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제안문]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 주제 제안문(초)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 주제 제안문(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앙과 직제위원회)


 

순서
1. 세계교회협의회 제10차 총회 주제제안을 위한 조언을 요청 드리며
2. 주제제안서
3. 보충자료


세계교회협의회 제10차 총회 주제제안을 위한 조언을 요청 드리며


한국교회 자매 형제들께

제10차 WCC총회를 부산에서 개최하게 된 것은 한국 교회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하고 영광스러운 일이며 뜨거운 마음으로 환영합니다. 제10차 WCC총회가 세계교회의 일치와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 선교에 큰 공헌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앙과 직제위원회는 2010년 초부터 이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고, 한국교회가 어떻게 이 일에 기여할 수 있을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WCC에 한국교회의 의견을 밝힐 필요가 있음을 공감하였습니다.

그간 진행되어온 일정을 간략하게 말씀을 드리면,

2010년 1월 25일 제1차 신앙과 직제위원회에서 “2013년 WCC 10차 총회를 위해 신앙과 직제 위원회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하였습니다.

우선 WCC에서 그동안 이룬 “신앙과 직제”에 대한 업적을 알리고, 에큐메니칼 신학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WCC에 대한 오해와 이해”라는 주제로 세 차례에 걸쳐 토론회를 진행하였습니다.
2월 19일(금)에 이형기 박사님을 모시고 “WCC 중심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역사와 신학”이라는 주제로 1차 토론회를 진행하였습니다.

3월 25일(목)에 김은수 박사님의 “에큐메니칼 선교와 로잔운동에 나타난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와 장윤재 박사님의 “WCC 에큐메니칼 운동의 사회 ․ 윤리적 조명”을 주제로 2차 토론회를 진행하였습니다.

4월 26일(월)에는 에큐메니칼 신학자와 비에큐메니칼 신학자간 대토론회를 개최하였는데, 세가지 주제를 놓고 각각의 주제에 대하여 양측 신학자 중 한명씩 서로의 입장을 논하였습니다.

“기독론을 포함한 구원론을 중심으로”에는 심광섭 박사, 김영한 박사가, “교회론을 중심으로”에는 이형기 박사, 김상복 목사가, “선교, 사회윤리를 중심으로”에는 채수일 박사, 김명혁 박사가 수고해주셨습니다. 이 토론회를 통해서 서로의 간극을 많이 좁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위 토론회를 진행하는 가운데 3월 12일 제3차 신앙과 직제위원회에서 후속조치를 논의하였고, “WCC총회 주제에 관한 토론회”를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할 것을 계획하였습니다.

4월 30일(금)에 정병준 박사님의 “WCC총회 주제들에 대한 성찰”과 오랜 기간 에큐메니칼 운동에 헌신해 오신 박경서 박사님의 “WCC총회와 관련한 경험담, 한국교회를 향한 조언”을 듣고 참석하신 분들로부터 여러 의견을 수렴하였습니다.

5월 10일(월)에 심광섭 박사의 “WCC 2013년 부산총회 주제 탐색을 위한 기조발언”과 장윤재 박사의 “WCC 10차 총회 주제제안을 위한 토론 도우미”라는 제목의 발제를 듣고 참석하신 분들로부터 여러 의견을 수렴하였습니다.

이상 두 차례에 걸친 토론회를 통해 수렴한 다양한 의견들을 중심으로 WCC에 제안할 총회주제 문서를 작성하기 위한 모임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5월 14일(금)에 WCC총회 주제문서 초안작성을 위한 기획회의를 하였고, 이 자리에서 초안위원으로 양권석 박사, 이형기 박사, 이양호 박사, 김홍기 박사, 심광섭 박사, 장윤재 박사(이상 신앙과 직제위원)를 선임하였습니다.
5월 19일(수) 1차 초안위원 모임을 가지고 이 자리에서 그동안 토론회를 통해서 제안된 내용들을 취합하고 문서작성자로 심광섭 박사와 장윤재 박사를 선임하였습니다.
5월 28일(금) 1차 초안문서를 작성하였습니다.
6월 3일(목) 2차 초안위원 모임에서 1차 초안문서에 대해 토론을 하였습니다.
6월 6일(일) 2차 초안문서를 작성하였습니다.
6월 7일(월) 제4차 신앙과 직제위원회에서 2차 초안문서에 대해 토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6월 9일(수) 신앙과직제위원회는 위의 논의 과정을 거쳐 한국교회의 각 교단과 부문 그리고 지역에서 일하는 그리스도인들과의 긴밀한 대화 속에 이 제안서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WCC 제10차 부산총회가 한국교회의 하나 됨과 새롭게 됨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큰 선물이자 기회이며, 교회일치와 세상의 일치를 위한 세계 교회사적으로도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제10차 총회의 개최국으로서 한국교회는 지난 120여 년 동안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 가운데 민족의 역사와 동고동락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경험을 세계교회와 나눌 것이다. 또한 이번 총회를 계기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와 북미, 그리고 유럽의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신앙에 대해 겸손히 배우며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깊은 친교를 이루어 나가야할 것입니다. WCC 제10차 총회의 초빙국으로서 총회의 주제와 기본 방향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WCC에 제안함으로써 세계교회가 성령의 역사 가운데 하나 될 수 있는 위대한 일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한 달간 논의를 통해 이 초안문서를 발전시키고, 한국교회 전체의 목소리를 담아 WCC에 총회주제를 제안하게 될 것입니다.

