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경동교회] 세상에서 세상을 넘어

2010년 10월 31일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예레미야서 29:8-11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지금 너희 가운데 있는 예언자들에게 속지 말고, 점쟁이들에게도 속지 말고, 꿈쟁이들의 꿈 이야기도 곧이듣지 말아라. 그들은 단지 나의 이름을 팔아서 너희에게 거짓 예언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내가 보낸 자들이 아니다. 나 주의 말이다. 나 주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바빌로니아에서 칠십 년을 다 채우고 나면, 내가 너희를 돌아보아, 너희를 이 곳으로 다시 데리고 오기로 한 나의 은혜로운 약속을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 주겠다.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내가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이다. 너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려는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아멘.

에베소서 6:10-17

끝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그분의 힘찬 능력으로 굳세게 되십시오.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시는 온몸을 덮는 갑옷을 입으십시오. 우리의 싸움은 인간을 적대자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그래야만 여러분이 악한 날에 이 적대자들을 대항할 수 있으며 모든 일을 끝낸 뒤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진리의 허리띠로 허리를 동이고 정의의 가슴막이로 가슴을 가리고 버티어 서십시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전할 차비를 하십시오. 이 모든 것에 더하여 믿음의 방패를 손에 드십시오. 그것으로써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모든 불화살을 막아 꺼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십시오. 아멘.

마태복음서 5:38-42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너를 걸어 고소하여 네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네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게 꾸려고 하는 사람을 물리치지 말아라." 아멘.
 
설교문  
  
<세상에서 세상을 넘어>

종교개혁이 없었다면 오늘 같은 찬양은 없었을 것입니다. 종교개혁이 많은 것을 이루어놓았는데 요즘 세상을 살아가면서 종교개혁 때의 큰 기쁨이 많이 사그라진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종교개혁은 1517년에 시작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제 한 7년 있으면 500주년이 됩니다. 지금도 종교개혁은 과거역사에 대한 회고와 추모로 끝날 것인가에 대해서 그건 아닙니다. 종교개혁은 지금도 이 순간도 함께 일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이 완성된 게 아닙니다. 시작만 되었고 완성은 아마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그 때 완성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옛날과 달리 일상생활을 사회에서는 기술 문명이, 경쟁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합니다. 제가 아주 비근한 예를 하나 들려고 합니다. 최근에 제가 핸드폰 바꿨습니다. 그런데 이용도는 기술이 제가 없어서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것을 쓰면서 전문가한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핸드폰이 전 세계적으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널리 팔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핸드폰에 들어가는 아주 깊은 원천 기술은 여전히 비싼 로열티를 주고 수입해 써야 합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요즘에 기업들이 상품을 잘 만들어서 세계시장에 내다 팔고 경쟁하려면 상품가치가 좋아야 하지만 상품이 만들어질 때까지의 기초 연구와 원천 기술과 디자인과 또 판매전략 홍보 전략을 다 포함해야 하는데 그래서 기업마다 요즘에 쓰는 용어가 R&D라는 말입니다. 연구하고 개발하고 Research and Development 그래서 이것이 많이 들어가야 좋은 상품 만들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는 R&D가 예산에 있긴 있는데 병원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고 그냥 해서 매출은 올리지만 올린 이윤가지고 투자하는 병원이나 기업이 너무 적습니다. 이게 걱정입니다. 어느 분이 중국에 있는 대학을 컨설팅하고 와서 이런 보고를 하는 것을 직접 들었습니다. 중국에 있는 난징 대학교가 최근에 굉장히 상승세에 있다고 해서 가봤더니 세계적 수준의 대학을 만들겠다고 교수들의 봉급체계를 바꿔놨는데, 제일 적게 받는 교수 봉급과 많이 받는 교수의 봉급 차이가 100배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중국이나 아시아에서 넘버원 되는 거 원치 않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의 대학보다 최고의 대학교가 되게 하려고 특별히 대학이니까 R&D가 잘 되어야 하니까 연구를 잘한 사람한테 많은 연구비를 주고, 그렇게 대학을 육성하려고 한다고. 제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시 연구하고 기초, 기반, 이쪽에 많이 투자하고 관심을 가져야 장기적으로 우리가 생존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제가 이런 경영기법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가 사실은 500년 전에도 유럽 땅에 있었습니다. 종교개혁 이야기를 드리려는 겁니다. 루터라는 사람은 수도원에서 공부하고 교수로서 가르치고 묵상하고 설교하고 살던 수도사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중세기 역사를 보면 교회가 잘 가다가 너무 평안해서 배불러서 타락을 시작하면 ‘고쳐야 한다,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교회 자체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항상 수도원에서 나왔습니다.

