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경동 설교] 진정한 감사

2010년 10월 3일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이사야서 58:7-12

또한 굶주린 사람에게 너의 먹거리를 나누어 주는 것, 떠도는 불쌍한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는 것이 아니겠느냐? 헐벗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 그에게 옷을 입혀 주는 것, 너의 골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햇살처럼 비칠 것이며, 네 상처가 빨리 나을 것이다. 네 의를 드러내실 분이 네 앞에 가실 것이며, 주님의 영광이 네 뒤에서 호위할 것이다. 그 때에 네가 주님을 부르면 주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다. 네가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 `내가 여기에 있다` 하고 대답하실 것이다. 네가 너의 나라에서 무거운 멍에와 온갖 폭력과 폭언을 없애 버린다면, 네가 너의 정성을 굶주린 사람에게 쏟으며, 불쌍한 자의 소원을 충족시켜 주면, 너의 빛이 어둠 가운데서 나타나며, 캄캄한 밤이 오히려 대낮같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 너를 늘 인도하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너의 영혼을 충족시켜 주시며, 너의 뼈마디에 원기를 주실 것이다. 너는 마치 물 댄 동산처럼 되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처럼 될 것이다. 너의 백성이 해묵은 폐허에서 성읍을 재건하며, 대대로 버려 두었던 기초를 다시 쌓을 것이다. 사람들은 너를 두고 "갈라진 벽을 고친 왕!" "길거리를 고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한 왕!" 이라고 부를 것이다. 아멘.

디모데전서 4:4-5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은 모두 다 좋은 것이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집니다. 아멘.

마태복음서 6:19-21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다가 쌓아 두지 말아라. 땅에서는 좀이 먹고 녹이 슬어서 망가지며,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서 훔쳐간다. 그러므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좀이 먹고 녹이 슬어서 망가지는 일이 없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서 훔쳐 가지도 못한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아멘.
 
설교문  
  
<진정한 감사>

오늘이 추수감사절입니다. 추수 많이 하셨습니까? 한가위에 가족들과 만나서 만남의 즐거움도 누렸으리라 믿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에 감사하여 감사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감사절이 교회절기로 보면 창조절 시작되어 중간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가위를 우리가 추석예배로 드리기 시작한 것이 74년이니까 꽤 오래 되었습니다. 가정에서, 또 교회에서 예배드리면서 한가위 예배, 이렇게 이름을 붙여도 될 것 같습니다. 추석예배입니다.

여러분, 집에 계실 때, 혹시 무슨 채널 보십니까? 뉴스 채널 말고 동물 이야기 채널을 가끔 봅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피를 보는데, 동물이 노는 것, 먹고 먹히는 장면, 보면서 이상한 질문도 가질 수 있었고 마음에 안타까움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사자들이 소나 말이나 얼룩말, 가젤, 이런 동물을 잡아먹고 도망가고 먹히는 장면에서 이상한 느낌을 많이 가졌습니다.

소와 말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소, 말, 코끼리는 초식동물입니다. 제 의문은 덩치가 그렇게 크고 근육도 크고 그런 큰 짐승이 동물이 어떻게 풀만 먹고 자랄까, 하는 것입니다. 초식동물이 어떻게 저렇게 생명이 강할까요? 초식동물에게 풀이 아닌 다른 걸 먹여서 광우병 파동도 겪었습니다. 어떤 한 연구에 ‘초식 동물이 사는 방법’ 이 있길래 살짝 보았습니다.

초식 동물도 식물섬유만 먹고는 못 산다고 합니다. 동시에 동물성 단백질도 같이 먹어야 뼈가 되고 근육도 되고 피도 형성이 되는데 어떻게 초식 동물은 동물성 단백질을 흡수하나, 봤더니 초식동물의 위 속에는 특수한 미생물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 미생물이 살고 있어서 풀을 뜯어먹으면 풀의 성분을 아주 잘 분해해서 마지막까지 분해하면 거기서 동물성 단백질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걸로 동물성 단백질을 보충하는 것입니다.