일정이 이렇듯 촉박하게 진행된 것은 아쉽기는 하지만, WCC의 일정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낌없는 제언을 부탁드립니다.


주제제안

삼위일체론적 전환의 필요성

희망의 시대가 될 것으로 예견됐던 21세기는 전쟁과 폭력, 기후변화와 생태적 파괴, 금융위기와 경제적 양극화,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지속적 억압, 종교간 갈등과 충돌, 세대 간 ․ 문화 간 단절 등, 일찍이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이 시대는 인간의 탐욕이 문명의 멸망을 재촉하고 우주적 종말까지 예견케 하는 시대이다. 이 시대는, 사도 바울이 이야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피조물이...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는”(롬 8:22) 시대인 것이다.

오늘의 위기는 지구적(global)인 것과 권역적(regional)인 것, 그리고 지역적(local)인 것이 각각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서로 접촉하고 교차하며 하나의 중층적이고 혼종적이며 역동적인 상황을 형성하고 있다. 21세기 에큐메니컬 운동은 이렇게 복합적이고 중측적이며 상호연계된 상황에 보다 통전적이고 역동적인 증언과 봉사 그리고 일치를 요구받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의 절박한 전 지구적 생명의 위기, 끊이지 않는 폭력과 전쟁으로 인한 평화의 위기, 그리고 지속적인 차별과 배제로 상처 받고 소외되는 단절과 소통의 위기 앞에서 창조와 생명의 하나님, 화해와 평화의 하나님, 그리고 치유와 새창조의 하나님이라는 우리의 삼위일체적 신앙고백을 전면화할 필요가 있다.

WCC 총회의 주제는 오늘 이 시대의 징표와 세계의 갈등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느끼고 이해하며 삶을 통해 증언할 수 있어야 한다. 주제는 총회기간은 물론이고 총회를 전후하여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주제는 오늘의 지구적-권역적-지역적 문제에 지속적으로 강한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앙은 서로에 대한 온전한 신뢰와 존중 속에 완벽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비에 대한 고백이다. 이러한 관계론적 하나님 이해는 오늘날 생명의 상호연계성과 관계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탐욕과 이기심 속에 분열과 갈등을 거듭하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참다운 치유가 될 수 있다. 사실 하나님과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러한 관계론적 이해는 아시아적인 가치와 잘 어울리는 사고이며 한국의 문화 전통 안에도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이해이다.

이에 한국교회는 2013년 WCC 부산총회의 주제가 삼위일체론적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전 지구적 생명의 위기 앞에서 우리는 창조의 하나님, 생명의 하나님을 증거해야 한다. 동시에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폭력의 고통 속에서 우리는 십자가로 하나 되게 하시는 구속의 주, 화해와 평화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 동시에 오해와 편견 속에 배제되고 상처 입은 약자와 소수자들 앞에서 치유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힘을 증거해야 한다. 우리는 이 세 위의 하나님이 한 하나님임을 고백한다.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은 이렇게 서로에 대한 완전한 사랑과 영원한 친교 안에서 하나를 이루시며 세상을 창조하고, 생명을 수여하고, 구속하시고 화해시키시며, 치유하시고 새롭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신비에 관한 것이기에 그것이 21세기의 총체적 위기에 대한 우리의 신앙적 응답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지금까지의 WCC 총회 주제들을 돌아보면,

1차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섭리
 Man's Disorder and God's Design
2차  그리스도 - 세상의 소망
 Christ - the Hope of the World
3차 예수 그리스도 - 세상의 빛
 Jesus Christ - the Light of the World
4차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리라
 Behold, I make all things new
5차 예수 그리스도는 자유하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신다
 Jesus Christ Frees and Unites
6차 예수 그리스도 - 세상의 생명
 Jesus Christ - the Life of the World
7차 오소서 성령이여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
 Come, Holy Spirit - Renew the Whole Creation
8차 하나님께 돌아오자 소망 중에 기뻐하자
 Turn to God - Rejoice in Hope
9차 하나님 당신의 은혜로 세상을 변화시키소서
 God, in your grace, transform the world

