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광선 박사 |
‘보수’ 혹은 ‘보수주의자’들은 과거의 생활 습관이나 가치를 지키고, 변화를 거부하거나 반항한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의 시점에서 ‘과거’는 과연 무엇인가? 2000년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과거’는 1950년대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구한말 1900년대를 말하는 것일까? 1950년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그 시절에 비하면 우리 도시와 농촌은 너무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 당시에는 우리는 아파트라는 것을 몰랐고, 지금처럼 아파트에 살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1900년대를 말해서 무엇하랴. 우리의 생활환경이 달라지면서 우리의 생활 습성과 습관도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우리의 ‘문화’도 달라졌다. 따라서 우리의 가치에 대한 관념도 달라졌다. 생활과 생각에 커다란 변화가 있어 왔다.
우리가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가치들은 무엇인가?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들은 유교 전통에서 이어 받은 ‘삼강오륜’이다. 다섯 가지 윤리적 규범, 즉 신하와 왕의 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 부부의 관계, 형제 자매의 관계 그리고 친구 사이의 관계 등에서 위 아래의 수직 관계를 정하고 아래 사람은 윗사람을 깍듯이 섬기고 복종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유교적•전통적 인간관계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지만 이를 강요하는 이들은 그야말로 ‘꼴통 보수’가 아니면 별로 없다. ‘보수’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들의 윤리 생활, 인간관계는 뒤죽박죽, 아주 ‘말세적’ 현상이라고 한탄한다. 하지만 1900년대의 윤리적 잣대로 오늘의 인간관계를 비판할 수 없다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길들여진 대부분 젊은이들의 생각이다. 대단한 ‘진보’나 ‘좌파’가 아니더라도 "국민이 대통령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라야 한다"는 말을 그대로 믿고 실천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별로 없다. "부인은 남편을 하늘처럼 받들라"라는 말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이 땅의 아내들이 얼마나 될까. 아직도 부인을 두들겨 패는 남편들은 보수주의자들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주벽이 심해서 그런가. 가정 폭력을 정당화하는 시대는 이미 지난 것이다.
지난 주 대법원 판사들이 한 표 차이로 ‘간통죄’를 헌법에 어긋난 것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역시 보수적인 판결이다. ‘간통죄’를 없애면 당장 가정 파괴가 심해지고, 여성들을 보호하기 어려워진다는 편에 손을 들어 준 셈이다. 그런가 하면, 개인의 성 생활을 법률이 규정한다는 것은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어서 사실상 위헌이라는 것이 이른바 자유주의자들이나 ‘진보’의 논리이다. ‘일부일처제’를 보수하느냐, 아니면 가정의 형태에 대한 새로운 변화와 선택을 허용할 것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 이상으로 복잡한 사회문제이다.
문화적인 면에서와 가치와 윤리에 있어서 ‘보수’와 ‘진보’는 근대 민주주의의 가치인 개인의 자유와 선택의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 유교적 윤리를 ‘보수’한다면 역시 개인의 선택이나 자유 보다는 ‘복종’, 즉 주어진 사회적 규범이나 어른들에 대한 절대 복종을 강요할 것이다. 그러나 근대화를 거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존중하고 이것을 지키는 것이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한 개인의 자유는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 주거지 선택의 자유, 운신의 자유 등, 헌법이 규정한 자유 이외에도 사회생활의 여러 분야에서 그 영역과 폭이 너무도 넓다고 하겠다. 그러나 헌법 이전에 인간 개인의 자유는 인간 이성에 그 근본을 두고 있다. 인간 이성에 의해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개인의 자유행동이 다른 인간에게 해를 끼치거나 다른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은 안 된다는 한계를 둔다. 그래서 "내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든지 "내가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가장 기본적인 윤리적 규범인 ‘황금률’이 있는 것이다.
