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경동]부활살기

2010년 4월 11일 부활절 둘째주일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이사야서 40:26-31
너희는 고개를 들어서, 저 위를 바라보아라. 누가 이 모든 별을 창조하였느냐? 바로 그분께서 천체를 수효를 세어 불러내신다. 그는 능력이 많으시고 힘이 세셔서,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나오게 하시니,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불평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불만을 토로하느냐?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아멘.

베드로전서 2:12-15
여러분은 이방 사람 가운데서 행실을 바르게 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그들은 여러분더러 악을 행하는 자라고 욕하다가도, 여러분의 바른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여러분은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에 주님을 위하여 복종하십시오. 주권자인 왕에게나, 총독들에게나, 그렇게 하십시오. 총독들은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벌을 주고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게 하려고 왕이 보낸 이들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어리석은 자들의 무지한 입을 막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멘.

마가복음서 16:14-18
그 뒤에 열한 제자가 음식을 먹을 때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이 믿음이 없고 마음이 무딘 것을 꾸짖으셨다. 그들이,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을 것이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표징들이 따를 터인데, 곧 그들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으로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들며, 독약을 마실지라도 절대로 해를 입지 않으며, 아픈 사람들에게 손을 얹으면 나을 것이다." 아멘.


‘할렐루야 찬송’ 고맙습니다. 오늘은 예배 순서와 내용이 모두 ‘할렐루야’입니다. 절기별 예배를 드리면서 지난주에는 부활절 예배를 드렸고 오늘부터 부활절기 예배가 계속 이어집니다. 그 다음으로 성령강림절 예배까지 드리는데 그래서 예배 순서나 내용도 부활로 맞춰갑니다. 이것이 예식, 예전 차원의 일만은 아닙니다.

말씀에 앞서, 우리가 한 가지 결심을 했으면 하는 부탁을 드리려고 합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가정해서 부활이 없었다면 오늘 이 모임은 없습니다. 경동교회는 존재할 필요가 없고 이유도 없습니다. 세계 종교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유대교, 그와 늘 상극인 이슬람교, 동양의 여러 종교들 틈에 기독교(천주교, 개신교, 정교회를 합쳐서)는 존재할 수 없었고 존재할 가치도 없습니다.

부활 때문에 신앙의 공동체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인 기독교가 등장해서 오늘까지 왔고 지난 주일부터는 부활 절기를 지키면서 부활을 살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부활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기독교신앙을 가진 이상 오늘부터 새로운 결단을 하십시오. 부활은 우리 삶의 궁극적 단계, 마지막 단계가 부활이라는 것과 오늘부터 부활의 능력으로 살겠다는 결심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 모든 선조들도 마찬가지로 ‘인생의 사이클’을 어김없이 지내면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인생의 사이클, 삶의 사이클을 흔히 네 가지로 이야기합니다. 태어나서, 나이가 들고, 병이 들고, 목숨을 잃습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 태어날 때 ‘생(生)’, 죽을 때 ‘사(死)’, 그 중간에 ‘로(老)’, ‘병(病)’, 이 둘은 상당히 편차가 있는데 이렇게 계속 반복되는 사이클 중에 한 사이클을 여러분이나 저나 우리 모두가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반복 속에서 부활신앙이란, 생로병사로 인간의 사이클이 종료되지 않고 ‘생로병사’ 이후에 부활까지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이클을 바꿔라. 인생관을 바꿔라. 그리고 역사관을 바꿔라. 부활을 ‘사’ 다음에 있는 마지막 궁극적 단계로 믿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모여라. 예수 이름으로 모여라. 예수의 십자가 아래 모여라.”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기독교라는 공동체입니다.

저는 인도를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비행기 스케줄 때문에 인도 뉴델리 공항에는 밤12시가 넘어서 도착하는데 거기는 그 때부터 대목입니다. 그런데 가방을 들고 나올 때마다 마음이 안 좋습니다. 가방을 들고 나오면 리어카를 움직일 힘조차 없어 보이는 깡마른 할아버지들이 짐 뺏기 경쟁을 벌입니다. 그들은 짐을 들어주면 1달러나 2달러를 받게 됩니다.

