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광선] 겨자씨와 민청학련: 민주주의 바이러스

지난 18일 서울 연지동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KSCF 민청학련 관련자 무죄확정 감사예배’에서 설교를 전한 서광선 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 본지 논설주간)가 설교 전문을 보내와 이를 게재한다.- 편집자주

성경본문

마가 4:26-32; 요한 12:24

1. 민청학련 사건 무죄 판결의 딜레마

▲본지 논설주간 서광선 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

1974년 봄, 민청학련 사건이라는 것이 신문에 터져 나왔을 때, 그 사건이 진짜 일어났다고 믿은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유신 선포 이후 얼마 안 되었고, 학생들과 교회가 이에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에, 유신정권의 허약함을 은폐하고, 비판 세력을 격파하고, 국민의 입과 귀를 막으려고 공포정치를 펴고 공포한 것이 긴급조치 1,2,3,4호였기 때문에, 교수들과 학생들을 천 여 명이나 잡아 드리고 200여명에게 사형 등 실형을 선고한 것을, 액면 그대로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유신정권이 얼마나 정통성이 없으면 이토록 악랄하고 폭력적이어야 했는지, 만천하에 스스로를 들어내 보여주는 폭거였습니다.

그 당시 KSCF의 이사로 종로 5가에 힘없이 드나들었던 대학교수의 한사람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성명서를 내는 일이나, 세계교회에 호소하는 일이 아니면, 우리 가난한 호주머니를 털어서 얼마 안 되는 영치금을 모아 감옥으로 보내는 일을 해 보는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끼리 모여 앉아서 감옥으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을 나누는 정도였습니다. 감옥 안에서 김동길 교수님과 김찬국 교수님이 한국역사와 구약성서 세미나를 열고 있다는 이야기, 병 든 사람 한사람도 없이 명랑한 감옥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런 좋은 소식 만 들으면서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36년이 지났습니다만, 아직도 저에게는 형식논리 적, 먹물 지식인의 의문이 있었습니다. 정말, 민청학련이 구성되었고, 유신정권을 전복하려는 음모가 있었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정말로 그런 조직도 없었고, 유신정권 타도의 음모가 없었다면, 죄송하지만, 한마디로, 실망입니다. 민청학련 관련자 여러분이 36년 만의 무죄 판결을 받으신 것, 한편으로 진심으로 축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민청학련이란 사실이 없었다면, 실망이고, 있었다면 이번 판결이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2. 진위의 딜레마를 넘어서

그렇지만, 저는 이 딜레마를 쉽게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한국기독교역사학회가 편집하고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에서 출간한 가장 권위 있는 한국교회사 책, [한국기독교의 역사, 제3권, 해방이후 20세기말 까지]의 역사기술을 보면, "1974년에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이하 민청학련)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해 4월 학생들은 민청학련이란 이름으로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민중.민족. 민주선언" 등을 발표하고 연합시위를 벌인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것이 사전에 당국에 알려진 사건이었다. 1974년 3월 부터 학생운동 지도부에 대한 검거가 시작되어 253명이 군법회의에 송치되었고 사형 등 중형을 언도받았다 (239-40쪽)."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민청학련 사건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는 역사적 증언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증인입니다.

그리고 이번 여러분에 대한 무죄 판결은 유신독재 정권에 대한 역사적 심판입니다. 부당한 정권, 정통성 없는 정권이 폭력으로 내린 유죄 판결을 무효화한 것입니다. 결국 유신독재정권에 대한아주 공정하고 정당한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결국 이번 사법부의 판결이 명백한 언어로 말해주는 것은, 첫째, 민청학련 관련자 여러분은 당시의 한국 민주화 세력을 대변하는 민주화 세력의 상징이었다는 것. 둘째, 이 상징성과 대표성을 한국의 민주화를 저해하는 유신 독재 정권이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셋째, 그리하여 여러분의 상징성은 보다 더 분명하고 선명해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넷째, 민청학련 사건은 반독재 세력을 타도하는 한국 민주화 세력으로 자라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민청학련 사건이 만들어 낸 역사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번 무죄 판결은 그 역사성을 공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무죄 판결은 그 역사성에 대한 인식이며 보상입니다. 여러분이 이루어 낸 민주화가 36년 만에 여러분을 무죄로 판결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동안의 여러분의 희생, 눈물과 고통, 가족들과 함께 한 그 눈물 나는 고통과 억울함, 그 고난의 세월이 허무하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고통과 의혹의 먹구름이 걷히고 이제 광명한 햇빛 아래 여러분의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의 행진이 만천하에 들어난 것입니다.

