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CK '기독 신앙과 생명윤리' 세미나. 8일 한국기독교회관. ⓒ이지수 기자 |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생명윤리 확산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NCCK는 8일 한국기독교회관 701호에서 생명윤리 세미나를 열고 국내 개신교에서 매우 드물게 다뤄지는 주제 중 하나인 '인간 대상 임상시험'의 윤리적 문제를 고찰했다.
인간 대상 임상시험은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약물이나 의료기기 제조에 있어서 필수적인 과정이지만, 한편으로는 연구 대상이 되는 피험자의 인권과 생명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해 선진국에서는 종교계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세계대전시 독일 나치와 일본 731부대가 자행한 잔인한 생체실험은 인간 대상 임상시험이 부정적으로 수행된 극단적인 예다.
세미나 발제는 권복규 이화여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맡았는데, 권 교수는 생명윤리 전문가이며(공저 <생명윤리와 법>) 현재 병원의 임상시험심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미나에는 권오성 NCCK 총무를 비롯한 NCCK 실무진들과 기독교 학계에서는 유일하게 김기석 성공회대 교수가 참석했다.
권 교수는 "종교계가 인간 대상 임상시험의 비윤리성을 고발하는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상시험은 경우에 따라 심각한 인권 침해를 낳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포털 네이버에서 '임상시험 피험자 모집'을 키워드로 검색했다. 그러자 구직 웹사이트를 비롯한 각종 웹사이트에 피험자 모집 광고가 '아르바이트 구한다'는 식으로 올라와 있고 피험을 원하는 사람들이 '페이'(보수)를 문의하는 글들이 보였다. 권 교수는 아직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약품이나 의료기기를 인간을 대상으로 테스트하는 '무거운' 일이 한국사회에서 너무나 '가벼이' 다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더구나 피험을 신청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대학생과 같은 경제적 약자들이라고 지적하며 "물론 임상시험이 의료 발전을 위해 필요하지만 그것이 상업화 되어 돈 없는 사람들을 돈으로 유도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지 않냐"고 말했다.
두번째 인권 문제는 피험자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대개 시험에 들어가기 전 피험자에게 제시되는 설명서는 10장이 넘는다. 그러나 시험의 목적과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 등을 명시한 이 설명서를 꼼꼼히 읽고 사인(sign)하는 피험자는 거의 없다. 특히 노인들의 경우 설명을 해주어도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많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시험의 경우 대리 동의하는 보호자들은 치료비 감면을 위해 동의하기도 한다. 권 교수는 "시험자는 시험의 목적과 방법, 시험에 나타날 수 있는 이익과 부작용 등을 피험자에게 충분히 설명해줘야 하며, 그 내용이 피험자에게 '충분히 이해되는 것' 또한 중요하다"며 "이런 것이 다 돼야 적절한 동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이러한 '동의' 과정이 생략되거나 강압되는 사례가 현실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의과대학에서 의대생이나 연구원이 교수로부터 피험을 부탁 받을 때 거절하기 힘들고, 주치의가 환자에게 부탁할 때도 환자는 의사가 자신에게 치료를 소홀히 하게 될까 염려해 어쩔 수 없이 동의하기도 한다는 것.
인간 대상 임상시험은 약품이나 의료기기에 한정되지 않는다. 심리학이나 사회학 연구를 위한 설문조사나 상황 실험 또한 피험자의 동의를 거치지 않거나 피험자가 아예 자신이 시험에 참여한 사실을 모르거나 연구결과가 차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어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 또 정부에서 앞으로 활성화시킬 '유전자은행' 역시 동의 문제와 프라이버시 문제를 수반한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임상시험 문제에 종교계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기독교인이라면 이 문제에 다 동의할 것이다. 의료계가 임상시험에 있어서 국제적인 일련의 표준들을 잘 적용할 수 있도록 여론을 조성하고 또 그것을 감시하는 기능을 종교계가 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인간 대상 임상시험에 대한 포괄적인 법이 없어서 관련법 개선이 절실하나 천주교에서 배아줄기세포 문제 등 일부 생명윤리 문제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바람에 다른 생명윤리 현안은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다며 합리적인 대응을 주문하고, 복제양 '돌리' 사건 때 기독교계가 쟁점을 비껴나간 비논리적 대응을 함으로써 오히려 역효과를 낸 사실을 상기하며 "문제의 내용을 잘 알고 참여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날 세미나는 NCCK가 3월부터 6월까지 총 7차례에 걸쳐서 개최하는 '기독 신앙과 생명윤리' 세미나의 일환으로 열렸다. NCCK는 세미나에서 논의된 바탕으로 생명윤리에 대한 한국교회의 입장을 정리한 선언문을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차후 세미나 진행 일정 및 주제
3강(4/15). 유전자 연구 및 GMO 현황과 윤리적 문제
4강(4/29). 인간의 성/임신/출산/낙태와 관련된 윤리적 문제
5강(5/13). 연명치료중단과 안락사의 윤리적 문제
6강(5/27). 생명윤리와 시민참여 – 이종이식 연구를 중심으로
7강(6/03). 패널 토의 : 기독교 신앙과 생명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