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경동] 악을 선으로 이기라

2010년 6월 27일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창세기 50:15-21

요셉의 형제들은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 요셉이 자기들을 미워하여, 그들에게서 당한 온갖 억울함을 앙갚음하면 어찌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요셉에게 전갈을 보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남기신 유언이 있습니다. 아우님에게 전하라고 하시면서 `너의 형들이 너에게 몹쓸 일을 저질렀지만, 이제 이 아버지는 네가 형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여 주기를 바란다` 하셨습니다. 그러니 아우님은, 우리 아버지께서 섬기신 그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이 말을 전해 듣고서 울었다. 곧 이어서 요셉의 형들이 직접 와서, 요셉 앞에 엎드려서 말하였다. "우리는 아우님의 종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말하였다."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기라도 하겠습니까?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니 형님들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형님들을 모시고, 형님들의 자식들을 돌보겠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다. 아멘.

로마서 12:17-21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성경에도 기록하기를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였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그가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어라. 그렇게 하는 것은, 네가 그의 머리 위에다가 숯불을 쌓는 셈이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아멘.

누가복음서 6:39-42

예수께서 그들에게 또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자기의 스승과 같이 될 것이다. 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에게 `친구야, 내가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줄 테니 가만히 있어라` 하고 말할 수 있겠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리해야 그 때에 네가 똑똑히 보게 되어서,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 줄 수 있을 것이다. 아멘.


설교문

오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중대한 선언을 합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모세였지만 모세에게는 제한된 축복만 주셨습니다. 출애굽을 시킨 장본인이고 이스라엘 백성의 정신적 아버지였는데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십니다. “너에게 주어진 축복은 비스가 산에 올라가서 너희 백성들이 정착할 가나안 땅을 보여주는 것으로 축복을 끝내마.”

지도자인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결단을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총회를 소집하여 노래하는 형식으로 유언을 한 것이 신명기 32장에 나와 있습니다.

“나는 가야 한다. 하나님이 부르시겠다고 했다. 여러분에게 분부가 있는데 나를 정점으로 해서 우리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로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계속된다. 단 나 대신 여호수아를 하나님이 후계자로 택했으므로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가나안 땅 입성을 완수하기 바란다.”

“너희들이 지금 가나안 땅에 가서 점령하고 정착한다고 포도주를 담가서 가지고 갔는데 포도주 병을 보니 독사의 독을 집어넣어서 포도주를 마시는 사람이 전부 죽게 생겼다. 얼마나 고통당하고 분노가 치솟았으면 포도주를 뱀의 독으로 담았느냐.” 상징적인 표현이긴 하겠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가나안 땅 점령하지 못한다고 모세가 지적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시사항이 있다. 원수는 나 하나님이 갚는다. 원수는 내가 갚을 테니 너희들은 원수 갚는 것 대신 오히려 가나안 땅을 점령한 다음에 할 새로운 국가 건설, 민족 건설을 생각해라. 좋은 생각을 하고 원수 갚는 일은 나 하나님이 맡겠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렇게 결단해야 한다. 오직 나만 하나님이고 다른 신은 없다. 나만 섬겨라.”

하나님의 준엄한 이야기를 모세가 전달하는 장면이 애처롭습니다. 은퇴하면서 하나님나라 품에 안기는 마지막 순간을 두고 하늘 뜻을 전합니다. “뱀독을 담은 포도주로는 점령할 수가 없다. 사람만 죽는다. 내가 내 방식으로 원수를 갚는다. 이스라엘 재건을 계획해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고민에 처하는데 분노할 때 제일 쉬운 마음은 분노를 갚고 싶고 보복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으면 마음은 처음에는 편할 수 있습니다. 쉽게 결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악을 악으로 갚으면 결과는 아픕니다. 그래서 우려하는 대로 악순환, 악의 고리가 자꾸 돌아갑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성경의 말씀은, 모든 예언자들의 말씀은, 그와는 반대로 악을 선으로 갚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악을 이기는 방식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악에게 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악은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이기는 방법이 있습니다. 악은 하나님께 맡기고 여러분은 악 때문에 고생하는 데서 벗어나서 선을 세우는 일은 여러분이 하셔야 합니다. 악은 내가 맡겠습니다.

악은 악으로 갚고 눈은 눈으로 갚고 이는 이로 갚는 것이 결정하기 편하지만 결과는 너무나도 아픕니다. 악을 이기기는 이겨야겠는데 선으로 악을 이기라니 뜻은 알겠는데, 그것이 사실인 줄 알고 옳은 줄도 알겠는데 결단하기는 참 힘듭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걸 가리켜서 ‘불편한 진실’이라고 말을 합니다.

