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40)

영국의 헨리 2세와 토마스 베케트의 순교

본지는 한신대 이장식 명예교수의 교회 역사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교수는 얼마 전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예수는 평신도였고, 초대교회 예수 운동을 이끈 무리들 역시 평신도들이었다"며 교회사에 큰 기여를 한 무명의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을 조명했습니다. 앞으로 연재되는 글이 평신도들의 신앙 생활 함에 있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영국의 헨리 2세와 토마스 베케트의 순교

신성로마제국의 주권자는 황제이지만 때로는 교황의 강력한 권위가 황제와 같았다. 영국은 신성로마제국의 영토가 아니었지만 교황 하드리아누스(Hadrianus) 4세가 1155년 영국의 왕 헨리 2세에게 아일랜드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교서를 발급하여 헨리의 아들 중 한 사람이 아일랜드의 왕이 되었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관계는 이때부터 적대적이게 됐다.

영국이 교황 그레고리 1세 때부터 로마가톨릭교회의 한 교구가 되었지만, 헨리는 자기가 영국 교회를 다스릴 강력한 권한을 갖고자 하여 1164년 1월에 클라렌돈(Clarendon) 헌장을 발표하고 영국의 대주교와 모든 감독들과 수도원장들의 서명을 요구하였다. 영국 칸타베리의 대주교 토마스 베케트(Thomas Beket)는 승복할 수 없는 몇 가지 조항이 있어서 승복을 거부하였다. 베케트 대주교가 수용할 수 없었던 주요 요건은 성직자와 교회 사이에 재판거리가 생기면 왕의 법정에서 취급하여 해결해야 한다는 것과, 주교나 감독이나 수도원장의 자리가 비어있을 때 그들의 교구나 수도원에서 나오는 모든 수입은 왕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그들의 후임자 선출 시 왕이 소집한 해당 지역의 사람이 왕의 예배실에 와서 의견을 말하게 한 뒤 왕이 선출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성직자를 평신도인 왕이 선출하는 것을 말하는데, 영국 교회는 로마 교황청에 속해 있기 때문에 교황이 영국 성직자를 임명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헨리 2세는 자기 신하들이 있는 자리에서 베케트 대주교에 대하여 분노하여 말하기를 “내가 주는 빵을 먹고 사는 자가 나에게 반항하였다. 그 놈은 새끼 말을 타고 내 조정에 들어왔는데 이제는 왕처럼 행동한다. 내 빵을 먹는 비겁한 놈들 중에서 나에게 골칫거리가 되는 이 사람을 없애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을까?” 이 말은 엿들은 병사들이 칸타베리 성당 제단에서 기도하고 있던 대주교의 목을 쳐서 죽였다. 베케트는 순교자가 되었고 순례자들은 줄이 끊어지는 날 없이 대성당으로 와 그를 기념하는 작은 기도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교황 이노센트(Innocent) 3세(1160~1216)는 중세기 로마 교황들 중 가장 강력하여 황제와 많은 왕들과 충돌하였으나 언제나 그들을 누르고 자기 의견을 관철한 사람이었다. 영국의 왕 죤(John)이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칸타베리의 대주교로 임명하었는데 교황 이노센트는 영국의 귀족 랑톤(Langton)을 임명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죤은 교황의 청을 무시하고 영국에서 이태리인들의 기세를 아예 꺾으려고 교황이 임명한 감독들과 수도원장들은 모조리 제거하고 더러는 유배 보냈다. 이노센트 3세는 진노하여 죤을 파문하고 프랑스의 왕 필립 아우그스투스를 영국의 왕으로 임명하였다. 죤은 할 수 없이 교황에게 항복하고 앞으로 교황청에 충성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 후 6,7명의 교황들의 지배 아래서 교황청 대사가 영국 정부에 파견되어 세력을 부리게 되었다.

이노센트 3세는 영국의 왕 죤과 프랑스의 왕 필립 2세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져 싸우고 있을 때 그 두 사람의 전쟁을 멈추게 하고 두 왕이 제4차 십자군을 조직하여 성지로 출전하게 했다. 두 왕은 교황의 권세에 저항할 수 없어서 십자군을 위하여 많은 인명과 국비를 희생시켰다.

독일이 한때 황제 선출 문제로 10년 동안 혼란이 생겨 1118년에 두 황제가 뽑혀 대립하였을 때 이노센트 3세가 개입하여 그 중 한 사람을 지명하였다. 이때 교황이 황제 선출에 개입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이노센트는 교서를 발표하여 교황은 황제로 피선된 사람의 자격을 검토해서 자격이 부족하면 대관식을 거부할 수 있고, 만일 두 사람이 황제로 피선되었을 때는 교황이 그 중 한 사람을 택하여 대관식을 거행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이노센트는 말하기를 교황(교회)은 태양과 같고 제왕(국가)는 달과 같아서 국가는 교회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노센트 3세의 권력은 실로 놀랄 만했다. 이태리의 시실리 왕국을 프랑스의 한 귀족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그는 유럽의 여러 약소국가들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했는데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폴란드, 러시아, 헝가리, 불가리아, 아르메니아, 시리아 및 유대 나라 등등이었다. 포르투갈은 그를 왕처럼 모셨고, 그의 명령을 받아 스페인에 있던 모슬렘들이 축출되었다.