소와 말의 경우, 일 평방미터당 분해하는 미생물 수가 100만 마리가 넘는다고 합니다. 엄청난 미생물을 가지고 풀 속에 동물성 단백질을 얻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채소를 많이 먹어도 분해하는 미생물이 없어서 식물성만 섭취하지 분해해서 동물성은 못 얻는다고 합디다. 이렇게 해서 초식동물이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그 다음에 육식동물이 있습니다. 사자와 호랑이는 풀도 안 먹고 다른 짐승을 잡아먹습니다. 이 동물들에게도 식물섬유가 반드시 필요한데 어떻게 식물을 취하나 봤더니 초식동물을 잡아서 초식동물이 먹은 식물섬유를 대신 흡수하는 겁니다. 그래서 육식동물들은 초식동물만 잡아먹는 것입니다. 가젤, 얼룩말, 말, 소, 이런 동물들입니다. 이 초식동물을 딱 잡으면 우선 죽여 놓은 다음에 배를 갈라서 제일 먼저 먹는 것이 내장이라고 합니다. 내장 속에 있는 식물 섬유를 대신 해서 먹어 버리는 것, 이런 방식으로 육식동물은 살아갑니다. 그래서 피 말리는 전쟁이 시작됩니다.

이걸 보면서 제가 시편 8편을 읽고 창세기를 다시 읽어봤습니다. 인간들에게는 육식동물의 성격도 있고 초식동물의 성격도 있고 두 가지를 자기가 먹고 싶은 만큼 먹어서 소화하고 견딥니다. 맘대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초식으로 육식으로 제한된 게 아닙니다. 양 경계선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 2장을 보면 빛도 만들어 주시고 천지만물을 다 지으시고 마지막 동식물도 다 만드신 다음에 인간을 만드셨는데 인간을 마지막 만든 이유가 뭔지 생각해 봤습니다.

육식, 초식 더하기, 모든 먹을 수 있는 능력을 인간에게 주셔서 사람에게는 다 은총을 크게 주셨습니다. 이렇게 비교해 보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은 너무 철학적인 얘기지만 그냥 손쉽게 모든 동물들이 가진 기능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동물들이 없는 기능까지 우리가 다 가지고 있습니다. 동물 중에 인간이 최고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1, 2장을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피조물의 내용이 여기까지입니다.

동물이 사람 말고 다른 피조물이 전혀 할 수 없는 또 다른 피조물이 있습니다. 인간이 만드는 역사입니다. 창세기는 사람이 어떻게 나라를 만들고 가정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인간에게만 ‘역사를 만들어라. 스포츠라는 것을 만들어서 즐겨라.’ 소위 우리가 말하는 ‘문명을 만들어서 재밌게 살아라.’ 음악, 스포츠, 미술, 의학, 간호학, 예술, 사상, 이 모든 가능성을 하나님은 창조 때 주시고 당시에는 실현 안 시켰지만 인간에게 부탁했습니다.

인간이 누리는 창조는 먹고 마시고 자는 것, 동물이 할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위대한 문명과 문화를 만들 수 있는 능력까지도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인간만 받은 축복입니다. 감사하지 않으십니까? 창조에 대해서 우리가 뭘 감사해야 합니까? 오늘 우리가 상징적으로 과일 두 그릇을 갖다 놓았습니다. 이 땅에서 농사지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 이것만 가지고 감사할 수 있으면 우리가 만물의 영장의 차원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무엇을 감사합니까? 여기에 배추가 있고 과일이 있습니다. 농산물 속에도 혼이 있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상품에도 상품 자체의 기술이 아니고 기술 속에 담긴 만드는 사람의 혼이 있어서 그 혼이 소비자들을 끌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물건에도 혼이 있고 아름다운 찬양을 들으면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소리에 담긴 아름다운 감동의 혼을, 혼의 음성을 저희가 듣습니다. 그래서 ‘아멘’ 합니다. 아름다운 작품을 보면 감동하는 것은 그 작품 속에 담긴 작가의 혼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위대한 역사를 만드신 다음에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소명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다 창조해봐라. 단 하나만 잊지 마라. 물건이든 문화든 문명이든 권력이든 뭐가 됐든지 간에 그 속에 본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깊은 혼이 담겨있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라.” 창세기 1장이나 2장 이야기를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창세기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라고 합니다. 그 역사는 끝났습니까? 아닙니다.