종교적 진보
‘종교적인 진보’라든가 ‘자유주의자’라는 말을 듣는 소수의 한국 기독교인들은 ‘종교 신앙의 자유’를 선택한 사람들이라 하겠다. 기독교에서의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서구의 계몽주의 시대 이후 일어 난 신학운동이었다. 주로 독일 신학계에서 일어 난 학문 운동이었는데, 기독교의 경전인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해석의 문제로 제기된 운동이었다. 복잡한 학문적 논쟁을 간단하게 말한다면, 서구 중세기를 거쳐 교회의 권력과 성서의 기록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교회의 경전’으로서 모든 기록에 과오가 없으니 글자 그대로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에 반해서, 19세기 독일의 성서학자들은 성서는 인간의 역사이며 그들의 신에 대한 신앙을 기록한 ‘인간의 문서’들이고 인간들에 의해서 편집되어 내려 온 것이라고 주장한데서 시작되었다.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면서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보수주의자들을 "문자주의자" 혹은 "성서 근본주의자"들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20세기 초 미국 기독교에서였다. 19세기 말부터 한국에 온 미국의 선교사 대부분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었고, 한국의 신학교에서는 자유주의자들의 신학적 업적이 소개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의 유수한 신학생들을 미국에 유학시키는 것을 극도로 제한하기 까지 했다. 서구의 자유주의 신학에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미국 선교사들의 주선으로 미국 보수주의 신학의 세례를 받은 한국 신학자들은 1930년대에 이르러 ‘진보적’ 발언을 한 목사들에 대해서 탄압을 하기 시작했다. “성서를 오늘 한국의 시대적 상황에 맞게 해석해야한다"는 일부 진보적 목사들의 발언에 대해서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원불멸의 진리"라고 하면서 "성경에 적힌 대로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해야 한다. 아담과 하와를 보아라. 인간 역사 최초의 여성, 하와가 선악과를 먼저 따 먹은 죄로 인간이 멸망하게 되었으니, 여자는 남자 보다 윤리적이지 못하고 따라서 여자는 평생 남자의 시중을 들면서 살게 되었다"는 강변으로 한국 기독교 근본주의 신학을 ‘보수’하여 왔다. 1945년 해방이 되고 한국의 신학교가 한국인 학자들로 채워지면서 그동안 숨어 있던 자유주의적 성서해석이 소개 되었다. 그러나 한국 전쟁 도중 이들은 ‘이단 신학자’로 몰려 주류 근본주의 교단과 신학교에서 축출되었다. 당시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또 하나의 교단을 창설하고 신학교도 운영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기독교인들, 특히 개신교 신자들의 ‘보수주의’ 혹은 ‘근본주의’는 성서 해석의 문제와 아울러 개인 생활과 윤리 문제에 이르기 까지 그 폭이 넓다. 가령 한 사람이 독실한 크리스챤인지 아닌지는 술과 담배로 가늠한다는 것이 그 한 예이다. 아무리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굳게 믿는다고 해도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기독교인은 신앙인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혼 역시 비 기독교인이 하는 것이라며 ‘종교적’으로 매도한다. 목사도 마누라 두들겨 패는 것은 목사 부인이 성경대로 ‘하나님의 종’인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정당화’한다. 개신교를 믿는 사람은 ‘동성애’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미국의 보수 교회에서는 ‘낙태’역시 어떤 경우라도 반 신앙적이라고 반대한다. 개신교인들은 절에 다녀도 안 되고, 무당을 찾아 다녀도 안 된다. 손금을 본다든지, 사주팔자를 보는 것은 모두 우상을 섬기는 것이라고 한다. 아들 딸들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과 결혼할 생각일랑 일체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천주교인들과 상종하는 것도 꺼려한다.
기독교인들, 특히 보수적이고 근본주의 신앙을 고수하는 이들은 자기들만이 옳고, 선하고, 구원 받은 사람들이고, 다른 종교를 가졌거나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옳지 않고, 악하고, 구원 받을 수 없는 저주를 받은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믿고 있다. 나는 하나님 편이고 예수를 믿지 않는 너는 악마의 편이라고 ‘정죄’한다. 속마음으로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어 놓고 노골적으로 그렇게 말한다. 특히 개신교 목사들이 그렇게 주장하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개신교 기독교인들은 배타적이고 독단적이고 독선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인 가운데서도 성서를 해석하거나 생활윤리 면에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한다. 나와 생각이 다르거나 신앙이 다르면 모두 ‘이단’이 아니면 ‘마귀’라고 저주한다. 신앙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고 말살한다. 근대사에 있어서 기독교인들만큼 신앙의 자유를 외친 종교도 없지만, 기독교만큼 신앙의 자유를 억압해 온 종교도 없다고 하겠다.
