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에큐메니즘은 '빛과 소금'이 되는 목회적 신호탄

평신도가 말하는 ‘교회일치운동’ 그리고 ‘선교’(1)

'선교'란 무엇인가? '선교란 이런 것이다'라는 식의 정답이 과연 존재할까? '장담'은 존재할지 모른다. 또 선교에 관한 많은 이론과 경험을 놓고 어느 것이 '맞다, 틀리다'라는 것을 따지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물론 이는 소위 ‘상식’과 ‘극단’, ‘정설’과 ‘이설’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분'이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다양한' 교회의 수만큼이나 많은 '선교'가 존재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선교는 중요한 이슈다. 지난 22일 서울교회(이종윤 목사)에서 열린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 100주년 기념 <2010 한국대회>는 WCC로 대표되는 에큐메니컬 그룹이 아닌, 로잔 그룹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복음주의 에큐메니즘의 입장에 선 대회로 스스로를 구별했다. 개신교 에큐메니즘의 역사는 '선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두 개의 큰 흐름으로 나뉘는 셈이다.

서로 '다르다'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문제는 '틀리다'고 하는 데서 생긴다. 둘 다 에큐메니즘을 표방하지만, 상대를 비난하거나 틀리다고 규정하면서 홀로 옳고 선하다는 점을 내세우는 쪽도, 무대응으로 일관하거나 입으로만 '존중한다 혹은 서로 다른 것이다'는 점을 강조하는 쪽도 '더 낫다'거나 '표준적이다'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럴 경우 토인비의 말마따나, '관용'을 표방했지만, 정작 관용을 베푼 당사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했고 그들에게 죽임을 당한 로마의 장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정책과 다를 바 없게 된다.

어느 한 쪽(한국의 경우 로잔 그룹의 복음주의-근본주의에 가까운)의 입장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에큐메니즘', 아니 이해를 돕기 위해 '교회일치운동'를 논하고 그것으로 자기 이해를 도모하며 변화를 추구해간다는 것은 낯설고 부질없는 일일지 모른다. 쉽게 말해 이런 것이다. "에큐메니즘이 뭔데?"

특별히 상당수의 한국 개신교회에서 에큐메니즘이라는 용어는, 실천은 둘째 치고, 교회일치운동으로 번역되어 활발히 통용되기보다는 'WCC의 노선'으로 동일시되어 무슨 신학적 용어처럼 통용되고, 간혹 평신도 교인들이 그게 뭐냐고 물어보면 대게 WCC는 '용공'으로 취급된다.

한국 '기독교'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개신교회의 목사들은 '근본주의적' '신학'으로 무장한 전문가 집단이 되어 교인들의 물음과 고민에 대해 '교리적 신학 용어'와 '믿어라'의 일방적 해법을 내놓는 경우가 많아 평신도 교인들에게 '에큐메니즘'은 더욱 더 먼 이야기가 되어 버린지 오래다. 그러나 이러한 하이어라키적 현상이야말로 교회일치와는 거리가 먼 현상이라는 지적은 꽤 의미심장하다.

24일 열렸던 감리교 에큐메니컬 정책협의회에서 창천교회 서호석 목사는 "WCC는 월드비전과 같은 NGO보다도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국제기구이며, WCC로부터 무언가를 배워보려고 해도 사실상 교회 현장과의 연대감을 느끼기가 힘들다"고 지적하며 교회일치운동에 대한 계몽적 보급마저 여의치 않음을 호소한 바 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책임 소재를 묻는 일은 차치하고, 목회자의 역할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교회의 현실을 인정해 목회자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더라도 교회일치운동의 인식 고취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2013년에 부산에서 열릴 WCC 제10차 총회를 한국교회가 유치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던 예장 통합조차도 대부분의 교단 소속 목회자들이 WCC를 반대하거나 보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전국 노회를 대상으로 WCC 신학세미나 개최에 나서며 총회를 중심으로 분투하고 있다.

