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생전인터뷰] 서광선 박사가 말하는 에큐메니컬 운동

▲인터뷰는 본지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서광선 박사는 보수적 장로교 목사였던 아버지 이야기로 자신의 에큐메니컬 인생기를 풀어나갔다 ⓒ 오유진 기자
교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혈기왕성했던 과거 70, 80년대 독재정권에 대항해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그였지만 지금은 백발이 되어 버렸다. 파란만장 했던 지난 세월을 돌아보자니 어디서부터 얘기할지 고민인 것 같았다.

말문을 연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저희 아버님은 근본주의 계열의 목사님이셨지요. 아니 말그대로 철저히 근본주의에 사로잡혀 사신 목사님이셨죠”였다. 에큐메니컬 운동의 원로 중에 한분인 서광선 교수(78, 이화여대 명예)는 그렇게 에큐메니컬 운동에 몸담게 된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북 강계에서 보수적인 장로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적부터 철저하게 반공 교육을 받는 등 엄격한 보수주의 신앙의 훈련을 받았다. 아버지가 근본주의 보수적 신앙을 고수했기에 같은 계열의 장로교 선교사가 시시때때로 집에 찾아와 아버지와 신앙을 나눴고, 그 틈에 껴서 어린 서광선은 선교사의 무릎에 앉아 신앙도 배우고 영어도 배웠다.


“반공목사 아버지는 납북돼 순교당해”

그러던 중 6.25가 터졌다. 앞서 신사참배 운동 거부 등 항일운동에도 적극적이었던 서광선 박사의 아버지는 당시 이북의 공산정권을 향해 강단에서 쓴소리를 했고, 교인들을 반공 정신으로 무장시켰다. 반공목사로 낙인 찍힌 아버지는 결국 전쟁통에 납북됐다.

“국군이 9월에 평양을 탈환할 때, 교인들과 함께 아버지를 찾던 중 대동강 하류 기슭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했지요”  서 박사는 차분하게 당시 아버지의 시신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아버지의 몸 구석구석에 총상의 흔적이 있었고, 그 외에 네명의 시신이 밧줄로 엮어져 대동강 하류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이북은 당에 반대하는 기독교 목회자, 장로들을 색출해 총살을 한 뒤 탄광이나 우물 그리고 강 기슭 등에 시신들을 버렸다”고 서 교수는 증언했다.

어릴적 아버지를 여윈 그는 대한민국 해군에 입대했고, 이때 사귀던 친구들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철학을 배웠다. 철학공부를 하다가 신학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유니온신학교에 입학할 마음을 먹고, 한국에 남아 있던 어머니에게 신학교에 가게 됐다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신학을 배우러 유니온 신학교 가려니..마귀학교라 말려”

“어머니는 제가 목사가 되길 바라셨죠. 그래서 제가 신학교에 간다고 하니 처음엔 누구보다 좋아하셨어요. 그런데 학교명을 밝히는 순간 돌변하여 하필이면 많은 신학교를 놔두고 마귀학교에 발을 들여놓느냐며 한사코 말리시더군요”

60년대 초 당시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중심으로 흑인 민권운동이 한창 활발히 이뤄지고 있던 때였다. 동료들은 그같은 해방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서 박사도 교회 일치 운동을 넘어 교회 밖 사회 속에서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펼치는 에큐메니컬 운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유는 또 있었다. 어릴적부터 근본주의적 신앙을 배운 그는 일종의 반감을 갖고 있었던 것. “이제야 말하는 것이지만, 아마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신학 논쟁이 불붙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에큐메니컬. 오이쿠메네라는 것은 한 집안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집안은 교회의 집안 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 이 세계 전체를 하나님의 집안, 하나님의 가정으로 인식하고, 교회와 사회의 담을 넘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는 것이죠”

에큐메니컬 운동에 심취한 그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 결국 유니온 신학교에 입학해 에큐메니컬 신학을 배운 뒤 1969년 유신정권 시절 귀국해 민주화 투쟁의 중심에 선다. 당시 뜻있는 교수들이 모인 기독자교수협의회 총무와 회장을 지내기도 했던 서 교수는 적극적으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또 신학자였던 그는 서남동, 안병무, 현영학 박사들과 함께 민중신학에 큰 관심을 갖고, 민중신학의 체계 정립 및 대중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특히 75년엔 한국신학자 66인 서명운동에 이름을 올려 반정부 운동권 교수로 낙인이 찍혀 제5공화국 때엔 해직되기도 했다.


“크리스천의 양심으로 민주화, 평화통일 운동 중심에 서다”

“본회퍼를 공부한 나로서는 크리스천의 양심으로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그렇게 해서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는데 나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저를 보고 반공하다 순교한 아버지를 배신한 자식이라 비난하기도 했어요” 아버지와는 정반대되는 에큐메니컬 운동에 참여해 NCCK 통일위원회 위원직까지 맡아 남북대화와 화합 그리고 한반도 평화통일 운동에 앞장섰으니 그럴 만도 했다.

1986년도 조선그리스도교연맹측과 남측교회 대표들이 회동하는 자리가 처음 이뤄졌는데, 이 때 남측 대표들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한 서 교수는 한 이북 목사와 숙명적인 만남을 갖기도 했다. 서 박사와 동년배로 보였던 이 이북 목사는 다름 아닌, 아버지가 평양서 목회활동을 할 당시 정반대되는 입장에 서서 아버지를 비난했던 이북 목사의 아들이었다.


