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가 이어령 ⓒ열림원 |
<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 지음 ㅣ 열림원 ㅣ 총 303쪽 ㅣ 1만 5천원
초대 문화부장관 이어령의 간증집이 출간돼 화제다. 이어령은 2007년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 책은 교토에 혼자 머무르며 고독의 ‘끝’을 맛 보았던 2004년부터 세례 받은 직후인 2007년까지의 기록을 모았다.
최고의 지성인 반열에 서 있다는 이어령이, 어떻게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파격적인 제목으로 책을 내게 되었을까.
6년 전 교토에서 유학할 때다. 일흔 살 이어령은 얼마나 외로웠던지 불을 켜놓고 외출하고, 빈 방인 줄 알면서도 초인종을 눌렀다. 외로움은 묵상으로 번졌다.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이며 그릇이며 가구들이 자신을 구속할 뿐이라는 것을 느끼곤, 빛과 향기처럼 아무리 채워도 자신을 구속하지 않는 ‘영혼’을 갈구하게 되었다. 영혼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었다.
생전 처음 이어령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한다. “방 안을 물건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혼으로 채우기 위해 나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기도를 드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감기’ 앞에서도 이어령은 꼼짝 못했다. 교토에서 거구(巨軀) 이어령은 어느 날 감기에 걸린다. “두려워하던 것이 왔다. 밤새도록 열 때문에 환몽 속을 헤맨다. 가쓰라 병원에서 순번을 기다리느라 네 시간을 보냈다. 환자들 틈에 끼어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쓰러진 거인을 일으켜 세운 것은 아내의 전화 한 통이었다. 그런데 그 작은 위로에 갑자기 마음에 활기가 도는 것이, ‘예수님’도 생각나는 것이다. “예수님께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나보다”고 한다.
그 때 쓴 글 '신앙에 이르는 병'에 이어령은 “상온보다 높은 바이러스의 신열이 나와 아내를, 그리고 나와 예수님을 가깝게 해준 것 같습니다. 인간이 종교에 다가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 병이라는 생각에 머리맡의 체온계를 치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어령은 시력을 잃을 뻔했던 딸 민아가 기적적으로 시력을 되찾으면서 세례 받기를 결심한다. 딸이 병에 걸렸을 때, ‘딸을 낫게만 해주신다면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했던 것이다. 기적을 체험하고 나서도 “하나님이 이 세상 시각장애자들을 모두 눈 뜨게 하실 순 없지 않냐”며 이성을 되찾으려 했지만, 이미 이성 저 너머에 있는 영성의 세계를 맛본 뒤였다.
스스로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던 그가 지식을 ‘잿불’에 비유하며 ‘영성’을 외칠 수 밖에 없게 된 까닭은, 지식이 얼마나 인간 영혼을 위로하는 데 무익한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번 책에서 이어령은 무신론자였던 자신이 어떻게 예수를 영접하게 됐는지를 아름다운 시적 언어로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