이를 분석해보면 아홉 개의 주제 가운데 하나님(신론)과 연관된 주제는 1, 4, 8, 9차 네 번이고, 그리스도(기독론)와 연관된 주제는 2, 3, 5, 6차 네 번이며, 성령(성령론)과 관계된 주제는 7차 한 번이다. 그러니까 WCC는 단 한 번도 삼위일체론적으로 주제를 설정한 적이 없다. 하나님의 삼위를 돌아가면서 각각 따로 다루었을 뿐 삼위일체론적으로 주제를 공식화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기독교의 하나님 이해는 삼위일체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기독교 신학은 신론과 기독론과 성령론이 마치 서로 다른 것인 양 각각 따로 다룸으로써 하나님 이해에 심각한 왜곡과 기형을 낳았다. 어떻게 보면 교회 분열의 역사도 이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을 별개처럼 다룬 신학적 분절성 때문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이제 우리는 창조와 생명의 하나님, 구속과 화해의 그리스도, 그리고 치유와 새창조의 성령이라는 우리의 삼위일체적 신앙을 고백한다. 우리는 이러한 삼위일체론적 주제가 오늘날 세계 교회의 지형변화 속에서 다양한 신학적 전통을 가진 모든 교회를 기꺼이 포용할 수 있는 가장 폭넓은 신학적 일치의 틀(matrix)을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가제
⑴ 우리의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
⑵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만물의 평화
⑶ 삼위일체 하나님께 돌아와 피조물과 춤을 추자
⑷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 · 평화 · 치유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평화·치유

삼위일체론적 접근은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이고, 구체적이면서 보편적이다. 실로 삼위일체론 안에서 상이하고 다양한 생명체들이 자유롭고 평등하며 정의로운 공동체를 이룩할 수 있는 신학적 원리를 발견한다. 삼위일체론은 단순한 교리적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귐의 신비를 실존적으로 현실화하는 일, 곧 이 땅에 진정한 정의와 사랑, 자유와 평등에 기반한 평화가 실현되는 공동체적 삶에 헌신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거기서 불의한 사회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사회의 모형과 원리를 발견한다.

우리는 또한 거기서 여성의 해방과 양성 평등의 신학적 원리도 발견한다. 삼위일체론이 하나님의 내적 신비에 대한 탐구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구원사건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라면, 세 위격 사이의 사랑과 자유 그리고 평등으로 특징지어지는 공동체를 이루시는 하나님은 모든 인간관계, 특히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진정으로 사랑과 자유에 기반을 둔 평등한 관계가 되기를 원하신다고 고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삼위일체론을 말한다는 것은 곧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를 거부하는 것이며, 억압과 성차별이 없는 세계를 향해 함께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삼위일체론은 나아가 생태계 회복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을 절대 실체나 주체로 이해하는 단일군주론으로 인해 하나님은 더욱 비세계화 되었고 세계는 더욱 세속화됨으로써, 기독교 신앙은 세계 없는 하나님, 하나님 없는 세계를 초래하였다. 그 결과 땅 위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재하는 인간이 땅의 주인이요 소유자가 되었으며 이 세계는 이 인간에 의해 마음대로 처분될 수 있는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하지만 만약 하나님께서 하늘 위의 ‘단일자’가 아니라 사랑과 자유로 특징지어지는 하나님 · 예수 그리스도 · 성령의 사귐 속에 존재한다면, 그러한 하나님과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과 상호 존중의 관계로 바뀔 수 있다. 이러한 삼위일체적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사고’는 생태계 회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자유롭고 평등한 사랑의 사귐 안에서 상생과 호혜의 새로운 경제 원리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분열과 갈등의 역사를 극복하고 생명과 평화의 세상을 만드시는 능력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에 있다고 믿는다. 삼위 하나님의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적 사귐과 일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원모델이며 비전이다.

우리는 창조와 생명의 위협에 직면하여 자연에 대한 성례(성사)적 감각을 회복하고 피조세계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워 창조에 대한 새로운 세계내적 경건의 필요성을 인식한다. 참된 문명의 번영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 보전에 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성육신의 사건은 인간과 세상과 육체에 대한 하나님의 긍정이며, 하나님 자신이 낮고 천한 자리에 오셔서 우리가 어떻게 정의와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지 보여주신 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는 삶과 가르침,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자유와 해방, 정의와 평화, 용서와 화해의 본을 보이셨고 이로써 인류의 구세주가 되셨으며 화해와 평화의 주님이 되셨다. 성령은 생명과 평화의 영으로서 개인에게서 거듭나고 변화된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나타난다. 성령은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모아 교회를 구성하며 전도와 선교, 봉사와 일치의 일을 하도록 이끄신다.

교회는 성령의 능력 가운데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모든 생명이 맺어야할 화해와 평화의 본을 이루어가는 곳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공동체로서 성령이 교회 밖에서 역사하는 활동을 섬세한 신앙의 감각으로 인지하며, 믿음으로 따라가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서로에 대한 완전한 사랑과 영원한 친교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시며, 만물과도 완전한 사랑과 친교 안에서 하나를 이루기 원하신다. 우리는 오는 2013년 분단의 땅 한반도의 최남단 항구도시 부산에서 만물과 더불어 함께 손잡고 춤추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오늘의 위기의 세계 앞에 구원과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도록 부름 받았다.