보수적 정치 문화
문화적으로 보수적이고 종교적으로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태도와 의식을 가지고 정치를 하게 되고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근본주의 종교인들의 세력의 힘으로 득세한 정권과 그 지도자들은 어떤 정치를 하게 될까? 역시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정권, 아니면 독재적 권력을 휘두르게 될 것이 불 보듯이 분명하다. 그것은 근본주의 무슬림 나라에서나 공산주의 근본주의 정권이나 근본주의 기독교 국가에서나 마찬가지이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이들 범주에 들어 있지 않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이다. 다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이 우리나라를 기독교 국가라고 착각하고 있고, 대통령이 개신교 장로이고 보수 기독교 세력의 힘으로 집권하게 되었으니 ‘기독교적 가치’로 통치해야 한다는 생각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특히 근본주의적 기독교를 내세울 때 문제가 발생한다.
근본주의 신앙에 기초를 둔 통치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다. 국민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통치자와 정치 권력자,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의 말만 옳다고 밀어부친다. 그리고 자기 생각과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과 집단들을 악마시 한다. 한 나라의 통치자는 하나님의 힘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권력을 잡게 되었다고 믿는다. 따라서 통치자에 대한 항거나 반대는 모두 하나님에 대한 반항으로 해석하고 억누른다. ‘왕권신수설’--왕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하는 전근대적인 생각을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밀어부친다. 야당이라는 것은 악마의 소굴 정도로 매도하고 무시해도 된다. 언론의 자유라는 것은 절대 권력에 대한 항거이며 폭거가 된다. 신앙의 자유, 학문의 자유는 모두 악마의 소리에 불과하다는 신념을 가지게 된다. 그러니까, 이런 악마의 소리를 누르고 탄압하는 공권력은 정당화 되고 ‘신성시’되기 까지 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서 대한민국만큼 단시간에 산업화뿐만아니라 민주화가 된 나라는 보기 드물다. 이러한 찬사를 듣게 된 것은 우리 안에 ‘보수’와 ‘진보’의 부단한 논쟁과 갈등과 투쟁이 있어 왔기 때문이다. 시대적 혹은 세계적 변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 자신을 지켜 온 ‘보수’가 있었고, ‘보수’의 독선을 깨고 꾸준히 비판하고 저항하고 자성을 촉구하고 투쟁해 온 ‘진보’의 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 모든 부분에서 색깔이 다양해지고, 모양이 다양해지고, 문화가 다양해지면서 풍요로워지고, 종교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신앙의 폭이 넓어지고, 개인 스스로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생활의 질이 향상되고, 정신세계가 심오해 지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가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보다 ‘선진화’하려면, 근본주의의 굳은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한다. 인간이 종교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종교는 인간을 위해서, 인간의 자유를 위해서, 인간이 보다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근본주의적 삶의 행태와 문화와 종교와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가 목숨을 걸고 참으로 보수해야 할 민주주의의 가치는 자유와 평등과 인권 그리고 평화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 약력
서광선(徐洸善,78)
미국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원 신학석사(M.Div.)
미국 벤더빌트 대학원 철학박사(Ph.d.)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1964∼1996)
이화여자대학교 교목실장, 대학원장 역임
세계 YMCA 회장(1994∼1998)
미국 유니언 신학대학원 및 드류 신학대학원 초빙교수(1996∼2001)
미국 아시아 기독교 고등교육재단 이사 및 부총재(2001∼2007)
現 남북평화재단이사
現 베리타스 편집고문
* 본지는 남북평화재단(이사장 박형규)과 칼럼을 동시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