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을 논하는 방식은 여럿일 수 있지만 새로운 것을 논하는 자리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옛 것'에 대한 논의이다.
19일 오후 2시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새로운 기독교 대토론회-이천년 기독교를 새롭게 디자인하기>가 '새로운 기독교'에 앞서 '옛 기독교'를 말하는 발제 순서에는 이른바 '금기'가 난무했다.
"기독교는 스스로의 오류에 대해 언제나 겸허해야 하고, 자기 안에서만 스스로를 변증하지 말고 이웃 종교와의 비교 가운데서 설득력을 발견해 가야 한다. 절대적이고 당위적인 교리도 가급적 최소화해야 한다"
"신적인 여성성이 필요하다. 가부장적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세상을 망가뜨려온 모노테이즘은 위험하다. 이웃종교와 대화하는 인터페이스의 공간에서 성령의 '흥'을 말해야 한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확립된 부활, 동정녀 탄생, 부활, 승천, 재림은 Q복음서를 보면 처음부터 완벽한 형태로 존재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루터의 '솔라 스크립투라' 역시 문자주의로 나갈 여지를 남겨 놓았다. 진보와 보수의 논쟁은 모두 루터의 자식이다. ‘믿음’만을 강조해왔던 기독교는 이제 Q와 도마복음이 전하는 ‘깨달음’에 주목해야 한다. 인간 이해의 기본도 원죄 유전보다 하나님의 형상이 되어야 하며, 삼위일체론도 실체론적이 아니라 관계론적으로 다시 봐야 한다."
▲19일 오후 2시 기독교회관에서 <새로운 기독교 대토론회-이천년 기독교를 새롭게 디자인하기>가 열렸다. ⓒ김태양 기자 |
"신약성서의 단 하나의 리얼리티는 재림일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그것을 향한 열망일 뿐이다. 성경의 언어는 고백적인 언어들이며 그것이 교리가 된 것이다...대안교회를 하면 이단 소리 듣는다. '진보'하려면 공부 많이 해야 한다. 모르더라도 하다못해 왜 모르는지는 설명해야 하니까."
발제자들의 주장을 '금기'라고만 볼 수는 없었다. 그것은 발제자들의 학자적·목회적 고찰에서 나온 것이었을 뿐 아니라, 학자나 목회자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제기해왔고 그래야만 했으나 '정통'에 가려, 말조차 꺼낼 수 없었던 현실에 대한 '고발'이었기 때문이다.
발제자와 참석자 간의 토론 순서에서도 의미 있는 지적들이 더러 나왔다. 한 참석자가 "한국교회가 왜 성서비평을 신자들에게 가르치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역사적 예수와 Q복음서>의 저자 김명수 교수(경성대학교 신학대학장)는 "목회자들이 교인들을 무지한 차원에 묶어놓고 반지성주의를 강조하며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이끌어가는 편이 교회의 성장 등에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라고 냉소하며 문자주의야말로 한국교회의 가장 큰 병폐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번 토론회를 개최한 세계와기독교변혁연구소의 정강길 소장도 한신대의 사례를 들며 학교에서는 성서비평을 배우나 막상 교회 현장에서는 옥한음 목사의 국제제자훈련원 교재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며, 이러한 강단과 목회현장의 이원화 현상이 진보 기독교 교단의 고질적인 문제임을 지적했다.
'구원'이 과연 무엇이며 천주교 등에도 구원이 있느냐는, 많은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이 묻는 물음이지만 좀처럼 명쾌한 답변을 얻기 힘들었던 의문도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예수는 없다>로 이목을 끌었고 최근에는 <도마복음 풀이>를 내놓은 오강남 교수(캐나다 리자이나 대학 비교종교학 명예교수)는 "기독교인 중 상당수가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다고 하는데, '맞다'. 다른 종교인들은 기독교인이 생각하는 그런 구원을 말하지도 않고, 그런 구원을 위해 힘쓰지도 않는다. 따라서 '그런' 구원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고 답변해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순천하늘씨앗교회 담임 한성수 목사도 기독교나 천주교나 이슬람교나 가는 길은 달라도 결국 하나에서 만날 것이라는 초기 다원주의의 입장에 대한 거부를 덧붙였다.
새로운 기독교는 사탄, 악에 대해서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도 제기되었다. 이에 김명수 교수는 사탄과 천사, 선과 악, 의와 불의로 대비하며 그런 것들을 너무 실체론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선은 영원한 선이고, 악은 영원한 악인가?" 김 교수는 21세기 기독교는 이원론적인 실체론보다 관계론적인 사고를 해야 하리라는 전망을 제시했다.
