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빈 교수(숭실대) |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박원빈 교수(숭실대)가 레비나스에서 순자로 이어지는 사유를 책으로 펴냈다. 에마뉘엘 레비나스(Levinas, 1906~1995)는 기독교의 신정론(神正論)*의 종말을 고한 유대교 사상가이고, 순자(荀子, BC 310~219?)는 중국의 고대 철학가다. 이들이 ‘기독교 신학’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먼저 저자는 근대 이후 철학과 신학의 간격이 얼마나 벌어졌는가를 말한다. 그는 “신학은 근대철학 이후 철학적 사유의 지평에서 퇴출되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철학과의 사이가 벌어지고 말았다”며 신, 영혼, 초월같은 주제는 신학자들만의 전유물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신학이 철학의 엄밀성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해지는 것이 ‘철학을 통해’ 신학 하기다. 저자는 레비나스가 “철학으로 신학함 혹은 신학으로 철학함을 시도했다”며 레비나스를 조명한 이유 중 하나를 밝혔다.
또 레비나스가 신정론의 종언을 고했지만, 이는 기독교에 대한 충분한 고찰 없이 내려진 결론이라고 과감한 주장을 폄으로써 저자 자신이 레비나스와 기독교간의 대화를 시도했다. 이 책에서 주목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레비나스는 제2차 세계대전의 격랑 속에서 벌어진 인류의 비극, 홀로코스트를 겪고 난 후 신정론을 회의(懷疑)했다. 신학에서 신정론은 타자에 대한 책임을 유기한 주범이라는 것이다. 이에 그는 하나님에 대한 화석화된 도그마와 사변적인 개념을 대체하고 종교의 참된 실상을 추구하고자 ‘타자윤리(Ethic of the other)’라는 이웃사랑에 기초한 독특한 철학을 발전시킨다. 또한 유대교로부터 영감을 받은 타자윤리를 통해 기독교는 유대교보다 미성숙한 종교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박하여 박원빈 교수는 “레비나스는 하나님의 자기 비우심(케노시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정론을 비판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신정론은 더 이상 의미를 지닐 수 없음을 주장한 레비나스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케노시스를 통한 인간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책임(the divine responsibility)이야 말로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윤리의 신적 실천(the divine practice)임을 밝히고, 신정론은 폐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케노시스적으로 새롭게 이해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또한 레비나스의 기독교를 향한 "해석학적 편견"은 타자윤리 자체에 내재해 있기보다 그의 개인적 경험에서 왔다고 한다.
유대교에 기반한 타자윤리를 기독교의 시각에서 고찰하는 그의 연구는 형이상학적 담론에서 그칠 위험이 있다. 그 위험성을 저자는 ‘순자’의 예론(禮論)으로 극복한다. 순자는 개인적 사회적 규범을 세우기 위해 성악설에 기반하여 예론을 주창하였는데, 이 예론을 통해 타자를 위한 무한한 외적인 명령인 레비나스의 책임론이 어떻게 좀 더 실천적인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는지를 살폈다.
결국 “유대교-기독교적 배경(Judeo-Christian tradition)의 타자윤리가 순자의 예론과 만나 어떻게 더 풍부해질 수 있는가”를 규명한 셈이다.
강영안 서강대 교수(철학)가 이번 책을 추천했다. 그는 이번 책이 ▲레비나스를 기독교 신앙과 관련지었다 ▲레비나스와 기독교의 대화를 또 다른 유대교 사상가인 프란츠 로젠츠바이크와 본회퍼, 시몬 베이유 등을 등장시켜 그 내용을 풍부하게 했다 ▲서양 사상에 머물지 않고 유가 철학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며 추천의 이유를 밝혔다.
*신정론-신의 옳음을 인정하는 설. 문자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자기정당화'이다. 이 말은 라이프니츠(G.W. Leibniz)가 처음 사용했는데 그 후로 이 용어는 세상에 현존하는 악에 대항하는 하나님의 선의와 전능을 변호하는 자연신학적 입장에서 주로 적용되었다. 라이프니츠는 그의 책 『신정론』(1710)에서 세 가지 현존하는 악의 모습(형이상학적 악, 자연 악, 도덕 악)을 열거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