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태초에 본문이 아니라, 이야기가 있었다”

대만 세계적 신학자 송천성 박사 이야기 신학 강연

"아시아 신학, 서구 신학의 방법론으로부터 탈피해야"
"한국의 민중신학, 초기민중신학의 이야기 전통 계승 못해"
"성서 본문에 메이는 것은 성서를 죽은 책으로 만드는 일" 


“사회가 아무리 민주화 되었다 한들 신학이 그 기능마저 잃어서야 되겠는가”

한국의 민중신학을 겨냥한 한 석학의 뼈아픈 지적이었다. 그는 한국의 민중신학 2세대가 서구 신학의 방법론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삶의 자리를,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해 생동감을 잃었다는 주장을 폈다.

▲23일 오후 7시 안병무홀에서 열린 해외 석학 초청 특별좌담회에서 대만 출신 세계적 신학자 송천성 박사(대만 장영대학교 석좌교수)가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좌담회는 민중신학회, 우리신학연구소,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공동 주최했다. ⓒ김진한 기자 

‘이야기’를 통해 소수자·민중들의 신학 담론에 관한 논의를 발전시킨 대만 출신의 세계적인 신학자 송천성(C.S. Song) 박사는 23일 민중신학회, 우리신학연구소,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해외 석학초청 특별좌담회에서 "비록 성서를 이야기책이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정말 이상한 것은 기독교 신학이 주로 사상이나 관념, 본문에 관한 신학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이다"라며 "이것이 민중신학자들을 포함해서 기독교 신학자들이 아시아에서 신학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에 돌파구를 만들 수 없었던 이유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고 전하며 이 같이 밝혔다.

신학자들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신학이 오랜시간 제자리를 걷게 된 데에 송 박사는 ‘개념에 개념을, 사상에 사상을,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이라는 전통적 서구 신학의 방법론을 지적하며 "수세기 동안 서구에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고, 여기 아시아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접근과 방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며 "기독교 신학자들은 서구 신학의 사상과 개념 그리고 텍스트로부터 영광을 받아왔고 이후 서구 신학의 깊은 수렁에 빠져 꼼짝을 못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서구 신학의 방법론을 "잘못된 ‘정통적인’ 방식"이라고 규정한 송 박사는 "이러한 방식은 이제 바뀌어야 하고 변화되어야 한다"며 "이야기와 더불어 이야기 가운데서 기독교 신학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야기로서의 신학을 주창한 그는 먼저 서구 신학의 해부학적 방법론에 기인한 성서비평에 대해 "아무리 좋게 말해도 그 결과는 비참한 것"이라며 "우리는 성서를 살아있는 책, 생명으로 가득 찬, 살아 숨쉬는 책이 아니라 죽은 책으로 다루어 왔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이어 이야기 신학을 전개하는 데 있어 전제되어야 할 이야기의 속성을 설명했다. 송 박사는 "우리가 이야기로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했으며 "어떤 역사라 할지라도 역사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는 특히 "한국의 역사는 소위 "용감하고 강건한 민중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지 않느냐"며 "신약성서학자였던 안병무 교수가 말한 대로 이것이 바로 오클로스의 이야기가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관점에서 초기 민중신학자들의 지배자들의 본문에 대항해 민중의 이야기를 의지했을 때, 그들은 정당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송 박사는 민중신학 2세대가 이처럼 이야기 신학을 시도한 초기민중신학의 전통을 온전히 계승하지 못했다는 냉철한 평가를 내렸다. 그는 "그들은(민중신학 2세대를 지칭) 민중의 이야기를 신학적 결론으로까지 끌고 가지 못했고 민중의 이야기에 관한 한국적 신학을 발전시키지도 못했다"며 "민중신학자들은 민중의 이야기를 도중에 포기하고 만 것"이라고 밝혔다.

민중신학 2세대가 민중의 이야기를 포기한 것에 송 박사는 "민중의 이야기를 갖고 성실하게 체계적으로 기독교 신학을 창조하는 대신에 민중신학자들은 서구 신학자들의 본문 안으로 되돌아갔고, 한국에 남아 있는 젊은 신학의 세대들은 곤경에 빠져 있거나, 기로에 서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덧붙여, "추측하건데 여러분들의 다수가 역시 여전히 서구 신학자들의 본문을 위하여 민중의 이야기를 떠났다"며 "유감스럽게도 이것이 바로 민중신학이 조기에 죽음을 맞이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제가 이해하는 한에서 민중신학은 신뢰할만한 상속자를 갖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송 박사는 이야기 신학의 가능성에 대해 "보통 한 민족들의 이야기들, 즉 오래되거나 새 것이거나, 고대 아니면 현대, 동서, 남북의 이야기들은 자연적으로 신학적이며 인간의 투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며 "우리의 성서가 이해되지 않는 세계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여성과 남성의 이야기에 관한 놀라움으로서 읽혀지고 있을 때, 성서는 인간 공동체가 투쟁으로 가득 차 있으며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자비로운 하나님의 비전이 열리는 것을 경험하도록 해준다"고 말했다.

또 이야기를 읽는 방법에 대해선 △고고학적으로 △인류학적으로 △역사적 상황으로 △문화적으로 △동시대와 관련성을 포함해 읽되 앞서 언급한 모든 노력들을 기울인 후에 △종교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성서를 본문이 아닌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송 박사는 이날 ‘태초에 본문이 아니라, 이야기가 있었다’(In the beginning, were stories, not text)란 제목으로 강연했으며 김용복 박사(죽재서남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전 한일장신대 총장), 서광선 박사(전 한국민중신학회 회장,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논찬했다. 사회 및 통역은 한신대 외래교수 김희헌 박사(한국민중신학회 총무)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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