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모 신부가 청중들의 질문에 웃으며 대답하고 있다 ⓒ오유진 기자 |
27일 생명평화결사는 ‘생명과 평화 길을 묻다’ 다섯번째 즉문즉설에 종교 다원주의와 종교간 대화를 강조해 온 정양모 신부를 초청, 그에게 생명과 평화의 길을 묻는 시간을 마련했다.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 회관에서 즉문즉설로 진행되었으며, 정 신부는 종교와 종파를 떠나 물어오는 다양한 질문들에 일목요연하게 답변을 전개해 나갔다.
그간 종교간 대화를 강조해 온 정 신부였기에 기독교, 불교, 천주교 등에서 종교간의 이해를 묻는 다양한 질문이 오고 갔으며 정양모 신부는 그때마다 재치있는 멘트들을 던져 청중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다음은 청중들과 정 신부가 나눈 질의응답을 요약 정리한 글.
- 지금은 성탄절 4주전으로 다시 예수님 오시길 기다리는 천주교의 대림절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기다린지 2000년이나 흘렀다. 대림절의 의미는 무엇이며 무엇을 기다리는 것인가?
“메시야가 오길 기다리는 예수재림신앙은 교부 때 생겨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20여년만에 쓰인 데살로니가서에도 종말임박설이 드러나있다. 또한 이것은 사도들이 아닌, 예수님 자신이 먼저 한 시대의 역사가 끝나고 하나님 나라가 도래한다고 전했다. 성경에 깊이 담겨져 있는 종말임박설은 마태복음 10장과 마가복음 9장 등 성경의 세 군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는 것을 볼 때까지 살 것이라던 사도들은 죽어 백골이 진토된지 오래고, 온다는 하나님 나라는 아직도 오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기다리고 기다리던 하나님나라는 오지않고, 교회가 툭 튀어나왔다. 적자는 태어나지 않고 서자가 태어났다’고 말해 1910년 가톨릭에서 제명당했던 신부도 있었다.
사도들은 하나님나라의 도래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그것은 예수님도 마찬가지였다. 신약이 쓰이기 전후로 이스라엘에서 성행하던 묵시문학이라는 것이 있다. 정보가 없기 때문에 상상할 수 밖에 없고, 상상이 지나쳐 공상까지 이른 것이다. 이렇듯 성경 속에는 진실이 있는가 하면 당시의 문화도 있다. 성경을 볼 때 이것을 간과하면 1998년 다미선교회처럼 된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금도 예수재림과 종말임박, 휴거를 기다리고 있는 개신교인이 20만명 정도 된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대림절은 기다림이다. 희망을 되새기는 것이다. 이 세상의 삶을 다할 때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이라는 종교인의 바램인 것이다.”
- 그렇다면 예수그리스도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인가?
“우리는 목숨을 갖고 사는 사람이다. 우리가 죽으면 신령한 영체로 바뀌어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난다. 또 먼저 가신 선배들을 만나러 갈 것이다. 그때 나의 영체를 거둬가기 위해 예수님이 오신다면 그것을 예수님의 재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예수님이 오신다고 표현할 수도 있고 내가 간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일 뿐이다. 그곳은 시간도 공간도 넘어서는 세계이다. 요한일서 4장 8절과 16절에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그리고 그 사랑의 화신인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내가 오고 가는 것이 아니다.”
- 개신교인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미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한 것이라고 믿는다. 또 지금의 시대를 성령의 시대라고 한다. 성령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은 하나라는 삼위일체을 기독교는 근본 교리로 믿고있다. 위는 셋이지만 체는 하나라는 것이다. 여기서 위와 체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납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위와 체에 대해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수님을 신격화시켜 하나님과 같이 된 것은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처럼 성령님이 하나님, 예수님과 하나된 것은 381년 이념과 종교, 정치적으로 통일시키는 것을 좋아하는 황제의 명령에 따라 투표로서 확정된 교리이다.
이 삼위일체에 대한 것은 요한복음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성경의 일부인 것이지, 전부가 아니다. 성령은 거룩한 작용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힘이고 거룩한 기운을 뜻한다. 그 우주적인 기운을 인격화, 신격화한 것이 성령님인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유대교는 율법, 말씀 등을 인격화 한다. 예를 들어 이레네 성당을 들 수 있다. 이레네는 평화를 뜻한다. 평화를 인격화해서 모신 것이다.”
- 오직 예수·오직 성서를 주장하며 타종교인을 포함,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라고 말하는 기독교인이 너무 편협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먼저 원죄에 대해 설명하겠다. 사실 내 큰아버지가 열매 하나 잘 못 따먹었다고 나까지 죄인이라고 한다면 말이 안된다. 그런데 ‘성삼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보면 이것이 이해가 된다. 예전에는 조상 하나가 잘하면 대대세세가 잘 되고, 조상 하나가 잘못하면 일족이 멸하는 천벌을 받았다. 이와 같이 기독교인은 첫번째 조상인 아담이 잘못해서 우리도 죄인이 되었고, 새 아담이라고 불리는 두번째 조상인 예수가 잘해서 죄가 사해졌다고 믿는 것이다. 옛날 같았으면 이해가 됐을 것이 요즘 시대에 와서는 문화가 바뀌어서 이해가 되질 않는다.
