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예수의 정신을 회복하려면 다시 기도생활로 돌아가야

21회 예수포럼에서 박경조 대주교 ‘나의 인생과 기독교’

누군가 인생에 대해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나는 ○○에서 태어나서 △△살에 □□을 하고.."라고 술회하기 좋아한다. 누군가와 같은 인생이란 있을 수 없고, 비슷한 일에 대해서도 감회와 인생 여정은 달라지는 것이나 바로 그러한 남다른 인생을 나와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리라. 그래서 시간의 흐름을 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대게 진지한 형태를 띤다.

 ▲ 대한성공회 전 의장주교(관구장) 박경조 대주교 ⓒ김태양 기자

그런데 대한성공회 전 의장주교 박경조 대주교는 21회 예수포럼에서 밝힌 자신의 인생 앞에 먼저 성공회를 앞세우는 방식을 택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난 30년 간 사제로, 그리고 주교로 지내왔던 성공회를 다짜고짜 "잡탕, 비빔밥 교회"라고 소개해 청중의 웃음을 이끌어낸 점이었다.

당연히 자조는 아니었다. 거기에는 친숙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어떤 이'의 말을 빌려 박 대주교는 “복음주의로부터 아주 의식적인 천주교에 가까운 교회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폭이 넓고 다양한 성공회”를 "무지개 교회"라고도 일컬었기 때문이다.

포럼 사회자의 말처럼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성공회를 의식한 것일 수도 있지만, 박 대주교는 천주교와의 역사적 관련성을 의식해 비교 설명으로 운을 뗐다.

"교황을 정점으로 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순의 하이어라키(계급제도)가 있는 세계적 공동체가 가톨릭이라면, 성공회는 연방제를 택하고 있다. 한국 관구는 우리 실정에 맞는 교회를 만들어나가는 자유를 갖고 있다. 세계 교회가 한국 관구에게 뭐라고 간섭할 수 없다."

박 대주교는 전 세계 800여 명의 주교가 10년에 한 번씩 모이는 람베스 콘퍼런스에서 다루어졌던 에피소드들을 소개하며 성공회의 특징을 알렸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줄루족 선교를 위해 예수를 믿지 않아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주장을 해 파문을 일으킨 남아공의 콜린조 주교와 진보적 성향을 지닌 미국 성공회의 여성 및 동성애자 주교서품, 그리고 그것을 반대하는 복음주의적·보수적인 아프리카 성공회 주교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그는 스스로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한국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가는 큰일 날 것이다. 세계성공회 본부에서 동성애자 사제서품에 관련된 한국 성공회의 입장을 묻는 문서를 보내왔을 때 한국 관구는 '한국은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데다, 성서를 떠나서 동성애자 사제서품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서도 '그러나 본부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어정쩡한 대응을 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앞으로 한국에 닥칠 큰 문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박 대주교는 한국 성공회는 옥스퍼드 운동의 영향을 받은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고교회파 교회로 용어도 천주교에 가까운 것을 사용하는 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상계동에서 시작된 나눔의 집이 도입했던 자활훈련 등을 문민정부가 정책으로 채택하면서 큰 발전을 이루게 되었으나 이후 복지운동 또는 사회운동으로만 변질되어 가는 것을 경험하며 예수의 정신을 회복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때 함께 하던 젊은이들과 고민했던 것이 당시 유행하던 스피리츄얼 포메이션이었다. 성인들의 역사적인 신앙운동, 노동운동 등을 돌아보는 세미나를 10년 가까이 진행한 끝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다시 한 번 더 기도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개신교의 통성기도도 해봤지만 괜히 정신만 더 혼란스럽게 되었고 잘 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전국의 유명 수도원을 돌며 우리는 렉시오 디비나(거룩한 독서), 향심기도(Centering Prayer), 성 이그나시오 로욜라의 피정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토마스 키딩 신부의 향심기도가 대단히 인상 깊었다고 말하던 박 대주교는 자연스럽게 인생에 대한 회고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자신이 경상남도 통영 출신으로 어린 시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스스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대학 재학 시절 은사 김진만 교수의 영향을 받아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과 함께 성공회대학의 전신인 성미가엘신학원에 들어가 사제가 되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예수를 오래 믿어도 복음적으로 바뀌지 않는 평신도를 바라보며, 또 사제인 자신 역시 변치 않는 이기심과 욕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시인하게 된 50대 초반부터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고 하며 앞서 제기했던 '기도생활'의 필요성을 다시 언급했다.

박 대주교는 기독교 전통 안에 있는 관상 기도를 현대 심리학으로 깊이 있게 풀어낸 토마스 키딩 신부의 견해에 깊은 공감을 나타내며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러면서 키딩이 인용한 어거스틴의 원죄론을 다시 인용해 인간의 한계를 지적하며 물질, 명예, 권력을 향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현대인의 '무의식'을 비판했다. 특별히 강남의 일부 기독교인들이 아파트 당첨과 시험 합격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예수께서 가르치신 복음의 길이 과연 이런 것이었는가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털어놓았다.

생태신학이 안겨준 충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박 대주교는 서강대에서 논문을 준비하던 중 생태신학을 통해 인간 중심적인 신학의 한계를 깨닫고 논문 방향마저 바꾸게 되었던 경험을 전하며 이후 환경 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처럼 이기적인 사람이 없다는 세상의 비난을 감안한다면, 자신을 포함한 한국교회가 철저하게 자신을 비우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과 함께 할 때에야 비로소 희망을 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독특한 자유의 문화를 지닌 성공회에서 스스로 일구어가야 했던 수많은 사목생활의 시행착오와 고민을 한 데 묶어 풀어내던 박경조 대주교는 여생 동안 더 비우고, 평화운동을 통해 세상에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기 바란다는 소망을 전하며 회고를 마쳤다.

이날 강연에서 스스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박경조 대주교는 대한성공회 의장주교와 NCCK 회장으로 재직하던 2006년 당시 한기총과의 부활절 연합예배를 개최해 국내 에큐메니컬 운동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바 있다. 앞서 밝힌 것처럼 박 대주교는 사회운동과 환경운동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 2009년 의장주교 은퇴 이후에도 4대강 사업 반대와 남북 긴장관계 고조에 대한 우려 표명,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촉구 등을 활발히 해오고 있다.

평생 교회일치와 사회참여에 헌신해올 수 있었던 비결이 "기도생활"이었다는 박경조 대주교의 고백은 이것 저것을 섞어 놓은 '잡탕, 비빔밥'이 아니었다. 누구나 그리로 돌아가야만 하는 '예수의 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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