교회사가들은 수도원을 중세기 교회의 개혁의 본거지라고 표현했습니다. 모여서 기도만 하는 줄 아셨을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기만 하는 줄 아셨을 것입니다. 그게 아니고 요즘 용어로 말하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성서가 가르쳐주는 가장 기본과 세상의 뜻을 발전과 상관없이 외부의 압력이나 홍보와 상관없이 기본만 가지고 원전만 연구하는 것, 그래서 리서치 센터입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합니다. 깊이 연구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생명의 줄기가 자꾸 봉쇄된 아름다운 곳에서 샘물처럼 솟아나서 그 에너지가 교회에 전달이 되면 교회가 갱신하고 움직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사람도 살아가면서 두 가지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공간은 일하는 공간, 직장, 하시는 일, 그러나 항상 각 사람마다 자기 속 어느 곳에 가장 깊은 곳에 수도원 하나씩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위대하신 생명의 진실을 가르쳐 주는 하나님의 은사를 내가 가장 깊은 곳에서 또 가장 높은 곳을 향해서 연구하고 평가하고 생각하고 고해하고 이런 마음속에 인간의 실존 속에 담긴 수도원은 꼭 가지고 계셔야 커다란 인간, 사회, 세계가 구원을 받습니다.

루터가 이런 수도원에서 묵상하다가 로마 본부를 가보고 바티칸에 가보고 느낌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불편부당한 일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고치면 됩니까? 루터의 방안은, 수도원 수사 입장에서는 힘이 없어서 연구, 몰두, 기도한 끝에 95가지의 개혁안을 내서 비텐베르크라는 교회의 대문에 붙였습니다. 그걸 다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루터는 교회를 개혁하자는 뜻이 아니고 우리 교인들이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잘못하고 있는 수만 가지가 있는데 하나씩 하나씩 고쳐가면서 기왕에 신자가 된 거 제대로 살아봅시다.

특별히 원천을 연구하자는 게 아니라 그냥 기술도 개발하고 생활 방식을 고치는 것으로 신앙을 돈독히 해갑시다. 일종의 개혁입니다. 혁명이 아닙니다. 그래서 루터가 붙잡은 것 중에 하나가 여러 가지 일들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하실 때 하나님은 골방에 앉아서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죄를 회개하고 참예하고 용서해 달라고 빌면 죄의 경중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반드시 용서를 해 주십니다. 성경말씀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죄의 용서를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는 게 아니고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죗값만큼의 헌금을 내면 된다며 죄의 용서와 헌금과 결부시켰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면책부, 면죄부입니다. 그것도 여러 가지 일탈된 현상 중에 하나입니다. 루터는 그 사실을 알았지만 교황청에 가보고 수도원에서 그 동안 명상하고 닦은 하나님의 심정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 그래서 이것을 고쳐야 한다고 내세웠습니다.

그쪽은 오늘날 용어로 말하면, R&D 중에 D에 속합니다. 근본을 바꾸고 잘못된 관행을 바꾸어 새롭게 시작합시다. 그래서 개발정도로 시작했습니다. 그걸로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랬더니 반대도 엄청났고 루터가 말했던 이 근본 개혁에 대해서 엄청난 찬동하는 물결이 생겼습니다. 북군학파 전체가 우리는 루터를 영웅처럼 모시겠다. 바꾸자, 몽땅 바꾸자. 사실 루터는 요즘 말로 하면 D로 시작했습니다. 원초적인 연구, 개혁방안이 안 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루터가 이렇게 결단합니다. 이제 저 같은 약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다 바꿀 수 있습니까? 그래서 말씀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예레미야서에 보면 예레미야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려울 때, 세상이 타락했을 때, 누군가 나와서 하는 말, 괜찮다. 이대로 살면 괜찮다. 이것은 거짓 예언자들입니다. 어려울 때는 반드시 진실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프지 말고 회개하라고 할 것입니다.

