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과 증오만 한없이 되새기는 것은 평화를 위한 교회의 기도가 아닙니다”
- 6.25 60주년 부시 초청 평화기도회에 바란다 -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6월 22일 한국 사회에 잘 알려진 대형교회들을 중심으로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평화기도회를 개최한다고 한다. 평화기도회 자체는 평화를 소망하고 한반도의 분단을 안타까워하는 모든 국민과 기독교인에게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특히 비극적 한국전쟁을 경험한지 60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해 있는 상황과 최근 예기치 않은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한반도에 전쟁의 기운이 고조된 민감한 시기에, 한국교회가 평화기도회를 개최하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다.
그러나 막상 이번 기도회 내용을 들여다보면 주최 측이 말한 “평화”라는 말의 의도가 도대체 무엇인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1. 부시를 불러 평화의 메시지를 듣겠다는 주최 측의 세계관과 역사의식이 우려스럽다.
지난 역사라고 잊기엔 너무도 생생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에 대해 전 세계는 이미 그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고 분명한 평가를 내렸다. 이미 베트남전의 기록을 넘어 미군의 최장기 전쟁기록을 수립한 아프가니스탄 전쟁(104개월)은 미군 사망자만 1천명을 넘었고, 다국적군 희생자를 합하면 1,800여명이 넘으며, 민간인 희생자는 정확한 통계조차 잡히지 않을 정도로 많다. 이라크에서의 미군 희생자만도 4,400명을 넘었고, 역시 민간인 희생자는 추산조차 못하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하나님께 평화를 호소해야할 기도회에 바로 이 두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불러 간증을 시킨다면 그게 말이나 될 일인가? 더욱이 그는 재임시절 내내 북한에게 출구없는 적대정책을 고수함으로써 한반도 냉전에 기름을 부었던 인물인데, 그에게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달라는 것은 주최 측 역사인식의 한계를 한국 사회와 세계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주최 측은 부시 전 대통령을 불러 무엇을 듣고 싶은가? 그를 통해 들으려는 메시지가 우월한 무기와 무력으로 원수를 제압해 성취하는 힘에 의한 평화라면, 이는 교회의 이름으로 개최되는 평화기도회의 성격에 본질적으로 위배될 뿐 아니라, 기독교의 핵심 가치인 화해와 사랑의 가르침에 결정적으로 역행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취지로 기도회가 열린다면 이 기도회는 기독교의 이름만 빌렸을 뿐 기독교의 가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정치적 이벤트에 불과하다.
6월은 여러 모로 비극적인 달이다. 60년 전 동족상잔의 비극 한국전쟁이 있었던 달이며, 두 번에 걸친 서해교전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던 달이기도 하다. 그리고 2010년 6월, 지금도 여전히 천안함 사태 이후 “전쟁불사”를 외치는 남쪽 당국과 “불바다 발언”을 서슴지 않는 북녘 당국이 쏟아내는 전쟁기운으로 남북의 백성들은 죽을 지경이다. 그것도 모자라 하나님나라의 평화를 외쳐야할 교회까지 나서서 증오와 불신, 미움을 쏟아낼 메시지를 들어야하는가? 이제 한국교회는 6.25의 증오를 넘어 평화와 상생을 향한 6.15의 정신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2. 이번 ‘평화기도회’에는 주님의 평화와 자기비움의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기독교 교회가 주최하는 평화기도회에 어떻게 예수님의 핵심 가르침이 빠져있거나 최소화 될 수 있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성서를 통해 확인하듯, 예수님 자신도 당시 유대인이 고대하던 정치적 왕이나 혁명적 해방자로서가 아니라 십자가에 매달리신 순전한 양으로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세상을 바꾸셨다. 십자가에서 보이신 예수님의 비폭력과 무저항은 그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류구원의 원대한 계획에 충실히 순종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평화는 바로 이와 같이 예수님의 평화의 복음과 사역 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평화기도회에서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이런 적극적인 원수 끌어안음과 화평케 하는 자의 역할이 강조되지 않고 있다.
또 이번 평화기도회는 예상 참석인원이 10만 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군중집회 성격을 띠고 있다. 이제는 정치행사에서도 보기 힘들어진 대규모 군중집회 방식을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도회 자리에서 재현하려는 저의는 무엇인가? 주최 측에서 이번 평화기도회의 성공여부를 몇 명이 모였는가로 가늠하려한다면 이는 이미 그 본래의 의의를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교회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이는 공동체로써, 깨어진 세상에 화해와 평화의 도구로, 천국의 대사로서 자신의 맡은 직분을 충실히 감당할 때 비로써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진정 한국교회 지도자들이라면 이제는 조직이나 재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복음적 감동으로 세상을 화평케 하는 참된 권위를 보여주기를 간절히 호소한다.
