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평화 주간을 맞이하여
일본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담화
일본 가톨릭교회는 매년 8월 6일부터 15일까지를 평화 주간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 전 교황님께서 일본을 방문하셨을 때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평화를 위한 의지를 표명하셨던 것을 계기로 이 평화 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히로시마 원폭 기념일에 시작하여 나가사키의 원폭 기념일을 지나 종전 기념일까지의 10일간은 일본 가톨릭 신자에게 있어서 특별히 평화에 대해서 배우고,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며, 행동하는 기간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히로시마에서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입니다.”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도 우리들의 가슴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세계에서도 일본에서도 평화를 추구하는 목소리가 출렁이는 물결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는 핵 폐기를 위한 목소리가, 일본 국내에서는 오키나와에서 “더 이상 기지는 필요 없다.”고 하는 목소리입니다.
지난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프라하 선언을 통해서 핵무기가 없는 세계를 실현하자고 주장하였습니다.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사죄는 없었지만,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원자폭탄을 투하시킨 미국의 “도의적 책임”이 언급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핵 폐기를 향해 나아가자고 하는 이상만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과거의 잘못에 눈을 돌림으로써 얻어진 결의였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 5월 나가사키 대교구장 다카미 미쓰아키 대주교는 원폭으로 폐허가 되었던 우라카미에서 주웠던 “피폭 성모상”을 가지고 미국 시민과 국제연합 관계자들에게 핵 폐기를 촉구하신 바 있습니다. 두려워해야 할 원폭의 증언자로서 “피폭 성모상”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원폭 피해자와 모든 전쟁 피해자의 절규를 불타 녹아내린 형상 안에 고스란히 담아 드러내고 있으며,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의 소중함을 지속적으로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먼저 이러한 피해자들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일본도 자국이 행했던 일을 되돌아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올해 8월 22일은 일본이 한국을 병합해서 조선반도를 식민지로 삼았던 “한일합병” 조약체결 1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중대한 시기에, 우리 가톨릭교회의 책임을 포함하여, 일본의 식민지정책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는지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본 주교단도 “전후 60년 평화 메시지”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습니다. “우리들은 과거의 식민지 지배와 무력침략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반성하며, 그에 대한 역사인식의 공유를 요청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두 번 다시 동일한 비극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하는 맹세인 동시에, 미래에 대해서도 책임지는 일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용기를 갖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청하는 일은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참된 인간의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는 일입니다. 우리들이 이러한 자세를 가질 때 비로소 그리스도께서는 “적의라고 하는 장애의 벽을 헐어버리고” 참된 화해의 길로 우리들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올해도 평화 주간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새로운 결의로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평화를 위해서 행동해 나가도록 합시다.
2010년 평화 주간에
일본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이케나가 준 대주교
(오사카 대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