 

보충자료

 

삼위일체 하나님과 세계 - 생명 · 평화 · 치유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께서 해와 달과 별, 우주와 자연, 그 안에 생명을 창조하신 것을 믿는다. 이 고백은 기후변화와 생명의 위기 속에서 구체화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과 화해로써 평화를 만드시는 평화의 주이심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은 전쟁과 폭력의 위협, 경제의 불균형으로 인한 살림살이의 위기, 인권의 문제 속에서 구체적으로 고백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령을 믿는다. 성령은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영으로서 새로운 생명을 창조한다. 다문화 상황에서 성령은 소통을 가능하게 하며 종교간 갈등을 치유하여 화해로 인도한다.

오늘날 삼위일체적 신앙은 교회 밖에서 일고 있는 정의를 향한 외침과 세계의 다양한 종교와 문화, 역사를 통해 나타나는 선한 뜻과 만나고 대화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구속과 화해, 치유와 평화의 역사가 성령 안에서 우주적으로 완성되는 삼위일체적 넓이와 비전으로 나타나야한다.

1) 창조와 생명의 하나님

⑴ 기후변화와 생명의 총체적 위기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기후변화로 인한 생명의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있다. WCC의 제10차 총회가 열릴 한반도는 원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뚜렷한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한반도의 기후는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고 있다. 겨울은 짧아지고 여름이 길어지고 있으며, 수온의 상승으로 어종이 변하고 있다.

지구는 인간이 개입하기 오래전부터 커다란 기후변화를 겪어 왔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기후변화 혹은 ‘기후붕괴’를 경험하고 있다. 18세기 중엽의 산업혁명 이래 더 많은 물질적 풍요와 편리를 최고의 가치로 추구해온 경제성장 전략은 막대한 에너지 소비, 특히 화석연료의 소비와 긴밀히 연동되었고 그 결과 주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가 대량 방출되어 오늘의 기후변화를 초래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2015년까지 인류가 삶의 방식에 있어서 어떤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면 앞으로 기후변화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고 경고한다. 2015년까지는 이제 겨우 5년 남았다. 그럼에도 우리의 영적-도덕적 각성은 더디기만 하다. 행동과 실천은 느리기만 하다. 우리를 이 위기에 이르게 한 물질 만능주의, 소비 지상주의, 그리고 성장과 개발 위주의 사회체제를 좀처럼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만물을 사랑으로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과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고 살리시며 양육하시는 생명의 하나님을 고백한다. 에큐메니즘은 가시적인 교회의 일치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세계 전체가 하나 되어 서로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이상으로 한다. 창조세계의 다양성들과 종들(species)의 다양성은 하나의 생명공동체를 추구해야 한다. 하늘과 땅, 그 가운데 해와 달과 별과 산과 들과 물, 그리고 식물와 동물과 사람은 다양성 속에서 하나의 생명공동체를 이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역사와 창조세계 속에 실현시켜야 한다. 지금 ‘하나님의 집(oikos)’ 전체가 인간의 탐욕으로 무너지고 있다.

기후변화와 생명의 위기에 직면하여 우리는 새로운 창조신학, 생명신학을 요구받고 있다. 우리의 오이쿠메네는 지배의 오이쿠메네가 아니라 연대와 관계와 사귐의 오이쿠메네이다. 생명은 관계성의 실재이며 연대와 나눔으로써 성장하고 번성한다. 생명은 오직 공동체적으로만 생각될 수 있다.

생명신학은 하나님의 본질을 관계(relatio)와 친교(koinonia)와 사귐(communio)으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떠나계심’(초월성)과 더불어 ‘함께하심’(내재성)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인류를 불러내고 함께 거주하실 뿐만 아니라(계 21:3) 자연과 온 생명 안에 영으로서 거주하신다. 하나님은 자연의 창조주이고 자연은 하나님의 집이다.

창조신학은 환경의 파괴와 생태계의 위기에 직면하여 창조의 보존(conservatio)과 창조의 통치(gubernatio)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 왔다. 창조의 보전을 위한 인간중심적 사유로부터 생태적 · 우주적 사유로의 전환이 요청되었고, 지배로서의 통치로부터 사귐의 통치가 제시되었다. 그러나 자연을 창조로서 지각하고 창조의 좋음(탁월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 즉, 창조의 보존과 창조의 통치의 과제로부터 창조의 지각(aisthesis)이 우선적이며 근원적 과제가 되어야 함을 제안한다.

⑵ 생명의 존엄성과 권리
하나님은 사랑으로 생명을 지으시고 은총으로 생명을 돌보시며 꺼져가는 생명도 끄지 않고 살리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우리의 세계는 생명의 존엄성을 우습게 여기고 생명의 권리를 함부로 빼앗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특히 경제적 약자와 다른 피조물의 생명의 권리가 짓밟히고 있다.

