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경동] 삶의 기초

2010년 8월 22일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이사야서 29:17-24

레바논의 밀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고, 그 기름진 밭이 다시 밀림으로 변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그 날이 오면, 듣지 못하는 사람이 두루마리의 글을 읽는 소리를 듣고, 어둠과 흑암에 싸인 눈 먼 사람이 눈을 떠서 볼 것이다. 천한 사람들이 주님 안에서 더없이 기뻐하며 사람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다. 포악한 자는 사라질 것이다. 비웃는 사람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죄 지을 기회를 엿보던 자들이 모두 끝장 날 것이다. 그들은 말 한 마디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성문에서 재판하는 사람을 올무에 걸리게 하며, 정당한 이유 없이 의로운 사람의 권리를 박탈하던 자들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주님께서, 곧 야곱 족속의 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제 야곱이 다시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고, 이제 그의 얼굴이 다시는 수모 때문에 창백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야곱이 자기의 자손 곧 그들 가운데서 내가 친히 만들어 준 그 자손을 볼 때, 그들은 내 이름을 거룩하게 할 것이다." `야곱의 거룩한 분`을 거룩하게 받들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혼미하던 사람이 총명해지고, 거스르던 사람이 교훈을 받을 것이다. 아멘.

고린도전서 3:9-11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밭이며, 하나님의 건물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지혜로운 건축가와 같이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 위에다가 집을 짓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집을 지을지 각각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도 이미 놓은 기초이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 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습니다. 아멘.

마가복음서 7:31-37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서, 데가볼리 지역 가운데를 지나, 갈릴리 바다에 오셨다. 그런데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그를 무리로부터 따로 데려가서,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고, 침을 뱉어서,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보시고서 탄식하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에바다" 하셨다. (그것은 열리라는 뜻이다.) 그러자 곧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똑바로 하였다.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명하셨으나, 말리면 말릴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퍼뜨렸다. 사람들이 몹시 놀라서 말하였다. "그가 하시는 일은 모두 훌륭하다. 듣지 못하는 사람도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하신다." 아멘.
 
설교문
  
<삶의 기초>

우리는 살아가면서 힘든 일도 많고 기쁜 일도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감사기도를 드리기도 하고, 어려움을 잘 이겨내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힘든 것 없이 살 수 있기를 바라고 살아갑니다. 기독교인이나 다른 종교인들이나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에 가끔 나오기도 하시고 저와 사이가 좋은 스님 한 분이 계십니다. 법률 스님인데, 어느 날 스님이 책자 하나를 주셨습니다. 책 제목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제가 스님보고 기도는 기독교에서 하는 것인데 당신들도 기도하느냐고 했더니 본래 불교에서 하는 거라고 하며 서로 웃었습니다.

책의 부제는 ‘내려놓기’입니다. 어느 기도가 진짜 기도인지 제가 책을 열어보면서 왜 기도라고 제목을 붙였고 뭘 내려놓느냐 했더니, 나를 내리고 내 것도 버리고 내 고집도 버리고 그래서 기도해야 한다고 하면서 책을 쓰게 된 계기를 서문에 써놓았다고 하길래 서문을 읽어봤습니다.

1980년대에 자기가 대학생들을 담당하며 상담을 해 주었었는데 민주화 시위운동 때 어느 학생 하나가 집시법 위법으로 투옥이 되어서 재판을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매일같이 절에 와서 아들 석방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기도 덕분인지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선고를 받고 출옥을 했습니다. 석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님을 찾아와서 기도 덕분에 부처님께서 도와주셔서 석방되어서 너무 고맙다고 이야기를 하셨답니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나고 어머니가 다시 찾아와서 통곡을 하면서, 제 석방된 아들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면서 감옥에 그냥 있으라고 할 걸 괜히 출옥해서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게 다 인연이고 인과응보가 아니냐고 통곡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스님이 기도는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기도에 관한 책을 쓴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도 이 어머니처럼 생각하는 일이 흔히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힘든 일이 생기면 하늘의 저주를 받아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혹은 그것을 운명이라고도 말하며 하늘 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는지요.

