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전도서 3:11-14
하나님은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만드셨다. 더욱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깨닫지는 못하게 하셨다.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 이제 나는 알았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언제나 한결같다. 거기에다가는 보탤 수도 없고 뺄 수도 없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니 사람은 그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아멘.
골로새서 1:13-20
아버지께서 우리를 암흑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우리는 그 아들 안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그분은 교회라는 몸의 머리이십니다. 그는 근원이시며,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이는 그분이 만물 가운데서 으뜸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안에 모든 충만함을 머무르게 하시기를 기뻐하시고, 그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자기와 기꺼이 화해시켰습니다. 아멘.
마태복음서 9:18-22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지도자 한 사람이 와서, 예수께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내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러면 살아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서 그를 따라가셨고, 제자들도 뒤따라갔다. 그런데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뒤에서 예수께로 다가와서, 예수의 옷술에 손을 대었다. 그 여자는 속으로 말하기를 "내가 그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텐데!" 했던 것이다.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 여자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기운을 내어라,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 때에 그 여자가 나았다. 아멘.
설교문
<알파와 오메가이신 분>
지난주에 우리나라에서 “G20”, 큰 나라, 잘 사는 나라, 스무 나라가 모이고 또 추가로 초청된 나라들이 모여서 세계 경제를 잘 살려보자고 회의를 했습니다.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 그 내용은 잘 모르지만 이 회의를 마치고 나서 제가 과거에 느꼈던 재밌는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유럽에서 공부할 때, 학생들 앞에서 세계지도를 설명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세계지도는 태평양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으로는 미국과 남미가 있고 왼쪽으로 가면 제일 끝에 영국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지도에 대해 한참 설명을 했습니다. 그랬는데 아이들이 못 알아듣습니다. 그런 세계지도가 어디 있냐고 하길래 그럼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세계지도 가운데에는 대서양이 있고 오른쪽에는 가운데 영국이 있고 아시아로 쭉 뻗어나가 제일 끝에 일본이 있고 한국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도에 왼쪽으로 가면 미국과 남미가 있습니다. 위치가 달랐습니다.
제 머릿속에서 세계지도는 태평양이 가운데인데 서양 사람들은 태평양이 제일 끝이고 대서양이 가운데입니다. 그리고 대서양이 가운데니까 그것도 영국이 힘이 있을 때는 그 세계지도가 더욱 확실했습니다. 런던에 있던 그리니치 천문대가 세계시간의 시작입니다. 그게 0시이고, 좌우로 시간대가 뻗쳐 지나갑니다. 오래전 일이지만 30년 전, 세계지도도 내 멋대로 못 갖는구나, 생각했습니다.
‘한국’은 서양 사람들이 볼 때 대서양이 가운데니까 일본이 제일 동쪽이고 그다음에 한국이 동쪽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나라를 동쪽 중에서 가장 끝에 있는 동쪽이라고 해서 Far East라고 부릅니다. 맥아더 사령군 때 군대가 일본에 주둔했을 때, 그 군대이름이 극동군 사령이었습니다.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태평양 중앙 사령부, 이렇게 해야 되는데 말이 달라졌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이번 회의를 마치고 다시 한 번 생각한 게 이제는 태평양 가운데 지도를 그려놓고 우리식 세계지도를 세계에 가지고 나가도 G20 덕분에 아, 그런 지도도 있겠다고 인정받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맞는 일도 사람들이 인정을 해 주어야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우리식 지도를 그린들 저쪽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데 이제는 양쪽이 다 맞게 되어서 우리 한국, 중국, 일본이 극동이 아니라 중앙서쪽에 있는 나라입니다. 이렇게 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제가 그게 굉장히 고맙습니다. 우리 자라나는 자식들이 그렇게 공부할 수 있어서 참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제가 과거 이야기 드리려고 합니다. 로마에 가시면 바티칸 꼭 들러보시기 바랍니다. 바티칸 성당이 있고 성당 위에 바티칸 쿵에 들어가시면 안내를 받을 때 궁 복도를 지나서 구경을 합니다. 그 복도에 가시면 옛날 성현들이 그렸던 아름다운 천지창조의 그림과 같은 성화가 많이 걸려 있습니다. 그 벽화 중에 세계 지도가 하나 있습니다. 이 지도는 중세기 초엽에 그렸던 세계지도입니다. 지금도 대서양이 중앙이니까 세계가 동쪽으로 아무리 가본들 터키가 최고의 동쪽이고, 서쪽으로 아무리 가도 스페인까지 밖에 못 갔습니다.
