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김흡영 교수의 하늘새의 땅소식 <바로가기 클릭>
52호[2010년5월1일]
제 목 : 세상의 빛이 되라!
본 문 : 마태복음 5:13~16
복음의 핵심인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주님의 명령을 묵상하면서 앞으로 경기 신우회의 역할 네 가지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첫째, 한국 교회의 질적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양적인 성장보다는 질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20세기 미국의 대표적 신학자 리차드 니버는 그리스도와 문화의 관계를 다섯 가지 유형으로 규정했습니다. 1) 문화와 충돌하는 기독교, 2) 문화의 기독교, 3) 문화 위에 군림하는 기독교, 4) 문화와 변증법적 관계에 있는 기독교, 5) 문화를 변혁하는 기독교. 이 중에서 니버는 마지막 문화를 변혁하는 기독교가 가장 적합한 유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전통 종교 및 문화와 대항해서 충돌하거나 군림하는 교회가 아니라 한국 문화를 기독교적으로 변혁하는 지혜롭고 열린 자세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엘리트 집단인 경기 신우회는 이 문화의 개혁 및 기독교 문화 콘텐트 창출의 원동력을 창출하는 촉매의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세계적 신학자들은 한국 교회의 양적 팽창은 인정하지만 그 기독교성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물질 만능주의적 경제 논리와 포플리즘이 팽배한 한국 교회의 세속화와 기독교성 변질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습니다. 더욱이 대형 백화점과 슈퍼마트의 마케팅 전략을 능가하는 대형 교회들의 싹쓸이식 전도 폭거, 그리고 유명 교단들의 총회장, 총감독 선거 등에서 자행되는 종교 모리배적 행태는 이러한 비판을 받기에 충분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난 학기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한국 기독교 권력 과연 기독교적인가?"라는 제목의 세미나 포스터를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빠른 성장과 동시에 빠른 부패 상황은 세계 각국의 역사학자들과 종교사회학자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이제 맹목적인 선교보다는 하나님의 한국 교회에 대한 구체적인 명령을 찾아내서 실행해야 할 때입니다. 선지자 아모스의 외침을 듣고 각성해야 할 때입니다.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1~24) 예언자의 책무를 감당하며 한국 교회의 질적 변화를 도모해야 할 때입니다.
셋째, 한국 교회의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인들의 고질적 경향인 근본주의적 배타성을 극복해야 합니다. 한국에 오면 모든 종교와 사상들이 근본주의화됩니다. 그것은 한 번 들어오면 빠져나가지 못하는 산과 계곡이 주를 이루는 지형적인 성향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오리지널을 보존하려는 고집스러운 성질은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한국은 세계 종교의 창고 또는 실험실이라고 불려집니다.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보다도 한국은 훨씬 더 오리지널한 불교, 유교 등 동양 종교들의 모습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계곡형 성향이 패쇄적이 되면 모든 것이 꼭 막혀버려 껍데기 형식은 남아 있지만 본질인 아가페적(자기 희생적 열린) 사랑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러한 징후가 이미 한국 교회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막연한 전도 -사실상 자기 교세 확장- 에만 급급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교회는 기본적으로 복음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와 교단의 이해 관계를 뛰어 넘는 주님의 같은 지체로서 교회 사이의 형제와 자매의 사랑을 나누는 범기독교적 정신, 에큐메니칼 정신이 더욱 중요한 때입니다. 경기 신우회는 이미 그 특성상 범기독교적 단체입니다. 이러한 범기독교적 열린 자세가 다른 한국 종교들에게도 확대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경기신우회가 한국 교회와 조국과 세계의 미래를 위해 공헌해야 할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넷째, 기독교가 한국 종교의 하나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이승훈 선수의 쾌거를 중계하던 한 SBS 해설자가 너무 감격해서 "주님의 뜻이다."라고 하자 공영방송에서 특종 종교의 편협된 언사를 했다고 중도하차 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한 특별한 기쁨을 주님의 은혜, 부처님의 공덕이라 한들 서로 이해하고, 그러한 표현의 자유가 통용되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오래 동안 종교 간의 오해와 갈등이 이토록 쌓이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물론 이것은 쌍방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한국 교회가 이 땅에서 지금까지 보여 준 전통 한국 종교들의 존재를 무시하는 독선적 태도에도 크게 기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포항시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공공연하게 선포하는 소위 신앙 좋은 정치인들과 공직자들. 그러면 다른 종교인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타종교인들도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와 같은 한국인들입니다. 한국 교회는 한국 종교의 하나일 뿐입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외세의 압력으로부터 조국을 살리기 위한 구원의 한국 종교로 이 땅에 정착했습니다. 현재 한국 교회는 스스로 나르시시즘에 취해 이 역사적 사실을 망각한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는 철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의 리더들은 사회적 이슈를 다룰 때 교회 안의 언어를 사회적 담론으로 번역할 수 있는 지혜와 성숙한 신학적 능력이 필요합니다. 한국 교회는 교세 확장에 급급해서 그런 훈련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한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는 종교적으로 다원화된 한국 사회와 소통해야 합니다. 특히 힘과 권력을 가진 한국 교회, 아무리 좋은 뜻이라고 할지라도 그 뜻을 전할 때는 오해받지 않도록 교회 안의 언어를 일상적 우리 언어로 조심스럽게 번역하여 소통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기독교가 서양의 꽃을 화분에 옮겨 담은 선교 대상국의 수준에서 벗어나서 한국 땅에 그 뿌리를 내리고 한국화되는 첫 단계라고 할 것입니다. 경기 신우회가 이러한 기독교의 한국화, 한국 종교화, 한국 문화화의 선봉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종교와 권력 관계에 대하여 역사가 준 교훈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온 세계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이룩한 중세 유럽 기독교의 신국에 대한 실험 결과를 역사는 혼탁한 암흑의 시대라고 평가합니다. 그 이유는 명백합니다. 종교가 절대 권력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껍데기만 바꿨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종교인도 악을 행할 수 있으니 항상 말씀에 의해 검증받아야 한다는 것이 종교 개혁 정신의 핵심입니다. 더욱이 한국 역사는 종교가 권력화 되면 나라가 망한다는 생생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고려는 그런 불교 때문에 망했고, 조선은 그런 유교 때문에 망했습니다. 이제는 기독교가 권력화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너희는 빛과 소금이 되라.”는 오늘의 말씀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빛과 소금의 속성은 결집이 아닌 부서지는 분산입니다. 지배와 군림의 논리가 아닌 섬김과 나눔의 논리입니다. 경기 신우회는 샅샅이 부서져 한국 교회의 소금이 되어 그 참 맛을 보존해야 합니다. 경기 신우회는 한국 역사의 등경 위에서 우리 겨레와 인류를 향해 비쳐지는 빛이 되어야 그 존재 이유의 정당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찬란해 보이지만 매우 외롭고 좁은 길입니다. 그 길을 감당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기독교 지식인 리더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한국의 지성인 집단 경기 신우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선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경기 신우회는 기독교의 지성인, 문화인, 평화인으로서 한국 기독교, 아시아 기독교, 나아가서 세계 기독교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역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문, 그리고 신앙의 동지 여러분! 산산히 부서져 등경 위에서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십시오. 산산히 세상에 풀어져 예수의 짠 맛을 내는 소금이 되십시오. 그것이 궁극적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경기 신우회라는 모임은 우리가 부서지고 흩어져서 세상에 빛을 발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개혁 운동의 연속적 발대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귀한 일을 감당하며 주님만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기업 위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총이 같이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