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북 정주에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는 아주 똑똑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집안이 가난해서 머슴살이를 했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는 매일같이 주인의 요강을 깨끗이 닦아놓곤 했습니다.그러자 모든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이 머슴의 자세를 보고 주인은 이 청년이 머슴살이를 하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해 학자금을 대주며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켰습니다.
마침내 그 청년은 미션계인 숭실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오산학교 선생이 되었습니다. 이 청년이 바로 민족주의자요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고당 조만식 선생입니다.
그는 항상 제자들이 인생의 성공 비결을 물을 때마다,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거든 요강을 닦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일러주었다고 합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이 사재를 털어 오산학교를 세웠다는 소식을 들은 고당 조만식 선생이 오산학교를 찾아와 교사가 되기를 자청했습니다.
그러자 남강이 고당을 반기며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잘 오셨소! 이제부터 고당이 이 학교를 맡아 주시오.” “고맙습니다. 힘껏 일하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조건이요?” “다름이 아니라 절대로 월급을 받지 않겠다는 조건입니다.”
고당은 남강이 사재를 털어 세운 학교에 월급을 받고 취직하러온 것이 아니라 나라의 인재를 육성하는 일에 헌신하겠다는 일념으로 먼 길을 달려왔던 것입니다.
민족의 인재을 양성하기 위해서 자신의 이익을 돌아보지 아니한 고당 조만식 선생은 우리 민족의 참된 목자였습니다.
8.15 광복을 맞이한 후 북쪽이 공산당이 지배하는 천지가 되자 거의 많은 애국지사들이 서울로 내려왔는데, 조만식 선생만이 남았습니다.
고당의 이러한 인격을 아는 이승만은 김구와 조만식 그리고 자신이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는 편지를 써 젊은이 편으로 평양의 고당에게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편지를 받자 고당은 말했습니다. “지금 북한의 민중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나 혼자만 가느냐? 내가 이 평양에 머물러 있어야 공산당이 이 민중을 제 마음대로 못하지 하지 않겠느냐? 세간에는 면목이라는 것이 있지 않느냐? 이북 동포를 버려 두고 나 혼자 월남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무래도 이 민중을 버려두고 떠날 수 없는 노릇이로다. 내가 떠나서는 안 된다. 나는 여기서 희생당해도 괜찮다. 자네들은 어서 속히 내려가게. 나와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은 남으로 내려 보내도록 하겠네.”
조만식 선생은 북한 민중을 위해서라면 자신은 희생되어도 좋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참으로 성스러운 결단이요 순교자다운 결단이었습니다.
그는 민족의 수호 신자였고 안식처였습니다. 그는 민족을 위한 십자가를 지고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위대한 목자가 우리의 역사에 있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위대한 목자가 있었음에도 오늘날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탐하려는 소리로 온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이런 현상은 정치계 뿐만 아니라 교육계 심지어 종교계에서도 보여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한 목자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선한 목자가 누구인가를 알고 말씀의 깊은 은혜를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참으로 선한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팔레스타인의 목자는 양에 대해서 철두철미했습니다. 만일 양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것이 자신의 과실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댈 수 있어야 했습니다.
아모스서는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내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암3:12).
율법에는 “만일 찢겼으면 그것을 가져다가 증언할 것이요 그 찢긴 것에 대하여 배상하지 아니할지니라”(출22:13)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목자는 양의 죽음이 불가항력이었다는 것을 증거할 양의 시체 조각을 내 놓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아버지의 양을 지키기 위해 곰이나 사자와 격투를 한 경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삼상17:34-35).
이렇게 다윗과 같이 목자가 자신의 양 떼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목자는 어떤 때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거는 것 이상의 일을 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일도 많았습니다. 양을 도둑질하러 오는 강도와 도둑 때문에 그만 도끼에 맞아 양 품에서 죽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참된 목자는 위험을 당해도 결코 주저 하지 않습니다. 또한 목숨을 버리는 일도 주저 하지 않습니다. 이런 목자는 세상에 거의 없습니다.
오래전 어떤 미국 선교사가 중국에 와서 전도하는데, 때마침 이름 모를 전염병이 유행하여 수많은 중국인들이 희생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선교사는 병균을 유리병 속에 담아서, 면역체를 만들기 위해서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상륙하려 할 때에, 검역소 직원들이 방역조치를 위해서 철저하게 승객들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이 선교사는 병균을 자신의 입속에 털어 넣고 유리병은 바닥에 버렸습니다.
조금 뒤에 그의 온몸에 병균이 퍼지면서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급히 병원으로 달려가서 의사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 몸에는 지금 중국에서 번지고 있는 전염병이 감염되었으니 이 병균을 뽑아서 면역체를 만들어서 중국에 보내어 많은 사람을 살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선교사의 모습이 바로 선한 목자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라도 중국의 양떼들을 사랑하는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정신을 볼 수 있습니다.
참된 목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10:11)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모든 영광을 가지고 사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내려 오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예수께서는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신 참 목자이십니다. 이러한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매일, 매시간, 매순간 감동을 받습니다.
