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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조계사 가는 길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서울이 아름답게 물든다. 분홍과 노랑, 연두와 하늘색의 연등이 미풍을 맞아 흔들리며 도심의 가로수 길을 수놓는다. 연등은 지하철 역사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대전시에서는 시 주관으로 버스 안에까지 연등을 달고 운전사들은 개량한복을 입는 이벤트를 연다고 한다.

16일 저녁 종로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거행되는 연등축제 중 가장 화려한 연등축제가 열렸다. 시민 30만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눈길을 사로잡는 연등행렬과 연희행렬이 도로를 가득 메웠다.

21일 석가탄신일 당일에는 조계사에서 열리는 법요식이 공영방송인 KBS 1TV 등을 통해 생방송될 예정이다. 작년 행사에는 유인촌 장관과 오세훈 시장 등 공직자들도 참석해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했다. 연등축제는 불교의 대표적인 문화제인데 이것을 대국민축제로 승화시킨 한국 불교의 저력이 놀랍다. 석가탄신일 법요식은 특정 종교의 행사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공영방송에 생방송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실은 한국 종교인들의 의식 수준이 낮지 않음을 보여준다.

며칠 전 조계사로 가는 길이었다. 길 양편에 어김 없이 늘어선 수백 개의 연등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답답했다. 한국 불교계가 종단을 넘어 범불교적으로 꾸린 단체 중 ‘헌법파괴·종교편향 종식 범불교대책위원회‘라는 게 있다. 견지동에 본부를 둔 이 단체가 낸 책자들을 보면 한국 불교계가 타 종교에 대해 그리 관용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한 동사무소가 교회 차를 빌려 시민들을 이동시킨 데 대해 이 단체는 “행사장이 서울시내라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쉬운데 굳이 교회 차를 빌려 편의제공을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며 “정교분리 위배 행위”라고 한다. 고속도로변에 ‘JESUS LOVES YOU’라고 적힌 광고판을 세우는 것도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고속도로라는 공공장소를 종교선전에 이용한 것”이어서 “정교분리 위배”고, 합창단이 TV(KBS 1TV)에서 부른 찬송가 가사가 자막처리 된 것 역시 ‘방송은 종교간 차별과 갈등을 조장하여서는 안 된다’는 방송심의규정과 정교분리 원칙을 어긴 행위라고 비난했다. 선거 편의를 위해 교회가 교회 시설에 투표소를 설치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도 “정교분리 위배”라고 밝혔다. 불교와 타 종교에 ‘이중잣대‘를 적용한 셈이다.

군자무소쟁이라고 한다. 타 종교를 향한 지나친 비방과 비난을 삼가고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 힘쓰는 종교와 종교인들이 결국에는 우리 사회의 존경을 입고 그 존재 기반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팔공산 불교테마공원 조성에 반대한다며 기도회를 열고 서명운동 하는 개신교 목회자들 또한 자신들이 도리어 개신교를 해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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