진실된 예언의 목적은 아무리 죄를 지었더라도 죄지은 자를 다 멸망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죄 지은 자를 회개시켜서 축복을 받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목적이 제한이 아니고 번영이다. 예레미야에 가서 선포하라. 이 사실이 마르틴 루터한테는 가슴으로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일을 시작했더니 관이, 사회가 난리가 났습니다. 이제 루터가 마지막으로 보름스라는 곳에 있는 의회에 재판을 받으러 가는 길입니다.

보름스에 가면 의회가 있고 그 의회 입구에 돌판으로 새겨진 루터가 섰던 자리가 있습니다. 거기에 딱 서서 루터가 이제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세상을 바꾸고 교회를 바꾸는 일에 뽑힌 것을 결단을 합니다. 결단할 때는 그냥 하늘에서 떨어질 음성 가지고 결단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미 주셨던 언젠간 주셨던 말씀을 자기 것으로 받으면 됩니다. 새 것,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미 옛날 것 속에 새겨들어 있습니다.

루터 입장에서는 2천년 뒤로 돌아가 봤습니다. 갔더니 이사야 선지자 생각이 났습니다. 가서 선포해라. 이사야가 거부합니다. “저 같은 사람이,” “아니, 네가 내 입술에 내 말을 줄 테니 네 입을 빌려서 나 하나님이 선포한다. 가라.” 마지막 이사야가 하나님의 그 명령을 받고 순복하면서 하는 말씀이 이사야서 6장 8절입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사옵니다. 주여, 저를 보내소서.” 2천년 전의 말씀입니다.

2천년 후에 루터에게 왔습니다. 루터가 사형 언도를 받은 의회의 재판장에 가면서 그 앞에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고스란히 받고 선포합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 그 말 중에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는 말만 딱 따 가지고 돌판에 새겼습니다. 자기 말이 아니고 이사야가 했던 고백의 말입니다. 물론 그 다음에는 주여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이 약속을 주셨던 옛날 2000년 전에 주셨던 약속이 지금 바로 이곳에서 실현됩니다. 적당히 고쳐서 교회를 개혁하려고 했더니 하나님이 아니다. 근본을 바꾸자. 이렇게 이야기하고 루터가 들어가서 결국에는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혹세무민죄, 이단사설 선포죄, 교회의 권위를 망가뜨린 죄, 모든 죄를 합쳐서 루터는 사형이 언도되었습니다. 그런 루터에게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프레드릭이라는 영주한테 사형 집행을 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루터가 사형장으로 가는 중간에, 이 프레드릭 주교가 자기 군대를 풀어서 루터를 납치합니다. 납치해서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게 아니고 자기가 관할하던 집, 이 영주, 영주의 성으로 끌고 갑니다. 그 성 이름이 바르텐부르크라고 합니다. 다시 한 번 가봤습니다. 루터는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쓰십시오. 하고 선언한 사람인데 성에 가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저한테 R&D 하라고 주셨는데 제가 이제는 D가지고 안되겠습니다. 리서치 하겠습니다. 근본을 연구하겠습니다. 결단을 하고 골방에 들어가서 연구를 시작합니다.

그 골방이 제가 보기에 남들 눈을 피해서 지하인 줄 알았어요. 가서 보니까 3층입니다. 옛날에는 위성으로 감시망이 없어서 지하에 안 가고 위에 있는 게 좋았던 모양입니다. 루터가 성경을 번역하던 루터가 성경을 번역하던 책상 벽난로 조그만 방 침대를 다 보았습니다. 거기서 느낀 점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우려면 근본적인 게 뭡니까? 그것은 여러 가지 행실을 고치는 것도 있지만 근본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찾는 것입니다. 말씀은 성경책에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책은 히브리어로 되어 있고 신약은 헬라어로 되어 있고 보통사람은 읽을 수도 없고 중세기 당시에는 로마 라틴말로 쓰여 있고 누구도 조건이 불가능합니다. 이 말씀을 고대 언어에서 해방하여 모든 사람이 아는 각국의 언어로 번역해야 합니다. 그래서 루터가 이 성경을 독일말로 번역했습니다. 1년 동안 번역해서 완성했습니다. 이 번역이 루터 종교개혁의 핵심이 되어서 이 말씀을 읽고 사람들이 불길처럼 일어나서 하나님의 은사를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R&D역사의 중요한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깊은 데로 가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개신교는 개신교대로 떨어져 나와서 교회를 세웠고 그러면 당시 개혁의 대상인 천주교가 망해야 하지요? 천주교는 당시의 관행대로 번역은 하지 않았지만 루터의 번역된 성경을 천주교인들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한쪽에서 개혁을 들고 나왔더니 다른 쪽에서도 개혁에 지지 않으려면 자기 스스로 개혁해야 합니다.