창세기 1. 2장에 보면 이제 시작되었고 나머지 하나님이 하실 역사적 창조, 문화적 예술적 창조, 이 모든 창조를 지금도 하나님은 계속 하고 계십니다. 인간의 지혜와 달란트가 지속되는 한,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면 아마 우리 발달, 문명, 모든 것은 계속해서 나갈 것입니다. 창세기에서는 비행기가 뜰 줄 알았습니까? 창세기에 지금과 같은 교회 건물이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는 인간에 관해서는 기본적인 지혜요, 은사지만 우리 피조물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무한대의 발전과 문화를 이끌어갑니다.

창조는 창세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창조주 하나님은 이 창조를 마치신 게 아니고 오늘도 창조를 인간과 함께 계속해 나가고 계십니다. 창조는 계속됩니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역사가 살아가는 한, 역사의 시간이 흐르는 한 무한대로 계속될 것입니다. 언제까지요?

제게 과학적인 답변은 없고 신앙적 답변은 있습니다. 창조의 주님이신 그 분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이 땅에 재림하여 하나님이 이루시는 모든 구원과 창조를 완성할 때 비로소 창조는 완성이 됩니다. 그걸 우리가 신학적으로 신앙적으로 종말이라고 이야기합니다만 종말이 오기까지 하나님의 구원, 창조, 역사, 은총은 폭과 깊이와 높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넓고 깊게 퍼져 나갈 것입니다.

오늘 뭘 감사해야 합니까? 인간으로 창조 받은 사실 자체에 감사합시다. 그리고 무한대의 창조사역에 동참하도록 불러주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돈도 벌 수 있고 지위도 차지할 수 있고 싫증을 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감사하는 게 아니고 그 속에 살아있는 혼을 담을 수 있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헌금도 바치고 헌물도 바칩니다. 그걸로 하나님께 감사가 되겠습니까?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함께 담으셔야 합니다. 우리의 혼을 담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창조주 하나님의 혼과 우리 혼이 만나게 됩니다. 가장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가장 높이 계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이 사실이 오늘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이유고 감사를 그렇게 하십시다. 우리는 그렇게 감사할 줄 알아야 정말 높고 깊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이 우리한테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또 하나 감사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 그동안 많은 분들을 통해서 먹고 살 수 있고 잠잘 수 있는 받는 은혜를 주었습니다. 배고팠습니다.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어라. 그리고 감사하여라.” 우리 그 말씀에 감사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이 축복을 주셔서 감사절 예배를 드리는데 더 중요한 감사는 많이 받아서 먹고 마실 수 있게 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런 감사로 과거에 살았으면 이제부터는 많이 베풀어 주어라. 나누어 주어라.” 이 감사가 최고의 감사입니다. 베풀 수 있어야 하고 나눌 수 있어야 하고 함께 살 수 있는 여력을 주신 하나님, 오늘 진실로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나누어 주셨듯이 우리도 우리 자신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물질로 영으로 정신으로 혼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처럼 그렇게 주셨음을 오늘 감사드리십시다.

또 어떻게 감사하면 됩니까? 오늘 디모데전서 말씀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각하면 모든 게 짜증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떻게 했길래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버릴 게 없습니까? 우린 두 가지를 감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는, 지금까지 우리를 생명 있게 하시고 도와주시고 지켜주신 하나님, 비록 하나님이 얼마나 저를 보호해주신 줄 모르나 그러나 죽지 않고 살아서 지금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이 순간까지 하나님이 하나님 방식대로 저를 이끌어주셨음을 제가 생각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여러분의 감사는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총, 제가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감사드리십시다.

또 하나 감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내일을 살고 싶고, 내일도 산다고 믿습니다. 내일도 역사는 계속됩니다. 창조의 과업은 내일도 모레도 계속됩니다. 제가 목숨이 끊어져도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온 인류 세대를 통해서 계속 될 것입니다. 그 분이 재림하실 때까지 내일도 있습니다. 오늘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은 어제의 완성이지만 또 내일의 시작입니다.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내일을 감사합시다.