제 짐을 그 할아버지 등에 얹는다는 게 도저히 인간적으로 내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가방을 드려야 돈을 벌고 살 수 있습니다. 인간의 정서와 먹고 사는 건 다른 문제였습니다. 이분들과 여러 차례 이야기를 해봤는데 이분들 말 속에 진실이 담겨있습니다. 생로병사, 많이 버나 적게 버나 현재 사이클은 변함이 없고, ‘사’ 하면 그 다음 사이클의 생에 훨씬 더 나은 상태로 태어날 수도 있고, 잘못하면 벌레로 태어날 수도 있으므로 잘 태어나기 위해서 지금 사이클 속에 있는 생을 불평 없이 견디면서 잘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는 종교사상이나 생사에 관한 사상을 모아서 이야기할 때 아마 사람들을 위로해 주려고 만든 사상 같은데 그들에게 생로병사는 계속 돌아갑니다. 끝없이 돌아갑니다. 이것을 윤회라고도 하고, 얼마큼이나 돌아가는지는 모르지만 영겁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끝없이 돌고 도는 그 사이클을 우리는 계속 살아갑니다.

제가 지금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고, 또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고, 어려운 곳에 태어났다가 힘든 곳에 태어났다가 신분이 좋은 곳에 태어났다가 그렇게 윤회사상을 누릴 수 있는 것일까요? 오늘 성경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런 거 모른다. 생로병사는 분명한 사이클이지만 사이클을 수정해라. 마지막 단계인 부활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여기에 나왔습니다.

여러분, 죽음이 삶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어느 종교도 형식상 차이가 없습니다. 죽음이 마지막이고 그걸로 끝난다고 한다면 지금 살고 있는 삶을 보람 있게 살 수 있습니까? 어떻게든 살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대체 죽는다는 게 무엇입니까? 성경말씀에 보니 사람을 만드시고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죽는다는 게 뭔지 분명한 답을 주셨습니다.

“죽음은 목숨이 끝나는 게 죽음이 아니다. 죽음은 ‘죗값’이다.” 여기서부터 우리 신앙에 대한 고백이 시작됩니다. “죽음은 인간의 삶이 자연으로 끝나는 게 죽음이 아니라 죽음은 ‘죗값’이다.” 그러면 저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죄를 지은 채로 살다가 그 죗값을 지불하고 죽는 것이라면, 아무리 제가 죄인이라도 죄 때문에 죽고 말면 그 다음이 얼마나 허무합니까? 제가 그런 생을 왜 살아야 합니까?

죽음이 ‘죗값’이면 부활은 무엇입니까? “죄가 사함 받고 새로운 활력소를 얻는 것이다. 그것이 부활이다.” 저는 이 말씀에 감격하여 신앙을 다시 고백합니다. 제가 죄인으로서 죗값을 죽음으로 치를 수밖에 없으면 치르겠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제 인생을 끝낼 수 없습니다. 그러려고 ‘생(生)’한 거 아니지 않습니까? 비록 노인이 되고 병이 든다 해도 죗값으로 인생을 끝낸다는 게 너무 억울합니다.

“죗값은 치를 테니 새로운 생명의 값을 주십시오. 한 번 더 기회를 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고 아들 예수를 통해 대신 죗값을 치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비록 죽더라도 죗값은 치러졌으므로 그다음 생명을 주시면서 부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부활이 제 생명의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에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희망을 가지고 이 생(生)을 살겠습니다. 저는 제 육신이 죽는 걸로 제 생명이 끝나지 않는 걸 알기 때문에 열심히 살기를 결단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은 어떻습니까? 우리 인생의 사이클에 부활 단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추가가 아니라 본래 부활이 마지막 단계에 있었습니다. 다만 ‘사(死)’ 이후의 부활은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중요한 대목이 있습니다. 죽음을 생명이 끝날 때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죽음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 사업을 하시다가 사기 당해서 몽땅 털린 경험이 있으십니까? 재산을 모두 잃어 망해본 적 있으십니까? 사기는 경제적 죽음입니다.

