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7장 1-7절
김준태시인의 ‘오월 광주’는 이렇게 첫머리를 시작합니다.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 버렸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제가 광주 518 민주항쟁의 소식을 들은 것은 미국에서였습니다. 70년대 박정희유신독재 시절 한국신학대학을 다니면서 데모로 구류를 살긴 하였지만, 8, 90년대의 그 숨막히던 시절 고국을 떠나 있었던 사람으로 이 자리에 서기가 매우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민주화 통일 운동을 더욱 치열하게 살아오신 선배 목사님도 계시고 30년 전 투쟁의 현장을 지켜온 분들도 계시리라 여겨지기에 송구스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그간 해외에서 민주화와 통일 운동을 위해 노력해왔다는 것과 광주는 저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남아 있는 고향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시 <오! 광주>의 붉은 빛 세 글자로 시작하던 기록영화의 장면 장면들은 저의 젊은 피를 끓어오르게 만들었습니다. 소꿉놀이 친구들과 한가롭게 거닐던 금남로와 도청의 거리들이 핏빛으로 물들어가고 탱크와 군화발로 짓이겨가는 모습을 보면서 히틀러의 아우슈비치는 언제 어디서나 재현될 수 있는 오늘의 사건임을 깨달았고, 박정희의 죽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시며 자유와 민주와 통일이 곧 오리라 믿었던 우리의 바람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결국 광주의 피는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전두환 노태우 도당으로 이어지는 군부 정권을 막 내리게 만들었고, 이후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김대중, 노무현의 정부 아래에서 우리는 자유와 통일에 대한 광주의 꿈을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와 진실화해조사위원회 등의 활동을 통해 과거 군사정권 아래에서 얼마나 악랄하고 추잡한 일들이 꾸며지고 억압과 거짓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여 왔는지를 깨달았고 이제는 그런 어둠의 역사들은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자신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불과 이명박정권이 출발한지 2년여, 우리는 땅 투기와 강바닥뒤집기에 기초한 경제 숫자놀이와 용산참사로 대변되는 빈익빈부익부의 모순 속에서 또 다른 독재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통령 취임과 더불어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기업가들 앞에서 자신을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CEO라고 소개하였듯이, 그 이후 남한 땅은 대규모 건설현장으로, 청와대는 현장사무소로 탈바꿈하였고, 이와 동시에 우리 모두는 좋든 싫든 대한민국 토건회사의 직원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모두 자유와 해방을 꿈꾸는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자기 배만 부르기를 소원하는 돼지 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타오르던 촛불은 잠시였고, 이것이 오늘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남한의 현실입니다.)
여기 예수를 따르고 예수를 살아내기를 다짐하는 소수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현실을 인정할 수 없어 예수 이름으로 예수의 명령을 따라 이곳 우리 민족의 성지인 518 광주 민주묘역에 모였습니다.
80년대 초, 고국 방문시에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 있는 저의 유일한 사촌 남동생과 함께 예전의 망월동 묘지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 남동생은 광주항쟁 마지막 날 도청을 떠난 자신의 비겁함을 저주하며 술로 삶을 마감한 사람입니다. 때는 11월, 을씨년스러운 찬바람이 부는 오후였습니다. 여기저기 죽은 자를 그리워하고 그날을 잊지 말자는 문구들이 새겨진 하얀 천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몇 사람의 청년들은 운동가를 부르면서 소주잔을 기울고 있었고 저와 사촌동생 또한 아무 말 없이 소주잔을 기울였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그 자리에서 만난 하얀 소복을 입은 한 50대 후반의 어머니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518 때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은 아들을 찾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향해 아들의 이름을 말하면서 그를 찾아달라고 간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말인즉 지난 몇 년 동안을 하루도 빠짐없이 그 자리에 나와 아들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예수 이름으로 살아가려고 애를 쓰는 것은 바로 그러한 민중들의 한과 아픔들이 계속 저의 주위를 맴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학혁명의 자유혼들, 백 년 전 오늘 일제 강제 늑약에 죽음으로 맞선 애국 지사들, 기미년에 독립만세를 부르다 죽어간 수많은 학생들과 농부들, 그리고 장백산에서, 하얼빈에서 직접 총칼을 들었던 안중근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투사들, 정신대와 징병 징용으로 끌려가 전쟁의 총알받이로 죽어간 무수한 우리의 조상들, 해방의 기쁨도 잠시 미소의 농간으로 인한 제주43항쟁을 비롯한 수많은 이념의 희생자들, 60년 전 3년간이나 지속된 강대국을 대신한 동족상쟁, 그리고 이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아 이름도 요상한 키리졸브 전쟁연습을 하다 이유 없이 죽어간 천안함 장병들 그리고 이를 돕다가 희생당한 어부들, 죽음 죽음 죽음! 