이런 세계지도를 놓고 성경말씀도 쓰여 졌고 중세기 초엽에 세계지도도 만들어졌습니다. 그 지도를 보면 유럽만 그려놓고 동쪽으로 그림이 있고 서쪽으로 그림이 있는데 유럽이 중심이니까 동쪽으로 터키 이후에 모든 지역이 하얀 공백입니다. 공란입니다. 서쪽인 미국 쪽도 공란입니다. 하얗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이름을 라틴말로 써놨는데, 떼라 인꼬니따. 그 말은 알 수 없는 땅, 미지의 땅, 그 뜻입니다. 가운데만 로마를 중심으로 해서 동서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것이 중세초기의 유럽지도입니다. 세상은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한국 같은 나라는 미지의 땅, 모르는 땅에 속했습니다. 그 역사가 있었겠고 지도도 있었겠지만 이름이 없었습니다. 현재 우리는 한국이라고 부르고, Korea 라고 부릅니다. 중국도 있고 일본도 있는데 아시아라는 이름을 누가 지은 줄 아십니까? 우리가 지은 게 아닙니다. 미국 땅을 아메리카라도 하는데 그걸 미국 사람들이 지은 게 아닙니다. 아프리카도 그 이름을 아프리카 사람들이 지은 게 아닙니다. 중세기를 지배했던 바티칸과 관련된 사람들이 지은 이름입니다.
아시아, 우리는 아시아라고 발음하지만 라틴말로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시아, 미국 땅은 아메리카, 아메리카, 아프리카도 아아, 제일 마지막에 발견한 땅이 호주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시작은 A로 시작합니다. 아-아, 왜 그랬을까, 물어봤더니 라틴어의 음율에 따라서 ‘아’는 처음시작인 알파이고, 끝에 가면 오메가가 있어야 하는데 오메가의 오가 아니고 끝에도 아, 시작과 시작, 아-아, 당시 사람들의 머릿속에 아시아가 발견되었지만 아시아는 찾아진 시작일 뿐이고 끝은 아직도 없다. 시작했을 뿐이고 시작에서 시작이다.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다 똑같습니다. 이것이 서구식 사고방식입니다. 발견해서 시작은 되었으나 완성은 내심 이랬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서 완성해주마.’ 그러면 그 다음에 아시아 이름이 ‘아시오’, 알파와 오메가, 맞습니까? 지금도 우리는 아시아인데 아시오라는 이름은 없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역사에 인간의 역사에 지도까지도 시작은 있고 발전은 있지만 마지막은 아직은 없습니다.
오늘 제가 드리려는 말씀은 지도뿐이 아니라 예수께서 하신 말씀, 사도바울이 전해주신 말씀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역사 처음에, 천지창조 역사 처음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입김으로 사람을 만드셨다. 시작하셨다. 단 시작하신 하나님이 마지막도 완결시켰는데 그 마지막은 아직 열려있다. 마지막을 아직 안 만드셨다. 그것은 예수라고 하는 사람이 다시 오실 때 세상의 모든 역사와 축복과 모든 것을 완성할 것이다.”
지금은 뭡니까? 오늘 2010년은 뭡니까? “처음과, 하나님이 만드신 처음과 하나님이 이루신 마지막 사이에 있는 무한대의 시간이다. 이 시간대에 인간은 마음대로 발전하고 마음대로 바꾸고 만들고 부수고 또 만들고 완전히 문명과 문화와 사상과 모든 것을 이 시간대에서 자유롭게 살아라. 단 한 가지만 기억해라. 이 모든 것의 처음은 하나님이 만드셨다. 마지막은 하나님이 정하신다. 그 안에 모든 것은 자유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오늘 성경말씀에 보면, 그리스도라는 분은 우리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우리 땅에 2000년 전에 오셨지만 사실 그 분은 처음에 천지창조 때, 인간창조 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계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십자가 지러 오실 때에는 보이는 모습으로 오셨고, 처음 시작할 때는 안 보이는 모습으로 계셨습니다.
그 그리스도라는 분이 처음 만들 때, 마지막 완성할 때, 주인역할을 할 겁니다. 그 사이에는 마음대로 자유롭게 은혜를 받으십시오. 혹시 그 사이공간이 바다라고 한다면 그 바다이름을 은혜의 바다, 라고 하십시오. 그 사이 공간이 산이라고 한다면 높은 지혜의 산이라고 하십시오. 성경말씀에 여러 가지 우화적 표현이 많습니다.