오늘 예수께서는 우리한테 이런 경우에 뭐라고 하시나, 성경말씀을 찾아보았는데 오늘 본문에 답이 쓰여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표현에 의하면 하나님은 본래 인간을 하나님의 밭이라고 보십니다. 두 번째로 인간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이 두 가지 말씀 속에 하나님이 우리 삶의 족적마다 우리의 운명과 모든 과정을 어떻게 관여하고 계신지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입니다.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이 있을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무너집니다. 하나님이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거할 집인 우리의 생명이, 우리의 삶이 집이 무너지듯이 무너지면 하나님도 무너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집이 아니라면 그 하나님은 하늘에 앉아계셔서 인간이 살아가는 걸 감찰만 하시면서 위에서 바라보시면 될텐데 왜 하필 성경에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고 우리 안에 와서 사신다고 말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집을 잘 보존하며 리모델링도 하고 집이 무너지지 않도록 잘 다스려야 합니다. “내가 거할 집을 지어줬으니 인간들아, 집 좀 제대로 하고 살아라.” 집이 잘못되면 우리가 잘못한 것이지 하나님이 무너뜨린 겁니까? 하나님이 호흡도 주셨고 생명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집을 만들어 주셨으면 됐지 그 집에 흠이 났다고 물 좀 샌다고, 하나님이 물 새게 했습니까? 그런 하나님은 성경말씀에 없습니다.

집을 지어주신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을 물건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거할 건물로 집을 지어주셨습니다. 모든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동체마다 하나님이 거하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을 죽이면, 사람이 못되게 굴면 그 집안에 계신 하나님을 죽이고 하나님을 못되게 구는 겁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간과 따로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고 인간과 함께 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도바울이 이 고백을 이론적인 틀로 하지 않고 진실로 하나님을 만나고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3일 동안 눈이 멀고 귀가 먹고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충격을 받았을 때,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경험한 사도 바울의 하나님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사도바울에게 하는 말입니다. “바울아, 네가 내 집이다. 집 좀 제대로 간수하고 살아라. 너도 행복하고, 너희 집에 내가 살면서 나도 좀 편안하자.”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집으로 만들어주셨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의 일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에 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이 농사짓는 밭입니다. 하나님은 농부가 되셔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십니다. 하늘나라 말씀을 파종하시고 하나님의 사랑도 파종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물도 주시고 공기도 주시고 영양분을 주셔서 나무가 자라게 하시고 자라는 나무에서 열매가 맺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밭을 딴 데서 구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밭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게 하려고 우리를 밭으로 삼았습니다. 밭이 망가지면 하나님이 망가집니다.

예수님의 비유가운데 이런 비유가 있습니다. 농부가 농사를 짓는데 밭이 돌밭이면 씨앗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가시엉겅퀴로 되어 있는 밭이면 씨앗이 나왔다가 햇빛도 못 받고 엉겅퀴 때문에 자라지 못하고 죽어버립니다. 씨앗이 잘 자라려면 밭은 옥토여야 하고 아무런 방해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밭인 우리가 옥토가 아니면 하나님이 아무리 은혜를 주신들 하나님이 뿌린 씨앗은 말라비틀어지거나 새들이 와서 주워 먹거나 줄기로 자라다가 열매로까지 자라지 못하고 죽어 없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옥토인 사람입니다. 옥토인 한, 하나님의 은혜는 파종부터 시작해서 열매를 거둘 때까지 계속해서 은총을 내리십니다.

돌밭 인간이, 가시엉겅퀴 밭의 인간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이 씨앗을 주신다고 열매가 자동으로 열리지 않습니다. 밭 때문에 맺지 못 하고, 어찌하지도 못한 채 새들에게 먹혀서 하나님이 주신 씨앗을 날려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고민하십니까? 고민하십니다. 하나님은 괴로워하십니까? 괴로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우십니까? 우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씨앗을 품고 자라게 하는 밭입니다. 하나님의 건물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자신이 만난 예수님의 말씀을 빌어서 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건물이라고 그 곳에 하나님이 항상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건물이 건실하려면 하나님이 좌정하시는 건물의 주춧돌은 다른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밭이라고 다 하나님이 농사짓는 밭이 아니라 그 밭의 가장 기본에 예수그리스도가 주인으로 있어야 합니다. 예수가 기둥이고 예수가 주춧돌인 그 밭은 하나님이 농사짓기 좋습니다. 그리고 그 건물은 하나님이 좌정하십니다.