우리 민족의 수난의 아픔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죽음보다 더 무서운 죽음이 우리 한반도를 뒤덮고 있으니 그건 민족의 죽음입니다. 같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형제자매를 우리를 끊임없이 침략해 온 이웃 나라 백성들보다 더 미워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큰 죽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앞장 서고 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다는 말입니까? 그래 세상이 모두 손가락질 하고 있고 돌아서서 상종 못할 민족이라고 침을 뱉고 있습니다만, 돈에 환장한 우리들은 그저 핸드폰 하나, 자동차 한 대 더 팔아 좋다 하며 희희낙락입니다. 어찌 보면 암덩어리가 온 몸에 번져가고 있으니 굳이 총에 맞지 않아도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함석헌선생은 우리 민족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요, 마치 세계사의 하수구와 같아 모든 썩은 물이 한반도를 통과하여 가지만, 바로 이 고난을 통해 세계의 운명을 바꿔나갈 새 생명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의 믿음은 아직 거기에 가 있지 못합니다. 그저 어쩌다가 이 나라가 이렇게 되었는지 억울하고 분할 따름입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붙잡혀가 있던 에스겔 선지자 또한 어떡하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런 꼴이 되었는가 하여 억울함과 분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하느님께 항의를 일삼고 있었습니다. 언제까지입니까? 하느님! 과연 당신은 살아계시는 것입니까? 이렇게 항의하던 에스겔 선지자에게 어느 날 야훼 하느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밖으로 나가 들 한가운데 서라. 그래 그곳에 가 섰습니다. 거기에는 마른 뼈들이 가득히 널려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묻습니다. 이 뼈들이 살아날 것 같으냐? 주께서 아십니다. 이 뼈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 내가 너희 속에 숨을 불어 넣어 너희를 살리리라. 그래 뼈들이 붙고 힘줄이 이러지고 살이 붙어 커다란 무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로 이 억울하고 한 많은 비극의 역사 현장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우리들 주위에는 지금 마른 뼈들이 널려 있습니다. 지금 야훼 하느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뼈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 주님께서 숨을 불어 넣어 이 뼈들을 살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어떻게 살아납니까? 이들이 어떻게 무덤 문을 열고 나옵니까?
마가복음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직접 그 몸을 나타나시지 않고 한 젊은이를 시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예수께서는 전에 말씀하신 대로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터이니 거기서 그분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전하여라.” 그러나 여자들은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 무덤 밖으로 나와 도망쳐 버렸다. 그리고 너무도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못하였다고 성서는 증언합니다. 왜 여자들은 겁에 질려 덜덜 떨었을까요?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식 때문에 덜덜 떨었을까요? 아니면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얘기에 덜덜 떨었을까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후자입니다.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는 것은 예수께서 다 이루지 못했던 하느님 나라 운동을 계속 이어가라는 말씀이기 때문이고 그 끝은 또 다른 십자가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이라는 그리스어는 ana-stasis입니다. ana는 다시 혹은 위라고 하는 의미가 있는 부사이고 stasis는 일어서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부활은 다시 일어선다 혹은 위를 향해 일어선다는 뜻입니다. 곧 부활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위를 향해 일어선다는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란 예수의 부활을 믿고 증언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곧 갈릴리의 현장에 가서 위를 향해 일어서는 삶을 말합니다. 이 자리는 평화평등의 하느님 나라를 꿈꾸었던 민주열사들이 누워있는 자리입니다. 겉으로 보면 이 자리는 죽음의 뼈가 묻힌 곳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이 자리는 에스겔 선지자가 경험했던 민중 부활의 현장이요, 하느님 나라 복음운동이 새롭게 시작되는 갈릴리의 현장입니다.
김준태시인의 '5월 그날'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 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 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 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 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