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대표적인 여성 가톨릭 사회운동가, 도로시 데이(Dorothy Day, 1897~1980)의 자서전 <고백>(원제 The Long Loneliness)이 출간 60여 년만에 한국에 번역출간됐다.
가톨릭교회에 정식으로 입교하기 전 도로시 데이는 사회변혁에의 의지로 가득찬 기자였다. 뉴욕의 유일한 사회주의 일간지인 「콜」에 취직해 노조 지도자들과 혁명가들의 목소리를 실어 내보냈고, 민중폭동과 빈곤층 사람들의 참상을 보도했다. 반전평화주의 노선을 견지하던 잡지사「대중」에서도 일했다.
열렬한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다. 여성참정권론자들을 옹호하기 위한 시위대에 합류했다는 이유로 투옥되기를 마다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세상을 바꾸었을지는 몰라도, 세상이 주는 절망감을 쉬이 이겨내기는 힘들었다. 시위대에 참가하다가 투옥되었을 때 시위대의 요구가 관철되거나 석방될 때까지 단식투쟁하기로 했지만, 일주일이 채 못지나 모든 소망을 잃고 만다. “그 긴 하루를 감방에 누워서 굶주림으로 인한 구역질과 공복감을 느낀다는 것, 처음에는 정신이 멍하다가 나중에는 미친 듯이 무슨 생각에 사로잡히는 그 상태를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떠한 대의도 의식할 수 없었다. 내가 급진주의자라는 사실과 정부에 항거하고 비폭력 혁명을 수행한다는 일체의 자각을 상실했다.”
절망 속에 성경을 읽으며 위로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석방되자마자 그 모든 신앙에의 의지를 헌신짝 버리듯 내팽겨치고 다시 의기양양한 사회운동가로 돌아간 그녀는, 훗날 자신의 모순적인 모습을 부끄럽게 회고한다.
그녀가 오늘날 ‘위대한 여성 가톨릭 사회운동가’라는 타이틀과 함께 성인으로까지 추앙될 수 있었던 업적은 이후의 것이었다.
1927년 무신론자였던 남편과 이별하고 가톨릭교회에 정식으로 입교한 데이는, 가톨릭 신앙과 급진적 사회운동의 가치를 결합시키기 시작했다. 자신의 재능이 동료 노동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눈물로 기도했고, 그 기도의 응답이었던지 그녀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영성실천가 피터 모린을 운명적으로 만나 ‘가톨릭 노동자 운동’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모린은 자발적 가난의 영성과 신앙심을 데이에게 가르쳤고 프랑스의 인격주의철학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이는 모든 사람이 공통된 인간성을 보유하며 각 개인은 궁핍한 이웃을 돕는 책임을 이행함으로써 원래의 인간 됨됨이를 구현한다는 사상이었다.
대공황의 정점이었던 1933년 5월, 데이는 대공황의 진원지 뉴욕 한복판에서 「가톨릭 노동자」 신문 창간호를 선보인다. 이 신문은 착취당하는 노동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했으며, 가톨릭교인들의 잠자던 사회의식을 깨워나갔다.
글뿐만이 아니었다. 굶주린 자들을 먹이는 ‘환대의 집’의 집이 데이의 아파트를 필두로 수십 군데에 생겨났고 가톨릭 노동자의 집과 농장들이 전국적으로 조직되었다. 노동자 집회와 시위의 현장을 취재할 뿐만 아니라 함께 참여했고 근로조건이 열악한 회사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책은 동역자 모린의 죽음과 새로운 공동체 거점을 구하기 위해 간절히 기도한 이야기로 끝난다. 이 즈음 가톨릭 노동자 운동은 「가톨릭 노동자」 신문이 10년 전 19만부에서 1만부로 떨어지는 등 침체된 상황이었으나, 오늘날 데이의 흔적은 전세계 140여 나라에 흩어져 있는 가톨릭 노동자 공동체들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번 책에서 데이는 자기 삶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해놓았다. 어릴 적 가정환경과, 급진적 사회정치사상에 몰입하게 된 배경, 가톨릭 신앙으로 회심하게 된 배경, 농부철학자요 영성가였던 피터 모린과 함께 가톨릭 노동자 운동을 시작하고 전개한 과정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