WCC의 제10차 부산 총회는 지난 40년간 세계를 주도해온 지배이념인 신자유주의가 퇴조하고 인류가 그 대안을 모색하는 불확실성의 시기에 개최될 것이다. 지난 신자유주의 세계화 40년 동안 세계 경제에 차오르는 밀물은 확실히 몇몇의 경제적 승자들을 만들어 냈지만 결코 모든 배를 물 위에 띄우지는 않았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이미 존재하고 있던 승자와 패자 사이의 간격을 더욱 넓히며 우리가 사는 세계를 “고통의 바다 위에 부자 섬 몇 개가 떠 있는” 혹독한 불평등의 세계로 만들었으며, 세계화에 뒤쳐진 나라와 집단들 사이에 심각한 소외감과 분노 그리고 폭력적 저항의 씨를 뿌렸다. 또한 신자유주의의 시장 만능주의와 성장 지상주의는 이 땅 위에서 우리와 함께 생육하고 번성할 축복을 받은 다른 모든 생명을 성장에 필요한 도구와 자원으로 전락시킴으로써 무자비한 생명의 약탈과 착취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부끄럽게도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러한 가혹한 경제 질서에 맞서지 못했다. 우리는 오히려 약자의 생명을 질곡으로 빠뜨리는 제도와 정신을 묵인하고 방조했다. 다른 모든 피조물이 우리 인간과 함께 하나님의 집(oikos)에서 생명의 축복을 누리며 번영하는 것을 신앙적 과제로 인식하지 못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기지 못 한다”(마 6:34)고 단호히 말씀하셨지만, 몇몇 교회들은 마치 ‘번영의 복음(gospel of prosperity)’이 예수의 복음인 것처럼 가르쳤다. 우리는 교회가 신자유주의 질서에 가담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모든 생명의 존엄성과 권리를 지켜내지 못한 죄책을 참회한다.

지금 우리의 세계를 분열시키는 가장 큰 문제는 가난한 자들의 생존권에 가해진 불의와 경제적 양극화이다. 또 하나님의 집 안에서 함께 살아야 할 다른 모든 생명의 권리를 무시하는 인간의 탐욕과 오만이다. WCC는 이제 ‘빈곤선(poverty line)’만이 아니라 ‘탐욕선(greed line)’의 문제, 즉 인간의 탐욕추구를 허용할 수 있는 한계선을 중요한 신앙적 의제로 제기하고 나섰다. 탐욕선의 문제는 과연 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회가 될 것인지 아니면 맘몬의 교회가 될 것인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아시아의 종교문화에 보편적으로 내재된 ‘자발적 가난’의 영성에 다시 주목하고자 한다. 아시아의 한 학자는 ‘가난으로부터의 자유’가 ‘가난으로부터 오는 자유’와 결합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탐욕 위에 기생하는 맘모니즘과 싸울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전 우주가 하나님의 창조 세계이며, 창조 세계 안에서의 조화와 협력이 곧 에큐메니즘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우리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무시하고 경제적 약자와 생태적 타자의 생명권을 무시하는 모든 종류의 개발과 성장 이념에 반대한다. 2008년 월가의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퇴조로 그 대안적 경제 체제와 사상에 대한 논의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은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강조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근원적인 대안은 무한한 경제성장이 가능하며 경제 성장이 곧 빈곤으로부터 탈출이라는 기존의 잘못된 경제적 신앙과 전제를 극복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의 지구는 모든 사람들의 필요(need)를 만족시키기에는 충분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탐욕(greed)을 만족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경제의 목표는 ‘무한한 빵’이 아니라 ‘충분한 빵’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가르치신 예수님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러”(요 10:10)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당신에게 한 것이라 말씀하셨다(마25:40). 2013년 부산에 모일 세계교회는 지난 9차 WCC 총회가 채택한 AGAPE 문서를 계승하여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경제, 모든 생명의 존엄성과 권리를 존중하는 하나님의 풍요로운 생명 경제의 비전과 실천적 대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2) 화해와 평화의 그리스도

⑴ 전쟁과 평화, 폭력극복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과 역사와 자연을 속량하시어 하나님과 화목케 하신 화해와 평화의 주이심을 믿는다. 창조와 생명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전쟁의 반대와 폭력의 극복을 통한 평화의 수립으로 나타나야 한다. 우리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은 전쟁이 지속되고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평화의 주로 고백한다. 역사적으로 인류에게 가장 큰 고통과 죽음을 가져다 준 인간의 죄악은 전쟁이다. 세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로 기록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은 유사 이래 전쟁을 계속해왔다. 전쟁의 종식은 불가능한가?

동구권 및 구소비에트 연방 공산권의 붕괴와 지구화의 과정 속에서 보스니아와 코소보 등 다(多)종족, 다(多)민족, 다(多)문화 사이에 야기되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WCC로 하여금 “폭력극복 10년” 운동을 전개하게 하였다. 그러나 9.11 테러는 아프카니스탄, 이라크 전쟁을 불러일으켰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폭력적 충돌들도 멈추지 않는다. 이것은 테러와 전쟁의 악순환을 예고하고 있다. 테러와 전쟁과 폭력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한다. 테러와 반테러 전쟁은 창조세계와 지구 생명 공동체의 평화를 위협한다.

