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사 4:2)
그리스도인들이 ‘평화’에 관해 말할 때 빠짐없이 사용하는 성경구절이다. 지난 10일 한국복음주의협의회(이하 한복협) 월례발표회에 나선 발표자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 같이 이 땅에 ‘전쟁’이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며 그리스도인들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연대해야 할 것을 제안했다.
최근 남북 간 고조되고 있는 긴장 탓인지 이번 발표회에는 ‘전쟁과 평화’가 그 주제로 선정됐다. 현재 수재복구물자 지원 논의, 북한의 대승호 송환 등으로 남북 간 약간의 부드러운 기운이 감돌고 있으나 북한의 북핵문제, 천안함 폭침과 한미연합군사훈련으로 인해 조성된 긴장은 여전하다는 인식이 한복협 발표회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경동교회 박종화 목사 ⓒ베리타스 DB |
‘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발제한 박종화 목사(경동교회)는 WCC가 오래전부터 견지해 온 ‘정의로운 평화’(Just Peace)를 소개하고, 자신의 의견을 보탰다.
박 목사는 "평화는 전쟁의 부재라는 소극적인 차원을 뛰어 넘는다"며 "오히려 정의가 깃든 평화(이사야 32:17; 시편 85:10; 야고보 3:18)가 참 평화라는 적극적 차원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WCC를 비롯한 에큐메니컬 협의회는 오래전부터 하나님이 주신 평화를 Shalom으로 보고, 그것을 세 개의 기둥(=정의, 평화, 창조세계 보전)으로 파악하여 평화 속에 정의와 창조생명이 내용으로 들어있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며 "그런 뜻에서 사회경제적인 차원의 정의(Justice) 군사 안보차원의 평화(Peace) 환경과 생명의 보전(Integrity of Creation)을 포함한 JPIC를 우리의 평화론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박 목사는 WCC가 강조하는 △정의 △평화 △창조질서 보전과 함께 사랑(Love)를 보탰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그는 또 ‘JPIC’ ‘JPICL’의 실현과 관련해 칸트의 영구적 평화론의 3원적 요소(triad)의 수용을 제안했다. 칸트는 3원적 요소는 △사회·국가의 민주화 △경제적인 협력과 연대 △국제기구에의 공동참여 등이다.
이에 덧붙여, 박 목사는 ‘사랑의 원리’를 추가해 오늘의 언어로 △인도주의적 실현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그는 특히 "현실적으로 지금 남북분단을 극복하고 평화를 이루는 일에 있어서 인도주의적 교류와 협력이 중요한 요소임을 모두가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환경생명의 원리를 더하며 박 목사는 “진정으로 삶의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실천방안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전했다.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 ⓒ베리타스 DB |
‘그리스도인과 전쟁’을 주제로 발표한 손봉호 교수(고신대 석좌교수)는 무엇보다 남북 간 전쟁을 우려하며 "모든 방법을 다 강구해 전쟁의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 모든 한국인, 특히 그리스도인의 지상 임무다"라고 강조했다.
그 방법 중 하나로 손 교수는 "민주주의 국가 간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정치학자 R.J. Rummel의 주장을 소개했다. 이 학자에 따르면, 민주주의적 사회에서는 시민들이 민주주의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싸우기 보다는 협상하고 타협하는 경향이 있고 그것이 하나의 문화적 유산의 일부가 되어 있다. 그래서 다른 민주 사회와도 그런 방식으로 서로의 이해관계를 자율적으로 해결해 시민사회를 강화하므로 권력의 집중을 막고 국가의 권력행사를 통제한다고 보고 있다.
손 교수는 "물론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성숙한 민주 국가 간에는 비민주 국가 간이나 민주국가와 비민주 국가 간 보다는 전쟁이 적게 일어난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오늘 날 미국과 독일, 프랑스와 영국, 한국과 일본, 한국과 대만 간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그렇게 크지 않으나 남한과 북한, 일본과 북한, 일본과 중국 간에 전쟁이 일어날 확률은 상대적으로 높다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남북 분단 상황을 넘어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준비해야 할 구체적인 계획 제시도 있었다. 이와 관련, 평화한국 허문영 대표는 ‘전쟁과 평화 그리고 통일’을 주제로 남북 간 분단 상황을 넘어 통일로 가는 장·단기 계획을 발표해 주목을 모았다.
한편, ‘전쟁과 평화’ 발표에 대한 응답을 맡은 유관지 목사(한복협 중앙위원·북한교회연구원 원장)는 "세 분 발표자의 발표를 들으면서 보습은 끝까지 보습이고, 칼은 끝까지 칼이 되도록 하려는 진지한 몸부림 같은 것을 느꼈다"면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라는 말씀을 황금률(黃金律)로 간직하고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전쟁과 평화에 대해 어떤 인식과 태도를 가져야 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라며 그리스도인의 ‘평화’에 관한 책무를 환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