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핑크 리더십' |
구미정 교수(숭실대)가 한국교회를 향해 “여성을 해방시키라!”고 외쳤다. 신간 <핑크 리더십>(생각의나무)에서 그는 성경에 등장하는 9명의 여성을, 남성들이 지어놓은 거대한 편견의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이브(Eve)의, 미갈의, 라합의 숨통이 드디어 트였다.
그는 여성 해방 없이 한국교회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한다. “작금의 한국교회는 청년 세대와 특히 고등교육을 받고 자란 젊은 여성들에게 별 매력이 없다. 이들은 교회만 가면 답답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입을 모은다. 교회가 생명력 있는 복음이 전해지고 나누어지는 축제의 장이 되기는커녕, 구시대적인 낡은 규범을 옹호하고 강제하는 억압의 장이 되기 때문이다.”
이브의 이야기는 이브-릴리스 설화에서 시작한다. 유대교의 이 설화에서 하나님은 이브 전에 ‘릴리스’라는 여성을 창조했다. 아담과 동일하게 흙으로 지어진 릴리스는 아담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하는데, 이를테면 아담이 릴리스와 자고 싶어 릴리스에게 누우라고 하면 “내가 왜 당신 아래 드러누워야 하죠?”라고 대들기 일쑤였다. 마침내 아담은 힘을 써서 릴리스를 복종시키려고 하나, 이에 화가 난 릴리스는 에덴동산 밖으로 뛰쳐나가고 아담의 하소연을 들은 하나님은 새로운 여성, ‘이브’를 창조하기에 이른다. 아담은 릴리스와 다르게 순종적이고 고분고분해서 아담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런데 정말로 릴리스는 추방될 존재였고, 이브는 순종적인 여성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죄과는 능동적인 릴리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릴리스를 억압하려 한 아담에게 있다.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아담에 종속된 존재로 보는 시각도 틀렸다. ”이브의 등장에서 아담의 역할은 전혀 없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고작 잠을 잔 것뿐이다. 그 잠도 하나님이 재우셨을 만큼 아담은 철저히 수동적이다. 요컨대 이브는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로서 하나님께 속한 존재이지 결코 아담이 주인 행세를 할 게재가 못 된다.”
이브가 ‘돕는 배필’(창세기 2장 20절)이라는 표현도 “곰곰 따져보면 능동적으로 돕는 쪽이 이브고, 수동적으로 도움을 받는 쪽이 아담이라는 뜻이므로, 여성의 열등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본문이 전혀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교회는 여전히 릴리스를 추방하고, 자기 입맛에 맞는(남성중심적인) 이브상을 강요하고 있다. “부창부수, 여필종부의 유교적 규범이 바깥 세상에서는 시대착오적인 혁파의 대상이지만 교회 안으로 들어오면 완전히 신적 권위를 입게 되는 아이러니”가 넘쳐 교회 속 여성의 숨통을 죄고, 결국 젊은 여성들이 더 이상 교회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위기로 번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릴리스를 성서로부터 추방하지도 말고, 이브를 남성들이 바라는 여성의 전형으로 미화시키지도” 말라고 그는 말한다.
미갈은 또 어떤가. 이 책에서 다윗은 권력에 눈이 멀어 정략결혼과 간통과 살인을 서슴지 않았던 왕으로 그려지고, 그런 다윗을 누구나 찬양할 때 겁도 없이 ‘방탕한 자’라고 직언을 날린 캐릭터로 미갈은 그려진다. “예언자라는 인물도 다윗의 권력에 기생하여 바른 소리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눈치 보는 실정인데, 미갈은 당당하기 이를 데 없다 (…) 감금당하고 고문당할지언정 올곧은 소리를 내고야 마는 그 용기의 정체는 무엇인가. 진실에 대한 기억이다. 정의와 자유에 대한 갈망이다. (…) 불행을 숄처럼 두르고, 슬프지만 단호한 눈빛으로 역사를 응시하면서 그렇게 우뚝 서 있다.”
책에는 총 9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성경 속 ‘핑크리더십’을 개관한다는 목적으로 시대 중복 없이 1명씩 추렸다. 저자는 “아홉 명의 여성들은 성경 속 남성 영웅들에 비해 그다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하지만, 성서 시대의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고 따른 위대한 리더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브, 미리암, 라합, 드보라, 룻, 미갈, 훌다, 에스더, 마리아에게 덧입혀진 남성주의적인 시각을 벗겨내고, 그들이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자기 운명과 역사를 개척해나간 인물들이었음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