전쟁은 인간의 살육, 건물의 파괴, 문화유산의 파괴, 자연의 파괴와 황폐화를 초래하며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도 참혹하다. 전쟁은 생명과 평화를 깨뜨리는 가장 커다란 악이다. 한반도는 물론이요 아시아와 팔레스타인 그리고 온 세계에서 전쟁은 억제돼야 하고 제도적으로 폐지돼야 한다. 특히 제국주의적 패권 전쟁은 종식돼야 하고, 강자가 약자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지구의 멸망을 담보로 마련된 핵무기는 모두 폐기돼야 한다.

폭력은 전쟁의 또 다른 형태이다. 인간은 비가시적이고 구조적인 폭력(가정의 폭력, 직장의 폭력, 성폭력, 권력기관의 폭력, 학교폭력, 인종폭력...)과 학대(노인학대, 어린이학대, 소수자학대, 동물학대...)로 고통에 시달리고 죽음을 목도한다. 인간의 생명은 전쟁으로 집단적으로 죽임을 당하고 폭력으로 고통당한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폭력을 극복하고 전쟁이 종식된 상태에서 시작되는 수동적인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예방하고 폭력의 원인을 제거하는 적극적인 평화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의 수립자이시다.

⑵ 한반도 분단과 동북아 평화
WCC의 제10차 총회는 오래전 역사의 유물이 된 동서냉전의 대립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분단의 땅 한반도에서 치러진다. 지금도 남한과 북한 사이의 소위 비무장지대(DMZ)는 이 세계에서 가장 잘 훈련된 1백 만 명 이상의 정규군과 특수군이 서로에게 최신 무기를 겨누며 일촉즉발의 위기를 일상처럼 살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 4강의 개입과 힘겨루기는 조금도 약화되지 않고 있다. 분단의 땅 한반도에는 지금도 1천 만 명의 이산가족이 살고 있다. 한국전쟁 중 잠시일 줄 알았던 그들의 이별은 벌써 60년째 서로의 생사도 확인할 수 없는 처절한 고통으로 남아 있다.

최근의 한반도 서해안에서 일어난 천안함 침몰 사태와 그로 인한 한반도 긴장 고조는 다시금 우리에게 한반도 상황이 잠시 전쟁을 쉬고 있는 상태에 있음을 환기시켜주었다. 한국전쟁 직후 미군에 의해 연평도 앞을 거쳐 백령도 앞까지 그어진 이른바 ‘북방한계선(NLL)’과 이에 맞서 북이 선포한 ‘해상경계선’ 사이에 이미 세 차례의 해상 교전이 있었고 (1999년 6월의 제1차 서해교전, 2002년 6월의 제2차 서해교전, 그리고 2009년 11월의 제3차 서해교전), 지금 이 지역은 한반도 전체 나아가 주변 강대국들까지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갈 수도 있는 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분쟁 지역이 되었다.

한국의 에큐메니컬 운동은 과거 군사정부 시절 온갖 어려움과 탄압을 뚫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화해의 기틀을 마련했다. 한반도의 문제가 곧 동북아 전체의 평화의 문제임을 직시하고 WCC를 비롯한 세계교회와 함께 일본의 도잔소 회의를 기점으로 스위스 글리온의 남북 교회 대표자 만남을 거쳐 1988년 통일 선언에 이르기까지 바늘구멍 하나 들어갈 수 없어 보였던 거대한 분단의 벽에 구멍을 내고야 말았다. 결국 그로 인해 남북한 사이에는 평화와 통일을 갈망하는 커다란 화해의 강줄기가 물꼬를 터뜨리고야 만 것이다. 그러나 에큐메니컬 운동이 물꼬를 튼 이 강줄기가 다시 막혀 물이 고이더니 급기야 역류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지난 25년 동안 북측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을 한반도 평화통일과 민족화해 운동의 동반자로 인식하고 그들과 협력해 오고 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자연재해와 기아로 고통당하는 북녘 동포들을 위한 인도주의적 지원에 앞장 서 왔고,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 함께 ‘평화통일 기도주일’을 정하고, 평화와 통일을 위한 공동기도문을 작성하여 사용하는 등 평화통일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실천해 왔다. 또한 한국교회는 생명존중과 평화의 적극적 실현이라는 성경의 가치를 중심으로 하여, 정부 차원의 남북관계가 긴장과 갈등, 편견과 대립으로 치달을 때에도 북측 금강산과 평양에서 공동기도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남북 성도들 간 민간 차원의 교제를 이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 남북은 그동안 어렵고 힘들게 쌓아온 화해와 협력의 결실을 저버리고, 또 다시 불신과 대립의 길로 치닫고 있다. 나아가 상대방을 비방하고 물리력을 과시하면서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절망적인 때에 우리는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평화”(빌 4:7)를 기억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기쁘게 자기와 화해시키셨다.”(골 1:20). 그러므로 평화의 임금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속의 주, 화해의 주가 되신다. 그 분은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시는”(엡 2:16) 분이시다. 이 신앙을 따라 우리는 전쟁에 단호히 반대하며, 한반도에는 전쟁의 위협이 없는 정의로운 평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어 한반도의 냉전구조가 근본적으로 해체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수립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남북 간 군비축소와 전쟁연습의 중지가 이루어져야 하며, 나아가 동북아 및 세계의 비핵화와 긴밀히 연관된 한반도의 비핵화가 실현되어야 한다.