오늘 그 예수께서 중요한 일을 한 가지 하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길을 떠났는데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우리 딸이 오랫동안 앓다가 방금 죽었습니다. 당신께서 죽기 전에 오셔서 함께 해 주셨더라면 내 딸이 안 죽었을 텐데 참 아쉽습니다. 나중에 본문에 보면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 보자. … 당신 딸이 죽은 게 아니라 잔다. 잔다는 것을 내가 보여주마.” 죽은 자의 손을 잡아서 예수께서 일으키셨더니 딸이 살아났습니다. 기적 이야기입니다.
길을 가는 중에 또 하나 기적이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이 와서 예수께 말합니다. “제가 많이 아픈데 예수님 당신의 옷깃을 살짝만 손으로 만져도 제가 나을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 순간 옷깃 만지면 낫겠다는 사람이 병에서 나았습니다.
두 가지 이야기가 오늘 길에서 나옵니다. 죽은 자를 보고 자고 있다고 하십니다. 이 아버지의 심정은 죽은 딸이 갖고 있는 인간의 역사가 끝났습니다. 그걸로 종결입니다. 죽음은 모든 역사의 종결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죽으면 그걸로 끝입니다. ‘당신이 오셨더라면 죽지 않았을텐데 끝이 아직은 아닐텐데 선생님이 좀 일찍 오시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언어로 아버지의 심정으로 딸이 숨을 멈추고 죽은 것은 끝이라고 했는데 나 하나님의 아들, 기적의 아들, 완성을 아직도 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말로는 죽은 게 아니라 잠자는 거다. 인간이 끝났다고 내 역사가 끝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역사는 자기가 생겨서 끝날 때까지 그 때가 마지막이고 그 때가 오메가이고 사람이 죽었다고 하나님의 역사가 끝나는 게 아니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일하면서 문제도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하나님은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끝난 건 네가 끝났지, 나 하나님이 끝난 게 아니다. 그 증거를 보여주려고 딸아이의 손을 잡고 일으켰더니 그 딸이 살아나왔습니다. 끝난 것이 다시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이 끝났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끝내실 때 끝나는 것이다.
인간이 죽음으로 모든 것이 완성이고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중간 단계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완성하실 때는 하나님 나름대로 시간이 있습니다. 그 계획 속에서 우리는 자든지 숨 쉬든지 다시 살든지 그런 역사를 살아갈 뿐입니다. 이분이 말씀하십니다. 죽은 자를 살려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권한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믿느냐, 당시 사람들은 믿었습니다. 살려주시는 하나님이 마지막을 만드시는데 마지막을 만드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 분은 처음도 만드셨느니라.
처음을 만들지 않는 하나님이 마지막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을 만들겠다고 확신하는 사람만이 처음 만든다고 하는 확신입니다. 만들지도 않은 사람이 완성을 어떻게 합니까? 완성도 못 한 사람이 어떻게 만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이렇게 은총을 주셔서 하나님이 처음 만드시고 마지막을 만드시는데 그 중간에 사이 역사를 우리한테 ‘사이시간’이라고 하시고 여기서는 인간에게 무한대의 자유를 주시고 믿을 기회를 주시고 결단할 기회도 주셨습니다.
지난 역사를 생각해보면 저희들이 인간으로 상상하는 것들이 실현될까 생각했지만 현실이 되었습니다. 40년 전, 세계 40년이 지나면 우리나라가 일등국 중에 하나가 되리라고 누가 상상을 했습니까? 꿈같은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가 지금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런 현실이 계속해서 발전할 것입니다. 언제까지 그렇습니까? 오늘 말씀대로 하면 하나님이 완성하는 그 날까지 만사가 변할 수 있습니다. 마음대로 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 지켜다오. 마지막은 하나님이 정하시고 마지막 전에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완성되었다고 하지 말고 미완성이라고 하여라. 미완성 속에 하나님의 완성된 의지가 은혜가 품어있다고 아직 끝은 아니지만 우리가 맛볼 하나님 나라의 축복이 우리한테 있다고 감사해라.”
