을 지체하면 북의 핵개발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갈 수 있으니 빨리 협상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론은 기독교의 입장이라고 보기 힙들다. 붕괴여부와 상관없이 대화를 해야 할 때는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말아야 한다. 또 북이 핵폐기의 의사가 분명해야만 회담을 하지, 그런 의사가 없는데도 정상회담을 할 수는 없다.
5.
이재정신부님은 북한 김정일의 최대 관심사가 한국전쟁의 종식, 평화협정, 평화체제라고 밝히고 계신다. 그런데 한국이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열려면 이 의제에 대해 좀더 발전된 구체적인 제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신다.
그러나 나는 ‘“종전선언-평화협정-평화체제”를 해결함으로써 북핵문제를 한반도비핵화로 풀고 군사적 적대관계해소와 정치경제적 제재를 해소하여 북미, 북일관계를 정상화하자’는 북한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아직도 평화문제를 미국과의 문제로 보고 있다. 이러한 주장의 바탕에는 미북관계개선이 선행되고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부속합의서와 2005년 6자회담공동선언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다. 그리고 제아무리 북한과 평화협상을 하고 평화협정을 맺더라도 한국이 북한의 비위를 심각하게 건드리면 북한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백지화시킬 것이다. 지금도 한국이 관광사업을 신변안전문제가 해결된 후에 재개하겠다고 하니, 북한은 “관광사업과 관련한 모든 합의와 계약의 파기, 관광지역내 남측 부동산의 동결”을 하겠다고 했다. 또 “키 리졸브”훈련을 하면 “비핵화과정”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협상이나 협정이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에도 수많은 합의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북한이 변화하고 북한의 인권이 개선되어야 평화가 오는 법이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평화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힘은 강력한 국방력이다.
6.
그렇다면 한국정부가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제일 중요한 점은 그간의 퍼주기, 비위 맞추기式 대북관계를 정상적인 상호주의 관계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지난 십년간 퍼주기, 비위 맞추기에 익숙해져 있는 북한당국으로서는 지금의 이명박정부의 입장을 견디기 힘들어 할 것이다. 그러나 담배를 끊는 데에도 금단현상이 있듯이 잘못된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데에는 그만큼의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이명박 정부는 인내심을 가지고 이 기간을 견뎌내야 한다.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런데 북한 인권개선을 주장한다고 해서 북한체제 붕괴를 획책하는 것이 아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나라가 미얀마인데 북한이 미얀마의 인권수준 만큼이라도 되게 하자는 것이다. 김정일 부자가 3대 세습을 해도 좋으니 핵을 폐기하고, 정치범수용소를 해체하고, 법에 의한 재판을 하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이산가족의 만남을 실현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없으면 우리는 최소한의 관계만 유지하자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도 당장 굶어죽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식량지원은 무조건 하고, 결핵 등을 막기 위한 의약품 지원도 무조건으로 하고, 나무심기도 무조건으로 하되 나머지는 전부 조건부로 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평화에서 대결로의 전환이 아니다. 퍼주기와 비위맞추기라는 비정상적인 관계를 정상적인 관계로 전환시키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특별히 기독교는 인권문제를 모든 대외관계의 중심에 위치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