3. 겨자씨의 비유

나는 민청학련 사건을 예수께서 말씀하신 겨자씨의 비유로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겨자씨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더욱 작은 것이라 (마가 4:32)”고 말씀하십니다. 아마 예수님이 우리가 요사이 말하는 바이러스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바이러스를 말씀하셨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예수님은 그 겨자씨가 자라면 “큰 가지가 뻗어서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된다(마가 4:32).”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한국 민주화의 겨자씨이며 민주화의 바이러스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처럼 민주화의 겨자씨 나무, 생명나무를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국 민주화의 바이러스, 한국 민주주의의 바이러스였습니다.

그리고 36년 동안 엄동설한과 찌는 여름의 고난의 역사 속에서 민주주의의 겨자씨는 자랐습니다. 여러분이 뿌린 민주주의의 겨자씨는 유신독재 정권이라고 하는 돌작밭에 뿌려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고유의 권위주의적 정치문화와 왕권정치의 역사라고 하는 엉겅퀴와 잡초 사이에 뿌려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겨자씨는 자라서 나무가 되고 새들이 자유롭게 날아 들었고 새들의 노래 소리가 들리게 되었습니다. 그 첫째 열매는 문화예술의 자유로운 성장이었습니다. 한국문화의 “한류”가 생겨났고, 젊은 연예인들, 드라마에서 연극에서 뮤지컬에서 영화에서 자유롭게 한국을 표현하고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뿌린 바이러스가 자라서 철통같던 독재 정권들을 잠식하고 밑으로부터 안으로부터 넘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키운 바이러스는 국제적 담벼락, DMZ 역시 먹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4. 예수님의 십자가형은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을까?

여러분은 기독학생으로서 민청학련의 역사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무죄판결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한국 민주화의 거목을 키웠습니다. 여러분의 겨자씨, 여러분의 바이러스는 예수님이 그 원조입니다.

여러분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엉뚱하게 예수님 생각이 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형 집행을 오늘 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재판을 하면 어떤 판결이 나올까? 복음서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에 대한 종교재판에서의 죄목은 “신성모독죄”였고, 로마법정에서의 죄목은 “내란음모죄”였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예수님에 대한 재판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대혼란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유죄 판결을 내자니 예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일이 되겠고, 무죄 판결을 내자니 그동안 한국교회가 내린 "이단 재판"--김재준 목사님에게 내린 이단 판결, 변선환 감신대 총장에게 내린 감리교회의 이단 판결을 모두 번복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것 같습니다. 결국 예수님 역시 “신성모독죄” 아니면 “이단”으로 몰아, 다시 유죄 판결을 낼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한국교회의 교권주의가 그만큼 무서운 것이기 때문에 이런 예감이 듭니다. 그러나 아무도 예수님을 다시 재판하자고 요구하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입니까?

세계국제재판소에서 예수님에 대한 “내란음모죄”를 재심한다면, 몇 년 걸려서 판결을 내긴 내겠지만 결국 증거 불충분이라는 이유로 무죄판결이 나오리라고 짐작해 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될것입니다. 우리는 불의한 사회, 부정하고 포악한 권력에 대항하여 싸우는 “권력전복”의 하나님 나라 정치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는 일이고 십자가형을 받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역사는 우리의 십자가형은 무효이고 무죄판결을 낼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예수님의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나름대로 일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역사성은 하나님 나라의 부활을 희망하게 합니다. 한반도의 십자가는 평화의 길이며 통일로 향한 험한 길입니다. 여러분이 뿌린 민주주의 바이러스는 평화의 나무로 자라서, 통일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믿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여러분과 함께 기도하며 일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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