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성서해석이 말씀의 깊이에서 길어 올린 생수를 교회에 제공해 주어야 한다. 말씀에 대한 객관적 의미 파악에 머물지 않고 그 말씀의 해석이 오늘 우리 삶에 내면이 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성서 해석학의 패러다임은 넓이의 해석에서 깊이의 해석으로 뻗어 나가야 한다”
▲감신대 왕대일 학장 |
지난 17일 연동교회에서 열린 '2010년 1학기 신학대학원연합 공개신학강좌 에큐메니컬 공동수업'의 세번째 시간에서 왕대일 교수(감신대 신대원장)는 ‘지구화시대의 성서읽기’를 주제로 강연하면서 성서해석이 그동안의 ‘넓이’의 해석에서 ‘깊이’의 해석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왕대일 교수는 “지난 200년간 성서해석학은 성서본문을 그 역사적 상황에서 해석해 왔다”고 설명하면서 “역사비평적 해석이든 역사비평 이후의 해석이든 성서해석학의 주류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글로 기록돼 있다는 깨달음 속에 그 글들의 역사적,사회적,구조적,문예적 성격 등을 밝히는 것을 해석의 우선 과제로 선정했다”고 했다. 즉 성경 말씀을 그 역사적 배경에서 살펴야 말씀의 객관적 의미가 드러난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왕대일 교수는 “이러한 전통적 성서해석학이 더 이상 신의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오늘날의 성서해석학이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오늘날의 성서해석이 성경이 사람의 글말로 기록돼 있다는 문학적,사회적, 역사적,종교적 현실을 강조해 정작 하나님의 소리를 놓치고 말았다”고 했다.
역사비평적 해석은 '넓이'의 연구
왕대일 교수는 역사비평적 해석은 '하나님의 소리'라는 신비한 차원을 과학이라는 범주안에서 탐구하려는 과학적 연구라고 설명하면서 “이러한 해석은 성서 본문이 자리 잡았던 시공간에 대한 분석을 텍스트 해석의 들머리로 삼는다”고 설명했다. 즉 텍스트 배후에 있는 역사(종교적,사회적 문학적 정황)를 알아야 본문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왕대일 교수는 "이는 텍스트는 텍스트 배후에 있는 역사를 보여주는 창문역할에 그쳐 텍스트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에 관한 역사를 해석하고 말았다"고도 했다.
왕대일 교수는 이러한 역사비평적 성서 해석은 순수하게 ‘넓이’의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본문의 세계를 파악하기 위해 문헌을 공부하고, 언어적 표현 양식이나 형식도 살펴보고, 언어의 쓰임새를 전통이나 전승의 시각에서 추적해 보고, 여러 문헌이나 전승이 어떻게 해서 하나의 문서로 통합됐는지 추정해 보는 등의 연구는 본문에 수록돼 있는 의미의 지평을 확대시켜 주는 ‘넓이’의 연구라는 설명이다.
왕대일 교수는 이러한 ‘넓이’의 해석에 대해 “냉정하게 말해 사실의 확인에만 몰두할 뿐 사실 너머에 작용하고 있는 진실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성서해석의 일차적 과제를 진리에 대한 목마름이 아니라 사실규명이라는 역사적 객관적 탐구에 두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하나님의 소리 ‘넓이’의 해석으로 들을 수 있는가?, ‘깊이’의 해석과 렉치오 다비나
왕대일 교수는 그러나 “사실 기독교 신앙공동체에서 오랫동안 제 역할을 했던 성서해석은 원래 ‘깊이’의 해석이었다”면서 대표적인 예로 유대교의 미드라쉬나 교회사의 렉치오 다비나를 소개했다.
왕대일 교수는 특히 렉치오 다비나를 설명하면서 “렉치오 다비나는 유럽의 수사 귀고 2세(Guigo the Second, 약 1115-1198)가 12세기에 창안한 독서 방식으로 흔히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마음 깊이 경험해 말씀을 실천하는 영성 훈련이다”고 했다.
렉치오 다비나는 렉치오(lectio, 텍스트 읽기), 메디타티오(meditatio, 텍스트 묵상하기), 오라티오(oratio, 텍스트로 기도하기), 콘템플라티오(contemplatio, 텍스트로 살기)의 4가지로 구성돼 있다.
왕대일 교수는 “렉치오 다비나는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우리를 읽어가게 되는 습관을 계발하는 훈련으로 역사비평적 해석의 '넓이'와는 대비되는 '깊이'의 해석"이라고 했다. 즉 여러 도구를 가지고 한 본문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한 본문의 세계를 깊이 파고드는 해석이라는 것이다.
'넓이'의 해석에서 '깊이'의 해석으로
왕대일 교수는 이제 성서해석이 말씀의 '깊이'에서 길어 올린 생수를 교회에 제공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논지에 따르면 “말씀에 대한 객관적 의미 파악에 머물지 않고 그 말씀의 해석이 오늘 우리 삶에 내면이 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성서 해석학의 패러다임은 넓이의 해석에서 깊이의 해석으로 뻗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왕대일 교수는 “기독교 신앙 공동체의 유산인 렉치오 다비나는 그런 깊이의 해석을 맛보게 하는 장치였고, 비평적 과학적 역사적 해석만으로는 맛볼 수 없는 말씀의 깊이를 렉치오 다비나는 제공해 줬다”면서 “그런 유산을 오늘의 해석학에서 되살리고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왕대일 교수는 “해석학적 패러다임을 '넓이'에서 '깊이'로 전환시키자는 논의를 성서해석학의 패러다임을 다시 비평이전의 성서읽기로 돌아가지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또 성서 본문의 역사적 의미보다 영적인 의미가 더 우월하다는 주장도 아니다”라고 설명하면서 “과학적 방법이나 역사적 의미만으로 포착할 수 없는 진리의 세계를 깨달으려는 노력이 오늘날 우리들의 성서해석에 요청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