“내 아버지의 원수의 아들과 평화를 얘기하고, 통일을 얘기해야 했어요. 말처럼 쉽지가 않았습니다. 내 개인의 감정으로서는 아버지의 원수의 아들 앞에서 평화를 얘기하는 게 눈물이 날 정도였죠. 하지만 아버지께 용서를 바라고 기도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서 교수는 아버지가 이북의 독재와 싸웠듯이 당시 유신이란 이남의 정권과 싸웠던 것이다.

이어 88년도엔 NCCK에서 낸 평화통일 선언문 초안을 만드는 일에도 참여한 그는 남북화해와 평화 그리고 한반도 통일을 위해 일했으며 백발이 성성한 지금까지도 남북평화재단 등의 이사로 활동하면서 남북통일의 한날을 고대하고 있다.


“남북관계 좀 끌려다니면 어떤가..힘있는 쪽이 양보해야”

▲서광선 박사는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의 미래는 밝다고 전망했다 ⓒ 오유진 기자

이 같이 피와 땀으로 남북과의 평화로운 공존에 힘써온 서 교수는 최근 남북이 경색되고 있는 상황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지금 자존심을 얘기하고, 이념을 말할 때가 아닙니다. 정부가 실용정부를 표방하고 있는데 금강산 관광 폐쇄, 개성관광 폐쇄 등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잘못하다간 외교적으로 고립될 수 있지요” 美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북한과의 대화에 중요성을 두고 외교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얼어붙은 남북 관계 속에 자칫 한국이 동북아시아에 외톨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힘 있는 쪽에서 양보를 하는거죠. 좀 끌려다니면 어때요. 자신있는 쪽에서 하는거죠. 저쪽에선 막다른 골목에서 도와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입니다. 그것을 협박으로 듣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면 어른스럽지 못한거죠. 대승적인 차원에서 한반도의 평화라는 원대한 비전을 갖는다면 얼마든지 우리가 전향적으로 남북 문제를 주도할 수 있지 않겠어요?”

서 교수는 또 최근 100여명의 기독인들이 진보, 보수를 떠나 남북관계 정상화에 소리를 높인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컬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의 연합활동의 필요성과 그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두 진영이 하나가 되는 것은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특히 이념적, 신학적 일치는 더 무리겠죠. 하지만 행동의 연대, 실용적인 연대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서 교수는 에큐메니컬- 복음주의 진영간 신학적, 이념적 일치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대신 두 진영이 당장 함께 일할 수 있는 구제사업, 자선사업, 평화논의 등을 꾸준히 전개할 때 두 진영의 연대감 속에서 연합의 구체적인 방향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타종교와의 대화는 함께 행동하고 참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돼야”


한편, 에큐메니컬 운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타종교와의 대화 문제에 대해서는 “행동과 실천을 위주로 한 에큐메니컬 정신을 더욱 함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앞서 우리나라 타종교 중 주류 종교인 불교와의 대화를 하다가 감리교회 종교재판에서 이단으로 내몰린 변선환 박사 얘기를 잠시 꺼내기도 했다. “변 박사는 많은 글과 강연에서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라고 하는 독일 천주교 신학자 한스 큉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는 이유로 감리교회의 종교재판을 받고 목사직을 박탈당하고, 신학대학 학장직에서 파면당하기 까지 한 종교적 비극의 주인공이었죠. 철통같은 근본주의의 교리에 도전했기 때문에 쫓겨난 거에요. 때문에 불교와 대화는 둘째치고, 우리 안에서도 대화가 안되니 당시 종교와의 대화운동은 실패했다고 봐야죠” 서 교수는 타 종교와의 대화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선 차이점 보다 공통점을 찾아가면서 함께 연대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불교나 기타 종교와의 대화시 교리나 신학의 차원이 아닌 사회 문제를 놓고, 행동하고 참여하는 일에 더 집중해 대화를 진행해야 할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친 그는 곧장 NCCK 선교훈련원에 볼일이 있다며 본사 사무실을 나서 바쁜 발걸음으로 내려갔다. 요즘은 NCCK 선교훈련원에서 열리는 심포지엄에 정기적으로 참여해, 후배 에큐메니컬 신학자들에게 조언도 해주고 또 배우기도 하고 있는 그는 기자에게 “에큐메니컬 진영에 인물이 없다는 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훌륭한 후배들이 많이 포진해 있어 항상 든든하게 생각합니다”고 웃음을 띄며 말했다.

얼마 전 7평 남짓한 사무실을 얻은 서 교수는 글 등을 쓰며 에큐메니컬 운동의 고삐를 놓지 않고있다. 서 교수는 현재 남북평화재단 이사 및 NCCK 선교훈련원 자문위원으로 한반도의 평화통일 그리고 에큐메니컬 신학의 활성화를 위해 에큐메니컬 운동에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 약력

서광선(徐洸善,78)

미국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원 신학석사(M.Div.)
미국 벤더빌트 대학원 철학박사(Ph.d.)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1964∼1996)
이화여자대학교 교목실장, 대학원장 역임
세계 YMCA 회장(1994∼1998)
미국 유니언 신학대학원 및 드류 신학대학원 초빙교수(1996∼2001)
미국 아시아 기독교 고등교육재단 이사 및 부총재(2001∼2007)
現 이화여대 명예교수
現 미국 유니온 신학대 석좌교수
現 남북평화재단이사
現 베리타스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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