로마 교황들은 유럽의 왕들과 귀족들 사이의 결혼 문제에도 개입했다. 가톨릭교회에서 결혼은 일종의 성례전이어서 이혼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리하여 왕의 가문이나 귀족들의 집안 사이에 혼인한 사람들이 이혼을 했다가 교황의 정죄로 다시 결합한 예가 많았다. 프랑스의 왕 필립이 덴마크의 공주와 서로 만나보지도 않고 결혼했다가 필립이 나중에 공주를 친정으로 돌려보냈는데 교황이 필립을 파문하고 프랑스 전 국민에게 징계를 내렸다. 프랑스 국민들이 왕에게 항의하자 왕은 교황에게 복종하고 왕비를 불러와서 결혼생활을 다시 시작하였다.

우남 상탐과 교황청 바벨론 포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루돌프 합스부르크(Rudolf Habsbrug)와 그의 후계 황제 중 어느 누구도 로마 교황의 인정을 받아 베드로 사원에서 황제 대관식을 가져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근 반 세기 동안 독일의 황제와 교황 사이에 불화가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은 이노센트 3세와 같은 유능한 교황이 배출되지 못한 데다가 로마 교황청의 권위가 쇠퇴해간 탓이었다.

교황 보니페이스(Boniface) 8세가 1302년에 교서 우남 상탐(Unam Sanctam)을 발표하고 “모든 사람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 로마 교황청에 복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서는 로마 교황청의 과거와 같은 권위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기지가 없는 것이었다. 프랑스 왕실은 그동안 강력한 중앙집권정책을 견지하면서 교황청의 내정간섭을 배제해왔다.

프랑스의 왕 필립 4세가 프랑스의 교회 교역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였다. 과거의 관례로는 교황청의 양해를 얻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인데 필립은 단독적으로 추진하였다. 교황 보니페이스 8세는 왕을 파문하겠다고 위협하고 프랑스의 교역자들에게 왕에게 납세하지 말도록 지시하였다. 필립은 프랑스로부터 로마 교황청으로의 모든 송금을 억제하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리라고 말했다.

교황 보니페이스는 교황이 황제의 권위보다 우월하다면서 예수가 말씀하신 칼 두 자루는 국가와 교회를 다스리는 칼인데, 그 두 자루가 모두 베드로의 칼집, 곧 베드로의 후계자인 로마 교황의 칼집에 들어있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는 로마 교황청이 교회와 국가를 다스리는 영적 및 육적 권세를 다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는 우남 상탐 교서에서 말하기를, 예수가 칼 두 자루면 족하다고 하시고 그 칼 두 자루를 다시 칼집에 꽂으라고 하셨는데 그 칼집은 그의 제자들의 칼집을 의미하였다고 하면서, 국가를 위하여 사용할 칼은 국가의 제왕들이 사용하되 교황의 허가를 받고 교황의 뜻에 따라 사용하여야 한다고 말하였다.

필립은 프랑스 국회를 열고 교황의 도덕적 타락과 여러가지 죄목으로 그를 정죄하였다. 필립은 군대를 보내어 교황청을 점령하고 약탈한 후 교황을 3일 동안 옥에 감금하였는데 시민들이 그를 구출하여 로마로 돌아오게 했으나 노령의 보니페이스는 한달 후 사망하였다.

그 후 로마 교황청은 필립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후임 교황 클레멘스(Clemens) 5세는 필립의 계획에 넘어가서 과거에는 로마 출신의 추기경이 대다수였는데 이제는 프랑스인 추기경 12명과 영국인 추기경 1명을 선출하였다. 필립 4세는 교황과 합세하여 로마 교황청을 프랑스와 이태리의 국경지대에 있는 아비뇽(Avignon)으로 옮겨 이후 70년 동안 이곳의 교황청이 프랑스 왕들의 권세 아래 있게 되었다. 이것을 교황청의 ‘바빌론 포로’라고 한다. 교황청이 다시 로마로 이전한 것은 1378년이었는데 이때 교황청이 과거처럼 세속적 권세를 누릴 수 없게 된 것은, 교황청 자체가 분열되어 교황권 쟁탈 시비가 장기화되었고 반면에 유럽의 국가들은 왕권이 강화되어 군주국가주의가 확립되면서 정교분리가 재촉되었기 때문이다.

제 14세기에 교황청과 제왕들 사이의 마찰이 가장 심하였을 때 단테(Dante)는 군주론(Monarchia)을 저술하였다. 그는 교황과 군주가 동등한 권세를 하나님으로부터 개별적으로 직접 받았고, 황제의 권세는 인류의 평화와 복지를 위하여 필요한 것이며, 군주들은 국가를 다스리는 일을 교황의 간섭 없이 직접 처리해야 할 것을 말했다. 교황청은 단테의 책을 금지도서 목록에 올려서 사람들이 읽지 못하게 하였고 그의 관직과 모든 사회적 지위를 박탈하였다. 단테가 군주론을 저술한 것은 영국의 왕 헨리 7세가 유럽 대륙의 국가들이 강력한 왕권정부를 수립하고 있는 것을 영국도 본받도록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헨리 7세를 이어 헨리 8세가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독립하여 영국의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여 영국에서 영국 왕이 국가와 교회의 유일한 머리라는 수위권 법률을 제정하였다. 그의 후계자들이 이를 계승하였고 엘리자베스 1세 여왕도 그 수위권을 발동시켜서 로마가톨릭교회와는 다른 영국 국교 곧 성공회를 영국에 토착시켰다. 단테는 만년에 유명한 산문시 신곡(Divine Comedy)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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