사회에서 잘 나가다가 배신당해서 인생을 망친 경험이 있으십니까? 배신이 죽을 죄악에 속합니다. 세상은 좋았지만 게을러서 게으름피우다가 빈곤에 허덕이는 경험하셨습니까? 게으름이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선하게 살았지만 너무 세상이 악해서 악한 자의 손에 악한 자의 칼에 죽임을 당한 형제자매들 보셨습니까? 악행이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사기로 사업이 망했으면 그걸로 인생은 끝입니까? 배신으로 인생이 망했으니까 그것으로 인생을 종료해야 합니까? 사기 당했다고 그걸로 인생을 종료하지 말고 재기하여 정직으로 다시 섭시다. 배신당해서 인간이 망한 것 같지만 다시 신뢰를 회복하여 새로운 인간으로 삽시다. 게을러서 망했으면 부지런하면 됩니다. 악행으로 피해를 당했으면 선행으로 악을 이기고 새로 태어나면 될 것 아닙니까?

우리 삶의 일상 중에 죽음과 비등한 크고 작은 죽음들이 널려 있습니다. 그것이 설령 죄 값이라고 하던 아니라고 하던 그걸로 한 인생을 마무리 할 수는 없습니다. 자존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죽음으로 제 인생을 끝내라고 창조하신 것이라면 그 하나님이 별로 고맙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시고 살아있는 동안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을 수없이 하셨고, 오늘 이사야의 말씀에도 하셨습니다. 도대체가 그런 하나님이 누굽니까? 하나님은 나 홀로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자신이 만든 인간과 자연, 모든 피조물과 함께 어울리시는 분, 그 이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간 없이 살고 싶어 홀로 계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이 즐겁게 찬송을 불러주면 고마워하시지만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죄를 지으면 우리가 피할 수 없이 받아야 하는 죽음까지도 끌어안으셔서 함께 계시는 하나님, 죽음으로 피조물을 끝나게 하시는 게 아니라 죗값을 치르고 다시 살려서 하나님과 찬송하며 오순도순 살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영원부터 영원까지 죽음이라는 인생의 단계를 다 극복해서 죽음까지도 함께 계시는 하나님, 죽음을 이기고 부활시켜서 함께 계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오늘 말씀하시기를 “나는 항상 그대들과 함께 하고 싶다. 인간의 때에 ‘항상’이 아니고, 하나님 때에 항상, 영원까지 함께 하고 싶다. ‘생로병사’라는 한 대의 사이클로 살지 마라. 부활이 있다.”

부활이 여러분의 마지막 생명단계입니다. 그걸 믿으시면 신앙인으로 자격이 있습니다. 안 믿으시면 종교가 필요 없습니다. 그냥 살아가십시다. 부활은 부활이 인생의 마지막 단계임을 믿는 것이 부활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축복을 주셨고 그 죽음까지 예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저는 생로병사 종교인일 수 있습니다. 부활 때문에 저는 부활을 제 삶의 마지막 단계로 정리하고 제 삶을 그곳에 투여하고 싶습니다. 부활은 그렇게 사는 겁니다, 이것이 오늘 첫 번째 말씀입니다.

두 번째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바로 승천하셨으면 문제가 다른데 부활하셔서 옛날 같이 살던 제자들한테 가셨습니다. 죽기 전에 같이 일하던 갈릴리에 돌아가셔서 먹고 마시고 담소하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나타났습니다. 제자들은 죽은 자가 살아났다며 놀랐습니다. “왜 오셨습니까?”

예수님 말씀입니다. “내가 죽고 부활해서 바로 승천해서 하늘나라 간 게 아니라 나 부활한 주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마. 지금부터 살아있는 생명의 기간까지, 죽음의 기간까지 이 모든 남아 있는 일상을 부활의 힘으로 살아라. 새롭게 부활하신 예수의 부활의 힘을 가지고 죽음을 꿰뚫고 나가라. 좌절에 속지 말고 좌절을 꿰뚫고 나가자. 배신, 사기, 게으름, 악행, 모든 악을 죽이지 말고 악을 꿰뚫고 나가서 부활에 승리했다고 일러라.”

그 말을 예수께서 이렇게 하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라. 죽어도 산다고 하여라. 살아계신 하나님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지금도 십자가 아래서 허덕이는, 아직까지 구원을 받지 못한 모든 인생의 질곡을 뚫고 가서 구원으로 인도한다고 하여라. 나는 부활하여 결코 이 세상을 버린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다시 와서 십자가 아래에서 사는 고통당하는 세상에 다시 와서 부활의 힘으로 세상을 구원한다고 일러라.”

