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어느 대기업 총수가 글로벌 시대에 변화를 강조하면서 “마누라만 빼고 다 바꾸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이 한참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기업 총수의 말대로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변화를 두려워 하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변화를 위해 투자해야 합니다.
소원하던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을 투자하고 물질을 투자하고 땀을 투자해야 합니다. 변하지 않고 정체되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가진 환경은 헬렌 켈러나 강영우 박사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우리가 가진 환경과 조건은 아주 좋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주시기만 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신자들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변화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하면서도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또 예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전도할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를 사랑한다고 확실하게 말합니다. 이제 변해야 합니다. 차디찬 가슴에 성령의 불을 댕겨야 합니다. 가슴이 사랑의 용광로가 되어야 합니다.
얼마 전 ‘파리의 연인’이라는 인기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 역시 그 흔한 사랑이야기였습니다. 거의 모든 드라마가 그렇듯이 두 사람의 관계가 잘 되면 재미가 없으니 둘 사이를 방해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삼각관계를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여주인공을 맴도는 잘 생긴 남자가 나타나서 사랑을 방해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갑자기 나타나서 처녀의 손을 잡아 자기 가슴에 대고 말했습니다. “이 속에 네가 있다”
이 말은 돌발적인 사랑의 고백이었습니다. 남자의 가슴 속에 여자가 있고, 여자의 가슴 속에 남자가 있으면 남녀 간은 서로를 사랑하는 상태에 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사랑하는 연인이 있어야 서로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속에 절대적인 너가 있어야 합니다. 절대적인 너가 있어야 이 땅에 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습니다. 행복한 상태 그것이 바로 새로운 존재의 상태입니다. 이 상태가 곧 하나님의 품 안에 있는 상태입니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15:3-4).
주님으로 인해 영원한 삶을 얻은 우리는 이 놀라운 행복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 놀라운 행복을 이웃에게 전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1. 우리의 이 영광스러움을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양은 행복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은 주었다 회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가 받는 구원은 공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우리의 선한 행실이나 공로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옳지 못한 행동을 하더라도 구원을 잃어 버릴 수는 없습니다.
옳지 못한 행동으로 구원이 취소된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할 것입니다(롬11:6).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의 양들을 결코 멸망시키지 않습니다.
어떤 이단 종파에서는 예수의 구원이 영원하기 때문에 이제 무슨 짓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함부로 삽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욕보이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므로 그 구원을 감사함으로 잘 지켜 나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예수를 잘 믿다가 타락한 사람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이런 경우는 결국 주님께 돌아올 것입니다. 만일 돌아오지 않아 결국에는 하나님을 떠난 배교자는 구원 받지 못한 감정적인 신앙인에 불과합니다.
구원 받았다고 고백을 하면서도 다시 죄 가운데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실상 그들은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그 누구에게나 구원을 영원하게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직 그의 참된 양들에게만 약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이 시간 예수를 진정으로 영접하십시오.
그 분을 우리의 마음 중심에 모시고 완전한 지배를 받도록 노력하십시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영국의 대법관 토마스 모어가 헨리 8세의 이혼 문제에 항의한 것 때문에 반역죄로 사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내와 자녀들이 왕에게 항복해서 살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오랫동안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당신은 꽃 같은 나이에 우리 가족들에게 가장 비극적인 불행을 가져오려 하십니까?”
모어는 물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살 것 같소?” “최소한 20년을 살겠지요.” 그 때 소리쳤습니다. “이 세상에서 20년 살기 위해서 영원한 삶을 포기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오? 영원한 생명을 잃는 것보다 세상 그 모든 것을 잃는 것이 더 낫지 않겠소.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소!”
우리는 이 영원한 삶을 얻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영생을 이웃 사람들에게 전해 그들도 복음을 받아들여 함께 구원 받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2.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1885년 4월 5일, 미국 장로교의 언더우드 선교사와 감리교의 아펜젤러 선교사가 함께 우리나라의 제물포 항으로 입항하였습니다. 이들이 함께 들어온 것은 장로교와 감리교는 하나라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들은 한국에서 선교지역을 나누고 사이좋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에 장로교단만 100여개가 넘고 있으니 얼마나 잘못된 일입니까?
저는 여러 개로 나누어진 한국의 교파를 하나의 연합기구로 연합하게 하여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하나의 교회를 이루려고 오랫동안 노력을 하였습니다.