제가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음식점에 가셔서 서비스를 잘 받으려면 팁을 언제 주는 게 좋을까요? 밥 먹고 나서 주지 말고 미리 주라고 합니다. 미리주면 고맙다는 말소리가 큽니다. 왜 그렇습니까? 미래에 대한 투자가 과거에 대한 회상보다 훨씬 값어치가 많이 나가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생명이 있고, 희망이 있다고 믿으면 오늘 제 얼굴에 웃음이 있습니다. 내일 절망이 있다고 믿으시면 감사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내일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내일은 만질 수는 없습니다. 내일은 있다고 믿지만 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일은 분명히 있습니다. 내가 동참하고 안 하고는 별도의 문제지만 저는 내일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기꺼이 동참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감사하십시오. 내일도 저를 이끌어주시는 하나님, 내일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 내일도 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 미리 감사드립시다. 그러면 하나님도 고맙다고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따져서 감사하자는 게 아니고 우리의 감사는 항상 미래에 감사해야 합니다. 거꾸로 말씀드리면 미래는 내일 것이 아니고 미래를 감사하는 사람은 내일의 희망을 오늘 미리 앞당겨서 가져다가 지금 맛볼 수 있습니다. 내일이 어째서 있습니까? 내일을 꿈꾸는 사람은 오늘 내일을 만들어 가는 겁니다. 오늘 내일의 미래를 앞당겨 맛보십시오. 그러신 분은 미리 감사하십시오.

오늘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올리실 때, 지금까지 감사한 것만 하지 마시고 좀 생각을 바꾸어 봅시다. “앞으로 있을 나의 미래에 대해 감사합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이 오늘 주신 아주 기본적인 감사의 주제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저희들한테 귀한 선물 하나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 앞으로도 역사를 완성해 주실 분, 저희들이 하나님과 사는 오늘은 항상 있는 시간의 연속입니다. 항상 오늘, 오늘 속에 과거가 묻혀 있고 오늘 속에서 미래가 꽃피어 납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신학적으로 알고 어떻게 신앙적으로 감사하는 것일까요? 그래서 만들어 낸 것이 성만찬입니다. 여러분, 성만찬에서 빵이나 떡을 뗍니다. 왜 떡을 떼시고 왜 포도주를 드십니까? 두 가지로 설명하겠습니다.

이 떡과 포도주는 예수그리스도의 몸과 피입니다. 그분이 누구시길래요? 예수 그리스도는 몸을 찢으셨고 피를 흘리셔서 죽을 우리를 대신 구원해 주셨습니다. 오래 전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떡을 떼고 잔을 들 때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 옛날부터 계셔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 감사를 드리는 겁니다. 십자가에 달리셨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렇게 떡을 드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 감사가 있습니다. 이분은 옛날에 죽으셨다가 부활했지만 이분은 다시 오시기로 약속된 분입니다. 이분은 과거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미래의 주인이십니다. 이분이 우리한테 하시는 말씀은 나와 함께 이 땅을 살아가면 내 속에 진화된 미래의 나라,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의 축복을, 하나님의 구원을, 미래의 구원을, 내가 담고 있으니 나를 먹는 사람은 나를 마시는 사람은 미래의 주, 하나님 나라의 축복도 함께 먹고 마시느니라.

성만찬의 의미는 여러분이 동참할 때, 지금까지 구원해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구원의 역사를 완성해 주실 하나님 미리 감사합니다. 오늘, 과거도 드시고 미래도 드는 것입니다. 이 속에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우리와 대화를 하십니다. 협력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우리한테 주십니다. 그래서 기쁨의 잔치를 누리게 하십니다. 우리는 감사를 그렇게 하라고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일, 생각하는 일, 만드는 것, 생각, 모든 것 속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깊은 곳에 계신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그분과의 대화, 그분과의 협력, 그분과의 말하기, 이 모든 것이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보이지 않는 위대하신 역사, 보이지 않게 더 우리를 감동시키십니다. 그렇게 감사하십시다. 독립적 차원이 아니고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차원이고,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차원을 우리한테 주시면서 감사하라. 하나님은 영광 받으실 겁니다. 오늘 그런 감사에 동참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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