사도바울은 다시 귀한 말씀을 주십니다. “나는 이 사실을 다메섹이라는 길 위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환상 속에서 만나면서 배웠습니다. 이 사실을 알기 전까지 저는 눈은 떴으나 진실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었습니다. 귀는 열려 있으나 진리를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였습니다. 입은 있어서 말은 했으나 하나님의 참된 진리를 선포하지 못하는 벙어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만나고 나서 입도 열리고 귀도 열리고 눈도 열렸습니다.”

오늘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기적 하나를 행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귀 먹고 벙어리인 사람을 예수께 데리고 왔습니다. “이 사람이 말씀 듣게 해 주십시오.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기적 좀 행해 주십시오.” 오늘 기록에 보면 예수께서는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고 말을 하게 하기 위해서 손등을 혀에 대면서 침을 뱉어서 혀를 문지르시며 ‘에바다(열려라)’ 했더니 귀가 열리고 입이 열렸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께서 행하신 이 기적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도 귀머거리였습니다. 그런데 내 귀가 열리고 내 눈이 떠지고 내 입이 열려서 새롭게 말할 때, 예수가 누구고 하나님이 누구인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가 제 생명의 기초입니다. 그 위에 집을 지었더니 그 위에 제 자신의 생명을 놓았더니 제 생명의 집 속에서 하나님이 좌정해 계시고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저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 농사를 지으십니다.”

“그래서 제가 감히 고백하겠습니다. 주춧돌 없이 지었던 내 집에 이제 주춧돌이 생겼습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지었던 모든 집을 포기해도 괜찮습니다. 제 밭이 가시엉겅퀴고 돌밭이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지 못했는데 이제는 옥토가 되었으니 저는 옥토를 만든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겠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이런 고백을 우리한테 하시면서 “부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믿으려면 제대로 믿으세요. 하나님 믿고 싶으시면 하나님이 당신들을 밭으로 생각하고 당신들 안에서 농사짓는다는 그런 하나님 믿으세요. 나와 상관이 없는 하나님 말고 제가 밭이 되어 하나님이 농부이신 하나님나라에 광장이 된 인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편히 쉬시는 그런 주택, 그런 건물이 된 인간, 그렇게 하나님을 믿으면 그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일을 예수께서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읍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냥 하나님이 아니고 예수란 분을 통해서 알게 된 하나님, 예수란 분이 자기 아버지라고 고백한 그 하나님을 우리가 믿습니다.”

초대교회 때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초대 교인들이 로마로 가서 전도를 했습니다. 로마제국의 센터를 가야 복음이 밝게 비췬다고 로마로 갔습니다. 하지만 가자마자 핍박을 받았습니다. 로마황제와 제국이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순교까지 시킬 때 죄목이 있었습니다. 이 죄목은 예수가 유태인들한테 받은 죄목과 내용이 똑같습니다. 바로 ‘무신론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신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무신론자들이고 그들은 처형을 당했습니다. 당시 로마는 로마황제를 숭배했으므로 로마황제를 신이라고 믿는 것을 유신론이라고 했고, 그것을 거부하는 것을 무신론이라고 했습니다. 요즘 세상이 많이 바꿔져서 유신론은 신이 있다고 믿는 것이 유신론이고, 무신론은 신이 없다고 믿는 것을 말하는데 역사적으로 그렇지 않습니다.

황제를 숭배하는 나라에서는 황제를 숭배하는 것이 유신론이고, 그 외에 예수 믿고 하나님 믿고 다른 신을 믿는 것은 다 무신론입니다. 무신론자는 처형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무신론으로 죽어갔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상숭배라고 욕할 만한데 우상이 아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무신론자인 것입니다.

유태인들이 예수님을 죽였던 이유는 하나님을 훼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말은 무신론이라는 말과 똑같은 말입니다. 무신론이란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것이 무신론이 아니고 하나님을 훼방하는 것도 무신론입니다. 진실로 유신론은 뭡니까? 우리는 유신론자입니다. 어떤 신을 우리가 하나님으로 믿습니까?

제가 믿는, 여러분이 고백하는 우리 하나님은 어떤 유신론의 신이냐 하면 제 안에 들어와서 일상대로 사시는 신, 제 생명의 역경 속에 오셔서, 삶 속에서 오셔서 하나님 나라 농사를 지으시는 그런 신, 그 신을 믿습니다. 그 신을 우리가 유신론의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저와 상관없이 저 위에 계셔서 저한테 명령을 하시는 하나님을 저는 잘 모릅니다.

