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정식 교수 |
신, 학. ‘신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무거운 뜻을 갖고 있다. 이것은 보통 대학이나 교회의 강단에서 엄숙하게 전달되기 마련이다. 신학. 다시 생각해보니 ‘사랑의 하나님’을 연구하는 이 학문은 낭만적이기도 하다.
세상에 무거운 신학만 있는 것은 아닐 터, 차정식 교수(한일장신대 신학부)가 신학을 일상 속으로 끌어들였다. 신간 <일상과 신학의 여백>(두란노아카데미)은 신학과 ‘잠’, ‘식사’, ‘성애’와 같은 자잘한 것들의 만남을 시도했다. 원더걸스의 텔미댄스와 구혜선의 화장품 광고도 신학 속에서 재구성, 재해석 된다.
이 책은 신학의 촘촘한 사유 사이로 일상을 풀어냈다는 점에서, 기존의 기독교 에세이집과 차별된다. 차 교수 자신도 “그 낯설고 어설픈 길은 아직 간 사람이 없는 그야말로 소박한 길이어서…”라며 ‘처음’이라는 자부심을 겸손스럽게 드러냈다.
그는 “무거운 신학적 담론의 숲을 가로지르는 소박한 오솔길을 하나 내려는 의욕으로 일상과 신학적 사유를 접맥시키는 작업”에 오래 전부터 골몰해왔다고 밝혔다. “세상을 섬세하게 읽어내지 못하는 신학은 무기력하며 결국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에너지와 시간을 대부분 점유하는 일상의 항목들에 깊이 천착할 수 없는 무딘 신학의 연장들은 머나먼 옛 시절을 증언하는 골동품의 위상을 넘어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유명한 학자를 거론하고 그 거창한 담론의 성취를 찬탄할지라도, 그것이 반복되는 나와 당신의 일상과 … 시대의 천태만상을 심오하게 읽어내고 풍요하게 그 의미를 우려내는가를 따져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1부는 일상으로 신학 하기, 2부는 신학으로 세상 읽기다.
1부의 ‘잠과 꿈’. 잠을 둘러싼 인문학의 사유들을 소개하며 비일상의 영역으로 잠을 끌어 들이고, 신구약의 잠에 관한 기술을 살피며 천천히 신학의 영역으로까지 나아간다. “잠 속에 깊이 빠져들면서 인간은 말똥말똥한 의식으로 부려온 몸과 정신의 모든 짐을 내려놓은 채 쉼을 경험한다 … 잠과 함께 인간은 비로소 태초의 시간, 하나님이 아담을 만들면서 인간의 생명이 동트기 시작할 즈음의 아득함 속으로 회귀한다. 그것은 까마득한 없음(無)의 경험이지만, 동시에 낯선 있음(有)의 기미를 체감하는 경험, 곧 전혀 새로운 생명의 희망으로 부푸는 단절의 경험이기도 하다. 그 단절이 있기에 우리는 아무리 망가져도 다시 하나님을 꿈꾸며, 그 하나님의 은총을 품는다.”
2부의 ‘텔미 댄스와 가벼운 구원’. “원더걸스의 텔미라는 노래와 이른바 텔미댄스는 2007년 하반기부터 대대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며 마른 들풀을 사르는 불길같이 번지고 있다 … 우리 편과 그들 편이 화끈하게 갈리는 경계에서 그 경계를 뛰어넘고 허물며 더불어 유희의 장을 펼쳐 보이라고, 그렇게 그들의 몸짓과 노랫가락은 만화적 상상력을 맘껏 발산하면서 가벼운 구원의 복음을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 예수님의 ‘원더’(wonder)는 사람의 삶을 보듬고 생명을 살리는 기적의 결과였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와 그 주류세태에 물든 우리의 교회의 ‘원더’는 혹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대중 조작의 기계장치가 되어버린 게 아닐지 모르겠다.”
장 그르니에, 엠마누엘 레비나스 같은 인문학자들의 글이 종종 인용됐다. 숭례문, 우주인 이소연, 촛불시위 같은 친근한 키워드도 글의 주 재료다. 신학에 흥미 없이도, 흥미를 가지고 신학이 낸 사색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했다.
목차
Ⅰ. 일상으로 신학하기
잠과 꿈-그 안과 밖의 심연
씻기-먼지와 함께 씻기는 것들
음식과 식사-그짧은 인간학 긴 신학
배설-더러움의 신학적 미학
걷기-무한과 영원을 향한 몸짓
보기와 듣기-사물의 즐거움, 생명의 아름다움
만남과 대화-어울리고 말하며 나누는 매력
노동과 안식-생존의 지혜, 생활의 영성
읽기와 쓰기-탐구의 궤적, 발견의 기쁨
성애-성이 성스러워지는 자리
웃음과 웃음-그 반어적 풍경의 기미와 징후
노래하면서 꽃이 되는 길
침묵과 몽상의 신학
Ⅱ. 신학으로 세상 읽기
거룩한 '스캔들'을 꿈꾸며
'텔미 댄스'와 가벼운 구원
'여성의 피부'는 어째서 '권력'인가?
불탄 '숭례문'의 신학적 재구성
정치가 거룩해지는 틈새
우주에서는 우주만 보이는가
스포츠의 동력과 신학적 '교통 공간'
태풍과 지진 속에서 신학하기
함께 탄식하는 피조생명들
익명의 죽음들, 그 숨겨진 그늘
'축제'로 '행사'하는 사람들
'위기'라는 말의 위기
말로써 폭력 권하는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