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재판소가 여성 자궁에 착상되지 않은 배아(胚芽)는 ‘인간의 기본권’을 부여받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7일 불임 시술을 받았던 남모씨 부부가 ‘초기 배아’를 난치병 등의 연구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이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낸 헌법 소원 소송에 관해 이같은 판결을 내렸다. 초기배아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고 나서 원시선(原始線·primitive streak)이 생기는 14일 전에 배아다. 원시선은 수정 뒤 14일쯤 지난 배아에서 나타나는데, 나중에 척추로 분화된다.
우리나라 생명윤리법 17조에 의하면 불임시술을 목적으로 체외에서 수정된 배아의 경우 원시선이 나타나기 전까지에 한해서 ▲불임치료법 및 피임기술의 개발을 위한 연구▲근이영양증▲그 밖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희귀 또는 난치병의 치료를 위한 연구 등을 목적으로 ‘초기배아’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헌재는 모체에 착상하기 이전의 배아와 인공수정 등을 위해 체외에서 생성된 배아라도 ‘원시선’이 생기기 전 단계는 인간으로서 발전하는 단계에 있는 ‘잠재적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는 있지만, 기본권까지 부여할 수 있는 ‘완전한 인간’으로 간주하기에는 여러움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같은 헌제의 결정에 대해 종교계는 유감을 나타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박정우 신부는 배아 단계를 거치지 않은 인간은 없다고 했다. 가톨릭은 배아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에도 반대하고, 일단 만들어진 배아도 생명으로서 존엄하므로 조작의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기 때문에 헌재의 이번 결정은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NCCK 생명윤리위원회 황필규 국장은 ‘초기배아’를 인간으로 볼 수 없다는 헌재의 이번 판결은 존중한다면서도 “그러나 생명 존중의 차원에서 생각할 때 잘못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황필규 국장은 “배아는 인간으로 가는 생명의 씨앗으로 다른 어떤 동물들의 배아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이번 판결을 통해 배아가 상업적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을 열어 둔 것에 우려를 드러냈다.
그동안 과학계는 배아가 수정 후 14일이 지나야 비로소 각 세포가 몸의 어떤 부위로 분화될 것인지 결정되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세포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종교계는 배아로 수정된 순간 생명체가 탄생하는 것으로 보고, 이 배아가 자라 결국 온전한 인격체로 성장하기 때문에 원시선의 유무와 관계없이 배아를 이용한 연구반대를 정부에 꾸준히 요구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