천주교도 그래서 자기 갱신을 시작합니다. 말씀을 읽자. 다시 읽고 읽은 대로 우리도 스스로 개혁하자. 천주교도 있고 개혁의 등불을 달고 따로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 역사가 교회 분열의 역사라기보다도 근본을 다루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교회를 양쪽 다 새롭게 해 주셨다. 윈-윈하게 하셨다. 지금도 그 생활이 계속됩니다. 계속되어야 합니다.

제가 이런 일을 보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정생활을 하시다가 어려우면 산에 가서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십시다. 하는데 루터가 번역한 방처럼 가정이라는 질곡이 있는 것을 잠시 보셔서 산에 가십시오. 떨어져서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는 장소에서 자기 가정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어야 합니다. 루터의 방에서 느낀 점입니다.

루터의 방은 3층에서 세상이 다 내려다 보였습니다. 갈등과 싸움과 좌절이 다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그러나 그 세상을 떠나서 3층에 있었지만 세상을 항상 영적인 눈으로 보면서 세상을 떠난 방에서 성서를 번역했습니다. 어둡고 불편한 세상을 잠시 떠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세상을 버리면서 세상을 위해서 기도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보면서.

제가 늘 이런 말씀도 드렸습니다. 여러분, 기도하시면 하나님이 응답하실 텐데 기도할 때는 좀 갈등을 벗어나기 위해서 눈을 감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허공을 향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적인 눈을 뜨고 기도할 제목은 눈으로 보면서 육신의 눈을 감고 기도하시면 됩니다. 눈 뜨고 눈 감고. 루터는 세상의 어두운 것을 다 말씀을 통해서 보면서 그러나 잠시 세상을 떠나서 정말 종교개혁의 리서치를 기본적으로 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천주교는 이렇게 하면 죽은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고 천주교는 천주교대로 말씀을 읽었고, 읽으면서 이런 개혁을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말로만 전하던 성경말씀을 예수 로마 대성당 안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성만찬 그림이 붙어 있습니다. 천지 창조를 담은 젊은 화가 미켈란젤로의 성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로만 표현하지 말고 미술로 표현하자, 문화로 표현하자. 해방이다.

말씀을 읽었더니 이런 문화와 예술과 하나님의 말씀도 새로운 감정을 얻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무너질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새롭게 출구를 타고 태어납니다. 세상을 등지는가 했더니 원리로 돌아오는가 했더니 나중에 응용되어서 나올 때는 엄청난 기폭제를 달고 나옵니다. 우리가 다 알지만 종교개혁이 우리 세계역사 끼치는 영향이 큽니다. 번역한 것도 크지만 천주교 본부가 있는 이태리가 미술을 통해서 등장하면서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르네상스의 깃발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한 사건이 그 시대에 풍미할 때는 생명력만 있으면 시대를 넘어서 문화도 역사도 정치도 다 퍼져 가면서 새로운 역사를 중요한 것은 있습니다. 그물을 던질 때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야 고기가 많이 잡힙니다. 당장 장기적인 데에 투자하기가 어렵겠지만 멀리 내다보는 사람은 그곳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능력을 받은 우리가 지금 하루하루 사는 게 중요하지만 이 땅을 사직하는 날, 영원의 세계에 투자할 수 있지 않습니까? 매일 매일의 행복에는 투자하면서 멀고 긴 곳에 있는 영혼의 문제는 투자 안 하면 어떻게 됩니까? 인간은 그럴 수 없습니다.