동아시아, 특히 여성들에게서 흔히 회자되는 '혈액형' 신앙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도 이어졌다.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김윤성 교수는 고대 그리스의 4체액설에서 기원을 찾으며, 일상적 경험의 축적과 경험의 패턴화를 들어 설명했다. 그는 '혈액형'이 삶에 지침이나 해석을 제공해줄 수는 있으나 '과학'은 아니라고 단언했다.
정강길 실장이 새로운 대안 기독교를 위한 제안을 주문하자 뉴욕유니언 신학대학 현경 교수는 가부장적인 기독교를 넘어 신적인 여성성을 받아들이고 그러한 상상력 하에서 살아볼 것을 제안했다. 김명수 교수는 새로운 기독교를 위해서는 성서를 버려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은 지양하면서도 외경의 재발굴이 필요하고 소위 정통에 의해 이단으로 몰렸던 기독교 소장파들이 갖고 있는 기독교의 진리를 다시 캐내야 할 것을 주장하며 기독교의 폭넓은 신앙 자세를 주문했다.
조화순 목사는 일상의 영성을 주장했고, 오강남 교수는 도마복음의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이 진짜 나"라는 구절을 인용해 진정한 의미의 영성을 가질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최근 지성의 대표라는 분이 영성으로 넘어갔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지성에도 못 미치는 게 아닌가 싶다"며 기독교가 영성과 믿음이 지성에 못 미치는 것으로 여기는 풍토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윤성 교수는 테드 제닝스 교수의 말을 인용해 "양성 평등의 시대가 오고 차별이 철폐되는 시점에 우리사회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게토로 남아 있는 곳이 바로 교회"라며, 예를 들어 생태적 사고를 한다는 것은 고전적인 구원관을 뒤집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강길 실장은 또 '새로운 공의회'가 열려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밝혔다.
대광고 교목을 역임했고 현재는 예수동아리교회 담임목사로 재직하고 있는 류상태 목사는 <21세기 새로운 그리스도인 선언>을 낭독하기에 앞서 기독교 진보에 거침없는 쓴 소리를 쏟아냈다.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분들을 나는 이해하고 싶다. 그들은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기독교 교리가 진정으로 옳다고 믿고 있는 희생자들이지만, 그러한 기독교의 교리와 역사에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나와 같은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오늘날 기독교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진보는 교회 바깥을 향해 의미 있고 멋진 일들을 하고 싶어 하나 그러기에 앞서 먼저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그는 또 진보의 경제적 궁핍을 언급하면서 보수에 손을 벌리는 진보의 관행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을 날렸다. "보수적 교단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으면서 내부적 문제에 대해 동시에 옳은 말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지원금'이 맞겠지만, 그 돈 때문에 내부적으로 곪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옳은 말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뇌물'이다. 기독교 문제는 보수에 달려 있지 않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여기는 진보에 진짜 문제가 있다."
"어느 개그맨이 약간만 비겁해지면 인생이 행복해진다고 하지 않았는가? 나는 조금 말을 바꿔 약간만 용기를 내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날 대토론회가 열린 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참석했다. 모든 순서를 마치고, 목회자임을 밝힌 한 참석자는 본지에 '뼈있는' 참석 소감을 밝혔다.
"솔직히 오늘 한 번의 논의로 새로운 기독교가 시작되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물론 굳이 희망을 찾는다면 진보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지만, 독선적인 보수는 물론이거니와 진보 역시 교권화되고 구태의연해진 측면이 있다. 나는 한국교회가 이러한 논의를 소수자의 목소리로 치부해버리기는커녕 말조차 못 꺼내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만일 틀렸다고 하더라도 정죄하거나 심판해버리면 안 된다. 이건 '이단'의 목소리가 아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고민'이다. '누가' 말하는지를 보기보다 '왜, 그리고 무엇'을 말하는지를 봐야 한다. 보수는 자기 확신에 도취되어 산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진보는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성찰하고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내 말을 하기에 앞서 먼저 들어야 한다. 진보조차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보수기독교가 낳은 현 정권이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보다 자기의 뜻을 말하고 관철시키는데에 온통 관심이 가 있는 것이다. 지금이 내 말을 해야 하는 시점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때 다른 이의 말을 우선 경청하는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빛과 소금'일 것이다. 힘겨루기도 중요하지만, 기독교는 이런 모양을 지켜가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