죄에 대해서는 이미 역사에 축적된 죄악이 있다고 본다. 태어날 때부터 혼탁한 세상에서 태어나지 않는가? 역사적인 죄, 사회적인 죄, 유전적인 죄가 있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바울은 로마서 5장에 원죄에 대해 집중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바울은 여기서 다메섹에서 밝은 빛 속의 예수를 만났다고 전한다. 그것은 예수의 구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예수 안에서의 세계를 밝은 빛으로, 예수 밖에서의 세계를 어둠이라고 표현하는 일종의 명암법을 사용한 것이다.
오직 예수, 오직 성경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인 입장에서는 예수가 너무 좋다보니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예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석가, 공자, 무함마드 등도 있다. 다원주의 시대에 옆을 보지 못한 것이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많다. 내가 따르는 예수 코스가 좋은데 다른 코스에 대해서는 모르고 자기 코스밖에 보이지 않으니 이것만 좋다고 하는 것이다. 다원주의 시대에 옆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단일종교문화권인 서양에서는 괜찮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종교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시각이 더 넓어져야 하는 것이다.”
-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은 사도행전에서 처음 나온다. 성만찬 예식 등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늘 그리스도를 찾는 것을 본 아피오키아 시민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예수 팔자는 곧 내 팔자다 생각하고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물론 우리는 예수를 닮는 척은 해도, 예수 같이 살고 있진 못한다. 그런 우리일지라도 하나님은 잘 봐주신다. 그렇기에 예수 코스는 편하다.
그러나 불교 코스는 난코스인 것 같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 부처님을 닮기가 쉽지 않다. 대스님들은 ‘자력성불’을 외치지만, 전세계 불자들은 의탁신앙을 갖는다. 일례로 수능 기간 등 100일 기도를 하는 등 기대려고 하는 것을 대스님들은 수준이 낮은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인류보편적인 사실인 것이다. 한국 불교의 특징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본 불교의 이해넓은 면모도 배워야 할 것이다.”
- 지금까지 신앙적으로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나?
“10년동안 해외에서 공부하면서 역사비평, 해석학 등을 배우고 한국에 들어오면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걱정했었다. 한국에 참 편협한 것이 많다. 최근 한국 정치에서 법안 하나 가지고 싸우고 있는 걸 보면 참 편협하다. 그런데 그 누구보다 가장 편협한 것은 종교인이다.
비교적 나는 하고싶은 얘기를 하고 사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1997년 처벌을 받았고, 가톨릭중앙협의회에 나오는 모든 문서에는 내 글이 실리지 않는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처벌 내렸다는 것을 나에게 통보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또 밖으로도 쉬쉬할 뿐 밝히지를 않는다. 그래서 아직까지 난 가톨릭의 울타리에서 활동할 수 있다. 나가라고 할 때까지 있을 생각이다.
처벌은 받았지만 사실 37년째 참아주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나는 참 감사하다. 내가 다른 종교였다면 어땠을까? 불교에도 이정도의 관용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신교라면 갈기갈기 찢어 버렸을 것이다. 장로회만 사소한 것으로 나누어져 몇십개의 장로회가 존재하는 것이 지금의 개신교 실태다. 그나마 기독교장로회가 그래도 이해심이 많은 편이다. 기독교감리회와 기독장로회가 개신교에서 가장 포용적이라는 두개 교단이다. 그런데 그 중 하나인 기감이 얼마전 목사를 내쫓는 등의 행태가 있었다.”
- 정 신부가 회장을 맡고있는 다석학회는 다석 유영모 선생을 기리고 연구하는 모임이다. 유영모 선생은 개신교였다. 유영모 선생의 어떤 점에 매료된 것인가?
“서강대에 있을 당시, 성천문화재단 이라는 곳에서 11년동안 기독교 분야의 강좌를 맡았었다. 그 곳 서재에서 처음으로 다석 유영모의 책을 접했다. 앞 몇장을 읽으면서 느낌이 왔다. 쉽게 말해서 전기가 통한 것이다. 그 책을 접한 뒤로 유인물과 20년에 걸친 일기 복사본 등을 읽었다.
유영모 선생은 종로구 연동교회를 7년 다닌 후로는 예배당에 발을 끊었다. 그리곤 홀로 묵상하며 그것을 하루에 하나 꼴로 한시, 산문 등으로 정리했다. 그는 서양물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그 어떤 선입견이 없는 그리스도인이었다. 또 예수를 보고 성경을 해석할 때에도 가끔 실수는 해도 그것은 ‘제 생각, 제 소리, 제 인생’이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창적인 소리였다. 나와는 다르게 서양물을 먹지않고, 골똘히 생각하는 그것에 고꾸라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신학적으로 대화하고 가르침을 받을 사람이 주위에 없어서 외로웠다. 답답할 때 천주교에서 한두명, 개신교에서 안병무 등 몇사람과 토론하는 게 다였다. 그렇기 때문에 안병무의 소리에 매료됐다.”
종교 다원주의와 종교간 대화를 일관되게 강조해 온 정양모 신부는 1964년 프랑스 리옹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사제서품을 받았다. 1964년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에서 성서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안동교구 청송본당 주임신부, 1976년 서강대학교 종교신학연구소 연구원, 광주 카톨릭대와 서강대, 성공회대에서 교수를 지냈다. 끝까지 하고 싶은 일은 예수공부와 예수모방이며, 더불어 여러 성현들의 슬기를 익히는 것이다. 현재는 유영모 선생을 기리는 다석학회 회장이기도 하다. 『종교의 세계』『요한복음이야기』『공관복음서의 비유』『마르코복음이야기』『네 복음서의 대조』『열두 사도들의 가르침』등 많은 저서와 편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