3. 6.25 60주년 평화기도회 측에 충심으로 제안한다.
우리는 보수와 진보,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골을 넘어 이번 기도회가 주최 측의 개최의도처럼 한반도에서 하나님의 샬롬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여 한국 교회와 사회에 역사적 전환점을 가져오는 기도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또한 기도회를 통해 남북관계의 긴장을 완화하고,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로운 통일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을 새롭게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이에 이러한 우리의 충정을 담아 3가지 사항을 기도와 실천과제로 담아 채택해 줄 것을 주최 측에 정중히 제안한다.
제안 하나 : 전쟁 반대 및 비폭력 선언
남북한은 60년 전 무려 3년 동안이나 비극적인 전쟁을 겪었고, 휴전 후에도 준 전시상태로 서로를 끊임없이 증오하며 적대하는 험난한 세월을 살아왔다. 이제 남북한 정부는 다시 “전쟁불사”와 “불바다 발언”을 외쳐대며, 또 다시 백성들을 전쟁의 자리로 서슴없이 내몰고 있다. 우리는 인류의 양심으로, 아니 우리가 믿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를 반대해야 한다.
우리는 이번 평화기도회를 통해 한국교회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전쟁과 폭력을 반대하는 전쟁반대 및 비폭력 선언을 천명할 것을 제안한다. 무엇보다 상대방을 위협하는 양측의 핵 및 대량살상무기의 포기와 사용금지를 촉구해야 한다. 또한 천안함 사건이후 한국정부의 보복 방안의 하나로 고려되고 있는 확성기를 통한 대북 심리전과 같은 시도가 우리민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불상사를 가져올 수도 있음을 우려한다. 한국교회는 이 전쟁 반대 및 비폭력 원칙이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과 본을 따라 예수님의 제자로서 순교를 각오하는 재 결단으로 고백되기를 진심으로 요청한다. 교회는 양측 정부에게 무력으로 대응하지 않고 대화로써 문제를 해결해 나가길 원하는 성들의 깊은 우려를 대변하고 폭력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화해와 용서의 기독교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제안 둘 : 군축 요청과 평화공존 실행
이번 평화기도회를 통해 남북 양측 정부에게 더 이상 군사대결을 고조시키지 말고, 군축을 위한 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한국교회의 이름으로 강력히 촉구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교회가 자신을 정치세력화 하여 여느 이익집단들처럼 세상에 압력을 행사하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는 남북 양측 정부가 상대를 서로의 위협과 적으로 규정하여 대치하고 있는 현재 한반도 구조에서 적어도 교회만큼은 자신을 버려 평화를 이루신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범을 따라, 서로를 향하고 있는 어리석은 총부리를 내려놓으라고 강력하게 권면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제자된 교회의 사명이다. 이번 평화기도회를 통해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역사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신다는 믿음 아래서, 우리는 더 이상 무력이라는 우상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세상 앞에 신앙고백으로 증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제안 셋 : 화해자 역할 담당
6.25 전쟁이 끝난 지 벌써 57년이 지났고 세계적 냉전구조는 종식되었음에도, 아직 한반도는 동족 간에 만들어 낸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 땅의 상황을 화해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참회하는 마음을 아뢰고, 이제는 교회가 이 대결과 분단의 아픔을 극복해 낼 수 있는 용기 있고 적극적인 화해자의 역할을 감당할 것을 요청한다. 세상이 보복과 원수 갚음을 외칠 때일수록, 더더욱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겨 폭력의 악순환을 기도와 비폭력으로 끊는 성숙한 제자도를 세상에 보일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
4. 소망을 담은 즐거운 상상력으로
앞으로 또 평화기도회가 계획된다면 비좁은 상암 월드컵 경기장 대신 분단의 현장 휴전선에서, 양측 군인들에게 총 대신 꽃과 떡을 들려주는 10만 명의 기독교인을 상상해본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이제 한국 교회가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진정한 평화의 길이 되길 바란다.
2010년 6월 21일
조지 부시 초청 6.25 60주년 평화기도회를 우려하는 기독인연합
개척자들, 한국아나벱티스트센터, 공의정치실천연대, 교회개혁실천연대,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일하는예수회/영등포산업선교회/기장생명선교연대/한국기독청년협의회/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기독교환경운동연대/한국기독학생연합회/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기독여민회/새시대목회자모임/기독교도시빈민선교협의회/생명평화전북기독인연대/인천생명평화기독연대/한국교회인권센타),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기독청년아카데미, 기독자교수협의회, 비폭력평화물결, 새벽이슬, 성경적토지정의를위한모임, 성서한국, 얼굴있는거래, YMCA 생명평화센터, 예수살기, 인권실천시민행동, 통일시대평화누리, 하나누리, 한빛누리, 감리교신학대학교 기독교통합연구소, 성공회대학교 신학연구원, 한신대학교 신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