예수를 통해서 제가 만난 하나님, 제가 배운 하나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하면 예수를 통해서 제가 죽을 때 함께 죽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아플 때 제 잘못으로 아프지만 제 아픔 속에 오셔서 하나님께 같이 간구해 주시는 그런 예수의 하나님이십니다. 어려움과 수난과 모든 감란고초를 그냥 인간의 일로 치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고 저와 함께 같이 울어주시고 눈물 흘리시는 하나님을 예수를 통해서 발견했습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은 이렇습니다. “내가 만난 이 하나님은 내가 죽을 때 내 죄 값을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함께 기꺼이 죽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내가 이제야 보았습니다. 이제야 그 말씀을 내가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그리스도를 내가 얻으면 달리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또 내가 만난 하나님은 죽음만 같이 죽어주신 그 분이 아니고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시켜 주시는 하나님, 무한한 생명의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제가 믿는 하나님입니다. 그 외에 다른 하나님은 저한테 없습니다.”

저는 예수 믿는 일이 분명합니다. 저와 상관이 없는 하나님은 별로 믿고 싶지 않습니다. 저와 같이 고통당하시고 같이 죄 사함 주시고 같이 영생을 주시는 그 하나님을 예수를 통해서 제가 들었습니다. 들은 예수를 그리스도 예수라고 고백합니다.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일상에서도 고백합니다.

그분의 아버지인 하나님 말씀이 “나는 그대들이 고백하는 신앙의 바탕이다. 집의 주춧돌이다. 알아서 살아라. 그리고 이 밭의 주인이다.” 저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다시 생각해봅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오셔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렇게 취급해 주시고 저희들이 어울려 사는 공동체 중에 가정과 사회와 모든 공동체를, 직장을 하나님의 텃밭으로 만들어주셨으니 제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수많은 사람을 무슨 이념이나 체재 이념으로 죽일 때 사람만 죽어갑니까, 그 속에 계신 하나님도 죽어갑니까?’

인간은 하늘 뜻을 심는 밭이라고 하는데 그 곳이 돌밭이 되거나 엉겅퀴를 갖다 놓고 하나님 나라가 열매 맺길 바라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모든 역사의 이야기를 많이 배웠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나는 인간을 창조하고 최대의 자유를 주었으니 내가 바탕이어야 한다. 나를 바탕 삼아서 너희들이 알아서 잘 가꾸어라.” 인간의 자유와 하나님이 바탕인 기본이 오늘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주신 성경말씀입니다.

법정 스님이 무소유를 이야기하신 분으로 유명합니다. 무소유면 아무것도 안 가지고 어떻게 사셨을까, 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내용이 그렇지 않았습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고 불필요한 것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양과 종류는 다를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생명을 유지해 갈만큼 일용할 양식은 풍성하게 주겠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넘는 것은 불필요한 축적입니다. 우리 인간사의 비극은 일용할 양식이 없어서 비극은 아닙니다. 불필요한 것을 필요하다고 하는 욕심과 욕망 때문에 불필요한 권력과 재산과 지식과 모든 것을 누리려고 하다 보니 갈등이 있는 것 아닙니까?

“나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그대들의 밭을 일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동역자로 그대들과 함께 하기를 원한다. 나는 항상 그대들의 귀를 열고 입을 열려고 왔다.” 우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는 확신만 있으면 저는 오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영광 받으십니다.

구약성경을 보십시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우리가 진실로 함께 사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때,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집임을 하나님이 인정하실 때, 하나님은 거룩하다고 칭송받습니다. 우리가 밭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열매를 많이 거둘 때, 거두시는 농부의 이름이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거룩하다고 표현할 때 하나님은 농부로서 알곡을 많이 거두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저희 집에 오셔서 편히 쉬시면서 안식을 쉬시면서 우리가 축복을 주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하나님을 거룩하게 하고 싶으시면 농사 잘 되게 좋은 밭 됩시다. 하나님을 거룩하게 칭송하고 싶으시면 하나님이 저희 집에 오셔서 편안하게 쉬게 해 드립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리를 함께 죽고 함께 부활시켜서 새 생명을 주신 데까지 동거동락 하십니다.

저는 그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가 우리의 바탕이 되어 우리가 그 하나님을 믿게 해 주셨습니다. 이 예수를 여러분의 구세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 땅이 잘 됩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 하늘을 품고 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여러분 모두에게 축복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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