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종교사에 한 획을 긋고 2000년도 이후에 나란히 생을 마감한 3명의 종교인-강원용 목사, 김수환 추기경, 법정스님-의 업적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한 세미나가 3일 연세대 백양관에서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회장 이정배) 주최로 열렸다.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학술대회 '세 명의 거인들 강원용 목사/김수환 추기경/법정스님이 바라본 이웃종교의 같음과 다름' ⓒ이지수 기자 |
3명은 한국 종교계에 ‘종교간 대화’라는 문화의 기초를 놓은 종교인들로 평가된다. 이번 세미나는 이들 3명을 동시에 조명하는 첫 세미나인 동시에 ‘종교간 대화’의 측면에서 한 세대를 정리하고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성격을 띠었다. 발제는 개신교에서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가톨릭에서 변진흥 박사(김수환추기경연구소), 불교에서 현장 스님(티베트박물관장)이 맡았다.
◆3명의 종교인들이 남긴 유산은
발제자들은 3명의 종교인들의 업적을 정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3명이 생전에 긴밀히 교류했던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 발제자들의 발표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이들 종교인은 종교간 대화의 영역을 ‘종교적 교리 밖’으로 설정하는 데 기여했다. 이들은 교리의 환치 가능성을 말하는 ‘종교혼합주의자’와 거리가 멀었다. 강원용 목사는 “혼합종교는 종교의 과제를 논하기도 전에 종교 자체에서 타락해버리는 것”이라며 혼합주의를 경계하고 “종교간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가 가진 확실한 정체성이다. 정체성이 없으면 대화란 필요하지 않다”고 못박았다. 김 추기경과 법정스님 또한 각자 종교의 교리적 신념을 양보하면서까지 종교간 대화를 강조하지는 않았다.
둘째, 이들은 ‘개방성’을 가지고 타종교와 대화하기에 힘썼다. 강원용 목사는 한국종교인평화회의와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 세계종교인평화회의의 지도자로 활동하며 종교간 대화 문화의 초석을 놓은 장본인이고, 김 추기경은 1968년 서울대교구장에 부임하자마자 한국종교인협회 의장단에 참여하는 등 한국 가톨릭이 타 종교와 협력하는 물꼬를 텄다. 법정스님은 강원용 목사가 중심이 된 크리스챤아카데미 종교간 대화 모임과 6개 종교지도자모임에 불교계를 대표하여 활동했다.
셋째, 이들은 종교간 대화의 과제를 명시함으로써 후대 종교인들이 나아갈 길을 닦았다. 강원용 목사는 각 종교가 ‘인간 존재의 인간화’라는 목적을 공유해고 이를 위하여 생태문제와 생명, 인권, 빈부, 성차별, 남북 문제 등에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으며, 김 추기경은 “유교, 불교, 그리스도교가 손잡고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변화시켜가자”며 생태문제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또한 이들은 민주화운동 등 정치적 영역에서도 종교간 대화의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평화 전통 계승해야
박종화 목사는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우리 모두에게 공동의 과제로 남는다”며 세 종교인의 뒤를 이어 종교간 평화의 전통을 계승할 과제가 후대 종교인들에게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은 분명히 다종교 사회이지만, 종교 간에 폭력적 대결이나 전쟁 없이 각자가 발전해오고 있다”며 “이런 평화의 전통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과제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