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 언론인이자 목회자였던 운산(雲山) 김관석 목사(1922년~2002년)에 신학과 목회 정신을 기리기 위한 ‘운산(雲山) 에큐메니컬 강연’이 지난 13일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2층 대강당에서 개최됐다. 올해로 7회째를 맞는 이번 강연회에서 김관석 목사의 에큐메니컬 운동의 비전에 관해 김성재 목사(연세대 석좌교수)가 발제했다.
▲‘운산(雲山) 에큐메니컬 강연’이 지난 13일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2층 대강당에서 개최됐다. ⓒ김정현 기자 |
이날 ‘운산 김관석 목사의 에큐메니컬운동 비전’을 주제로 발제한 김성재 교수는 김관석 목사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비전과 리더십을 재조명하고, 2013년 총회를 계기로 한국교회와 WCC가 새롭게 가져야 할 에큐메니컬 비전과 과제를 중심으로 발제했다.
김성재 교수는 “한국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 에큐메니컬 운동을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게 한 사람이 운산 김관석 목사”라며 “‘교회협’을 통해 민주화, 인권, 민중, 통일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하면서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의 튼튼한 기반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또 운산 김관석 목사의 확고한 에큐메니킬 신앙과 비전으로 대한기독교서회, 기독교방송, 새누리신문 등을 통해 기독교 저널리즘과 신학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김성재 교수는 이어 “2013년 총회에서 WCC와 한국교회가 새롭게 비전을 제시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면서 “ 이런 비전 모색에서 운산 김관석 목사의 에큐메니컬 비전은 훌륭한 텍스트(text)와 레퍼런스(feference)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재 교수(연세대 석좌)ⓒ김정현 기자 |
운산 김관석 목사에 따르면 에큐메니컬 운동은 교회만의 연합이 돼서는 안 되며 약자와의 연합, 주리고 목마라고 병들고 나그네 되고 아픔과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그리스도 안의 형제 자매들, 곧 새로운 사랑의 공동체 의식과 정신의 연합이어야 한다고 했다. 김성재 교수는 “이러한 운산 김관석 목사의 에큐메니컬 운동 신학의 중심에는 약한 자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있다면서 그의 설교 중심에는 항상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성재 교수는 이어 “운산 김관석 목사의 에큐메니컬 비전은 ‘오늘의 신앙고백’과 ‘행동하는 기도’에 근거했다”며 “2013년 WCC 에큐메니컬 예전(신앙과 직제)은 교회 안에서 만의 예전, 그리스도교인끼리 만의 예전이 아니라 오늘의 역사 현실에서의 예전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2013년 대회에서 열리는 예배와 기도는 에큐메니컬 선교과제를 실천하는 행동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김 교수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성례전을 가진다고 하는 것은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성례전을 한다는 것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그동안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나누는 성찬을 교회 안에서만 했는데 역사 속에서 해야 한다”며 “2013년 WCC 총회는 한반도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전장의 현장에서 성례전을 통해 평화공동체 구축하는 에큐메니컬 성례전을 행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강연 이후에 열린 후속 모임에서 운산 에큐메니칼 강연 운영위원회(위원장 김상근 목사)는 김관석 목사의 신앙과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평전을 제작하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 운산 김관석 목사는
함경남도 함흥 출신이다. 함흥영생중학교에 다니던 중 기독교에 입문하여 세례를 받았고, 어머니의 권고로 일본에 유학하여 도쿄 신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신학교 재학 중에 태평양 전쟁 학도병에 징집됐던 그는 군사 훈련 중에 탈영해 일본 아키다 현에서 은신하였고, 태평양 전쟁이 종전돼 귀국할 수 있었다. 고향 함흥이 소군정 지역에 들어가면서,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벌이다가 투옥됐고, 한달 동안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뒤 삼팔선 이남으로 내려왔다.
한국 전쟁 중에는 부산으로 피난해 조선신학교 강사를 지냈으며, 기독교서회에서 편집과 출판 일을 병행했다. 잠시 미국에 유학했다가 돌아와 다시 기독교서회에서 장기간 출판업에 종사했다.
5·16 군사 정변 직후에 월간 《기독교사상》에 정변을 반대하는 글을 쓴 것을 시작으로, 박정희의 18년 집권 기간 동안 내내 박정희 체제에 반대했다. 1968년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로 선출되면서 기독교 계열의 대표적인 반체제 인사가 됐다. 삼선개헌 반대 운동과 민주회복국민선언 등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제4공화국 붕괴 후에는 통일문제연구위원장,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이사장, 기독교방송 사장, 세계기독교언론협의회 아시아지역 의장, 새누리신문 사장 등을 역임했다. 2000년에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