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한국기독교장로회 예닮교회에서 열린 CM포럼(교회와 목회 포럼)은 예장 합동(사랑의 교회)과 감리교(선한목자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도입해 주목을 받아온 교회의 담당 교역자를 초빙해 그들의 목회 노하우를 경청하고 토론해 보는 자리였다.
기장은 사회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對사회 메시지도 꾸준히 내놓는 등 한국 개신교계 내에서 구별된 역할을 담당하며 자리매김해오고 있는 반면, 교회의 양적 성장과 부흥에 있어서는 보수 교단에 비해 결과적으로 뒤쳐진 면이 있다는 지적도 받아왔다.
그러나 기장 내에서도 사회 참여 뿐 아니라 성도 양육에도 관심을 기울여 온 목회 모델들이 존재해왔다. 상대적으로 치중해왔던 사회 참여에서 얻은 현실 체험과 그 감각을 바탕으로 목회 철학을 정립한 일부 목회자들은 성공적인 목회 사례를 내놓기도 했다.
CM 포럼 대표인 지인성 목사도 이와 같은 사례로 평가 받는 기장의 중견 목회자다. 지인성 목사는 한신대 목회학박사원 원장과 한신대•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를 지낸 학자 출신 목회자다. 지난 세미나에서 기존의 제자훈련에 대한 고찰을 통해 새로운 목회 모델을 추구한 지 목사를 만났다.
▲ CM 포럼 대표 지인성 목사(예닮교회). 지 목사는 한신대 교수 재직 당시 함께 공부했던 당시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CM 포럼을 만들었다고 한다. 회원제 운영 원칙을 고수하며, 정치적 성격을 배제하는 학술 연구 모임이 되길 바란다는 지 목사는 한국교회 영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태양 기자 |
기장의 교회를 탐방하고 목회자들도 빈번히 만나면서, 예닮교회와 같이 성도 양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교회도 적지는 않았다. 그런 걸 보면 기장도 스펙트럼이 넓은 교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교회 말고도 경동교회, 한신교회 등 성공적인 목회를 해나가는 것으로 알려진 기장 교회들도 많이 있다. 역사는 순환이다. 하나님은 기장을 통해서도 역사하시고 기타 교단을 통해서도 역사하신다. 한국사회의 사회적 빈곤에 동참할 수도 있었고, 복음전도도 가능했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둘 다 사용하셨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이쪽에서 볼 때는 저쪽은 저게 부족하고, 저쪽에서 볼 때는 이쪽은 이게 부족하고 이런 식일 것이다. 역사는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 보인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역사가 판단할 수밖에 없다. 동시대의 사람들이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자기 삶의 현장에서 몸부림칠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모습으로든지 우리를 부르신다. be called(부름 받다)다.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진보냐 보수를 떠나서 우선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소명이 다가 아니다. 받은 소명을 사명으로 전환해야 한다. 리칭 아웃(reaching out)이 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성도들을 모으는 양적 전도를 리칭 아웃이라고 보고, 어떤 사람은 세계적인 관점에서 리칭 아웃을 하기도 한다. 헨리 나우웬(Henri Nouwen)같은 사람은 미국 엘리트 사회에서 살다가 장애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소명은 누구에게나 주어졌지만 사명은 받은 자마다 다 다르다. 다른 것은 다른 것일 뿐, 그것을 잘못되었다고 보면 안 된다. 그냥 다른 것이다. 그게 우리 인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동시에 중요한 신학적 요소이다.
기독교 영성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영성이란 하나님의 영을 간직하는 것인데 그것은 정말 브로드(broad, 광대한)한 것이다. 하나님은 통섭적 혹은 통전적인 분이시다. 융합되어 나타나신다고 본다. 인간은 단지 하나님의 영을 받아서 간직할 뿐이다. 그러므로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어떤 이는 개인적 삶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고, 사회정의나 불의에의 저항 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을 간직하기도 하고...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이것들은 구별된 것들이 아니다. 기독교의 영성은 통합적, 통전적이고 통섭적인 것이다. 개인적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철저히 초월적인 존재로만 본다. 그런데 사회 구원을 강조하는 쪽에서 보면, 하나님은 초월적 하나님만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내재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와 우리의 역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초월적인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우리 안에 내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기독교 영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한국교회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목회자들은 눈을 넓혀서 전체를 봐야 한다. 나와 다른 이들을 적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포용의 대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다원주의라는 것도 오픈 되어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런데 보수적일수록 폐쇄적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신앙의 정체성이라는 견지에서 보면 나의 하나님, 나의 주라는 고백을 안 할 수는 없다. 나는 이 두 가지를 영적 호흡이라고 본다. 호흡이란 들이마실 때가 있는가 하면 내쉴 때가 있는 것 아닌가.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생기, 곧 루아흐(ruah)를 불어넣으니 그가 생령이 되었다고 한다.”
영성, 특별히 이쪽과 저쪽을 아우르는 통전적 영성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영성을 특유의 배타적 개념이 아니라 통합적 개념으로 제시한 것이 흥미롭다. 이것을 CM 포럼과 예닮교회 목회현장의 근간이자 목표라고 보면 되겠는가.