가장 강한 반대 입장을 내세우고 있는 예장 합동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나마 사정이 나은 교단조차도 목회자들의 인식 고취부터 해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교회일치운동에 관심을 가진 소수의 목회자들이 발견할 수 있는 관련 교육 모델 혹은 모범적 평신도 모델은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에큐메니컬 운동의 본산이라 일컬어져 온 감리교조차도 그 내부에서는 에큐메니컬 운동에 헌신하는 목회자나 평신도 사역자들을 '특수선교 종사자' 정도로 이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정을 감안하면, 에큐메니컬 운동이 감리교나 기장 등 이른바 진보적 교단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도 무색할 정도다. 물론 그러한 사정과 인식 때문에 보수 일색인 장로교 등이 더욱 대립각을 세우는 것일 수 있지만.

그러나 '교회가 왜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로 나뉘어 있는가'는 물음을 품어 보지 않은 평신도 교인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곤란한 것이, 이 문제만큼은 신학 등의 힘을 빌어 보편적 설명을 해내는 데에 현재까지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결말은 대게 '교단의 입장'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이는 성경에 대한 '해석'을 지양하는 교단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신학도, 교리도 아닌 설명이 필요하며, 그렇다고 보편적 설명은 불가능한 이런 곤란한 문제에 대해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과연 무엇을 어떻게 평신도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전해야 할까? 세계교회의 최대 축제라는 제10차 WCC 총회는 2013년에 부산에서 열린다. WCC 총회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이 문제는 피해가기 힘든 과제임에 틀림없다. 종래에 해오던 것처럼 덮어놓거나 쉬쉬하거나 무턱대고 반대하는 식이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뛰어난 지성과 그로 인한 문제의식, 그리고 물음을 소유한 교인들이 이전에 비해 많아진 현실도 여기에 불을 붙이고 있다.

그렇지만 생각을 바꿔보면 솔깃한 문제일 수도 있다. 한국교회가 그동안 미뤄두었던 문제에 대한 답변을 '교회일치', 아니 일치가 아니라 '대화'라도 이뤄진다면 그러한 가시적 성과를 내놓는 가운데서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는 흥미로운 관심사일 수 있다.

또한 한국교회의 목회자들만큼 교인들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강한 목회자들이 없다고 하는데, '에큐메니즘'이 몸에 배인 교인들이 사회에서 얼마나 성숙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지 측량해보는 목회자들도 어느 정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웃종교인과 독선적인 마찰을 일으키고도 죄책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현대판 '십자군'이 되고, 같은 기독교인에게도 나와 교리 해석이나 신앙생활의 양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너무나 쉽게 '이단'의 잣대를 들이대는 교인들이 자신의 삶과 교회 안에서는 부와 귀, 명예를 누릴지언정 사회에서는 '빛과 소금'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지 못한다는 것쯤은 많은 목회자들이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에큐메니즘의 실천은 바로 그러한 고질적인 자가당착을 깨뜨릴 수 있는 목회적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여기서 하나의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늘 목회자인 내가 연구하고 공부해서 평신도 교인들을 이끌었지만, 사실 수준 높은 교인들이 알아서 척척 맞춰준다면 꿈에 그리던 ‘함께 하는’ 목회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성경에 대한 이해와 실천이 탁월한 교인을 보면 저절로 흐뭇해지는 것이 또한 목회자의 공통된 마음이 아니겠는가? 즉, 교인이라는 귀납적 실체로부터 목회자들이 영감을 받는 설정을 과감히 해보자는 것이다. 사실 한 번도 에큐메니즘을 실천해 본 적이 없는 목회자라면 이러한 설정 혹은 상상을 못 이기는 척 해보고 싶을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여기에 아주 그럴 듯한 사례가 있다. 27일 성공회 서울대성당 프란시스홀에서 열린 대한성공회 제2회 세계선교대회에서 만난 이춘의(베드로∙광명교회) 교우가 바로 그 '그럴 듯한 사례'이다. 이춘의 교우는 성공회 안에 있는 평신도 모임인 예수사랑선교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본지가 만난 이춘의 교우는, 성공회 특유의 에큐메니컬 정신이 어떻게 사제(목회자)의 말과 행동을 떠나 평신도 교인에게 전이되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아름다운 사례였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이춘의 회장의 인터뷰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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