동아시아의 역사적 맥락에서 한국교회가 세상의 일치를 위해 고려해야 할 제1의 과제는 한반도의 통일이다. 한국의 통일은 세계사적, 민족사적 그리고 교회사적 의미에서 최상의 과제임이 분명하다. 동서의 냉전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으며, 한반도의 통일은 유럽에서 시작된 동서 분열이 진정으로 마감이 된다는 점에서 세계사적 의미가 있다. 민족사적으로 한반도의 통일은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깊은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로 나가는 새로운 장이 될 것이며, 교회사적으로 통일은 북한의 교회사를 복원함으로써 전체적인 토착적 교회 형성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항구적인 평화를 한반도에 그리고 동북아에 건설하는 일에 세계 모든 교회를 초대한다. 우리가 한반도에서 누릴 통일된 세상은 로마의 억압적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샬롬의 평화가 다스리는 세상이다. 2013년 WCC 부산총회는 전쟁의 위협으로 고통 받는 한반도는 물론 오랜 전쟁의 와중에서 하늘을 향해 평화를 울부짖는 팔레스타인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세계 도처의 분쟁 지역에 구속의 주, 화해의 주 그리스도가 주시는 참 평화를 선포하는 역사적인 총회가 되어야 한다.

3) 치유와 새창조의 성령

⑴ 다문화 사회의 소통과 하나됨
사람이 사는 모든 곳을 하나 된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 에큐메니즘의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인간 사회는 여전히 성(sex), 인종(race), 계급(class), 종교(religion)에 의해 분열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전자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발달 그리고 이주 및 디아스포라 경험에 의하여 서로 다른 언어와 체계를 가진 문화가 서로 교차하며 충돌하며 갈등하고 있다. 21세기 한국사회도 이러한 세계적 현상에서 빗겨나 있지 않다. 스스로 단일문화 민족이라고 자부하던 한국사회는 어느덧 1백 만 명을 훌쩍 넘긴 외국인 노동자, 결혼 10쌍 중 1쌍을 차지하는 국제결혼 이주여성, 북한 출신의 새터민, 그리고 중국교포들에 의해 다문화사회로 진입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주류 문화로 소수 문화를 통합시키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 소수자와 약자들의 권리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21세기 다문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차별하지 않고 사람 사는 모든 곳을 하나 된 공동체로 만들어갈 수 있는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나라는 다문화 다민족 다종교들의 다양성 속에서 코이노니아를 통하여 실현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다문화와 다민족의 상이성과 타자성을 인정하면서 코이노니아를 통한 하나의 다문화 다민족 인류 공동체를 추구해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 나라의 평화는 서로가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생명의 충만함을 누리는 평화이다. 때문에 우리는 권위주의적 정치가 아니라 민주주의적 정치를 옹호한다. 주류의 폭력이 아니라 다원적인 정치를 선호한다. 우리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게 하시고 “만물이 서로 소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믿는다. 하나님의 영은 다양성의 세계 안에서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이기심과 차이를 넘어 모두를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이다. 이 거룩한 영에 이끌려 우리는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게 된다. 무지와 편견, 차별과 배제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시는 성령은 이렇게 새 창조의 영이시다. 교회도 이 영 안에서 사랑으로 교통하는 공동체로 거듭난다. 이 영에 이끌려 교회는 다문화 가정을 환영하고, 한국의 전통 종교와 대화하고 연대하며, 이념의 차이를 넘어 북한 동포를 지원하고, 인종과 문화의 차이를 넘어 이주 노동자 및 결혼이주여성들과 연대한다. 이렇게 모두를 하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 안에서 교회는 비로소 공공성을 회복하게 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면서 지역주민 모두의 사랑을 받는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⑵ 종교간 갈등과 화해
서양 기독교는 20세기 들어 그리스도 중심적 보편주의를 통해 기독교의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서양의 에큐메니컬 운동은 한 인류 안에 있는 많은 종교의 자리를 인정하게 되어, 오랜 준비 끝에 WCC는 1971년 타신앙인들과의 대화프로그램을 제시했고, 이어 1975년 나이로비 총회에서는 “다양한 신앙, 문화, 이념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 탐구” 분과가 마련되기도 했다. 1979년의 "Guidelines on Dialogue with People of Living Faiths and Ideologies", 1982년의 "Mission and Evangelism: An Ecumenical Affirmation", 1989년의 󰡔San Antonio CWME󰡕, 그리고 1990년의 󰡔Baar Statement󰡕는 기독교 입장에서 모든 타 주요 타종교들 안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현존하시고 활동하신다고 보며, 성령께서도 모든 타 종교들 속에서 현존하시고 활동하시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바아르 선언문’은 가톨릭의 포괄주의를 뛰어넘는 개신교의 종교간 대화신학을 천명하기에 이른다.