그 말씀 때문에 경동교회가 생겨났습니다. 이 말씀 한 마디 가지고 우리가 오늘 성경말씀을 읽고 예수를 구세주로 모시는 겁니다. 저희들이 살아가는 힘은 죽는 힘이 아니고, 사는 힘입니다.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분이 주신 부활의 힘, 그 힘을 가지고 오늘도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 나라는 죽은 뒤에나 맛보는 그런 나라가 아니고 지금도 맛볼 수 있는 나라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우리가 살아있는 여기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주기도문에서 고백합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주시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도 있습니다.

완벽한 나라는 아니지만 작지만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 갑니다. 우리 직장과 일터에서, 가정에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죽음으로 끝장나는 나라가 아니라 부활로 완성되는 나라를 이 땅에서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 힘을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주셨습니다. 그걸 보여주시려고 부활하신 다음에 함께 먹고 마시고 일하던 제자들 틈에 40일 동안 계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셨습니다. 40일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 화신인 그리스도는 오늘도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십니다. 구원을 이루십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다음에 사람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고맙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하고 감동을 받고 싶기도 해서 모였더니 성령이 임해서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뜨끈뜨끈하게 만들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다시 갈릴리에 오십니다. 다시 장충동까지 오십니다. 세상의 역사가 지속되는 동안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하늘에 계시지 않고 성령을 통하여 성령의 화신으로, 성령이란 이름으로 오늘 오셔서 우리와 동행하여 주십니다.

부활의 힘으로 죽음을 이기고 살라고 그렇게 명령하십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열흘 만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 때 주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보내서 십자가에 죽고 부활시키신 것처럼 나 예수는 승천한 다음에 그대들을 혼자 놔두지 않고 성령을 보낼 테니 성령을 믿고, 성령은 부활의 힘이니 부활의 힘을 받고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십시오.” 그래서 지금은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받고 살아갑니다.

성령의 능력은 이상한 일 하는 게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 성령의 능력은 역사를 뚫고 가는 힘입니다. 죄로 마감하는 게 아니고 죄를 사하고 용서받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힘입니다. 새로운 생명의 에너지입니다. 성령이란 귀신이 아니고 성령은 지금 역사를 바꾸는 엑기스 같은 힘입니다. 하나님은 죽지 않고 살아서 지금도 우리 역사를 만들어 가십니다.

며칠 전, 이런 보도를 읽었습니다. 미국의 한 학자에게 우리나라 기업가가 도요타 자동차가 위기를 당해서 흔들흔들한 미국 시장의 틈새를 우리 한국 차가 파고 들어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분 대답이 명답입니다. “도요타가 위기더라도 도요타는 도요타고, 한국 자동차는 그걸 대체 하려고 하지 말고 좋은 품질로 차를 잘 만들고 마케팅을 더 잘해서 한국 차는 한국 차대로 길을 가십시오. 왜 남의 자리에 올라가려고 하십니까?”

기업에서는 마케팅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 기독교에서는 ‘선교’, ‘봉사’라고 합니다. 물건이 아무리 좋아도 광고를 잘 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만든 제품이 좋습니다. 배도 좋고 자동차도 좋고 다 좋습니다.” “아, 그래요? 왜 좋은가요?” 이 때 좋다고 하는 방식을 설득력 있게 설파해야 하는데 그것이 선교고 설교고 봉사입니다.

중요한 것은 설교를 듣고, 봉사를 받고, 선교하고 나면 그것을 받는 제가 그 말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저는 그 말을 믿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말을 듣고 타 봤더니, 만들어 봤더니, 써봤더니 정말 믿음이 가더라며 제 마음이 움직여야 됩니다. 그것을 ‘감동’이라 합니다.

