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다양한 문화 간의 상호성에 주목해야

제3시대 월례포럼, 최현덕 박사 발표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제129차 월례포럼이 열린 한백교회에서 "상호문화철학 - 세계화의 불균형한 현실 속에서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을 모색하기 위하여 : 경계의 상호문화성"이라는 주제 하에 발표하고 있는 이화여대 탈경계인문학연구단 최현덕 박사 ⓒ김정현 기자


한민족은 단일 문화를 갖는다고 여겨왔던 한국 사회가 최근 들어 다문화라는 다소 낯선 문화 모델에 조금씩 눈을 돌리고 있다. 다문화 역시 다소 생소한 문화 모델이지만, 상호문화철학이라는 보다 낯선 문화 모델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하고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선구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학자가 있다.
 
29일 오후 7시 서대문 한백교회에서 열린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소장 김창락) 제 129차 월례포럼의 주제는 '상호문화철학 - 세계화의 불균형한 현실 속에서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을 모색하기 위하여'였다.
 
발표자인 최현덕 박사(이화여대 탈경계인문학연구단)는 독일 브레멘 대학에서 수학한 학자로, 문화적 이해와 분석을 넘어서 권력 관계와 정치적 관점이 개입될 필요성을 주장하는 상호문화철학의 리더 라울 포르네 베탕쿠르(Raul Fornet-Betancourt) 교수의 견해를 소개하며 한국적 상호문화철학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최 박사는 "서구가 자신들의 철학을 보편적 철학으로 간주하고 다른 문화권의 사상과 철학을 대상화시켜버리고 배제해온 것에 대한 비판에서 상호문화철학이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최 박사는 이어 상호문화철학이 본격적 담론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1980년대 말 동구권의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세계화의 이름하에 신자유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는 '문화의 획일화'를 짚어보며 차이 곧 '경계'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에 대한 반발로 대두한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와의 전쟁 등 '차이'가 '차별'과 '배제'로 돌변하는 현 상황에 대한 철학적 대안이 바로 상호문화철학임을 주장했다. 
 
상호문화철학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최 박사는 단일 문화론과 다문화론, 초문화론 등 다양한 문화 모델들과 그 주장들을 언급하며 차이점과 한계점을 밝혀 나갔다.
 
한국의 경우 근대에 들어 서구와 일본의 영향이 있었고, 세계화가 진행되어 가고 있는 현재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와 국제 결혼여성의 존재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남자와 여자, 양반과 노비, 세대 간 차이 등이 있었기에 동질적인 단일 문화를 주장하면서 특정 문화를 배제하는 정태적이고 폭력적인 행위를 지속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이 단일 문화 모델의 반대 극단에 있는 것이 초문화 모델이다. 한 사회 내에 다양한 문화가 있을 뿐더러 그것이 서로 얽히고 설키기를 반복하는 역동적인 문화 모델이다. 이 두 양극단의 사이에 있는 것이 다문화와 상호문화라고 할 수 있다.
 
최 박사는 "다문화 모델은 나름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다양성을 중심으로 통합성을 지향하는 모델로 단일 문화 모델보다 진일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독일에서 일어났던 터키 여성에 대한 가족의 이슬람식 명예살인 사건을 예로 들며 ‘소수집단이 구성원의 인권과 생명을 억압할 때 이것도 다문화로서 용인할 것인가’하는 문제와 '지나친 문화 상대주의로 전락'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음을 지적하며 결국 다문화주의는 문화의 병존만을 허용할 뿐 서로 상이한 문화가 만났을 때, 그러한 문화 간의 관계 등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킬 여지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 박사는 상호문화주의는 문화 간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용과 인정이 다문화의 키워드였다면 소통과 대화가 상호문화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초문화주의자들이 상호문화주의가 문화 간의 대화를 이야기하나 결국 단일문화를 전제한다는 점을 들며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최 박사는 초문화주의가 경계를 넘어서는 문화는 파악하고 있으나,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새로운 골이 생겨난 사례를 들며 경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초문화주의는 경계가 없어지는데 착안할 뿐이지 권력 관계를 중심으로 생겨나는 경계의 문제는 잘 다루지 못한다는 점을 꼬집었다. 상호문화주의는 초문화주의가 인정하지 않는 경계의 문제를 간과하지 않고, 다문화주의가 상대적으로 결여하고 있는 대화와 소통을 만들며 새로운 보편성을 만든다.
 
최 박사는 상호문화철학이 분야를 주장하는 철학이 아니라 하나의 관점을 나타내 주는 것이라 정의하며 상호문화철학이 갖는 비판적 측면과 건설적 측면의 두 가지 과제에 대해서 차례로 설명했다. 상호문화철학은 여러 종류의 경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으나 중요한 점은 서로 간의 차이의 인정이란 차별의 메커니즘에 대한 비판 없이는 실현될 수 없기에 문화적 이해와 분석을 넘어선 권력관계와 정치의 관점이 개입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보다 건설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상호문화철학은 <만남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최 박사는 상호성에 입각한, 차별과 배제를 극복한 진정한 만남이란 무엇이냐고 의문을 제기하며 '한국적 상호문화 철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하는 화두를 던졌다. 
 
최 박사는 ‘한국이 경험한 식민지 체험을 상호문화철학적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하는 문제를 제기하며 함석헌 사상을 통해 한국적 상호문화철학의 한 원형을 밝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의 뜻을 내비쳤다. 중심에서 배제된 주변에 대한 적극적인 재해석을 함석헌의 역사철학에서 발견한 최 박사는 함석헌이 "가난과 압박과 병과 무지와 더러움과 모짐의 무거운 짐을 그 어깨에 메고있는 고난으로 점철된 한국 역사 속에서 고난의 뜻을 깨달았다"고 분석하며, 이를 위한 첫걸음은 ""비렁뱅이" 같은 우리의 모습을 우리의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심을 쳐다보며, 주변적 현실에서 도망쳐 중심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주변성을 품속에서 인정하는 것으로써 이는 자기 분열을 극복하고, 자신과 하나가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주변적 삶에 동반된 고난의 체험은 사람을 성숙하게 하고, 보편적 진리(하나님)을 깨닫게 하고 새 세상에 대한 비전(하늘나라)을 갖게 한다. 새로운 정체성의 내용이 형성되는 것이다. 
 
아울러 최 박사는 함석헌의 고난의 철학은 주변성 극복에 있어서 새로운 전망을 제시해 준다고 말했다. 그의 철학은, 희생자의 수동적 위치에서 벗어나, 자신의 열악한 처지를 오히려 도덕적 우위의 바탕으로 전환시키고, 능동적 행위자로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주체의 역할을 주변에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전망은, 지금껏 주변적 위치에 밀려 있었던 철학이야말로 <만남의 철학>을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사명을 가질 수 있음을 시사해 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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