오늘 예수께서 다시 루터보다 1500년 전에 사셨지요? 그 때 예수께서 하셨던 R&D 한 번 봅니다. “여러분은 유대 율법을 통해서 눈에는 눈으로 보복하고 이에는 이로 보복하라. 이 말씀을 들었지 않느냐, 그 말은 눈을 다쳤다고 그 이상으로 보복하면 안 된다.” 보복의 선을 그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하라. 누가 억지로 오리까지 가자고 하거든 가 주고 이게 로마시대의 법입니다. 무조건 순복해야 합니다. 종이니까.

거기서 끝나면 분노만 삭히고 화가 나고 죽을 텐데 이제부터는 내가 방법을 가르쳐 주마. 나머지 5리는 요청을 안 할 텐데 네가 스스로 제안을 해라. 나머지 오리는 내가 가주겠습니다. 5리 갈 때까지 나는 종이었지만 그 다음 오리부터는 내가 주인입니다. 종으로 있을 때는 분노 때문에 억지로 가주었지만 두 번째 오리부터는 내가 사랑으로 보복하기 위해서 감동시키기 위해서 내가 오리를 제안합니다.

“이렇게 세상을 이겨라. 오른뺨 한 대 맞으면 대들지 말고 왼뺨까지 때리라고 해라. 그래서 너도 보복대신 사랑으로 극복하고 뺨을 때렸던 사람도 회개시켜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라.” 역설 같지만 사랑의 힘을 강조한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하면 당시 기록에 보면 5리 가자고 했다가 10리 가주는 사람한테는 미안해가지고 사절했다고 합니다. 오른 뺨 때리고 왼뺨 때리는 사람한테는 실제로 미안해서 다시는 폭력행사를 안 했다고 합니다.

폭력을 받으면 받은 만큼 율법대로 갚지 말고 한 술 더 떠서 주인이 되어 자유롭게 폭력을 이기는 사랑으로 극복해보고 대안을 찾아보자. 이것이 근본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종교개혁의 불길은 개신교만 좋은 게 아닙니다. 가톨릭도 좋았습니다. 교회만 좋은 게 아니었습니다. 막혔던 우리 인문학 모든 영역에서 등불처럼 자유와 문화가 피어났습니다. 르네상스가 그랬습니다.

무슨 일은 어느 하나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장기연구를 자랑하는 기업은 자기만 배부른 게 아니고 온 인류에게 영향을 끼치고 좋은 일 하지 않습니까? 오늘 말씀이 여러분 그렇게 하시면 오늘 예배소서에 있는 대로 하나님의 가장 깊은 진실이 허리띠, 이름이 진리입니다. 흉배-정의입니다. 신발-평화, 방패-믿음, 투구-구원, 그리고 찌르는 칼은 성령의 칼, 말씀의 칼입니다. 이렇게 무장할 수 있는 승리의 힘이 원천에 있습니다.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말씀을 캐보십시오.

오늘 종교개혁 주일을 옛날 교회에서 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주어진 이 세상에 한 스텝만 깊게 세상을 넘어서 살 수 없나요? 우리 오늘을 충실하게 삽시다. 그러나 한 가닥만 내일을 향해서 살 수 없습니까? 우리 도시에 삽시다. 풍요 속에 삽시다. 즐깁시다. 그러나 풍요를 조금 넘는 한 사람다운 가치를 갖게 한 스텝만 높게 살아봅시다. 우리 이따 찬송 부를 겁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이 땅에 살지만 조금 높은 곳에 계신 하늘의 진실로 꼭 끌어안고 살아봅시다.

이 세상에 십자가 지고 살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종부에는 죽습니다. 죽음을 살 필요가 있습니까? 죽음이 있지만 십자가가 있지만 부활이 잉태되고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위대한 약속을 한 스텝만 올려서 바라고 씹고 마시면서, 그리고 온 세상을 삽시다. 죽음을 극복하는 또 다른 생명이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원천, 그것은 가족사랑, 나라사랑, 자기 사랑, 모든 곳에서 원천은 지금도 피어납니다. 조금만 높게 삽시다. 조금만 깊이 삽시다. 조금만 넓게 살아봅시다. 주님이 같이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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