부활은 무엇일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 좀 드십시오, 하고 부활을 받았을 때 부활을 제가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짜 부활합니까? 이 부활의 경험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역사의 고비 고비마다 새로 태어나는, 새로움이 시작되는,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하신 분들은, 부활을 믿고, 믿으시면 부활의 말씀에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마케팅도 감동이라고 하는데 교회가 하는 선포도 설교도 감동이어야 합니다. 감동이 없는 말을 계속 한들 신앙공동체에 갈 수 없지 않습니까? 질적으로도 분명 좋아야 합니다. 죽으면 반드시 삽니다. 이 배는 잘 움직입니다. 이 비행기는 잘 갑니다. 이 물건 정말 믿을 수 있습니다. 높은 질과 감동을 섞어서 전할 수 있어야 경제적으로 살고 정치적으로 살겠지만 마음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부활은 믿을 수 있습니다. 믿으면 제가 감동 감화를 받습니다. 그걸 가지고 제가 오늘 어려운 세상을 살아갑니다.

오늘 베드로전서의 말씀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정도 선물을 주셨으면 부활로 마지막 단계를 정리하시고 그런 신념을 가지고 오늘부터 시작되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부활에서 출발하십시오. 부활은 최종단계이자 동시에 새로운 삶의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부활이 마지막이자 동시에 시작입니다. 끝과 시작입니다. 그것이 부활입니다. 그것이 기독교 신앙인이고 예수 믿는 사람의 특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죽음의 속박에서 자유하여 부활의 능력을 믿고 부활의 힘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갑시다.

이렇게 힘을 얻은 사람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첫째, 육체의 정욕을 위해서 쓰면 망합니다. 오히려 사랑으로 종노릇하면서 자유를 쓰십시오. 출세하고 싶은 생각 많으시죠? 성공하고 싶으시죠? 투표할 때, 당신 찍을 테니 관직에 오르거들랑 나 좀 잘 살게 해 주십시오. 편하게 해 주십시오. 그런 마음으로 투표하는 것이지 당신이 당선되자마자 나의 주인 되고 나를 누르고 나를 지배하십시오. 그렇게 투표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특권, 우리가 뽑는 특권, 교회 공동체에서의 직분, 가정에서의 직분, 사회 모든 기업, 모든 것의 직분은 출세고 성공입니다. 무엇 때문에 주셨냐 하면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감싸고 섬기라고 주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권위는 올라갑니다.

제가 목사라고 장로, 집사, 권사인 여러분을 누르면 눌러지지도 않을뿐더러 저는 튕겨 나갑니다. 제 권위는 그 날로 없어집니다. 그러면 저한테 생기는 것은 권위가 아니고 권위주의입니다. 정치권력을 주었더니 권력을 국민을 섬기는 데 쓰지 않고 누르는 데 쓰고 정욕을 위해서 쓰다가 권좌에서 물러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권위는 사랑으로 봉사하는 권위이므로 그것을 육체를 위한 정욕으로 쓰면 망합니다. 그러면 부활이 최종이 아니라 죽음이 최종 단계입니다.

제가 예수를 믿는 이유, 제가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이유, 그 죽음까지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시기를 “나는 오늘 가서 네 발을 씻어주마. 나는 다 버리고 다 놓고 그대를 사랑으로 섬기는 종이 되고 싶다.” 제가 믿는 그리스도는 위에 계시지 않고 밑에 계십니다. 제가 믿는 예수는 지금도 오셔서 제가 아플 때 동행해 주시고 제 것을 빼앗아 가지 않으시고 오히려 제게 베푸시는 분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라고 말씀하시는 분, 그래서 저는 예수를 믿습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그래서 주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위에서 군림하는 예수가 아니라 아래에서 섬기는 분, 그렇게 살면 세상은 좋아지고 공동체는 발전하고, 갈등은 해소되고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우리도 잘 살고 아름답게 살 수 있다고 그렇게 믿습니다.

“부활하며 삽시다”, 하는 말은 여러분, 죽음에 승복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고난과 악에 내 주지 마십시오. 이깁시다. 생명으로 이깁시다. 부활로 이깁시다. 부활의 힘과 신앙을 가진 사람은 오늘도 아름답게 살아갑니다. 자신 있게 부활의 역사를 만듭시다. 이 땅이 만들어집니다. 그 날이 오면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의 제목은 ‘할렐루야’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할렐루야’인 그런 삶이 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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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의 섭리와 『반지의 제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숭실대 권연경 교수(성서학)는 「신학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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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소개] 탈존적 주체, 유목적 주체, 포스트휴먼 주체

이관표 박사의 논문 "미래 시대 새로운 주체 이해의 모색"은 세 명의 현대 및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주체 이해를 소개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