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온 한국의 70년은 ‘빈들’이었다. 이 빈들은 성서에도 나오듯 ‘돌로 떡을 만들라’는 물질만능, 경제제일주의, 악마에 절하고라도 권력만 잡으면 된다는 권력숭배사조,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비합리적이고 광신적인 기복종교에 지배되는 공간이었다. 그간 한국사회에 역사에 전환도 시도되었으나 나의 관심인 이 악의 영(물질만능, 권력숭배, 광신적인 종교)의 세력은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이 세가지 세력의 유혹을 되풀이 받아오면서 그 유혹에 빠지지 않고 살아 있다고 자부하며 자위한다"
▲박종화 목사 ⓒ베리타스 DB |
경동교회 박종화 목사가 "나는 빈들에서 외치는 소리요"라며 교회와 사회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채 자신의 길을 걸어간 여해 강원용 목사를 회고했다. 8일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마련한 10월 월례회에서였다. 박 목사는 먼저 여해가 1993년 출간한 『빈들에서』의 서문을 읽고 난 뒤, "강원용 목사는 1985년에 경동교회에서 50년간의 목회를 은퇴하신 바 있다"라며 "따라서 위의 이야기는 자신의 목회생활까지도 포함한 자기고백으로 받아 들여도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해의 태생과 성장 과정, 목회 철학 등을 소개했다. 특히 박 목사는 "일본 동경의 명치학원을 거쳐 조선신학교를 마치고 미국의 유니온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강 목사는 평생을 좌우하는 신학스승을 만나게 된다"라며 "한 분은 폴 틸리히라는 신 정통 신학자이고, 다른 한분은 기독교 현실주의 윤리의 대가인 라인홀드 니버 교수이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두 분 교수의 신학과 윤리는 강 목사의 목회와 사회참여의 신학적·윤리적 바탕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목사는 이어 여해의 신학을 조명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자체가 강 목사의 성육신적 '세상참여 목회'를 가능케 하고 뒷받침해온 신학적 가치"라며 여해의 신학은 ‘성육신 신학’이었다고 평했다.
여해가 두 목회 목장을 가지고 있었음도 알렸다. 하나는 모이는 교회로서의 ‘경동교회’였고, 다른 하나는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크리스찬 아카데미’였다. 박 목사는 "둘 다 강원용 목사의 분신이라 할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 강 목사님의 성육신 신학적 실천의 장으로서 역할을 더 크고 넓게 해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그는 항상 성육신 신학의 출발은 목회하는 교회공동체 이어야함을 믿고 그곳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흩어지는 교회에서 구현되고, 현장에서 용해되고 습득한 성육신적 프락시스는 다시금 주일 설교의 강단에서 신학화되어야 한다는 상호교류의 틀을 아주 철저하게 지킨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에큐메니컬 운동의 선두주자 여해를 조명했다. 박 목사는 WCC, CCA, NCC를 중심으로 한 ‘교회내적 대화 운동’ 못지 않게 강 목사가 많은 애정과 관심을 쏟은 ’종교간 대화 운동’에 주목했고, 여해의 대화 운동, 대화 철학은 "그에게 있어서 성육신 신학의 도구였다"고 평가했다.
또 대화의 주제는 항상 ‘인간화’였으며 강 목사의 ‘인간화’ 주체는 기독교 신학이나 교회 현장에서 말하는 인간화냐 복음화냐의 틀에서 말하는 인간화가 아니라 세계 현장속에 임하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구체적 표현을 인간화라고 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종교간 대화담론은 구원론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박 목사는 "오히려 '종교인들'의 참된 '종교인 모습' 곧 '종교인들'의 세상구원을 위한 '인간화'를 말하려고 했고, 그것은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의 '평화'를 만들어 낸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본다"고 했다.
이밖에도 강 목사의 애틋한 '예술과 문화' 사랑에도 한 마디 했다. 다혈질의 성격과 직선적인 성격 탓에 흔히들 ‘강핏대’라 별칭했는데 정작 본인은 한 때 연극인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할 만큼 '예술과 문화'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박 목사는 "문화예술에 대한 지독한 사랑과 정치 사회 현실에 대해 매서운 비판이 한 사람의 성격형성에 강 목사님처럼 '역설적 합일'로 잘 응축된 경우도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여해가 성육신 신앙만이 아닌 새 역사를 만드는 하나님의 영광의 신학을 주창했음을 강조했다. "본인의 언어로 남겨놓은 신학적, 신앙적, 세상적 명제가 있다"며 박 목사는 여해가 생전에 " ‘사이’(between)와 ‘넘어’(beyond)가 공존하는 신앙, 이웃사랑과 하나님 사랑이 합일되는 십자가 신앙, 보수와 진보가 결합하여 제 3의 길을 찾고자 하는 중간 매개 집단의 형성, 환경문제를 중심으로 기존세대와 다가오는 세대가 결속하고 책임을 공유하는 세대간의 대화와 연대의 틀 닦기 등을 통한 “하나됨”의 모색에 집중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월례회에서는 박종화 목사의 강원용 목사 회고와 함께 최근에 작고한 옥한흠 목사에 대한 회고(오정현 목사), 한경직(이철신 목사)·김준곤(박성민 목사)·정진경 목사(이정익 목사) 등에 대한 회고도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