저는 미완성이 아름답습니다. 완성되면 아마 재미가 없을 겁니다. 현상들이 완성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재미가 없습니까? 계속해서 커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미완성 교향곡만 아름다운 게 아니고, 미완성 인생은 그것대로 아름답습니다. 변화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보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아시오’가 아니라 ‘아시아’ 하는 것이 남들이 지어준 이름이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계속해서 펼쳐 나갑시다.
이렇게 생각하고 오늘 전도서에 전제로 쓰인 말씀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시간대는 우리가 계획할 수 없으나 그 시간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데 지금은 뭐냐고 하면 저한테 주시는 무한대의 자유의 공간입니다. 결단의 공간이고 지금 제가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살면 됩니까? 처음 만드신 그 분의 은혜를 믿고 나는 지금 기쁘게 살고 싶습니다. 마지막 완성할 그 분의 은혜를 믿고 오늘을 나는 기쁘게 살겠습니다.
살면서 아주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좋은 일 하면서 살겠습니다. 제가 먹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저 혼자 기쁜 게 아니고 이웃과 함께 나누면서 같이 먹고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제가 사는 식구들과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이제 세계지도의 중간인 한국에서 저 끝에 있는 최빈국가인 아프리카 사람들한테 나눔을 통해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비록 미완성이지만 이 미완성, 하나님이 완성해 주옵소서.” 저는 이 순간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순간으로 살겠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인간의 지혜, 과학, 예술,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는 완성된 모습으로 있지만 우리는 그 부분 부분을 현재 속에서 누리고 맛보고 먹고 삽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이제는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처음부터 끝을 만드신 그리스도가 모든 것을 다 가진 완전한 분입니다. 완성품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풍성하심, 이것이 오늘 주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시작이 있고, 그리스도 안에 끝이 있는데 우리는 그 중간에서 그 사이 속에서 풍성한 은혜를 완성해야 하지만 미완성이지만 아름답게 먹고 살아야 갑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완성이십니다.
우리 찬송가 중에 가사는 다르지만 곡 중에 여러 나라 애국가가 들어있습니다. 영국, 미국, 오스트리아의 애국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찬송 부를 때 우리 애국가 부르는구나, 라고 생각하는데 애국가 부르는 게 아니라 곡만 따서 가사는 우리 겁니다. 인도네시아에 가면 한국 아리랑의 곡조를 따서 노래를 많이 만듭니다.
미국 장로교가 발행한 찬송가 346장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그리스도 당신은 우리의 풍성함이십니다.(Christ You Are the Fullness.)” 오늘 골로새서 1장 19절입니다. 내용은 골로새서 1장 13-20절 전체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찬송의 곡이 우리 아리랑 곡입니다.
아리랑을 우리는 부를 때, 일제시대에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아픔, 헤어지는 아픔, 이렇게 불렀는데 미국 사람들은 아리랑 곡을 듣고 ‘이 곡이야 말로 그리스도의 완전하심을 우리는 부분적이지만 미완성이지만 아름다움을 아리랑 곡이 제일 잘 표현해 준다.’ 그래서 아리랑 곡을 이 찬송 가사의 곡으로 택했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곡을 찬송가로 택해서 고마운 게 아니라 우리 아리랑의 정서를 미국의 장로교인들은 그리스도는 풍만하신 분임을 가장 잘 표출한 곡으로 택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즐거울 수도 있고 괴로울 수도 있지만 우리 한 가지는 그 분께 감사할 수 있다면 당신만이 완성자고 우리는 그 분신으로써 살아가는 은혜를 받고 있다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확신만 있으면 저는 우리나라가 아리랑 곡을 찬송에 집어넣게 하듯이 세계 곳곳에 가서 필요로 하는 사람들한테 우리의 정 속에 신앙을 담아서, 믿음을 담아서 전해 줄 수 있습니다.
G20이 중요한 게 아니고 이제 우리가 전 세계 곳곳에 있는 백성들에게 우리가 받은 은혜에 감사하면 은혜를 나누어 베풀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만민의 구세주 우리도 함께 찬양합니다. 당신의 풍성한 은혜 속에 우리가 퐁당 담기고 싶습니다. 우리는 예술로 신앙으로 노래로 가슴으로 머리로 당신의 은혜에 찬양 드리고 은혜의 바다에 푹 빠져서 함께 즐기고 싶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곳에 오셔서 같이 찬양합시다. 신앙의 동지들, 희망의 동지들, 주님 안에 풍성함이 있습니다. 이 풍성은 오늘 여러분 각자 있는 처소에서 기쁘게 찾으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