신앙 자체는 다 진실이지만 참 편하지 않은 진실입니다. 너무 역설이 많습니다. 죽이지 말라고 하고, 미워하지 말라고 하고, 속 시원하게 한 대 쳤으면 좋겠는데 사랑하라고 하고, 그런데 성경말씀의 진수는 사람이 심정적으로 불편하더라도 결과는 승리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칭찬을 많이 받았고 사랑을 독차지한 것 때문에 형들이 요셉을 이집트 상인들한테 팔았습니다. 그러고서는 아버지한테 와서 요셉이 사자에 물려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형제 열둘이 살다가 가장 사랑받는 형제 한 사람이 자기 형제들한테 팔림을 당하면 그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은 팔림을 당해서 이집트 상인 손에 갔다가 나중에는 이집트 나라의 좌상에까지 오릅니다.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요셉의 마음속에 싹튼 것은 형들에게 복수해야지, 하는 심정이 컸을 겁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들이 요셉에게 와서 아버지가 우리를 용서하라고 유언하고 죽었다며 용서를 구하며 요셉의 종이 되는 조건으로 용서를 받고 순종하겠다고 합니다.

그 때 요셉이 자기 형들을 끌어안고 내가 형들을 용서하는 정도가 아니고 형들을 내가 섬기겠고 먹을 것도 주고 집안을 잘 보살펴주겠다고 합니다. 형들이 용서를 구하는 장면과 요셉이 용서하면서 형들을 끌어안고 내가 다시 살겠습니다, 라고 하는 장면, 악을 회개하는 형들, 악을 선으로 갚는 요셉, 이 둘 사이의 과정에 한 마디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요셉은 울었다.”

사람이 웃으면서 용서할 수 없지 않습니까? 분노를 발하고 싶은데 참으면서 웃음을 줄 때 요셉은 울었다. 아마 ‘요셉 속에 있는 하나님은 우셨다.’ 이 말이 맞을 겁니다. ‘하나님이 우셨다.’ 왜 우셨느냐 하면 악을 후에 선으로 갚기 위해서 분노를 짓누르고 분노를 선으로 다시 분출시킬 때 인간의 감정은 눈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눈물은 개인의 눈물일 수도 있고 우리 공동체 눈물일 수도 있고 모든 사람의 눈물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악을 멸하는 것인데 멸하는 방식은 똑같은 악이 아니라 전혀 반대되는 선입니다. 그래야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악은 하나님이 보살피는 게 아닙니다. 악을 무찌르는 방식은 악이 아니라 선입니다.

악순환이 우리를 괴롭힌다면 결론은 선순환이 우리에게 축복입니다. 악을 이겨야 합니다. 그러나 선으로밖에 이길 수 없습니다. 선은 악을 녹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선이라면 분노와 미움은 사랑으로 녹일 수 있고 분노와 시기, 질투를 같이 발해서 녹일 수 없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예수께서 오셔서 이 세상의 모든 죄악을 악으로 보시고 멸하고 싶었는데 하나님은 예수를 죽게 하는 걸로 악의 대가를 갚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라 하나님은 죽음을 통해서 죄를 갚게 하시고 악을 멸하셔서 악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부활로 이기게 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하는데 부활이 바로 선입니다.

부활은 죽음을 이깁니다. 악은 죽음입니다. 죄도 죽음입니다. 죄도 악이고 모든 악과 죽음은 우리가 이겨야겠는데 이기는 방법은 하나님이 이기게 할 수 있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부활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성경말씀을 읽으실 때 십자가에 죽어간 예수의 눈으로 읽으시면 이 땅은 악과 악이 싸우는 무한대의 투쟁의 역사로 볼 수 있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의 눈으로 보면 괴롭지만 분통하지만 그러나 부활의 생명으로 모든 악을 이길 수 있다는 확증을 예수에게서 보았으므로, 그 믿음 가지고 세상을 보면 악을 선으로 갚을 수 있을 때 설령 눈물을 흘릴지언정 그 눈물 속에는 승리의 힘이 담겨 있을 겁니다.

배고파서 울지만, 힘이 없어서 울지만, 억울하게 당해서 울지만 나는 승리할 수 있다. 반드시 승리가 약속되어 있다. 새로운 생명을 주신다는 약속을 받을 때는 울음 속에서 환한 웃음을 봅니다.