실상 교파가 여러 가지로 되어 있는 것은 각 사람의 개성에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주로 모시는 이들이 연합하여 같은 말과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기독교가 가톨릭처럼 꼭 하나의 교단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같은 말과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이 더 중요합니다.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의 근거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사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셨고, 그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지체, 성전의 한 부분, 남편과 아내,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이미 하나이기에 사랑함이 마땅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라면, 또한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살리신 사랑의 하나님을 안다면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속한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997년 10월 아프리카 케냐의 리무르에서 250여명의 세계 기독교 지도자들이 세계기독교포럼(Global Christian Forum)이라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각자의 특색 있는 옷차림에 이질감을 느끼면서 개회예배를 마치고 나서 30명씩 그룹을 나누어 ‘신앙 여정’이란 순서를 가졌습니다.
한 명씩 돌아가며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난 구원간증과 사역을 위한 소명간증을 발표하였고, 전체 모임에서 요약하여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석자들의 종파, 신학, 배경, 구원과 소명의 경위는 모두 달랐으나 간증이 시작되자 모두 놀랐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개인적 경험과 사랑, 그리고 그 사랑에 의해 불타는 소명은 모두 일치했던 것입니다.
사역자들이 처한 상황은 각각 달랐으나, 각자가 만난 분은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의 사랑에 감격한 그들은 2박3일의 일정이 끝나고 사랑의 사도가 되어 헤어졌습니다.
지금부터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진보와 보수의 지도자들은 서로 만나는 것조차 거북하게 생각했습니다. 부족한 제가 노력하여 진보와 보수 지도자들이 만나 그리스도 안에 하나임을 확인하고 협력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한국교회 일치운동에 큰 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교회가 말과 마음과 뜻이 여러 가지 면에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2013년에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로 세계교회 지도자들 6천 여명이 부산 Bexco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 총회는 세계 교회의 큰 잔치요 한국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좋은 기회입니다만 오해하고 있는 보수적인 교회들이 반대운동을 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협력하지 않으려면 가만히 있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남의 잔치에 방해하는 행위는 신앙인으로서 삼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서로 위해 주고 협력하는 폭넓은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3.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은 사랑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서로 사랑하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14:23-24).
교회가 하나가 되려면 서로 사랑을 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순종한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사랑하면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까지도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고 용서하신, 즉 원수까지도 용서하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교회의 연합과 일치가 가능합니다. 서로의 허물을 용서하고 품에 안을 때 진정한 연합과 일치가 가능합니다.
어느 음악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로 된 가난한 음악가는 새 예복을 장만할 여유가 없어서 전부터 입어오던 낡은 예복을 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지휘 도중에 그 낡은 예복이 찢어지고 말았습니다. 연주를 할 때는 반드시 예복을 입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휘자는 한 곡이 끝나자 그 낡아서 찢어진 예복을 벗어야만 했습니다.
셔츠 차림으로 지휘하는 그를 향하여 사람들은 킬킬거리며 조롱하고 웃었습니다. 그러나 주위가 소란해도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열심히 지휘하였습니다.
이때 맨 앞에 앉아 있던 어느 신사가 조용히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음으로써 지휘자처럼 셔츠 차림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사람들도 웃음을 멈추고 하나, 둘 전부 웃옷을 벗었습니다.
그 결과 그 날의 연주는 그 어떤 연주회보다 더욱 감격적이었고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주의 사랑으로 서로를 이해하며 감싸주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절대 순종했습니다.
우리도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본받아서 우리의 신앙의 형제들을 사랑하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교회는 하나가 될 것입니다. 저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께 절대 순종하려고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신앙의 형제를 사랑하기 원합니다. 이 지역의 교회들, 특히, 저는 람원교회와 화성교회가 함께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함께 연합예배를 드리고 찬양대까지 함께 예배를 드림으로 같은 주님을 믿는 교회로 지냈으면 합니다.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29절).
하나님은 너무 크신 분입니다. 그 크신 분의 교회가 크고 위대한 그림을 그리고 서로 연합하여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가 연합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서로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한 지역에 있는 교회를 공동으로 섬겨 그리스도의 형제애를 진작시켜야 할 것입니다. 서로 섬기며 피자 종노릇할 때 주님의 큰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