기독교 신앙은 배제의 논리이거나 서로 다른 둘이 싸워 제3의 종합을 만드는 변증법의 논리도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포함하고, 특히 작은 것들의 창발적 힘을 발견하는 삶의 태도이다. 종교간 대화의 영성은 존재와의 새로운 만남을 통해 탄생한다. 만물의 재결합을 위한 선교(mission)는 바로 화해의 선교이다.

4)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회
성령과 성부와 성자 사이의 관계는 생명과 사랑의 사귐이며,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께서는 교회를 탄생시킨 교회의 주님으로서 세상 안에서의 교회의 사명을 성취할 수 있게 하는 역동적 능력이시다. 세계의 교회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은사와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다.

⑴ 세계교회의 지형변화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후인 2050년이 되면 전 세계 30억 명의 기독교인 가운데 50% 이상은 아프리카에, 그 다음 남미와 카리브 해에, 그 다음은 아시아에, 그리고 유럽에, 마지막으로 북미에 살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세계교회의 지형변화 속에서 그동안 에큐메니즘에 폭넓게 참여해 온 기성 교회들은 오순절 및 성령파 교회와 복음주의로 부터 영향을 받은 거대 교회들과 마주치고 있다. 이러한 세계교회의 지형변화는 교회 간의 협력과 일치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틀 그리고 접근방법을 요구하고 있다.

WCC는 그간 ‘WCC’와 ‘에큐메니컬 운동’이 동의어가 아니며, 에큐메니컬 운동에 의해 만들어진 기구는 영원한 것이 아니고, 따라서 지금까지 WCC 안에서 누려온 교회 간의 친교를 로마 가톨릭과 오순절 교회 그리고 복음주의 교회로 넓혀, 세계 에큐메니컬 운동을 “하나의 새롭고 보다 넓은 지구적 포럼”으로 나아갈 것을 제안한 바 있다. 또한 기존의 ‘교회 협의회(council of churches)’가 지나치게 회원교회에 의해 안수 받은 지도자들에 의해 이끌려가는 것을 반성하면서 학생 ․ 청년 ․ 여성 ․ 평신도 운동의 강화와 그들의 참여를 강조한 바 있다. 2013년 부산총회는 이와 같은 에큐메니컬 운동 새 판 짜기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지형은 이와 같은 세계교회 에큐메니컬 운동의 새로운 방향성을 가름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한국 교회의 상황은 매우 독특하다. 한국은 아시아의 국가이면서 인구의 4분의 1이 기독교인이고, 가장 높은 개신교 비율을 자랑하면서, 종교간 평화를 이루고 있고, 가톨릭과 복음주의자들과 오순절교회와 정교회 그리고 에큐메니컬이 협력하는 나라다. 그래서 “하나의 새롭고 더 넓은 지구적 포럼”을 향한, 즉 21세기 에큐메니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한 커다란 잠재력을 가진 나라로 평가될 수 있다. 이제 한국의 에큐메니컬과 에반젤리컬, 오순절과 정교회, 그리고 가능하다면 가톨릭이 어떻게 함께 WCC 총회를 계기로 서로 협력하여 세상 앞에 복음을 증거하고 함께 기독교적 봉사의 삶을 살 것인가가 바로 21세기 세계 에큐메니컬 운동의 미래이자 모형이다. 세계교회 지형변화의 축소판으로서의 한국교회는 세계교회 앞에 새로운 에큐메니컬 일치의 정신과 방법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⑵ 한국교회의 종교통합적 영성
한국교회는 선교 2세기를 맞이하면서 세계교회로부터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단지 한국교회의 외형적 성장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교회는 선교초기부터 민족의 개화와 독립운동, 교육과 의료 등을 통해 근대화에 이바지 했을 뿐만 아니라, 전도와 선교를 통해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민주화와 인권신장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기여했으며 한국민족의 종교성을 회복시켜 우리사회를 새롭게 형성하는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선교초기부터 지금까지 새벽기도와 부흥집회, 전도와 예배, 사회봉사와 참여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처음사랑을 잃지 않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신앙생활에서 개인의 부단한 영적 갱신과 공동체적이며 사회적인 성화라는 독특한 영성을 형성해냈다.

겉으로 보이는 한국교회의 모습은 다양하지만 한국교회의 저변을 관통하고 있는 영성은 오늘 여기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삶을 닮고 따르려는 ‘예수살기의 영성’이다. 이 영성은 길선주와 이용도의 부흥운동, 신석구와 주기철의 민족 신앙운동과 목회, 해방 후 한경직의 목회와 김재준의 민주화운동 그리고 한국의 전통종교를 기독교를 통해 통합하고 완성하려는 유영모와 함석헌 등에게서 구현된 영성이다. 이 영성은 겸손과 헌신의 영성이며 섬김과 자유의 영성이다. 이 영성은 한국의 전통종교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개혁하고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려는 종교 통합적 영성이기도 하다. 한국교회는 2013년 부산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에 이끌려 지금까지 이루어 온 자랑스러운 신앙경험을 전 세계 자매형제 그리스도인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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