어제 축구를 보고 분통이 나긴 했지만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원정 경기에서 처음으로 16강까지 간 것이 감사합니다. 이 다음에 잘 할게요.’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북쪽의 경기를 보고 너무 형편없이 지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평화재단이라는 불교 계통 연구소가 하나 있습니다. 거기서 북쪽의 이야기를 이렇게 전해왔습니다. 지난 5월 말에 자강도에 있는 희산에서 평양으로 오는 열차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유는 모르겠는데 전기로 가는 열차가 산 중턱에서 멈춰 섰습니다.

연락할 길이 없어서 열차에서 당 본부까지 가는데 나흘이 걸려서야 도착했고, 열차가 산 속에 멈춰있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연락을 받고 당 본부에서 사람들을 구하러 오는데 닷새가 걸렸답니다. 9일 만에 와보니 여행할 때 가져간 거 다 먹고 결국 여덟 명이나 굶어죽었습니다. 구조하는데 9일이 걸렸습니다.

함경북도 청진시에서는 1/3인구가 하루에 한 끼나 두 끼밖에 못 먹는데 그것도 옥수수 가루에 산나물 섞은 죽으로 연명을 합니다. 한 끼나 두 끼, 하루 평균 열다섯 명에서 열일곱 명이 굶어 죽어갑니다. 이 사실을 알고 축구 경기하는 걸 보았을 때, ‘질 수밖에 없구나. 마음과 몸이 얼마나 피곤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할 수 있을까?

저는 어제 경기를 보고 상대적이기는 합니다만 다음번에 잘 합시다.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 에벤에셀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것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기도 중에 하나입니다. 선수들을 격려하고 우리 마음도 격려합시다.

사람은 이기고 싶어합니다.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이기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기는 과정 중에 우리를 지게 만들고 짓밟는 악이 있습니다. 악을 어떻게 없앨 건지 어떻게 좌절과 분노를 없앨 건지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새로운 세계를 새로운 내일을 건설할 수 있을지 모두의 고민입니다.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선을 세워라. 같이 세우자. 달란트도 주었지 않느냐. 아름다운 나라도 건설해라. 가정도 새롭게 건설해라. 단 악을 이겨야 하는데 악은 내가 이기마. 피 묻히는 손을 내가 원치 않는다. 내가 악을 이기마.”

그래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말씀을 전부 읽을 때 “악은 존재한다. 악은 하나님이 멸하신다. 너희는 선을 세우는 일에 열심히 해라.” 이 말씀을 가지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다 읽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의 입을 통해서 사도들의 입을 통해서 하신 모든 말씀들이 너무 역설적인데 이제 그 말의 뜻을 이해할 만합니다.

“원수 갚는 일은 내가 먼저 할 테니 선을 세울 준비를 해라. 불편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다. 선은 이긴다.” 우리나라에 이런 축복의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6.25, 60년 기념으로 어려운 나라 돕기로 했습니다만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나라, 백성들, 우리가 눈물로 세운 이 나라에 대한 감격 때문에 당신들을 도우니 도움을 받아주십시오, 라고 떳떳하게 말하고 싶은 겁니다.

말은 한번 하면 그냥 뱉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동물과 인간의 차이는 동물은 짖어버리면 그걸로 끝이지만 인간은 말을 할 때 없어지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한테 돌아오는 말을 합니다. 생각해보니까 칭찬도 혼내는 것도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기뻐서 말을 하는 것이지 뱉어버리는 말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합니다.

음식 먹고 쓰레기 버리면 버리는 걸로 끝납니까? 썩든지 재가 되든지 다시 우리 삶에 돌아옵니다. 공기가 오염되어 돌아오든 또는 연료가 되어서 돌아옵니다. 세수할 때 상수도 쓰고 하수도로 버리면 그 물이 영원히 없어집니까? 땅 속에 들어가든 바다 속에 들어가서 다시 재생되어 우리한테 그 물이 옵니다.

상수도 물을 쓰고 버려도 하수도로 다시 돌아오고, 쓰레기를 버려도 다시 우리한테 어떻게든 돌아오는데 우리가 하는 지성적인 영적인 모든 언어가 뱉어버리면 그냥 없어지면 좋겠는데 우리한테 다시 돌아옵니다.