2. 우리는 선한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유월절 어린양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애굽에서 구출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애굽왕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라 말했음에도 듣는 것 같다가도 듣지 않고, 약속을 했다가도 어기고 해서 재앙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는데, 마지막 재앙은 애굽 온 땅의 사람이든 짐승이든 처음 난 것은 다 죽인다는 무서운 재앙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린 양을 잡아 고기는 먹고 피는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12:13)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양을 잡아 그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습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 그 집에서 피를 보면 그 문을 넘으시고 피가 없는 집은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은 다 쳐서 죽였습니다.
그러나 문설주와 인방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정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사람보다 선해서, 착한 일을 많이 해서 무서운 죽음을 면한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양의 피를 증거로 베푸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유월절 양의 피는 예수의 피를 상징합니다. 오늘날의 우리들이 다른 사람보다 더 도덕적이고 고상해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양인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희생당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믿는 우리는 목자이신 예수를 닮아야 합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의 희생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바로 조만식 선생의 모습이고 장기려 박사의 모습입니다. 장기려 박사는 북한에 부인을 놓고 내려와 평생을 부인을 기다리며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가 세운 부산 복음 병원은 가난한 환자를 치료해 주기 위한 병원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보배피로 구원을 받았으니 그분의 거룩함을 닮아 이웃에게 보탬이 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우리도 이 민족의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세계 곳곳에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을 구원해야 할 것입니다.
3. 거짓 목자를 경계해야 합니다.
거짓 목자는 소명이 아니라 돈을 버는 수단으로 일을 합니다. 그들은 품삯 때문에 일을 합니다. 목자의 직업을 그는 오직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내는 것을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고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마10:16).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흉악한 이리가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행20:29).
만일 이리가 습격해 오면 삯군은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도망갑니다.
독일이 2차 대전으로 인해 분단되어 동서독으로 나뉘게 되었을 때 많은 목사들이 공산 동독을 버리고 자유 서독으로 넘어 왔습니다. 그 때 현재 통일 독일의 수상인 메르켈 총리의 아버지는 목사였는데 그는 동독의 라이프치히로 옮겼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선택입니다. 거짓 목사가 많을 때 그는 참 목자가 되어 공산 동독을 선택했습니다.
메르켈 소녀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선한 목자’의 모습을 보고 자라나 대통일 독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선한 목자와 거짓 목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양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만을 보고 일하는 목자는 금전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선한 목자이시기 때문에 양을 깊이 사랑하고 양의 안전을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면서 양을 보호하기 위해서 희생하셨습니다.
장기려 박사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처럼 진정으로 자신을 희생해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장기려 박사가 외출을 위해 병원을 나서는데 나이 많은 거지 하나가 그의 옷을 잡았습니다.
장 박사는 여기저기 옷을 뒤졌지만 그의 호주머니에는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갖고 있는 돈이 전혀 없다는 장 박사의 말에 거지 노인은 몹시 실망해 잡고 있던 옷자락을 놓았습니다.
돌아서서 몇 걸음을 옮기던 장 박사는 갑자기 뒤돌아서서 거지 노인을 불러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양복 주머니에서 월급으로 받은 수표를 꺼내었습니다. 장 박사가 수표를 건네주자 거지 노인의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이 종이 나부랭이가 돈이란 말이오?” 화가 나 돌아서려는 거지 노인을 장 박사가 붙잡았습니다. “이것은 수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은행에 가면 돈으로 바꿔줄 겁니다.”
며칠 후, 장 박사가 운영하는 병원으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여기는 은행입니다. 혹시 수표를 잃어버리신 일이 없으신지요?” “아닙니다. 그런 일 없습니다.” “웬 거지 노인이 박사님 사인이 된 수표를 가지고 왔는데요?” “아! 그것 말이군.” 장 박사는 그제서야 며칠 전 거지에게 준 수표가 생각났습니다. “그 수표는 내가 준 것이니 그리 알고 돈을 지불해 주시오.” 그러자 은행원은 “박사님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이런 수표까지 거지에게 주시다니요…” 은행원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전화를 끊었습니다.
장 박사가 거지에게 준 수표 한 장, 그 수표가 얼마짜리인지는 수표를 준 장 박사와 그것을 받은 거지 노인, 돈을 지불한 은행원, 그리고 하나님만이 아는 일입니다.
저는 목회를 오랫동안 해 왔습니다.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 했으나 선한 목자는 되기가 너무 어렵고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되어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바라고 무릎을 꿇습니다.
어떻게 하면 조만식 장로나 장기려 박사 같은 선한 목자가 될 것인가 고민하지만 아직도 멀었구나 생각하면서 제 가슴을 칠 때가 많습니다. 때때로 저는 거짓 목자는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몸서리치도록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제가 거짓 목자가 되지 않도록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저는 물론이거니와 여러분 모두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을 닮은 선한 목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 안에서 선한 목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참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아 우리도 참 목자가 되어 복음을 몰라 질곡을 헤매고 있는 많은 양들을 목자의 심정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살펴 생명의 길로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