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계간지 『말씀과 교회』 가을호의 목회연구위원회 특집 편을 기장신학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싣는다. 역동적인 교회 목회 현장을 생명, 꿈, 말씀, 지역사회 등등 다양한 테마로 엮어 낸 이 글이 교회의 건강한 성장을 도모하는 이들에게 모범적인 목회 사례로 제시되길 바란다.- 편집자주
유달제일교회 시절
송순호 전도사는 1987년 1월 2일에 목포 유달 제일교회에 첫 번째 부임을 했다. 부임할 때 유달제일교회는 천막교회였다. 부임한 다음 달부터 성전건축을 시작했다. 1991년 9월에 건강이 좋지 않아 사임을 했다. 그리고 1995년 9월에 다시 부름을 받고 유달제일교회로 가게 됐다. 그리고 8년만인 2003년 11월에 사임을 해야 했다. 이번에는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의 목회 계획이 부목사체제라는 이유로. 송 전도사는 그 때 처음 자신이 목사가 되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그 담임목사가 부임한지 몇 달되지 않아서 유달제일교회가 둘로, 갈라졌다. 남아있던 교인들조차 교회를 떠나는 일이 생겼다. 떠난 지 9개월 만에 부름을 받고 다시 유달제일교회로 갔다. 이렇게 해서 한 교회를 세 번씩이나 가게 되었다.
가보니 기장 교단을 탈퇴한 상태였고, 예장목사가 부임해 있었다. 예장목사는 유달제일교회를 자기 교단 소속교회로 만들려고 했다. 기장교단으로 회복하려는 송 전도사와 그 목사 사이에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송 전도사는 갖은 냉대와 구박을 당해야 했다. 견디다 못한 송 전도사는 사표를 내고 떠났다. 그러나 장로들이 끝내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송 전도사를 다시 돌아오게 했다. 송 전도사는 다시 교회로 들어갔고 간절히 기도한대로 유달제일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기장 소속으로 다시 되었다.
교회가 안정을 찾게 되자 송 전도사는 교회가 갈라져 형편이 어려워진 교회에 전도사가 셋이나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지금의 청운교회 (당시 신촌교회)의 청빙을 받고 유달제일교회와의 오랜 인연을 뒤로 하고 떠났다.
신촌교회 부임
2007년 2월 25일 주일 송 전도사가 신촌교회에 부임했을 때, 교인들은 32명 정도였다. 이 교회를 어떻게 성장 시킬 수 있을까 기도하다가 온 동네 사람들의 생일을 파악했다. 교회에 나오든지 안 나오든지 생일이 되면 선물을 사들고 찾아갔다. 그리고 참 때가 되면 논과 밭으로 간식과 음료수를 가지고 찾아갔다. 마을 사람들을 모두 빨리 사귀게 되었고, 만나는 사람마다 감사의 인사를 받게 되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났을 때, 교인 수가 갑절이 되었다.
“한 생명이 그렇게 귀한데......” 62명이나 출석하게 되었다. 유달 제일교회에서 새 가족교육과 심방을 전담하며 쌓았던 노하우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예상치 못한 성전건축
청운교회는 2002년에 새로 지은 건물이었지만, 없는 돈 가지고 짓느라 날림공사였다. 비가 새는 곳이 있었고, 사택은 바람이 돌고, 지네와 같은 벌레가 기어 다녔다. 서울에 사는 이 동네 출신인 채정자집사 라는 분이 교회 바로 밑에 있는 친정을 다니러 왔다가 사택으로 찾아와서 인사를 하며 헌금봉투를 내놓았다. 송 전도사는 감사의 기도를 했다.
“하나님, 교회가 비가 새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셔서 귀한 분을 보내셔서 이렇게 돕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가정에 복을 내려 주옵소서.” 나중에 열어보니, 헌금은 300만원이나 되었다. 송 전도사의 감사기도가 그 부인의 마음을 감동시켰는지, 그 채정자 집사님은 다음 해에 또 300만원을 헌금했다. 또 하나님은 역사하셔서 영암읍교회 장로님이신 김승관장로님이 부인집사님과 함께 찾아오셔서 어려운 교회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시면서 헌금봉투를 주고 가셨는데 열어봤더니 거기도 3백만 원이 들어있었다. 하나님이 일하시면 너무 쉬웠다. 송 전도사는 그 헌금으로 교회도 수리하고, 칼바람이 들어오고, 벌레가 기어 다니는 사택도 수리했다.
그리고 이듬해 11월에 서울 채정자 집사님이 오셔서 교회를 건축해 주겠다고 했다. 남편 되시는 장순기씨는 군대 가서 하반신을 다쳐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상이용사시며 전국장애인협회 회장이시다. 보훈병원 장의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삼성기업의 회장이신분이다. 장순기 회장은 병원에서 하반신을 절단하는 생사의 기로에서 새벽에 들려오는 차임벨소리에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저를 살려주시면 제가 하나님 교회의 종대를 세우겠습니다.” 하고 약속을 했던 것이다. 그 기도를 받으신 하나님은 그에게 제2의 인생을 허락하셨다. 장순기 회장은 이제는 교회의 집사로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어디에다 교회를 세울까를, 고심하다가 서울에 교회를 지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부인 채정자 집사님이 우리의 고향이자 어머니가 다니시던 신촌교회를 다시 짓자고 남편에게 제안하자, 참 잘 생각했다고 흔쾌히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신촌교회는 새 성전건축을 진행하게 되었다.
