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나는 무신론자로서 그는 믿는자로서 역할을 다했다”

제2회 여해포럼 열려…이어령 박사 강연

세상을 향해 교회의 문을 활짝 열어 종교·사회·경제·정치 등 각 분야에 있어 대화 문화의 초석을 놓은 여해 강원용 목사. 올해는 그가 부름을 받은지 4주기(8월 14일)가 되는 해다.

11일 청년경동, 청년회, 여해기념사업위원회가 공동으로 강 목사의 정신과 사상을 기리고자 경동교회(당회장 박종화 목사) 여해문화공간에서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여해포럼을 개최했다.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낸 이어령 박사 ⓒ베리타스 DB

연사는 강 목사와 50년 가깝게 대화 운동에 헌신한 이어령 박사(78). 그는 여해기념사업위원회 이사이기도 하다. 3년전까지만 해도 무신론자였으니 강 목사와 함께 활동했던 기간 이 박사는 유일하게 무신론자로서 대화 모임에 참여했다.

자신이 세례 받은 사실을 알지 못하고 떠난 강 목사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고 운을 뗀 이어령 박사는 지난 50년의 대화 운동을 먼저 회고했다. 이 박사는 "나는 (대화 모임에서)무신론자로서의 역할을 다했고, 강 목사님은 믿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며 그 역할을 장구에 빗대어 자세히 설명했다.

북은 좌,우가 똑같은 크기와 재질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양쪽의 소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장구는 좌,우의 크기가 조금씩 다르고, 재질도 달라 내는 소리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재밌는 것은 좌, 우를 서로 쳤을 때 이 소리들이 울림통(장구의 몸통)에서 조화가 되어 아름다운 소리로 승화된다는 것.

이 박사는 강 목사와 자신의 관계가 이와 같았다고 말했다. 이런 독특한 관계를 서로 알아서였을까? 강 목사는 이 박사에게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이 박사는 크리스천이 아니면서도 대화 모임에 열심으로 일했다. 이 박사는 "아마 내가 세례 받은 것을 아시면 (강 목사님이)오히려 혼낼지도 모르겠다"고 말해 교인들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그만큼 강 목사 그리고 이 박사는 서로의 역할을 존중했다.

문화평론가, 시인, 언론인 등을 거친 지성의 대가 이 박사. 그는 얼마 전 『지성에서 영성으로』란 책을 내 그가 지금 지성과 영성 사이, 즉 그 도상에 있음을 알렸다. 과학과 합리로 무장한 지성인인 그가 어떻게 영성의 길을 택한 것일까? 

본론에 들어간 이 박사는 이 물음에 답을 하기 시작했다. 이 박사는 지성이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을 ‘죽음’에서 찾았다. 그는 "아무리 뛰어난 지성인도 누구나 한번쯤은 겪는 이 죽음의 문제에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고 말했다. 우주의 운행과 그 무덤을 찾아내며 우주의 질서를 단 하나의 공식에 가둔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 마저 "내가 좋아하는 모짜르트 음악을 더이상 못듣게 된다"는 궁색한 답변을 늘어 놓게 만든 이‘죽음’이 자신을 영성의 길로 인도했다고 이 박사는 말했다.

자신이 알고, 철썩 같이 믿었던 지식이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 이 박사는 그 지성의 끝자락에서 ‘영성’이란 새로운 문을 두드렸고, 3년차 세례 교인으로서 ‘교회’라는 새로운 소통의 공간에서 하나님과 계속적으로 교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성의 끝을 경험한 이 박사가 하나님과 소통하는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이 박사의 답은 오랫 동안 믿어온 이들을 부끄럽게 할 정도로 깊고, 진지했다.

"대다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어떤 것을 구하는 기도를 합니다. 그것이 건강이 됐든, 먹을 것이 됐든 말이죠. 저는 그런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혹 하나님께 나의 이것을 드리겠다 저것을 드리겠다 하는 사람은 없을까? 하나님이 외롭다는 생각이 들어 하나님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겠습니까 하고 기도하곤 합니다." 이 박사는 "하나님의 권능은 정의에서 표출되지 않는다. 오히려 (무한적인)사랑 안에서 표출된다"고 말했다. 이어 "하나님이 의라면 수백, 수천으로도 쪼개질 수 있을 것이다. 저마다 옳다고 생각하는 의가 다르기 때문"이라며 "모든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단 하나의 하나님이 있다. 그 하나님은 바로 사랑의 하나님이다. 사랑은 결코 둘이 될 수 없다. 너에게나 나에게나 사랑의 하나님은 한 분이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대화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이어령 박사는 산업화, 민주화를 넘어 새로운 시대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 고군분투 하고 있음을 알렸다. 그 원천적인 가치는 ‘죽음’처럼 영성의 문제인 ‘생명’이었다. 그는 "돈이 증식되는 금융 자본주의가 아니라 생명이 증식이 되는, 생명이 본(本)이 되는 생명 자본주의를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며 "남은 생애 이 일을 위해 헌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업화는 경제를, 민주화는 정치·평등의 원리를 주장하는데 이를 넘어 ‘생명’이란 고귀한 가치로 무장된 ‘생명 자본주의’로 경제·정치·평등의 ‘중간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생명이 최우선시 되는 새 세계를 열자는 취지다. 이는 이날 이 박사의 강연 주제(Between & Beyond: 중간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와 일맥 상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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