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신대 이덕주 교수가 장공 김재준(1901~1987)의 영성사(史)를 써내려갔다. 이 교수는 9일 제23회 장공사상연구 목요강좌에서 장공의 일생을 영성 측면에서 고찰하고, 국내 진보신학의 요람 한신대의 정신적 기초를 마련한 장공의 영성을 '바울 영성'이라 평했다.
▲(사)장공김재준목사기념사업회 제23회 장공사상연구 목요강좌. 9일 한신대 신대원 장공기념관. ⓒ이지수 기자 |
이 교수는 장공의 영성을 다각도로 분석하며, 특히 조선신학교 재직 시 이단 시비에 대처하는 장공의 영성을 두드러지게 서술했다. 이 사건은 오늘날 한신대를 있게 한 중요한 사건이다.
장공은 제자들의 진정으로 이단 시비에 직면하게 된 자신의 현실을 예수와 비교했다. "가룟 유다가 주님을 판 것을 주께서 제일 슬퍼하셨을 것이라고 나는 전에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주께서는 자기 제자에게 팔린 것을 오히려 기쁘게 여겼을 듯 생각난다. 사랑하는 내 제자의 손에! 사랑하는 탓으로!"(1947, '자유와 보수'). "그리스도는 억울하게 죽으셨다! 그가 무슨 죄가 있다고 가시관을 씌우고 뺨 때리고 제 달릴 형틀을 지워 골고다로 몰아간 것이었던가?"(1948).
이 교수는 "그렇다고 장공이 '피동적' 십자가 영성으로 응대한 것만은 아니었다"며, 여타의 글은 그의 과단성 있는 '바울 영성'을 드러낸다고 주장했다.
1948년 <조선신학보>에 발표된 장공의 성명은, 진정 사건의 전말과 그것을 둘러싼 유언비어를 차분히 설명하다가 돌연 "이제 나 자신의 진퇴문제에 대하여 내 태도를 표명하려 한다"며 단호한 어조로 급변한다.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사도 바울의 너무나 인간적인 심경이 눈에 잡힐 듯 서연하여 진다"며 호소하고, "저가 정통을 자랑하는가? 나도 그러하다. 그는 관념으로서의 정통을 안고 몸부림치나 나는 그리스도 자신의 심정에 부딪혀 들어가는 전인격적 결론을 가지고 있다. 저가 칼빈 신학을 수호하는가? 나도 그러하다. 나는 칼빈이 주창하였기 때문에 좋다는 것이 아니라…"며 바울 서신의 형식을 빌리기도 한다.
이 교수는 "장공은 바울 언어를 통해 바울 심정과 바울 정신에 접근했다"며 "바울과 장공의 일체화가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장공은 이단 판결을 받은 후에도 논문 '이단재판의 성서적 근거' 등을 통해 계속적으로 바울의 진술을 취하고, 바울이 교권주의자들에게 이단 혐의로 체포된 일에 자신의 처지를 견주면서 교권에 항거해나갔다.
이 교수는 장공이 "종교재판의 한복판에서 때로는 혐의자로 때로는 피의자로 원치 않는 현실의 사람이 되었으면서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속에 역사하는 초월적 의지와 능력 때문이었다"며 이는 곧 "바울의 신앙과 정신으로서, 장공은 '바울 영성'(Pauline spirituality)으로 버텨냈다"고 말했다.
또 "이런 장공의 영성에 동조한 '창조적 소수'가 있어서 조선신학교는 부활, 오늘의 한신대로 발전했다"며 바울 영성이 한신대의 밑거름이 되었음을 말했다.
한편 이번 논문에서 이 교수는 장공의 영성사를 '예언자 영성', '십자가 영성', '야고보 영성' 등의 키워드로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