오늘 이 사실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뱉어버리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하나님이 기르시는 우리 인간, 가정, 모든 사회 속에 던지시는 말은 반드시 하나님에게 돌아온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올 때는 영광스럽게, 기분 좋게 돌아와야지 하면서, 인간에게 말을 뱉었는데 인간이 말을 왜곡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면 그 때 하나님은 분노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이 “나 영광 받게 하고, 내 말이 결실을 내게 하라.”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영광돌리자고 하는데 그 말은 우리가 편안하고 행복하고 진실로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게 살아야 하나님이 영광 받으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십니다.

악은 하나님이 갚으실 테니 선을 세울 준비를 해라. 모든 악을 멸하신 다음에 선이 세워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눈물을 흘리실 때 선이 세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울게 하시고, 하나님의 감정을 건드려 하나님의 가슴을 좀 찢읍시다. 말을 그냥 뱉지 마시고 하나님이 우시도록 해봅시다. 그게 우리의 기도 아닙니까? 그게 진실한 간구 아닙니까? 단순히 보고하듯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보고를 어떻게 받습니까? 하나님을 울게, 하나님의 눈에서 눈물이 나게, 그렇게 하나님께 간구합시다.

모두가 그런 것을 영적인 삶, 신앙인 삶,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가면 이런 영적인 삶이 있습니까? 최근 미국의 보고서 하나 인용하겠습니다. 2009년도 통계인데 20대 젊은이들을 놓고 미국의 종교기관의 ‘라이프 웨이’라는 잡지사에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내용은 “미국의 20대 젊은이 여러분, 영적인 욕구가 있고 영적인 존재로 살고 싶으시죠? 그런데 꼭 교회를 가면 그게 있습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모든 인간은 영적이기를 원하고 영성(Spirituality)이 필요한데 영성을 갈구하려면 꼭 종교인이 되어야 하냐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이 일치하느냐고 했을 때, 그들은 영적인 것을 원하지만 꼭 그것이 종교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대답했고, 응답자가 72라고 되어 있습니다. 나는 영적으로 영성을 갖고 하나님 믿기를 원합니다. 그렇다고 꼭 종교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나 종교단체에 가 보니까 영적인 것을 충족 못하겠습니다. Spiritual But Not Religious를 줄여서 SBNR, 이것이 요즘 유명한 종교계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나는 영적인 새 삶을 원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내가 교인일 필요는 없고 교회 나갈 필요가 없습니다.

일본에도 무교회 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선포하는 교회나 공동체가가 너무 타락하면 내가 거기서 하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못했길래 교회에 오면, 종교단체에 오면 하나님의 영을 찾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일까요? 우리 젊은이들에게 뭐라고 답변하시겠습니까? 우리도 이제는 하나님을 선포하는 우리들이 먼저 회개하고 정말 이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영의 중심으로 있게 하십시다.

또 하나 있습니다. 공동체, 함께 예배드리는 것, 이 모든 것을 파기하고 나 홀로 영적으로 하나님을 찾겠다고 하다 보니까 너무 이기주의가 팽배하게 되고 나 홀로 독학하는 신앙이 되고 하나님을 찾지만 나 혼자 명상만 하면 되고 모든 공동의 활동은, 이웃사랑은, 공동체성은 없어지고 이 두 가지 사실 때문에 미국 교회가 고민입니다. 또한 오늘날 한국기독교의 고민입니다.

악을 선으로 이기라는 예수님 말씀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영성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같이 모여 사는 교회라고 하는, 신도라고 하는, 성가대도 있고 주일학교도 있고 여신도도 있고 남신도도 있고 어떻게 모이든지 간에 모이는 공동체 전체가 선을 만드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 홀로 살지 않습니다. 민족도 삽니다. 나라가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지 같이 결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너무 개인주의적으로 무기력하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라의 운명이나 사회의 운명이나 가정의 운명이 여과가 없이 나 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 홀로 영적인 삶을 사는 것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영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도 구하지만 모든 사람을 구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여러분, 소경되지 마십시오. 소경이란 남의 잘못은 보는데 자기 잘못을 못 보는 걸 예수님은 소경이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보고 우리가 함께 이 나라를 끌어가고 함께 이 교회도 끌어가고 함께 하나님 찬양하십시다. 모두가 영적 교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함께 영적 공동체 일원이 되십시다.

하나님이 우리한테 약속하신 것, “원수는 내가 갚고 선은 함께 이루어라.” 이 선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또한 가정마다 이루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도 선을 세웁시다. 그래서 떳떳하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갑시다.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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