“나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영성신학을 전공했다. 헨리 나우웬 밑에서 공부했다. 그 분이 살아 계실 때 토론토에서 공부했는데, 그는 토론토의 장애인 공동체에 오기 전 예일, 하버드, 노틀담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함께 지냈던 지성인들에게서 예수의 영을 찾지 못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그는 엘리트들이 철저한 자기중심적 사회를 만들고 있다고 보았다. 자본주의 사회란 그런 것이니까. 그는 오히려 예수의 영성을 장애인들에게서 발견했다. 한국교회가 너무 자본주의화 되어 버리니까 교회가 상업주의에 빠져 버렸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너무 풍요 속에 살다 보니 교회가 상업화, 기업화되어 버렸다. 이제 살아있는 하나님의 영을 회복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게 매우 중요하다. 우리 CM 포럼도 이러한 패러다임을 따라 하나님의 영을 찾아가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했다. 영성을 회복하기 위해 한국교회의 다양한 문제점을 검토해보면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이 살아 있어야 한다. 목회자는 세상 논리나 철학적 지식, 상업적 방법으로 목회를 해서는 안 된다. 결국 우리는 영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초대교회처럼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는 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야 교회가 다시 살 수 있다. 물론 다양한 교회 프로그램, 목회 방법론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원천적인 것은 하나님의 영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결국 성서로 다시 돌아가는 일이다.
한국교회 신학의 패턴을 보면, 60~70년대까지 민중신학, 토착화 신학이 주를 이루면서 텍스트(Text, 성서)보다 컨텍스트(context, 사회적 현실, 상황)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일종의 상황신학이 중요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상황신학은 상황 속에서 모든 것을 찾는다. 말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상황을 우선 판단하고 그 속에서 말씀을 찾아서는 안 된다. 그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결국 이렇게 뒤바뀐 순서는 인본주의 신학을 낳을 확률이 높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진리를 찾은 후에 상황에 대해 선포를 해야 한다. 만일 컨텍스트를 가지고 텍스트를 찾다 보면 인간이 자칫 자기가 만든 은혜를 말할 수 있게 되고, 그건 결국 값싼 은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인위적인 은혜는 성도들의 마음속에서 오래가지 않는다. 컨텍스트란 언제든지 변하는 것이니까.”
▲ 설교 준비를 하고 있는 지인성 목사 ⓒ김태양 기자 |
그렇다면 목회현장에서 어떤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어떤 목회자라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 말씀 준비를 위해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무엇보다 말씀에 중심을 두고 있다. 설교도 가능한 한 극단적인 표현을 삼가고 가급적 텍스트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
최근 많은 반발과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주목 받고 있는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이나 천안함 침몰 사건과 같은 문제는 목회현장에서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은가.
“교회 안에서 목회자는 어느 한쪽 편을 들면 안 된다. 목회자의 소리는 한 개인의 목소리가 될 수 없다. 그런 예민한 이슈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언급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물론 천안함 침몰 사건처럼 온 국민이 아픔을 느끼는 일과 같은 경우는 다르다. 얼마 전 주일예배 시작 전에 천안함 침몰 사고로 인한 전사자들을 위해 묵념을 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는 대사회적인 차원으로 볼 수 있겠지만 4대강 사업과 같은 문제는 지극히 정치적인 이슈다. 한쪽에서는 생태적인 문제라고 하지만 또 다른 한쪽에서는 국가 발전을 위한 조치라고 한다. 그러니 정치적인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누구 말이 맞느냐는 후대 역사가들이 평할 일이다. 목회자는 그럴 경우 어느 쪽이 하나님 뜻에 맞는지 물으며 기도하고 응답을 기다려야 한다. 정치적 상황에 맞춰 움직이는 목회자가 되어버리면 안 된다. 텍스트와 컨텍스트는 둘 다 있어야 한다. 결국 우선순위의 문제인 것이다. 컨텍스트에 대해서 목회자가 결론을 내려버리면 성도들은 또 다른 의견들을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신앙적으로 미성숙한 성도인 경우에는 의견의 다름이 결국 감정적 갈등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텍스트와 컨텍스트, 둘 다 균형 있게 다루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는 끊임 없이 건전한 신학적•학문적 연구를 지속해야 한다. 어설프게 이념적 성찰만 해서는 안 된다. 학문적인 성찰이 없이 나가다 보면 신비주의자, 부흥주의자가 되어버릴 수 있다. 기도와 묵상 없는 목회가 되면 다이나믹한 파워가 형성될 수 없다. 개인과 사회, 초월과 내재, 그리고 액션과 기도다. 기도 없는 액션은 공허하고, 액션 없는 기도는 신비주의화 된다. 이 두 가지는 항상 맞물려 있는 것이다. 기도 생활이 있어야 액션이 파워풀해진다. 또한 액션 없는 기도는 신비주의나 이념주의로 빠지기 쉽다.”
한국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먼저 교회가 교회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교회가 섹트화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신학도 신앙도 그렇다. 말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정치적 이슈나 사회적 이슈에 있어서는 하나가 안 되지 않는가. 한국교회가 진실로 에큐메니컬 해져서 너와 내가 하나가 되고 내가 너를, 그리고 네가 나를 포용하고 감싸주고 또 인정해줄 때 너도 나도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존재하기 위해 너를 비난하거나 비하하면 결국 나도 같이 비하되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에큐메니컬 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바는 유니티 인 다이버시티(unity in diversity, 다양성 속의 일치)다. 한국교회가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추구하며 가야 한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다양성은 인정하지 않고 인 유니티(in unity, 일치, 통일)만 원한다. 그게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다. 인 유니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존재하지 않는 허상을 추구하는 게 문제라고 본다. 다양성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렵지 않은 평범한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