교회이름 개명
교회건축이 시작되자 교인들이 특히 남신도 회원들이 교회이름을 개명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구태여 교회명을 개명할 필요가 있느냐고 하자, 남신도 한사람이 일러주었다. 내막을 알고 보니, 옛날에 가난한 시절에 부모들이 남의 집일해주고 먹고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때 다른 동네 사람들이 그들을 보고 ‘천것들, 신촌 것들, 이라고 하대를 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청계마을이지만 그 때는 동네 이름이 신촌이었다. 그래서 신촌이라는 이름이 싫다는 것이다. 송 전도사는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한 맺힌 사연이 있다면 개명을 찬성했다. 그럼 어떤 이름으로 할까, ‘백운’ 청운‘ 이름들 중에서 ’백운교회‘는 우리 광주노회에 있기 때문에 청운교회로 정했다는 것이다.
교회당 헌당식
청운교회는 구 건물 아래쪽 147평을 평당 4만원에 구입하여 건축을 시작했다. 대지 구입에는 큰돈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건축자재만큼은 최고급으로 사용했다. 지하 1층에서 3층 사택까지 총 공사비는 5억여 원이 들었다. 교회당 설계는 전문 설계사에게 맡겼지만, 건축에 관한 전반적인 것들을 송전도사가 주관했다. 내외부에 자재선택, 색상 선택 등, 하나님께 물어보며 최선을 다했다.
2009년 6월20일 새 성전 헌당식 날 장순기회장은 헌당예배 전에 현관에서 느껴가며 울었다. 그가 허리를 다치고 사경을 헤맬 때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다시 생명을 주신다면 교회 종대를 세우겠다.”고 서원했던 장순기 회장이다. 이 날 송 전도사는 장 회장을 위해 특별히 종대에서 차임벨이 울려 퍼지도록 했고, 그 소리를 들으며 장 회장은 뜨거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헌당식을 하면서 송 전도사는 교회의 제도적인 문제를 또 경험하게 된다. 헌당식 순서 중에 교회 열쇠를 전달하는 의식이 있다. 법적으로 당회장이라야 열쇠를 전달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송 전도사는 노회장과 서기에게 간곡하게 부탁을 해야 했다. 장회장의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열쇠를 송 전도사가 받아서 다시 당회장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양해를 얻어 낸 덕분에 송전도사는 열쇠를 들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그 후에 당회장에게 열쇠를 전달했다.
옛 교회당 터 구입
헌당식이 끝나고 난 후 감사헌금을 보니 장 회장이 1,000만원이나 되는 돈을 헌금했다. 송전도사는 그 헌금을 그대로 예금했다. 왜냐하면, 옛 교회 터를 사야하는 숙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터를 청운교회가 사지 않고 다른 사람이 사면 청운교회는 차 세울 마당조차 없게 된다. 더불어 교육관도 문제가 된다. 며칠 뒤, 옛 건물 땅 주인이라는 사람이 헌당소식을 전해 듣고 찾아왔다. 땅 주인은 2002년에 구 교회를 새로 지을 때 땅 주인도 모르게 건축한 것을 나무라며, 법적으로 하겠다고 까지 했다. 송전도사는 땅 주인에게 깊이 사과를 했다. 그러고 나서 땅 주인의 고조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묘가 교회 옆에 있으므로 그 어르신들께 부끄럽지 않도록 이 땅을 잘 사용하겠노라고...마을 노인들 문맹을 퇴치하는 일에 저 교회건물을 교육관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매달렸다. 땅 주인은 전도사님의 뜻을 좋게 받아 들여 사용할 것을 흔쾌히 승낙했다. 송 전도사는 건물사용 승낙과 함께 차후에 땅을 팔게 되면 교회에 팔라고 하는 당부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마침내, 그렇게 되었다. 내 전임전도사님이 교회를 지을 때, 땅 주인을 찾아가서 그렇게 사정해도 땅을 안 팔아서 그냥 지었다는데, 땅 주인이 어느 날 고조부모님들을 모실 산을 찾았으니 그 땅을 교회가 사라고 했다. 송 전도사에게 땅 값까지 알아보라고 했다. 송 전도사는 어느새 땅 주인의 깊은 신뢰를 받고 있었다. 729평의 땅을 평당 3만 5천원에 조정했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교인들의 천원, 이천원, 헌금으로는 불가능했다. 송 전도사는 무작정 장순기 회장에게 전화를 했다. “집사님, 죄송하지만 저 어려운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땅 주인이 그 땅을 판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이 사서 교육관을 헐어 버리면, 우리는 한글학교도 못합니다. 집사님, 그 때 헌금하신 1,000만원 그대로 저금을 해 둔 것이 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생각하고 두었습니다. 제가 여기 온지 3년째 인데, 생활비가 45만원입니다. 3년째 동결입니다. 교인들이 조금 올리겠다고 해도 제가 반대했습니다. 교회건축과 함께 땅을 구입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활비를 올리자고 했으면 그 돈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일이 되고 있는 겁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장 회장은 “전도사님 걱정 말고 계약 하세요. 내가 나머지를 드리겠습니다.” 하고 선뜻 대답해주었다. 땅을 구입하기 위해 장 회장은 15,515,000원을 다시 헌금해 주었다.
건축을 위해 5억여 원을, 이번에는 땅을 구입하기 위해서, 선뜻 선뜻 돈을 내 놓는 장순기 회장을 보면서 송 전도사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겠느냐고 한다. 송 전도사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목회 말년을 축복해주셨다고 하면서 자신을 이렇게 쓰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고백한다. 송순호 전도사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함께 하시고 청운교회가 날로 성장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