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베리의 『우주 이야기』 책 표지. |
서양 기독교 문명 안에 확산된 인간 중심주의 그리고 과학과 기술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가 가져온 생태계 위기를 신랄하게 고발하는 책 『우주 이야기』(토마스 베리·브라이언 스윔 공저, 맹영선 옮김)가 국내 독자들 곁으로 찾아왔다.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에서는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가톨릭 생태사상가이지만, 국내에는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토마스 베리 신부. 그의 과학과 종교와 역사를 통합한 우주론적 성찰을 담은 이 책이 자연과학자이자 신학자이기도 한 맹영선 교수(고려대)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책을 펴낸 대화문화아카데미는 지난 15일 출간 기념 간담회를 갖고, 토마스 베리 신부가 『우주 이야기』를 통해 던진 화두들을 놓고, 참석자들 간 진지하게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토마스 베리의 제자 정현경 교수(유니온 신학대학, 가운데)가 지난 15일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열린『우주 이야기』 출간 기념 간담회에 참석해, 자신의 의견을 회원들과 나누고 있다. ⓒ김진한 기자 |
이날 간담회에서 눈에 띄는 논의는 토마스 베리 신부가 말하는 ‘기술대’(Technozoic era)를 오늘의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토마스 베리 신부는 ‘기술대’를 자연을 배려하지 않는 인간 중심주의 경향에 기초한 기술의 시대라 일컬으며 ‘생태대’(Ecozoic era)와 대칭점에 위치한 것으로 다뤘다.
토마스 베리의 제자 정현경 교수(유니온 신학대학, 신학)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정 교수는 "작년에 돌아가신 토마스 베리 신부는 장례식 마저 동물들의 축제로 꾸미며 그 아름다운 생을 마감하셨다"며 "그는 생전에 무엇보다 자연을 객체로 보지 않고, 주체로 봐야 한다는 정신을 일깨웠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이것이 토마스 베리 신부의 생태대에 담긴 기본 철학일 것"이라며 "생태 위기를 초래한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에 대해 경고를 한 그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본다"고 했다.
반면, '기술대'에 시종일관 비판적 자세를 견지한 토마스 베리 신부의 주장에 경제학적 입장에 기초한 반박도 있었다. 경제인 이병남씨(LG 인화원장)는 "기업들이 생태계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파괴할 것이라고 보는 관점에 동의하기가 어렵다"며 "기업들도 지난 20년 간 생태적 관심을 보여왔고, 실천에 옮겼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불교에서 말하는 ‘욕계’를 들어 인간의 본성적 욕망이 기업에서 실현이 되어 지구 생태계에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그 욕망이란 자연에 대한 경외 혹은 자연 의존적 경향을 말한다고도 했다.
김재희 교수(서울예대. 과학사) 역시 토마스 베리 신부의 ‘기술대’를 "오늘의 현실에서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기 힘들다"며 "이 시대 테크놀로지와 인간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로까지 발전했다. 이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이 테크놀로지와 끊임없는 결합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정현경 교수는 토마스 베리 신부의 '기술대'와 '생태대'를 변증법적으로 발전시키는 논의도 필요함을 역설했다.
한편, 간담회에 앞서 ‘왜 우주의 역사를 이야기해야 하는가―『우주 이야기』의 세계’를 제목으로 책의 번역자 맹영선 교수의 발제도 있었다. 맹 교수는 "베리는 생태계 파괴 문제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경외감 상실과 자연과 친교를 나누지 못하는 인간 사회의 자폐증(autism)이라는 문제를 우리에게 고발한다"며 "그가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자연세계와의 내적 친교, 친밀감, 경외심 등을 잃어버리고 자연세계로부터 유리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또 "그는 전 지구적 생태계 위기 실태보다 그 사태를 느끼지 못하는 인간의 감수성 결핍을 더욱 심각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베리의 생태계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은 "'생태대(Ecozoic era)'로의 비약"이라며 "베리는 지금의 위기 상황을 신생대에서 생태대로 비약할 기회라고 보고, 생태대 실현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주론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주장한다"고 맹 교수는 전했다.
*토마스 베리 Thomas Berry는 누구인가.
생태신학자이며 문화사학자인 토마스 베리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 미국 애팔래치아 남부의 구릉지대에서 태어났다. 1934년 수도원에 들어갔으며, 1948년에는 수도 워싱턴의 미국가톨릭대학교(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에서 서구문명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해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어, 문화, 종교를 연구했다. 모택동이 권력을 장악하자 미국으로 돌아가 중국학 연구를 계속하고, 인도의 산스크리트 어와 종교적 전통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후 시튼홀대학교(Seton Hall University)의 아시아학 센터와 뉴욕의 세인트존스대학(Saint John's University)의 아시아학 센터에서 강의를 했다. 포드햄대학교(Fordham University)의 종교사 대학원 프로그램의 소장(1966-1979)과 뉴욕 리버데일종교연구센터(Riverdale Center of Religions Research)를 창립, 소장(1970-1995)을 역임했다. 미국 떼이아르 드 샤르댕(American Teilhard de Chardin Association)의 회장(1975-1987)을 지냈으며 1995년 노스캐롤라이나로 돌아와 최근까지 생태학적 이슈들에 대한 글을 써왔다.
2009년 사망하기까지, 지난 50년간의 그의 저술 활동은 산업사회의 교란된 생태학적 상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표 저서로 『불교Buddhism』(1986), 『인도의 종교들The Religions of India』(1972)이 있으며 1988년에 출판된 『지구의 꿈The Dream of the Earth』으로 1995년 래넌어워드Lannan Award 논픽션 부분을 수상했다. 1991년엔 토마스 클라크Thomas Clarke 신부와의 대화록 『Befriending the Earth』(국내엔 ‘신생대를 넘어 생태대’라는 제목으로 번역 소개되었다)를 출판했다. 브라이언 스윔Brian Swimme과 공동 집필한 『우주 이야기The Universe Story』는 1992년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